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tch by Pitch] 누가 이대 산악부를 힐링 동아리라고 했나

  • 글·사진 이화여대 산악부 김재원, 박도원
    입력 2021.02.17 08:49

    태어나 처음 바위타는 후배 8명과 인수봉 암벽등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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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이와 미진 언니의 첫 멀티피치. 지난해 여름 북한산 인수봉.
    ‘Pitch by Pitch’는 한 피치 한 피치 앳된 오름짓을 이어가는 대학산악부원들의 진솔하고 톡톡 튀는 목소리를 담은 연재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해 이화여대 산악부가 도보 산행을 넘어 암벽등반에 도전한 스토리를 각각 당시 대장이었던 김재원씨와 막내였던 박도원씨의 시각으로 다룬다. _편집자 
    내가 신입생으로 처음 들어왔던 2014년부터 내가 대장을 하기 전인 2018년까지 이대 산악부는 등반Climbing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가벼운 워킹을 하고 산속에서 도시락을 까먹으며 도란도란 수다 떨고, 하산해서 산 아래 맛집을 순회하는 힐링 동아리였다. 잘 모르는 외부 사람들은 이대 산악부의 침체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타 대학교 산악부들의 큰 고민인 신입생 부재 및 동아리 소멸 위기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넘겼다고 자평한다. 암벽등반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는 산에서 계속 활동했고, 산악부를 잘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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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배낭을 메고 인수 야영장 가기 전 단체사진.
    복학생 대장으로 돌아오다
    오랜 기간 휴학을 하고 돌아온 복학생이 대장을 맡는다는 게 민망했지만 새로운 도전을 위해 2019년에 대장을 맡았다. 고학번이었지만 이산(이화여대 산악부)의 ‘도민준’이라고 얘기해 주며 친구같이 편하게 대해 주고 잘 따라와 준 동생들이 고마웠다. 
    대장이 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대학산악연맹 활동 재개였다. 모름지기 큰일을 하려면 큰물에 나가야 하는 법. 그런데 예상치 못한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암벽등반이었다. 
    연맹활동이라 하면 야영하고 요리 나눠 먹고 학교끼리 친목 도모하기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암벽등반이야말로 연맹활동의 정수이자 요체였다. 암벽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내가 연맹 아카데미 암벽 장비에 야영까지 준비하는 건 정말로 만만치 않았다. 
    아카데미에 참여하도록 열심히 회유한 후배 8명에게는 당황하지 않은 척, 모든 게 다 잘되고 있는 척하며 조용히 구글에 준비물을 검색했다. 퀵드로가 뭔지 도저히 못 찾아 다른 대학 대장한테 도움 요청도 하며 우여곡절 끝에 동아리 방에 이리저리 잠자고 있었던 암벽 및 야영 장비들을 찾아 모두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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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막내, 현 대장 박도원.
    배낭이 너무 무거웠다. 동아리 방 앞에서 배낭에 깔려 버둥대는 지혜를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많은 장비를 짊어 본 적도 없고 허술하게 싼 어택 배낭을 160cm도 안 되는 체구가 들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택 배낭을 싸는 방법조차 몰라 자일은 봉지에 넣어 손에 들고 올라가고 텐트도 품에 안고 다녔다. 
    한 포대에 2kg인줄 알고 두 포대를 산 쌀은 알고 보니 4kg였고 나중에 한 포대는 도선사에 공양까지 하고 왔으니 무거울 만도 했다. 그리고 먹을 것 잘 먹자는 욕심에 음식 재료를 최대한으로 싸서 배낭의 무게를 더 했다.
    모르는 곳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듯, 나 역시 여러 걱정이 있었다. 내가 했던 가장 큰 걱정 중 하나는 학번제 위계 문화였고, 다른 하나는 연맹에 오랜만에 얼굴을 비친 이대 산악부가 어딘가 허술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외부의 시선이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체대 출신인 내가 겪은 부조리한 학번제 문화가 연맹에도 있을까 염려된 것이었다. 나는 고학번이어서 학번제 문화의 수혜자 위치라 큰 걱정은 없었지만, 후배들이 혹여 고생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나는 대원들의 학번을 제출하라는 연맹의 여러 차례 연락에도 끝까지 제출하지 않았다. 막상 현장에선 그러한 문화가 없어 괜한 걱정이었지만.
    두 번째 걱정에 대한 솔루션은 단체 티셔츠와 단체 어택 배낭 맞추기였다. 갓 뜯은 어택 배낭 9개를 멘 우리는 이유 모를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하지만 인수 야영장으로 발걸음을 옮긴 지 몇 분도 되지 않아 우리는 그 멋진 어택 배낭에 역으로 ‘어택’ 당했다.
    인수 야영장에 가는데 잘못 싼 짐 때문인지, 다져지지 못한 체력 탓인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무게의 배낭 때문이었는지 후배들이 처음부터 너무 힘들어했다. 해는 기울어 가는데 어택 배낭을 침대 삼아 쪼르륵 누워서 휴식을 수차례 취하고 나서야 인수 야영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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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본 인수봉 정상에서의 풍경.
    몇 차례의 고비를 넘으며
    야영장에서 암벽의 기초 수업인 하네스 차는 법, 매듭법, 빌레이 보는 법을 배웠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대장이었고, 우리 부원들은 그런 대장을 가진 산악부원들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배웠어야 했고, 한 번에 익히도록 노력했다. 아카데미에서 배운 것을 기록하고 기억해서 머릿속에 되뇌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암벽에 붙은 이후 숱한 해프닝을 겪었다. 잘못 보관한 음식 때문에 식중독에 걸려 급히 응급실에 간 인아, 신발이 뜯어져 테이프로 감싸고 돌아다닌 지연이, 고소 공포증 때문에 벽에 매달려 움직이지 못한 지혜 등 그때는 웃지 못했지만, 지금은 추억이다. 
    아카데미에 참가하지 않은 대원들이 음식 조달도 해주고 서로를 돌보며 무사히 연맹활동의 첫 시작을 마쳤다. 묘경이가 매일 조용히 비타민을 내밀던 기억이 나는데 이러한 작은 배려들이 힘을 나게 해줬던 것 같다.
    처음 붙은 벽은 북한산 백운슬랩이었다. 후배들이 겁먹을까 무서운 티도 못 내고 속으로 울며 올랐던 곳이었는데, 고작 일 년 뒤에는 막내 도원이가 대장으로서 백운슬랩 선등을 서고 신입생 교육을 맡기에 이르렀다. 
    내 모든 것을 쏟아부어 다시 시작한 등반이었기에 졸업 후에도 거의 일 년간 재학생이 등반 홀로서기가 될 때까지 쉽게 놓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이제 내가 마음을 놓아도 되겠다는 확신이 든 날이었다.
    후배가 동아리에 나만큼의 애정과 노력을 쏟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원이는 분명 그렇게 했다. 그 덕에 0에서부터 시작했던 등반의 흐름은 계속 이어질 수 있었고, 이산은 단기간에 큰 성장을 했다. 그리고 최고의 등반 실력을 지닌 대학은 아니지만, 작년에는 대학산악연맹으로부터 2020년 최우수대학산악부로 선정될 수 있었다. 지금 이산에는 등반 열풍이 불고 있다. (김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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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산악부는 우리나라 최초 여성 산악부로 1955년 이대 사범대학 산악부로 시작됐다.
    산악부 막내에서 대장으로
    재원 언니한테는 영원한 산악부 막내겠지만, 나도 어쩌다 대장을 맡아 1년을 지낸 어엿한 산악부 선배다. 이대 산악부의 등반기를 돌아보기 전에 먼저 입부부터 대장이 되기까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
    2019년, 대학 입학과 함께 산악부에 입부했다. 대학의 많은 동아리 중 산악부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수능 끝나고 집에서 TV를 보는데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보여 주는 한라산 설산에 반했다. 산을 가본 적이 많지도 않고 운동과는 거리가 먼 몸이었지만 산악부에 들어가면 아름다운 설산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3월 개강과 함께 바로 산악부에 지원했다.
    그때 나는 그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하는 것만 생각했지, 내가 바라는 ‘자연경관’을 보기 위해 산을 ‘올라야’ 한다는 것을 철저히 간과하고 있었다. 북한산 워킹으로 산악부 활동에 처음 참여했을 때, 나는 내가 산의 ‘시옷’도 몰랐음을 절감했다. 그 전까지 나는 산악부가 둘레길을 가볍게 걷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은 후 즐거운 마음으로 해산하는 동아리인 줄 알았다. 산은 당연히 흙길로 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돌길이 대부분이었던 바위산이 당황스러웠다.
    밀레니엄 베이비 타이틀을 가진 2000년생이어서일까,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여서일까, 나는 산악부 막내로 언니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덕분에 산악부에서 산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더 키울 수 있었다. 산과 동방에서 재원 언니를 자주 보면서 언니가 어느 순간부터 볼 때마다 “너가 다음 대장이야~!”를 말하곤 했는데 그때는 대장이 가져야 할 진중함과 책임감이 얼마나 무거운지 몰랐기 때문에 실실 웃기만 했다.
    어쩌다 대장을 맡았지만, 마음가짐은 전혀 대장이 아니었다. 작년 초 등반 시스템을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대장이 되었는데 암벽에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재원 언니의 노력이 무색하게 나는 암벽 활동을 산악부 활동에서 철저히 제외했다. 하필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진 직후라 앞으로 산악부를 어떻게 운영할지, 암벽 활동을 어떻게 재개할지에 대한 고민을 일절 안 했다. 2019년 춘계 아카데미 때 처음 접한 암벽은 체력적으로 나의 부족한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에 나에게 그다지 유쾌한 활동은 아니었다. 
    그래서 암벽은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라기보다 오히려 기피 대상에 가까웠다. 이산의 암벽 활동을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는 재원 언니의 수많은 러브콜을 거절했다. 
    2020년 대장을 맡은 봄, 매주 인수봉을 등반해도 부족할 사랑스러운 날씨에, 나의 등반 활동은 0에 수렴했다. 내가 열정 가득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만큼 진심이 아닐 때의 아쉬움과 서운함을 지금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다시 생각하면 그때의 나, 참 답답했다.
    재원 언니의 끊임 없는 구애로 작년 7월 처음 인수봉을 등반했다. 성균관대 산악부 3명과 이대 산악부 재원 언니, 수민 언니, 나, 총 6명이 두 팀으로 나뉘어 인수봉 고독의 길을 등반했다. 암벽 초보인 나와 수민 언니를 고려한 인수봉의 가장 쉬운 루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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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을진 인수봉 정상에서 희주 언니, 미진 언니와 함께(가운데 박도원).
    첫 인수봉 등반 - 고독의 길
    과연 내가 등반을 즐길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문제는 북한산 초입에서부터 있었다. 무거운 등반 장비를 배낭에 메고 등산하는 게 거의 처음인지라 5분을 걷는 게 어려웠다. 대장이었지만 몸과 마음은 암벽을 처음 접하는 신입 부원과 다를 게 없었다. 
    ‘산악부가 산에 가면 되지 굳이 왜 암벽등반을 할까?’
    이 질문이 인수봉 정상을 찍기 전까지 내내 머릿속을 벗어나질 않았다. 고독의 길은 인수봉에서 가장 쉬운 루트로 알려져 있지만 결코 만만치 않았다. 후등이라 추락할 위험은 없었지만 손과 발이 바위로부터 떨어지는 게 무서워 아등바등 붙으려고 노력한 결과 다리는 멍과 상처투성이가 됐고 정신은 그보다 더 피폐했다. 바위에 오래 붙어있으면 그만큼 시간도 지체되기 때문에 빌레이를 보는 성균관대 예인 언니한테도 많이 미안했다. 내게 연결된 줄이 다른 사람과 이어져 한 줄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 함께 호흡한다고 생각하니 등산과는 다른, 등반으로만 느낄 수 있는 ‘자일의 정情’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사뿐사뿐 우아하게 올라가고 싶었지만 무릎, 팔꿈치 등을 써가며 인수봉 정상에 겨우 도착했다. 맞은편에 보이는 푸른 백운대, 봉우리 사이를 누비는 단단한 하늘의 아득한 구름, 그리고 서울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전경에 왜 재원 언니가 함께 가자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암벽등반으로만 볼 수 있는 세계가 있었다. 처음 마주한 세계는 놀라웠고 그 순간 이대 산악부 다른 부원들도 이 자리에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의 첫 인수봉 등반은 힘든 기억으로 가득했지만 재원 언니의 애정 가득한 부름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암벽의 세계를 모른 채 살아갔을 것이며, 대장으로서 산악부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것 같다. 포기하지 않고 산속 메아리처럼 계속해서 나를 부른 재원 언니한테 정말 고맙다.
    대장으로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암벽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목적성 강한 움직임 덕에 더 이상 암벽을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바위를 맞이하여 작년 여름과 가을 쉬지 않고 부원들과 등반을 했다. 부족한 점은 다른 대학산악부의 도움을 받으며 배웠고, 산에서 부원들과 잊지 못할 추억들을 쌓아나갔다. 그렇게 암벽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은 산에 대한 것도, 등반 실력도 아니라 오래 함께 오르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른 대학산악부처럼 해외 원정을 간 것도, 화려한 난이도의 루트를 등반한 것도 아니다. 암벽 등반을 다시 시작한 우리는 그간 성장했고 계속해서 우리만의 길을 개척 중이다. 앞으로도 산에서 “이산 출발~! 이산 완료~!”라는 소리가 자주 들리지 않을까 싶다. (박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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