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 사막 한복판에서, 여우에게 식량을 도둑맞다

  • 글·사진 원대식(우정산악회)
    입력 2021.02.03 09:21

    [해외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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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몬 분화구Ramon Crater. 세계에서 가장 큰 침식 분화구다.
    본 기사는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11월에 취재되었습니다. - 편집자 주
    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Israel National Trail은 이스라엘의 북단에서 남단으로 이어지는 1,100km의 도보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쉬빌 이스라엘Shvil Israel(Shvil은 히브리어로 ‘길’이란 뜻이다)‘이라 부른다. 성경에 등장하는 장소들과 예루살렘 같은 유서 깊은 도시, 경이로운 네게브사막을 지나며 이스라엘의 고대와 현대를 체험할 수 있는 장거리 도보길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세계에서 가장 멋진 20개 트레일 중 하나로 선정했다. 
    여정은 이스라엘의 관문인 텔아비브의 벤 구리온 공항에서 시작된다. 렌트카를 빌려 130km 떨어진 네게브사막 초입에 있는 아라드Arad로 향했다. 마사다와 사해를 둘러보기 위함이다. 
    마사다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이며 거대한 바위 절벽에 자리 잡은 고대의 왕궁이자 난공불락의 요새다. 마사다는 이스라엘 국방군의 상징이다. 이스라엘 군인들의 신병훈련이 마무리되는 장소다. 기원후 37년, 로마에 의해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1,000여 명의 유대인 저항군이 마지막까지 항거하다 패배가 임박하자 전원 자살한 곳이다.
    마사다에서는 사해가 내려다보인다. 해발 –430m의 호수로 지구에서 가장 낮은 곳이다. 염분이 높아 생물이 살지 못하고, 사람이 둥둥 뜬다고 유명한 곳이다.
    마사다와 사해 관광 후 렌트카를 반납하러 가는데 아라드 시내의 분위기가 수상하다. 바로 몇 시간 전,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여러 도시를 향해 로켓포탄 1,000여 발이 발사돼 전투 중이라고 했다. 렌트카 회사도 폐쇄돼 차량을 반납할 수 있는 지점은 벤 구리온 공항에 있었다. 결국 공항으로 이동해 차량을 반납하고, 택시를 타고 아라드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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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드, 사해에서 25km 거리에 있는 도시. 이스라엘 남부에 있는 도시로 네게브사막과 유대사막 경계에 있다
    네게브사막 트레킹, 숨은 물 찾기가 관건
    트레킹 당시 계절은 가을. 더운 여름 날씨보다는 선선한 늦가을의 날씨가 사막을 걷기에 적당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남부의 네게브Negeve사막 구간을 먼저 시작하기로 했다. 겨울에는 사막에 비가 자주 내린다. 사암으로 형성된 협곡들이 많아 비가 올 경우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 위험할 수 있다. 2018년에는 갑자기 내린 폭우로 네게브사막에서 2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동남부에 자리하고 있는 네게브사막은 이스라엘 땅의 62%를 차지하고 있다. 네게브는 히브리어로 광야 또는 황무지를 뜻한다. 사막지역의 특성 상 거주 인구는 매우 적으며 건조하기 때문에 주로 유목 민족인 베두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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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사다. 황야를 배경으로 사해死海(Dead Sea)를 굽어보는 바위능선에 자리한 천혜의 요새다.
    한 번에 물 6리터, 8차례 보급받아 
    겨울철 우기를 앞둔 네게브사막에는 물이 다 말라버린다. 따라서 트레킹 중 필요한 물을 구하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다. 하나는 트레킹 전에 필요한 물을 특정 장소에 보관 후 트레킹을 시작하는 방법이 있다. 다른 방법은 약속한 장소에 물 보급을 지원해 주는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인데 나는 8군데의 야영장에 하루 6리터의 물을 공급받는 서비스를 받기로 했다.
    트레킹 첫날 6일치 식량과 2리터의 식수를 메고 아라드를 출발했다. 6일 후에나 식품점이 있는 마을에 도착 예정이다. 사막 지대를 걸으며 척박한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낙타와 같은 짐승들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먼저 나할 칸판Nahal Kanfan이라는 이름의 물이 다 말라버린 계곡길을 따라 12km 거리의 트레일을 걷는다. 나할은 히브리어로 개천이란 뜻이다. 빗물로 침식된 계곡의 규모를 보니 사막에도 우기철인 겨울에는 비가 상당히 내리는 것 같다.
    땅거미가 질 무렵 베어 에페Be’er Efe 있는 야영터에 도착했다. 아무런 시설도 없고 물이 마른 작은 계곡에 텐트를 칠 만한 평평한 곳이 여기 저기 있다. 이 근처에 내가 먹을 물이 감추어져 있다. 출발 전 전자 메일로 받은 위치 정보를 따라가 보니 야영장에서 멀지 않은 도로변 수풀 속에 감추어 놓은 10여개의 2리터 생수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중 6리터의 물이 나의 몫이다.
    트레킹 3일째, ‘작은 분화구’란 의미의 마크테쉬 카탄Marktesh Katan을 지난다. 길이 6km, 폭 4km, 깊이 500m의 광활한 분화구다. 500만 년 동안 바람과 물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졌다.
    마크테쉬는 오랜 세월 동안 물과 바람으로 인한 침식작용으로 인해 생긴 움푹 파인 형태의 지형을 말한다. 네게브사막에는 5개의 침식 분화구가 있는데 트레킹 중 세 개를 지난다. 마스테쉬 카탄의 모래는 여러 광물질들이 섞여 다양한 빛깔을 지닌다. 오직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경치다.
    규모가 제법 큰 네게브사막의 오아시스 마을 미즈페 라몬Mizpe Ramon에서 하루 머문다. 이곳은 식료품점과 식당이 있어 쉬어 가기에 적당한 곳이다. 부근에 마크테쉬 라몬이라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침식 분화구가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환상적인 색깔의 다양한 바위들로 둘러싸인 라몬 분화구는 이스라엘의 ‘그랜드 캐년’ 이라고 묘사되는 곳이며 크기는 길이 40km, 폭 10km, 깊이 400m이다.
    휴식 후 아침 일찍 숙소를 떠난다. 트레일 초입에서 큰 뿔을 가진 수십 마리의 아이벡스가 환영해 준다. 낙타 모양을 한 작은 동산 같은 카멜 봉을 뒤로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침식 분화구로 진입한다. 화산이 폭발해 흐른 검은 용암과 주상절리 모습도 보인다. 수백 개의 암모나이트 화석을 품고 있는 사암 언덕도 지나고 오랜 세월 동안 바람과 물이 만들어 낸 기이한 모습의 모래와 바위 속을 거닐며 24km를 걸어 야영장에 도착했다. 
    숨겨놓은 물을 찾아 저녁을 지어먹고 텐트에 고단한 몸을 눕힌다. 잠결에 발 아래쪽 텐트 모서리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여우들이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식량을 노리는 것이었다. 소리를 질러 짐승들을 쫓으니 여러 마리가 후다닥 튀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점심때 먹으려고 지퍼백에 담아둔 식량이 보이지 않는다. 텐트 모서리에 작은 수박만 한 크기의 구멍이 나 있다. 여우가 텐트를 뜯고 식량을 훔쳐 간 것이다. 이 사막에는 늑대, 여우, 자칼, 하이에나, 산양 등을 볼 수 있다. 이곳은 나의 영역이 아니고 그들의 영역이다. 남의 집을 침범해 머물고 있으니 그들에게 세금을 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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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람 필라, 홍해 근처에 있으며 이스라엘의 페트라라고 불린다.
    ‘캐녀닝’으로 통과한 바락 캐년
    트레킹 11일차에 조파Zofar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식료품점에 가니 근처의 파인애플 농장에서 고단한 일을 마친 필리핀 노동자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다. 트레킹 하면서 가끔 만나는 식료품점은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좁은 텐트 대신에 캠핑장에 지어진 베두인 막사에서 하루를 지낸다. 모닥불을 피우고 붉게 물든 지평선을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이킨다.
    히말라야 무스탕계곡과 비슷한 모래들이 흘러내린 큰 규모의 사암 능선을 끼고 걸으며 12일째 야영지인 바락 캠프Barak Camp에 도착했다. 물이 보관돼 있는 장소를 GPS에 의존해 찾아 간다. 수풀 속에 감추어 있는 물을 찾았으나 10개 정도의 물통들은 모두 구멍이 나 있고 비어 있다. 짐승들이 물어뜯어 물을 먹은 것으로 보인다. 허탈한 심정으로 물통 속에 남은 물들을 모으니 1리터 정도 된다. 그것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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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락 캐년의 사암 협곡.
    트레킹 13일째 사암 속의 협곡인 바락 캐년과 바르딧 캐년Barak Canyon&Vardit Canyon을 지난다. 비가 오는 날은 계곡이 물 폭포들로 변해 매우 위험한 곳이다. 경사진 바위 구간은 줄사다리를 타고 올라야 하며,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웅덩이 속에 몸을 담그고 로프에 의지해 건너야 하는 곳도 여럿 있다.
    17일째 되는 날 팀나 파크Timna Park를 지난다. 팀나 파크는 가파른 절벽에 둘러싸여 있는 말발굽 모양의 계곡으로 솔로몬 왕 시대의 구리 광산이 있고 수려한 경관과 역사적인 유적지로 네게브사막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이다. 하루 종일 멋있는 자연의 모습에 눈호강하며 걷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수천년 동안 물과 바람의 침식으로 빚어진 거대한 사암 기둥인 ‘솔로몬 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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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로운 지중해 전경.
    검은 화강암과 사암이 어우러진 능선과 계곡을 지난다. 오른쪽으로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국경선 철책이 길게 뻗어 있다. 홍해 바다가 보이고 이어서 이스라엘의 최남단에 자리하고 있는 에일랏이다. 네게브사막 초입의 아라드를 출발한 지 21일 만이다. 중간마을에서 2일을 쉬었고 19일간 422km를 걸었다.
    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의 북쪽 들머리는 이스라엘 최고봉 헤르몬(2,814m)의 남쪽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키브츠 단’이라는 작은 마을이다. 키브츠는 집단 공동체란 의미의 이스라엘 특유의 마을 형태의 하나이다. 사유 재산을 허용하지 않고 모든 재산과 생계 수단은 공동으로 소유한다.
    최남단의 에일랏에서 텔아비브의 벤 구리온 공항으로 날아가 그곳에서 렌트카를 타고 하이파Haifa를 거쳐 키르야트 시모나Qiryat Shemona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키브츠 단에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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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
    예수님 세례 기념지와 ‘나자렛’ 마을도 지나
    트레일이 어제 내린 비로 진흙길이 됐다. 신발 바닥에 달라붙는 진흙 덩어리는 걷는 속도를 더디게 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국경에 있는 헤르몬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땅에 스며든 뒤 키브츠 단에서 풍성한 물줄기를 이루고, 훌라 밸리의 하천을 따라 갈릴리호수, 사해까지 흘러간다. 이스라엘 북쪽 지방은 남쪽의 사막 지역과 달리 푸르른 산과 계곡, 초원이 주를 이룬다.
    12시간을 걸어 언덕 위에 있는 성터인 예사 포트Yesha Fort에 도착했다. 가이드북에 의하면 이곳은 야영이 허용되고 근처 주차장 공중 화장실의 수돗물도 이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막상 가니 화장실이 굳게 잠겨 있다. 간신히 그리 멀지 않은 곳의 한 공장에서 경비원의 도움으로 공장 안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식수를 얻을 수 있었다.
    트레일 시작점을 출발해 100여 km 지나면 갈릴리호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남북으로 21km, 동서로 11km이며 호수 둘레는 약 50km이다. 해수면으로부터 약 209m 아래에 있다. 북쪽 국경지대에 있는 헤르몬산에서 발원한 물이 갈릴리호수로 흘러 들어온 뒤 요단강을 통해 사해로 흘러간다. 갈릴리호수 주변에는 예수의 주요 활동지로 성경을 통해 잘 알려진 카파르나움, 베세이다, 겐네사렛, 티베리아스 등의 마을이 도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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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
    티베리아스에서 하루 묵고 다시 출발한다. 3~4시간 만에 갈릴리호수 남단에서 호수물이 빠져나가는 곳에 도달한다. 요단(요르단)강이다. 큰 규모를 기대했는데 이곳은 작은 개천 같다. 요단강 초입에는 야르데닛Yardenit이란 곳이 있는데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곳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장소다. 요단강 물속에 몸을 적시고 나오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다음날 나자렛마을을 지난다. 나자렛은 예수님이 유년과 청년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예전엔 한적한 시골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은 아랍인들이 거주하는 도시가 됐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순례하는 성지 중 하나다.
    트레킹 30일째,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인 가이샤라Caesarea에 도착했다. 헤롯왕이 그리스 아테네를 본떠서 만든 도시로 로마 황제의 이름을 따서 가이샤라로 이름 붙인 곳이다. 로마 대리석으로 바닷가에 왕궁과 신전을 짓고 원형극장, 경기장, 목욕탕과 수로를 건설했다고 한다. 해안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고대 석조 수로를 끼고 걷는다. 초겨울이지만 지중해의 아열대 기후는 온화한 겨울 날씨가 이어진다. 서핑을 즐기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텔아비브를 지나 4일을 걸어 드디어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역사의 도시인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란 뜻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예루살렘은 역사상 늘 바람 잘 날 없는 분쟁의 도시, 유혈의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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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 도시’란 뜻을 지닌 예루살렘.
    동서로 갈라진 예루살렘
    예루살렘은 높이 8m의 장벽으로 동쪽과 서쪽이 분리되어 있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치안의 벽이라 하고 팔레스타인은 인종차별의 벽이라 주장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가본다. 검문소를 통과하고 장벽을 따라 걷는다. 장벽에는 ‘자유’를 표현한 벽화들이 눈에 띈다. 예수님의 탄생지인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다.
    예루살렘에서 트레일 종점인 아라드까지 150km를 더 걸어야 한다. 이 구간에는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인류가 머물던 많은 동굴들과 고대 로마와 비잔틴 시대의 많은 유적지를 지난다. 평야 지대로 포도밭, 올리브 농장이 많은 작은 마을들을 통과한다. 사막 한가운데 빌딩들과 나무숲들이 저 멀리 보인다. 
    예루살렘에서 닷새를 더 걸어 아라드에 도착했다. 총 1,100km, 45일간의 일정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질곡의 역사, 그리고 이를 극복해 나가고 있는 민족의 저력을 부분적이지만 살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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