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산행] 아이원막걸리+옥천 대성산, 국산 밀로 만든 ‘향수’가 향수를 부르다

  • 글 손수원 기자
  • 사진 한준호 차장
  • 취재협조 대동여주도
    입력 2021.02.24 09:25

    뚝심으로 지켜낸 91년 역사 이원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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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년 된 이원양조장 앞에 선 강현준 대표. 4대째 양조장을 이어 받았다.
    한국인에게 막걸리는 영혼의 술이다. 마을 잔치 때, 모내기 할 때, 대학 신입생 환영회 때 등 막걸리는 한국인의 애로애락을 함께했다. 충북 옥천의 ‘이원양조장’은 1930년에 설립된, 91년 된 양조장이다. 오랜 역사만큼 막걸리 속에 세월의 진한 맛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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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양조장을 대표하는 아이원막걸리와 향수. 아이원막걸리가 이원양조장의 ‘원조’ 막걸리다.
    1930년 문 열어…4대째 이어받아 
    이원양조장은 옥천군 이원면 501지방도 변에 있다. 세로로 ‘이원양조장’이라고 쓰인 간판이 예스럽다. 건물은 더욱 예스럽다. 1930년에 지은 건물 그대로다. 
    “1930년, 증조부(강재선 1대 대표)께서 이원면 대흥리 금강변에 건물을 지어 처음 양조장을 열었습니다. 술을 빚기 위해선 좋은 물이 필요했고, 가장 좋은 위치가 금강변이었습니다. 하지만 홍수가 잦아 1949년 현재의 위치(이원면 강청리)로 이전했습니다. 건물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 건물이 저보다 나이가 훨씬 더 많습니다.”
    4대째 가업을 이어받은 강현준(50) 대표는 지금 양조장 건물 뒤에 있던 집에서 태어났다. 그가 어릴 때도 이 양조장 건물이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강문회 2대 대표)에 이어 아버지(강영철 3대 대표)가 3대째 양조장을 물려받았어요. 그때는 일하는 ‘삼촌’들이 최대 28명 있었지요. 마을에서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우리 막걸리를 받아갔어요. 하루에 750㎖짜리 막걸리 3,000병이 팔려 나갔으니까요.”
    하지만 술 종류가 많아지고 소비자의 기호가 변하면서 막걸리가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었고, 이원양조장도 점점 그 규모가 작아졌다. 그때 서울에서 건축업을 하던 강 대표가 다시 옥천으로 내려오는 일이 생겼다.  
    “2013년 어머니가 허리가 아프셔서 간병 차 옥천에 내려와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저도 하는 일이 따로 있어 신경 쓰지 못했는데, 아버지 혼자 양조장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양조장을 이어받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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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조장 내에는 이원양조장의 역사를 보여 주는 사진과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무렵 국세청 대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양조 위생 업무를 담당하게 돼 전국의 전통 양조장들이 몸살을 앓고 있었다.
    “공무원들이 찾아와 ‘양조장 시설이 위생적이지 못하다’, ‘보건증이 없다’, ‘수질검사를 제때 해라’ 등등 사사건건 지적을 했어요. 그때 영세한 마을 양조장들이 많이 문을 닫았죠. 아버지도 고민이 많으셨어요. 자식들은 내심 ‘이제 양조장을 그만 하셨으면’ 했지만 아버지는 절대 그런 마음을 갖지 않으셨어요. 양조장은 아버지 인생의 전부였으니까요.”
    강 대표도 마음이 조금씩 돌아섰다. 아버지의 양조장을 지키고 싶었다. 마침 건설업을 하던 강 대표는 직접 양조장 시설을 보수하기로 했다. 회사를 휴직하고 2014년부터 1년 반 동안 양조장을 뜯어 고쳤다. 
    “그렇게 나라에서 정하는 기준에 맞춰 양조장을 보수하고 나니 아버지가 더는 양조장을 운영하지 못하실 만큼 기력이 쇠하셨어요.”
    사실 강 대표는 보수를 위해 양조장 문을 잠시 닫았을 때 고민이 많았다. 증조부 때부터 해오던 양조장의 맥을 끊어지게 놔둘 순 없었다. 강 대표는 서울과 고향을 오가며 아버지께 막걸리 빚는 법을 배우는 한편, 한국식품연구원의 ‘우리 술 전문가 양성과정’과 막걸리학교의 우리술해설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2017년 1월, 아버지를 이어 4대 이원양조장 대표를 물려받았다. 
    “이원양조장은 오랜 역사도 자랑이지만 우리나라 초기 상업주조장의 원형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습니다. 건물 곳곳에 그 흔적이 있습니다.” 
    양조장 천장에 환기를 위한 통풍구가 있는 것이나 단열을 위해 왕겨를 30㎝나 채워 천장을 만드는 등 벽 하나, 기둥 하나도 허투루 만든 곳이 없다. 쌀을 대량으로 씻는 세미장洗米場 과 고두밥을 펼쳐놓고 식히는 냉각조까지 그대로 있다. 지금도 강 사장은 이 냉각조에 고두밥을 펼쳐놓고 직접 흩트리며 수작업으로 식힌다. 보통의 양조장에서 으레 스테인리스 발효조를 쓰는 것에 반해 강 사장은 묵은 항아리만 고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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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조장 마당에 있는 우물. ‘술 맛은 물맛’이라고 지하에서 뽑아 올리는 이 암반수도 이원양조장 막걸리의 비법이다.
    “물론 관리하기에는 스테인리스 발효조가 편하지만 술맛이 조금씩 달라지더라고요. 항아리는 외부 기온 변화에 민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술맛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죠. 이 항아리들도 제 나이만큼 오래된 것들입니다.” 
    400ℓ들이 항아리의 무게는 70㎏, 어른 둘이서 들기에도 무겁다. 그래서 강 대표는 건설 현장에서 드럼통 들어 올리는 장비를 직접 개조해 항아리 드는 기계로 만들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자동으로 항아리를 들어 올려 청소하기 쉽게 거꾸로 뒤집어진다. 양조장 곳곳에 이처럼 강 대표가 직접 개발해 만든 도구가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맥가이버 강 대표’란 뜻으로 ‘강가이버’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술 빚는 일은 매일 바쁜 게 아니라 기다림의 연속이에요.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 양조장 보수하는 게 일이라면 일이지요. 워낙 오래 된 건물이니 하나 둘 신경 쓸 일이 끊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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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원양조장엔 옛날에 쓰던 물건들이 가득해 그 자체로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우리 밀과 쌀만 사용 
    이원양조장에서 만드는 막걸리는 아이원막걸리를 비롯해 향수, 시인의 마을, 총 3종류다. 아이원막걸리가 이원양조장의 ‘원조’ 막걸리다. 쌀과 밀을 혼합해 만든 6도짜리 막걸리다. ‘어르신들이 마시는 막걸리’라는 이미지를 벗겨내기 위해 2016년 기존 이원막걸리 이름을 아이원막걸리로 바꿨다. ‘아이원’이라는 이름은 이원의 영문 ‘IWON’에서 I와 WON을 따로 부른 것이다. 
    수십 년 써온 이름을 바꾸는 것이 큰 모험이었지만 전통에 현대적 감각을 더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제품명을 변경하면서 새로운 로고도 만들고 맛도 조금 변경했는데, 다행히 원조 이원막걸리에 비해 맛이 더 좋다는 평가를 내리는 고객이 좀 더 많다고 한다.  
    우리밀 100%로 만든 10도짜리 막걸리 ‘향수’는 강 대표가 작정하고 만든 술이다. 
    “1965년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며 막걸리의 주 재료가 쌀에서 밀로 대체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추억의 막걸리는 이 밀막걸리일겁니다. ‘좋은 밀을 써서 그 추억의 맛을 돌려주자’는 생각으로 ‘향수’를 만들었습니다. 옥천에서 나신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향수’는 귀하고 비싼 국내산 밀을 100% 사용하고 감미료를 일절 넣지 않은 9도짜리 막걸리다. 그런데 막걸리 병이 유리다. 6,500원짜리 막걸리치고는 병이 너무 고급스럽다. 강 대표는  “2018년부터 유리병에 담기 시작했다”며 “막걸리도 고급술이라는 이미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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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 대표보다 나이가 많다는 항아리에 술을 발효시킨다.
    ‘향수’는 커다란 대접보다 작은 도자기 잔에 따라 마시는 게 정석이다. 한 모금 마시니 바디감이 묵직하다. 미숫가루처럼 ‘걸쭉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잠시 입에 머금고 밀의 풍미를 느낀다. 이 맛이다! 23년 전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처음 마셨던 그 찐~하고 걸쭉한 막걸리! 
    조금은 텁텁하면서도 밀막걸리 특유의 구수한 맛은 강 대표가  안주로 내어온 도리뱅뱅이의 매콤함과 찰떡궁합이다. 
    “밀막걸리를 처음 접하는 분들은 물을 절반 정도 타서 마시면 좀더 가볍게 밀의 풍미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탄산수를 섞으셔도 좋습니다. 특히 여성분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시인의 마을’은 100% 쌀 막걸리다. 감미료를 넣지 않기 때문에 재료가 좋아야 하는데, ‘시인의 마을’은 강 대표가 직접 농사지은 쌀과 옥천에서 나는 쌀을 사용한다. 물 좋은 거야 말 할 필요도 없다. 양조장에 있는 우물에서 바로 뽑아 올리는 지하암반수를 쓴다. 
    ‘시인의 마을’은 ‘향수’에 비해 탄산이 세고 깔끔한 맛이다. ‘향수’가 우직하고 투박한 농촌총각을 떠올리게 한다면 ‘시인의 마을’은 세련되고 새침한 도시처녀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그 옛날 우리가 마셨던 바로 그 맛’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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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두밥을 식히는 냉각조. 지금도 강 대표가 직접 사용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다시 만나요”
    “2010년에 막걸리 열풍이 분 이후 요즘 다시 제2의 전성기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무작정 부어라 마셔라 하는 술 문화가 바뀌어 다양한 술을 비교하고 음미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술 만들기 과정을 이수하고 집에서 직접 맥주나 와인 등을 만들어 드시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막걸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재료로 느리게 만든 고급 막걸리를 찾는 분들이 늘어났습니다. 막걸리도 와인처럼 풍미를 즐기는 술이 되었습니다. 저희 이원양조장은 90년 전통을 이어가면서 또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강 대표는 올해 새로운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엔 증류주다. 
    “‘시인의 마을’을 증류한 ‘풀섶이슬’이라는 증류주입니다. 38도와 18도짜리 두 종류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몇 년 후에는 오크통에 담아 숙성한 제품도 선보일 예정이고요.”
    강 대표는 “앞으로도 이원양조장의 역사를 담으면서 현대인의 입에 맞는 맛있는 술을 꾸준히 개발해 앞으로 100년, 200년 전통을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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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양조장에선 강 대표가 직접 만든 누룩을 쓴다.
    “지금은 비록 코로나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 시국이 끝나면 많은 분들이 다시 이원양조장을 찾아와 술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길 기대합니다.”
    90년 된 양조장 처마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렸다. 체감온도가 -20℃라는 극한기온 속에서도 얇은 전통복을 입고 열심히 양조장에 대해 설명하는 강 대표의 모습에서 선조에게 대대로 물려받은 뚝심이 느껴진다. 
    이원양조장
    2017년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주관하는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었다. 양조장 견학과 나만의 원주 만들기, 증류 체험, 도리뱅뱅이 만들기, 막걸리 시음 등을 할 수 있다. 고급 술 제조 과정인 마스터 투어도 운영한다. 체험 예약은 홈페이지(www.iwonwine.com)에서 할 수 있다. 현재는 코로나 상황으로 잠시 체험을 중단 중이다. 이원양조장의 막걸리는 양조장을 방문하거나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아이원막걸리(6도) 750㎖ 1,000원. 향수(9도)·시인의 마을(10도) 700㎖ 6,500원. 다만 온라인 쇼핑몰은 현재 일시중단 중이다. 
    체험·구입 문의 043-732-2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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