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준이 군사용으로 제작한 ‘북방강역도’

  • 최선웅 한국지도학회 부회장
    입력 2021.02.22 09:26

    [최선웅의 고지도 이야기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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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암 신경준이 제작한 ‘북방강역도’(출처: 순창군 공식 블로그)
    조선 후기의 실학자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은 1712년(숙종 38) 전라도 순창에서 태어났다. 신경준의 가문은 순창의 명문가로, 신숙주申叔舟의 막내아우인 신말주申末舟가 단종이 폐위된 뒤 벼슬을 버리고 부인 설씨薛氏의 고향인 순창으로 낙향해 뿌리를 내린 곳이다. 신경준은 그의 10대 직계 손으로,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고 있는 순창읍 가남리 남산마을에는 여암이 제작한 고지도 두 점이 전해 오고 있다.  
    신숙주 막내아우의 10대 직계손
    신경준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여덟 살 때 한양으로 유학했고, 33세까지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살다가 고향으로 내려가 출세할 때까지 학문에만 전념했다. 1754년(영조 30)  그의 나이 43세 때 호남에서 치러진 증광시增廣試에 급제한 뒤 이듬해부터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지은 〈강역지疆域誌〉를 높이 평가한 홍봉한洪鳳漢의 천거로 1769년(영조 45) 비변사 낭청郎廳이 되어 〈여지편람輿地便覽〉을 편찬하고, 이듬해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를 편찬할 때는 〈여지고輿地考〉를 담당해 편찬했다. 한반도의 산줄기를 체계 있게 정리한 〈산경표山徑表〉는 〈여지편람〉 건乾책에 실려 있다.
     신경준은 그 공으로 동부승지同副承旨, 병조참지兵曹參知가 되어 영조의 명으로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를 제작하게 되는데, 〈여암유고旅菴遺稿〉 권5, ‘동국여지도발東國輿地圖跋’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이에 관청에 있는 지도 10여 점과 여러 집을 방문해 고본을 살펴보았으나, 현로(정상기의 아들인 정항령의 자)가 소장하고 있는 지도만 한 것이 없어 그것에 약간의 교정을 가하여 6월 초6일에 시작해 8월 14일에 열읍도 8권, 팔도도 1권, 전국도 족자 1축을 제작해 진상했다. 이 지도는 주척 2촌을 하나의 선으로 하여 세로선 76, 가로선 131로 했다於是發公府藏十餘件。訪諸家古本考之。無如玄老所圖者。遂用之略加校讎。始于六月初六。八月十四日訖進之。 列邑圖八卷。八道圖一卷。全國圖簇子一。以周尺二寸爲一線。縱線七十六。橫線一百三十一。” 
    주척 2촌은 20리에 해당
    당시 신경준이 관여해 제작한 지도는 남아 있지 않지만, ‘주척 2촌을 하나의 선으로 하여’라는 것은 2촌 간격의 세로 76칸, 가로 131칸의 방안좌표 위에 그린 지도를 말한다. 주척 2촌을 실지 거리로 계산하면 약 20리가 된다. 이러한 방안지도方眼地圖를 ‘방격지도方格地圖’ 또는 ‘경위선표식지도經緯線表式地圖’라고도 하는데, 모든 군현지도를 방안좌표에 의해 동일한 축척으로 제작하게 되면 전국의 군현지도들끼리 분합分合이 가능해 후대에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같은 대축척 전국지도로 발전하는 근간이 되었다.  
    신경준은 지도제작 외에도 방대한 역사지리학 관련 저술을 남겼는데, 서울대학교규장각에 〈여암집旅庵集〉과 1910년에 간행한 목활자 본 〈여암유고旅菴遺稿〉가 소장되어 있으나, 대부분 시문집으로 이루어져 있고, 1939년 정인보鄭寅普의 교열로 광문사에서 〈여암전서旅菴全書〉가 간행되었으나, ‘도로고道路考’가 누락되었다. 
    그 뒤 1979년 경인문화사에서 한문판 영인본 〈여암전서〉 두 권이 간행되면서 신경준의 저술 대부분을 망라하게 되었다.
    〈여암전서〉 제1책은 ‘여암유고’와 ‘여암전서’로 구분되는데, ‘여암전서’에는 강계고疆界考ㆍ사연고四沿考ㆍ산수고山水考ㆍ가람고伽藍考 등이 수록되어 있다. ‘강계고’는 상고시대부터 각 왕국의 강역과 경계를 서술한 것이고, ‘사연고’는 우리나라 국경 연안의 지명과 소재한 지역의 사방에 접한 군현과의 거리를 설명한 것이며, ‘산수고’는 전국의 산과 강의 맥과 흐름을 논한 것이고, ‘가람고’는 전국 사찰의 위치와 내용을 서술한 것이다. 제2책 앞부분의 4권은 ‘도로고’로 구성되어 있고, 끝부분에 ‘훈민정음운해訓民正音韻解’가 있다. ‘도로고’는 한양에서 8도로 통하는 이정里程을 표시한 것으로, 능행로陵行路ㆍ조선6대로ㆍ역로驛路ㆍ봉로烽路ㆍ해로海路ㆍ사행로使行路 등에 관해 설명한 것이다.
    신경준 고택에 전해 오는 고지도 두 점은 모두 명칭이 없어 편의상 ‘북방강역도北方疆域圖’와 ‘강화도이북해역도江華島以北海域圖’라고 불리는데, 경인문화사에서 복간한 〈여암전서〉 화보에 나오는 ‘북방강역도’는 ‘팔도지도’, ‘강화도이북해역도’는 ‘강화도전도’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두 지도에 대해서는 2007년 월간〈산〉 2월호에 한국땅이름학회 이형석李炯石 회장이 신경준 고택을 취재해 처음 소개되었고. 2020년 12월 정대영(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에 의해 논문으로 발표되었다. 
    가로 72.1㎝ 세로 108.2㎝
    ‘북방강역도’는 관아에서 사용하는 두껍고 도련搗鍊이 잘된 장지壯紙에 그린 채색필사본으로, 크기는 가로 72.1cmㆍ세로 108.2cm이다. 그려진 범위는 대동강 하구와 함경도 안변安邊 이북인 평안도와 함경도 전역을 나타낸 지도이지만, 한정된 종이 위에 내용을 최대한 크게 나타내기 위해 백두산은 제 위치에 고정시키고, 압록강 입구 쪽을 백두산보다 높게 하고, 두만강 하류 쪽은 반대로 낮춰 지형을 변형해서 표현했는데, 이러한 기법은 현대 회화에서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일부분을 변형하거나, 축소 또는 확대, 왜곡해서 표현’하는 데포르메déformer 기법과 같아 여암의 디자인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우연이었는지는 몰라도 천지를 에워싼 백두산의 16개 산봉은 이름에 걸맞게 흰색의 웅장한 모습으로 묘사되었고, 그 남쪽으로 소백산小白山과 보다회산甫多會山의 분수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줄기는 지도 전체를 가로지르며 뻗어 있고, 갈라져 나간 장백정간과 청북정맥, 청남정맥도 한눈에 뚜렷해 지형 표현의 장쾌함이 마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천지의 명칭은 ‘지池’로만 표기되었고, 백두산에서 비롯되는 압록강과 두만강도 돋보이게 묘사했다.
    백두산 좌측에는 백두산정계비명白頭山定界碑銘의 내용이 적혀 있고, 압록강 대안에는 국경 지대의 부락명이 촘촘히 적혀 있다. 백두대간을 경계로 평안도와 함경도가 갈리는데, 평안도의 군현은 붉은색 원 기호 내에 표기하고, 함경도의 군현은 자색 원 기호 내에 표기했으며, 폐사군廢四郡은 청색 원 기호 내에 표기했다. 군현과 군현 사이는 적색 도로가 연결되었는데, 신경준의 ‘도로고’에 따른 6대로 중 제1로 의주로義州路만 굵은 적색으로 표시했다. 또한 주요 역참驛站과 진보鎭堡는 장방형 기호 내에 표기했고, 군현과 역참, 진보에는 일일이 이정里程을 써 넣었다.
    신경준作인지는 좀더 검증 필요
    지도에는 간기刊記가 없어 언제 누가 어떤 목적으로 제작했는지 알 수 없으나, 제작시기에 대해서는 1712년(숙종 38)에 세워진 백두산정계비가 그려져 있고, 평안도에 1776년(영조 52) 초산楚山으로 개칭되기 전의 이산理山이 표기되어 있으며, 신경준이 처음 벼슬생활을 한 해가 1755년이므로, 지도는 1755년에서 1767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북방강역도’와 ‘강화도이북해역도’가 신경준의 후손들에 의해 전해온 것은 틀림없지만, 여암이 직접 제작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다. 다만, 위에서 밝혔듯이 신경준은 여러 편의 지리지를 저술하고, 지도를 제작했으며, 1771년(영조 47) 함경도 북청부사, 1773년(영조 49) 평안도 강계부사를 역임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관방지도關防地圖를 제작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앞으로 좀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신경준의 고택에 소장된 이 두 점의 고지도는 1979년 12월 27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9호로 지정되었다. 
    / 필자 한국지도학회 부회장, 한국지도제작연구소 대표, 한국산악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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