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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등반가가 본 바위, 이 한장의 컷] 판대에서 못다 푼 얼음 투혼, 산현에서 쏟아낸다!

글·사진 주민욱 기자
  • 입력 2021.02.0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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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Wall 원주 산현빙벽장
원주 산현바위 암장, 빙벽장으로 탈바꿈…초보자 적합한 30m 좌벽, 초중급자 적합한 40m 우벽

중앙벽 믹스 구간 중단부 고빗사위 구간을 통과하고 있다. 오버행 구간이라 얼음이 거대한 고드름을 형성하고 있다.
중앙벽 믹스 구간 중단부 고빗사위 구간을 통과하고 있다. 오버행 구간이라 얼음이 거대한 고드름을 형성하고 있다.

빙벽등반의 계절이다. 원주에 동양 최대 크기를 자랑하는 인공빙벽장인 판대아이스파크가 있다. 높이 100m, 폭이 무려 200m에 달하는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빙벽등반 대상지다. 2001년 기틀을 마련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많은 등반가들이 여기서 실력을 갈고 닦았으며, 공식적인 아이스클라이밍대회도 숱하게 치렀고 전국의 여러 등산학교 빙벽 교육에도 큰 역할을 했다.

산현빙벽장은 최고 높이 40여 m, 폭 40여m의 규모로 크지는 않다. 뉴서울산악회 곽노성씨가 빙벽을 오르고 있다.
산현빙벽장은 최고 높이 40여 m, 폭 40여m의 규모로 크지는 않다. 뉴서울산악회 곽노성씨가 빙벽을 오르고 있다.

그런데 판대아이스파크 근처의 산현바위에 얼음을 얼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걸음에 달려 왔다. 네비게이션에 ‘산현교’를 찍고 왔더니 제법 웅장한 빙벽이 위용을 드러낸다. 좌측벽, 중앙 벽, 우측벽으로 나눌 수 있는 모양새다. 

중앙벽 오버행구간을 오르기 전 루트파인딩을 하는 안재구씨(클라이밍 원주).
중앙벽 오버행구간을 오르기 전 루트파인딩을 하는 안재구씨(클라이밍 원주).

좌측벽은 30m로 초급자 훈련에 접합하다. 중앙벽은 원래 바위의 각도가 약간 오버행이라 믹스등반 훈련을 할 수 있다. 마치 판대아이스파크 중앙벽 믹스 구간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우측벽은 초중급 루트이며 40m까지 길이가 나와 빙벽등반 훈련도 손색없다. 

얼음 고드름 구간을 통과하고 있는 한국등산학교 차호은 강사. 시선은 오로지 아이스바일 피크 끝에 집중되어 있다.
얼음 고드름 구간을 통과하고 있는 한국등산학교 차호은 강사. 시선은 오로지 아이스바일 피크 끝에 집중되어 있다.

좌측벽에서 얼음 찍는 소리가 경쾌하다. 뉴서울산악회 곽노성(72)씨와 송복희(58), 임동철(66)씨가 돌아가며 등반을 하고 있다. 추운 겨울이지만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면 어느새 이마에 땀이 맺혀 있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이들은 국내는 물론 해외 등반 경험까지 풍부한 클라이머이며, 열정으로 똘똘 뭉친 피 끓는 청춘들이다. 코로나가 끝나면 유럽 알프스 원정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좌측벽을 등반 중인 등반가. 만들어진 얼음은 어떠한 조각품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멋진 광경을 연출한다.
좌측벽을 등반 중인 등반가. 만들어진 얼음은 어떠한 조각품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멋진 광경을 연출한다.

중앙벽에는 안재구(클라이밍 원주)씨가 믹스 구간 오버행에서 숨이 턱에 차오를 만큼 힘을 쏟아붓고 있다. 중단의 바위 구간에서 밑으로 쭉 뻗은 거대한 고드름은 얼핏 봐도 진입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발이 허공에서 좀처럼 다음 구간에 닿지 않아, 오랜 시간을 머물다 기어코 올라서며 남은 빙벽을 등반하여 마무리 한다. 빙벽등반 경력이 길지 않지만 7년 전 암벽을 접한 후 15㎏을 감량했다고 한다.

원래 이곳은 산현바윗길로 2012년 서강호(원주 클라이머스)씨가 개척한 이후 많은 등반가들이 찾는 인기 등반지다. 이번 겨울에 이 바위 위에 얼음을 얼려 빙벽장으로 재탄생했다. 판대아이스파크를 개척한 서강호씨가 얼음을 얼렸다.

중앙벽 얼음 고드름을 돌파하는 임동철씨. 풍부한 등반 경험과 과감한 몸짓이 있어야만 오를 수 있는 구간이다.
중앙벽 얼음 고드름을 돌파하는 임동철씨. 풍부한 등반 경험과 과감한 몸짓이 있어야만 오를 수 있는 구간이다.

아웃도어업체 트랑고와 블랙다이아몬드코리아가 후원했고 각 산악회의 도움으로 탄생했다. 판대에 비해 규모가 훨씬 작아 손쉽게 빙벽을 만들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단다. 일반 가정용 전기를 사용하다 보니 물을 끌어올리는 호스가 매번 얼어 매일 숱하게 오르내려야 했다. 또 주변 동네사람들과 교감이 있어야 하고, 땅 주인과의 협의도 쉽지 않아 설치를 포기하려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어렵게 얼린 덕분인지, 현재 등반가들의 예약이 줄을 잇고 있다. 코로나19로 인원을 제한해 접수 받고 있다.

우측벽 등반을 마치고 하강하는 등반가. 실루엣이 차디찬 겨울 색깔을 하고 있다.
우측벽 등반을 마치고 하강하는 등반가. 실루엣이 차디찬 겨울 색깔을 하고 있다.

판대 운영 어려워 대안으로 만든 빙장

그런데 왜 그 좋은 판대를 두고 여기 산현바위에 힘들게 개척을 했을까. 지금 판대아이스파크는 중앙벽 100m만 운영하고 있다. 물론 예약제로 운영되며, 하루에 2시간 간격으로 예약 접수를 받고 있다. 일부 얼음벽만 운영하는 탓에 빙벽등반 인구를 소화하기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판대아이스파크가 원래대로 벽 전체를 다 얼렸으면 이곳 산현에는 굳이 빙벽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현재 판대아이스파크는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곳 산현빙벽장을 만든 이유는 많은 등반가와 빙벽 교육을 하는 등산학교의 바람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판대아이스파크에 그 거대한 빙벽이 들어 찰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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