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알피니스트] 늦깎이 산악부원, ‘크랙전문변호사’ 되다

입력 2021.02.05 11:22

한국의 알피니스트, 아직 살아 있다 <21> 박명원

으레 산악인을 취재하려면 산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박명원(52·서울대 문리대 산악부 OB)을 인터뷰하기 위해서 서울 서초동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다소 딱딱한 사무실 분위기, 의자에 걸려 있는 두툼한 노스페이스 패딩 점퍼가 유일한 산악인의 흔적이다. 
대학 4학년 2학기에 산악부 입부
광주가 고향인 박명원은 평범한 아이였다. 산악인이라면 으레 나올 법한 ‘거의 매일 산에서 뛰어 놀았다’, ‘형님들 따라 바위에 갔다가 첫 판 만에 완등했다’ 같은 스토리는 없다. 오히려 그는 산악인 치고는 아주 늦게 산에 입문했다.
“당시 교내에서 데모를 많이 했어요. 그때 한 산악부 친구가 ‘학교 안은 시끄러워 공부도 안 되니 산에나 가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얼떨결에 선인봉이나 인수봉에 따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소위 ‘말년병장’ 시절에 서울대 문리대 산악부원이 됐죠.”
전문적으로 등반을 배운 적이 전혀 없었던 그는 현장에서 즉석으로 교육을 받았다. 줄 묶는 방법과 확보하는 방법 등 기본적인 것만 배워 바위에 붙었다. 등반 기술을 기초부터 배우지 않았으니 온몸을 바위에 비비면서 힘으로 무작정 올랐다.
그는 세 번째 등반 만에 인수봉 의대길에서 선등을 섰다. 이 정도면 ‘탁월한 재능’이라고 할 만한데, 그는 “그저 겁이 없어서 뭣도 모르고 했던 것일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그렇게 ‘현장학습’으로 등반에 재미를 붙이자 실력도 빠르게 늘었다. 암벽등반을 시작한 지 1년도 안 된 1992년 7월 설악산 적벽을 등반했다. 암벽등반 경력이 늘어나며 1993년 1월에는 빙벽에 도전했다. 등반 시작 2년 만이었다. 첫 무대는 설악산 토왕폭.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 빙벽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2014년, 키르기스스탄 코로나5봉 정상에서. 왼쪽에서 두 번째가 박명원.
“토왕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따라갔어요. 빙벽이라니까 좋아서 따라갔었죠. 처음이라 쉽지 않았지만 그때부터 빙벽등반의 매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고시 공부에 전념하느라 오랫동안 산에 가지 못했다. 2006년 사법고시(제48회, 연수원 38기)에 합격한 후 2010년 변호사로 새 출발을 했다. 그는 자신의 명함에 ‘크랙전문변호사’라는 명칭을 붙였다. 그 자신이 생각해 낸 명칭이니 아마 세계 최초이자 유일이었다.
“큰 뜻은 없어요. 크랙등반을 특히 좋아하고 열심히 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있으니 그런 명칭을 하나 붙이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냥 ‘변호사 박명원’은 심심하잖아요. 하하.”
‘크랙전문변호사’답게 산악 관련 사건의 변호를 심심치 않게 하고 있다. 2009년 빙벽대회 사진 저작권 소송, 2013년 티베트 트레킹 중 발가락 동상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2017년 고양 외벽 등반 중 사고에 대한 형사소송, 2018년 도봉산 선인봉 등반 중 추락사고, 2018년 실내암장사고 등이 이제까지 그가 맡았던 주요 변호 내용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산에 가지 않는 날이면 자전거도 즐겨 타며 체력을 다진다. 삼척 가는 길 정선 백복령에서
산은 인생의 제2의 무대
그의 직업은 변호사지만 산은 또 다른 인생을 펼치는 제2의 무대다. 2014년 7월, 그는 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이하 ER등산학교) 코로나피크 원정대 대원으로 키르기스스탄 센트럴 톈산 악사이 산군의 암봉인 코로나5봉(4,850m)을 등반했다.
거벽 개척 등반가이자 ER등산학교 김세준 대표 강사가 대장을 맡은 ER팀은 코로나5봉 남벽에 신 루트를 개척하는 것을 목표로 원정길에 올랐다. 이 원정에서 박명원은 산악인 변성호, 권오영, 김성두, 정원조, 왕준호와 함께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죠. 7피치에서 선등으로 올라가는 도중 직벽 구간 크랙에 캠을 치고 체중을 실었는데 순간 캠이 빠지면서 10m 정도 추락했어요. 1초 남짓한 순간에 ‘어, 내려가네, 좀 많이 내려가네’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다행히 캠이 완전히 빠지지 않아 바닥을 치진 않았다. 놀란 가슴을 쓸어 올리고 주마링으로 다시 올라가고 있는데 이번에는 캠 대신 다른 게 쑥 빠졌다.
“바위를 딛고 있는데 오른쪽 신발이 쑥 빠지며 떨어져 버렸어요. 신발끈을 느슨하게 맸었나봐요. 7피치면 꽤 높이 올라온 거였거든요. 어쩔 수 있나요. 그냥 맨발로 올라갔죠.”
이 장면은 당시 원정대의 등반을 다룬 다큐멘터리 ‘SBS 스페셜-아저씨, 거벽을 오르다’편을 통해 고스란히 공중파를 탔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등반 시작 7일 만인 7월 22일 대원 7명 전원이 등정하는 기쁨을 누렸다. 원정대는 이때 개척한 신 루트에 ‘아리랑(VI 5.9 A3)’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그는 2016년 중국 청도 노산 원정, 2017년 선인봉 남측오버행 완등 등 자산만의 등반을 했다. 2017년 9월에는 미국 요세미티 엘 캐피탄의 노즈Nose와 로스트룸Lost Room, 애스트로맨Astroman을 등반하고 왔다.
이미지 크게보기
도봉산 짱구바위의 강적크랙을 오르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7번째로 강적크랙을 완등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8년은 그에게 너무나 큰 아픔을 안긴 해로 기억된다. 김창호 대장과 임일진 감독의 죽음, 형제 같던 친구들의 사고였다. 이들은 대학산악부 88학번 동기로 산에서는 등반으로, 산 아래에선 술로 끈끈한 우정을 나눴다. 특히 김창호 대장은 한때 산에 들어가 은둔 생활을 할 때도 ‘절친’ 박명원과는 연락을 할 정도로 친했다.
“창호는 제 꿈을 대신 이뤄 주던 친구였어요.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줬죠.”
2013년 박명원은 에베레스트를 해발 0m부터 무산소무동력으로 정상까지 오르는 김창호 대장의 ‘0 to 8848 프로젝트’에 함께하기로 약속하고 같이 훈련도 했다. 하지만 아내의 반대가 컸다. 아내 역시 서울대 사범대 산악부 출신이어서 남편이 산에 다니는 걸 크게 반대하지 않았으나 해외원정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결국 박명원은 이 프로젝트에서 빠졌다.
“2017년 창호가 코리안웨이 원정대를 꾸렸어요. 인도의 다람수라(6,446m)와 팝수라(6,451m)에 신 루트를 내는 원정대였죠. 이번에도 합류하기로 했어요. 아내가 ‘거기 가려면 이혼하고 가라’더군요. 저도 완강했었어요. ‘그래, 이혼하고 나는 꼭 갈 거다’라고 했죠. 그런데 창호가 ‘너 오지 마라’고 했어요.”
2018년 10월 13일, 주말을 맞아 박명원은 도봉산 강적크랙에 있었다. 한창 바위와 씨름하고 있던 중 그는 두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제 정신이 아니었죠.”
평소 눈물이 별로 없다는 그는 친구들의 영결식에서만은 펑펑 울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키르기스스탄 코로나5봉을 오르는 박명원. 그의 얼굴에 힘든 표정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나의 등반은 ‘…ing’
그는 이제까지 살면서 몇 번의 해외고산등반 기회를 포기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이제 갓 50세를 넘긴 나이, 앞으로도 얼마든지 기회는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는 알피니스트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그런 등반을 하고 싶었지만 가정을 지키는 것도 중요했어요. 창호와 일진이는 저와는 다른 가치 있는 길을 간 것뿐이에요. 그게 알피니스트의 길이었고 산악영화감독의 길이었던 거죠. 저는 제 방식대로 오랫동안 산에 다니는 게 꿈이자 저만의 알피니즘입니다.” 
약력
1991. 9 대학 4년 서울대문리대 산악부 입부
1992. 7 설악산 적벽 등반
1993. 1 설악산 토왕폭 등반
2009. 3 변호사업 시작
2010. 6 요세미티 리닝타워 등반
2014. 7 키르기스스탄 코로나5봉 개척등반(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 코로나피크 원정대) 
2016. 7 중국 청도 노산 원정
2017. 7 선인봉 남측 오버행 완등
2017. 9 미국 요세미티 엘 캐피탄 노즈, 로스트 룸, 애스트로맨 등반 
2018~2019 설악산 울산암 문리대길 정비    
2020. 3 강적크랙 완등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