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감동산행기] 난기류…안개… 그 끝에서 마주한 몽필생화

서성욱 경북 경산시 하양읍
  • 입력 2021.02.19 09:0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측 중앙 바위 위 소나무가 몽필생화다.
우측 중앙 바위 위 소나무가 몽필생화다.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가 몸과 정신을 일깨워 준다. 황산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다. 나는 비행기 공포증과 멀미가 심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기내 좌석에서 잠도 못 잔다. 황산 공항 조금 못미처 기내 방송이 나왔다. 

“승객 여러분 조금 후에 비행기가 난기류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안전띠를 매고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비행기가 포장도로에서 비포장도로로 달리더니 이번엔 키질을 하다가 디딜 방아질까지 해댔다. 비행기가 공중 분해되지 않는 것을 보니 튼튼하게 잘 만들었다. 승객들 비명 소리가 기내에 가득했고 각자 믿는 신들을 불렀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한참이나 흔들더니만 조용해졌다. 구름 사이로 황산공항 활주로가 보였다. 안개가 온 산을 덮었다. 황산 산행의 훼방꾼이다. 맑은 날보다 궂은 날이 더 많은 황산이다. 그래도 맑은 날과 궂은 날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황산으로 오르는 케이블카에 탄다. 꼭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케이블카 탈 때마다 떠올랐다.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닌 것 같다. 옆 사람 얼굴에도 긴장감을 볼 수 있었다. 중간쯤 왔을 때 덜커덩하고 케이블카가 멈추었다. 비행기에서 혼이 났는데 또 여기서 당해야 했다. 안내원이 인터폰으로 아래쪽과 뭐라 뭐라 하더니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가장 착한 모습으로 변했고 자기가 믿는 신을 여기서 또 찾기 시작했다. 한참 후 다시 케이블카가 움직였다.

드디어 아무 탈 없이 땅을 다시 밟았다. 서해대협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전부 바위를 다듬어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안개와 소나무와 바위는 참 잘 어울렸다. 안개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한 폭의 멋진 수묵화를 만들었다. 천길 절벽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 세월 비바람에 견디면서 자라는 소나무가 대단했다. 난간 쇠줄에는 서울 남산처럼 소원이 깃든 자물쇠가 잔뜩 채워져 있었다.

바람이 잠깐 불어 안개가 걷힌 사이로 서해대협곡이 보였다. 석수가 다듬어 놓은 것을 비바람이 더 아름답게 다듬고 있었다. 기암괴석의 전시장처럼 웅장하고 거대했다. 신선이 노니는 곳이다. 중국에 있는 모든 바위와 돌을 갖다 놓은 듯했다.


현지인들에게서 행복을 배우다

바위의 기를 듬뿍 받고 내려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올라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지나갔다. 한국 사람들은 스틱에 산행 옷차림이었고 중국 사람들은 나무 작대기에 산책 나온 것 같은 옷차림이다. 

현지인들이 평범하고 소박하게 행복을 찾는 모습이 좋았다. 행복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있지 않고 마음속에 있었다. 얼굴에 함박웃음을 띤 중국 아가씨가 아내에게 다가오더니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여 합장 바위 앞에서 함께 찍었다. 자기만의 꿈을 찾아가는 모습이고 무척 밝았다. 두 손바닥을 맞댄 모양의 합장 바위 앞을 그냥 지나갈 수 없어 두 손바닥을 맞대고 안개 걷히게 하고 중국 아가씨의 행복까지 부탁했다. 

길이 평탄해서 걷기가 쉬웠다. 넘어질 듯 버티고 있는 달걀 모양의 비래석이다. 콜럼버스의 달걀이 생각났다. 모진 바람에 넘어지지 않고 서 있는 걸 보니 힘의 균형을 잘 알고 있는 듯 묘하게 서서 버티고 있었다. 휴게소가 있는 광명정에는 인파로 가득해 황산이 사람 무게로 인해 한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사람이 좋고 사람 소리도 좋았다.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잠깐 쉬었다. 또 오기 쉽지 않은 곳인데 자꾸만 안개가 멋진 경치를 볼 기회를 앗아갔다. 

왼쪽 길로 내려서니 호리호리한 체격의 중년 남자가 어깨에 짐을 메고 올라오다가 쉬고 있었다. 지렛대 양쪽 끝에 달린 바구니 속에는 잔뜩 짐이 담겨 있었다. 호기심이 들어 한 번 메어 봐도 되냐고 물어보니 그러라고 한다. 호기롭게 어깨에 올리고 일어서는데 도무지 일어설 수 없다. 거의 60~70kg는 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무거운 걸 메고 산을 오르내리다니 대단했다. 

길 양쪽에 쭉 곧은 소나무가 일품이다. 합장 바위에서 소원을 빌었기 때문일까 안개가 걷혔다. 걷힌 안개 덕분에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찾아 헤매는 이상향의 낙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촛대같이 생긴 바위 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는 데 이를 몽필생화라고 한단다. 

뿌리내리고 살기에는 버거운 곳인데 온갖 어려움과 척박한 환경을 견디면서 지금까지 살아오다니 생명력이 대단했다. 좋은 산에는 인물이 나고 편안함과 너그러움을 얻을 수 있다.

※ 본 산행은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7년 5월에 이뤄졌습니다. _편집자 주

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