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스티 로드] 곰치·물메기·아귀… 못난이 삼총사, 맛은 ‘심쿵’

  • 글 손수원 기자
  • 사진 C영상미디어, 셔터스톡
    입력 2021.02.13 15:58

    묵은지 넣어 얼큰한 동해 곰치국…남해에선 맑은 물메기탕으로 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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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치’로 불리는 못난이 삼총사. (위에서부터) 미거지, 꼼치, 물메기이다.
    찬바람 부는 겨울이면 뜨끈한 국물이 최고다. 세상에 수많은 국과 탕이 있지만 이즈음 바닷가에선 ‘곰치국’과 ‘물메기탕’이 주당의 사랑을 듬뿍 받는 국물 요리다. 술 마신 후 쓰린 속 달래 주고, 배고픔에 허한 속을 뜨끈하고 든든하게 달래 주니 얼굴은 못생겼지만 정이 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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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쫀득쫀득 씹는 맛이 일품인 아귀찜. 마산식 아귀찜에는 반건조한 아귀를 쓴다.
    쫀득쫀득 씹는 맛 일품인 아귀찜
    못생김 ‘끝판왕’은 아귀다. 커다란 머리에 커다란 입, 뾰족한 이빨……. ‘괴상망측怪常罔測’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아귀’라는 이름도 불교에서 말하는 ‘아귀餓鬼’에서 나온 것이다. 아귀는 탐욕스런 사람이 죽어 굶주림의 형벌을 받는 귀신을 말한다. 큰 입으로 자기 몸집만 한 물고기를 마구 잡아먹는 탐욕스런 식성은 ‘아귀’란 이름을 얻기에 딱 어울린다. 보는 눈은 누구나 비슷한지 유럽에서는 ‘악마 물고기Devil Fish’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귀는 머리가 커서 헤엄을 잘 치지 못해 가슴지느러미와 배지느러미를 이용해 돌아다닌다. 주둥이 주변의 가시는 등지느러미 가시가 변한 것으로, 아귀는 이 가시를 미끼로 사용해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이런 사냥법 때문에 영어권에서는 아귀를 ‘낚시꾼 물고기Angler Fish’라 부른다.
    비록 국제적으로 못생김의 대명사지만 아귀는 미식가 사이에선 매우 사랑받는 음식 재료다. 아귀는 주로 탕이나 찜으로 만들어 먹는다. 마산은 아귀요리의 원조 고장이다. 지금도 ‘아귀찜’하면 ‘마산’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마산 오동동에는 아귀찜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아귀찜을 처음 만든 인물은 마산 오동동에서 장어국을 팔던 ‘혹부리 할머니’라고 전해진다. 할머니는 말린 아귀를 북어찜처럼 된장, 고추장, 마늘, 파 등을 얹어 쪄 술안주로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찜에 콩나물, 미나리 등 갖은 채소가 들어간 건 1960년대 중반쯤으로 추정된다. 
    아귀는 진해만과 전남 여수만 등 남해안과 서해안 일대에서 잡는다. 11월부터 2월까지 추울 때 잡은 아귀가 가장 맛이 좋고 영양분이 풍부하다. 서울이나 부산, 여수 등에서 생 아귀를 쓰는 것과 달리 마산 지역에서는 말린 아귀로 아귀찜을 만든다. 
    한겨울에 20~30일간 꾸덕꾸덕하게 말린 아귀를 쌀뜨물에 넣어 불린 뒤 콩나물과 미나리, 미더덕 등을 넣고 고춧가루로 양념해 매콤하게 만든다. 흐물흐물한 아귀살을 익히면 쫀득쫀득 씹는 맛이 일품이다. 
    아귀는 버릴 것이 없는 생선이다. 찜 외에 수육으로도 만들어 먹으며 뼈와 내장은 탕으로 끓여 먹는다. 마산의 향토음식인 아귀탕은 맑게, 또는 얼큰하게 끓여내는데 콩나물과 미나리, 무를 듬뿍 넣어 맛이 시원하고 숙취해소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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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은지를 넣어 얼큰하게 끓이는 동해·삼척식 곰치국(왼쪽)
    얼큰하게 끓여내는 동해안 곰치국
    동해안에서 흔히 먹는 ‘곰치’는 사실 곰치가 아니다. 남해안에서 먹는 ‘물메기’도 물메기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곰치라고 부르는 어종은 ‘미거지Liparis ochotensis’, ‘꼼치Liparis tanakai’. ‘물메기Liparis tessellatu’이다. 이것들은 쏨뱅이목 꼼치과 꼼치속으로 뱀장어목 곰치과 곰치속인 곰치와는 다른 어종이다. 그럼에도 이것들이 ‘곰치’라는 이름을 쓰고 있고, 정작 ‘오리지널’ 곰치는 이들에게 이름을 뺏긴 신세가 되었다. 남해안에서 ‘물메기’라고 하면 거의 꼼치이다. 
    미거지, 꼼치, 물메기는 생김새가 워낙 비슷해 전문가가 아니면 구별하기 어렵다. 게다가 지역에 따라 물잠뱅이·바다미꾸리(충청도), 물미거지·미거지(마산·진해), 곰치·물곰·물텀벙이(강원도) 등의 방언 이름을 마구 혼용해 쓴다.  
    이처럼 지역에 따라, 사람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중구난방이고 아가씨물메기, 물미거지, 분홍꼼치 등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이 더 있어 국립수산원에서는 ‘꼼치류 이렇게 불러주세요’라는 포스터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꼬리에 흰 줄이 있으면 꼼치, 흰 줄이 없으면 미거지란다. 
    어종을 정확히 구분하려 하면 한도 끝도 없다. 심지어 생선을 잡아 파는 어민과 음식을 만들어 파는 식당 주인장조차 세 생선의 이름을 마음대로 갖다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편의상 동해안에서 주로 먹는 미거지는 ‘곰치’로, 남해안에서 주로 먹는 꼼치는 ‘물메기’로 부르기로 하자. 
    곰치(미거지)는 동해안에서만 잡힌다. 몸 크기는 약 90cm로 같은 곰치과 생선인 꼼치(약 50cm), 물메기(약 30cm)에 비해 몸집이 크다. 1년 내내 잡히긴 하지만 곰치국을 많이 찾는 겨울에 가장 인기가 좋다. 
    원래 곰치는 일부러 잡아먹던 생선이 아니었다. 옛날 어부들이 다른 생선을 잡다가 곰치가 딸려 나오면 못생긴 생김새에 재수 없다며 버리던 생선이었다. 이때 흐물흐물한 몸이 바닥에 닿으며 텀벙텀벙 소리를 내어 ‘물텀벙이’라고도 부른다. 
    곰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참으로 못생기긴 했다. 무엇에 놀란 듯 똥그랗게 뜬 눈에 ‘어? 어?’ 하듯 뻐끔거리기만 하는 커다란 입은 영락없는 못난이다. 하지만 못생겨서 죄송할 필요가 없는 것이 겨울이면 주당들에게 맛 좋은 해장국 재료로 ‘스타’ 대접을 받는다. 
    동해·삼척 지역에서 주로 먹는 곰치국은 묵은지를 넣어 얼큰하게 끓이는 것이 특징이다. 어부들이 배 위에서 곰치를 잡아 묵은지를 넣어 바로 끓여 먹던 문화에서 기인한다. 곰치국에 찬밥 한 덩이를 말아 후루룩 먹으면 한 끼 식사로 최고다. 
    꼼치류 어종이 다 그렇지만 곰치도 살이 부드럽기 그지없다. 마치 순두부처럼 흐물흐물한 살은 입안에서 녹아 목구멍으로 자연스레 넘어간다. 여기에 시원한 맛을 더하는 것이 묵은지다. 곰치국을 끓일 때 쓰는 김치는 젓갈을 넣지 않고 소금간만 해야 텁텁하지 않고 시원한 맛을 배가시킬 수 있다. 강릉을 중심으로 그 위에 위치한 양양·속초·고성 등에서는 묵은지를 넣지 않고 맑은 국으로 끓여 먹는다. 이는 6.25 전쟁 때 속초 등지로 피란 온 이북사람들의 입맛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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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거제 등 남해안에서는 물메기(꼼치)를 맑은 탕으로 끓인다.
    담백하고 시원한 국물, 물메기탕
    남해안에서는 물메기가 한창이다. 앞서 말했듯 이 ‘물메기’는 대개 꼼치이다. 꼼치는 경남 통영·충남 보령·서천 등지에서 잡힌다. 그중 통영에서 남서쪽으로 약 21km 떨어져 있는 추도는 ‘물메기의 섬’이라고 불리는 어장이다. 
    추도 바다 밑은 개펄이 잘 형성돼 물메기가 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추도에서는 대나무 통발로 물메기를 잡는데, 다른 곳에서 잡히는 물메기보다 맛이 좋고 가격도 비싸다. 홍어하면 흑산도인 것처럼 물메기하면 추도인 셈이다. 
    물메기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살과 뼈는 탕으로 끓여 먹고 알과 아가미는 소금에 절여 젓갈을 담가 먹는다. 물메기는 통째 말려 찜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통영에선 예부터 잔칫상에 마른 메기찜을 꼭 올렸다. 전라도 잔칫상에 홍어를 꼭 올린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마른 물메기는 생물보다 가격을 더 쳐주기도 했다. 
    이름이 물메기든 꼼치든 남해안에서 해장국으로 이놈들을 따라갈 것이 없다. 정약전도 <자산어보>에서 ‘맛이 싱겁지만, 술병을 곧잘 고친다’고 적어 두었으니 틀림없다. 
    통영·거제 지역의 물메기탕은 맑게 끓여내는 것이 특징이다. 다진 마늘과 무, 대파, 고추 몇 조각 넣는 것이 전부다. 이렇게만 해도 훌륭하다. 물메기는 자체의 맛이 달고 기름기가 없어 굳이 다른 재료로 잡맛을 덮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저 물메기의 시원한 맛만 살려 주면 그만이다. 
    적당하게 끓인 물메기탕을 한 국자 뜨면 뽀얀 살점이 부서져 올라온다. 몽글몽글한 모습이 마치 하얀 순두부 같다. 근근하고 담백한 살맛이 자극적이지 않아 좋다. 무와 대파를 넣어 시원한 국물도 강원도의 곰칫국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국물에 밥을 말아 후루룩 먹기 시작하면 한 그릇 비우는 것은 금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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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메기가 많이 잡히는 통영 추도에서 바닷바람에 말린 물메기는 잔칫상에 오르는 귀한 음식 재료다.
    고춧가루를 조금 넣고 김치도 잘라 넣으면 맑은 탕과는 180도 다른 물메기탕이 완성된다. 이것으로 또 밥 한 그릇 뚝딱이다. 물메기 무침과 회도 주당들에겐 최고의 술안주다. 술 먹이고 속 풀어 주니 ‘병 주고 약 주고’가 따로 없다. 
    곰치와 물메기, 이 못생긴 놈들을 음식재료로 많이 쓰게 된 것은 1980년대 명태가 사라진 탓도 있다. 동해에 넘쳐나던 명태가 북쪽 러시아 바다로 이동하면서 명태 대신 곰치와 물메기를 먹기 시작했다. 명태보다 흔하고 비슷한 방법으로 끓이면 맛도 생태탕 못지않게 좋았다. 특히 동지 전후에 잡은 물메기는 대구보다 맛이 좋다고 평한다. 숙취해소에도 좋다니 대구 대타였던 것이 이제는 주인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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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거지, 꼼치 구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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