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걷기] 제주올레길 "오~예"...가장 아름다운 구간을 걷다

  • 글·사진 김영미 여행작가
    입력 2021.02.04 10:01

    대평포구에서 섯알오름까지 2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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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답고 싱그러운 초록이끼와 맑고 투명한 바다가 있는 사계해변, 저 멀리 형제섬이 점으로 서 있다.
    매년 해외에서 장거리 트레일을 걷다가 코로나로 인해 근 10개월을 장거리 걷기를 못 하고 있던 중에 제주올레길이 생각났다. 어떤 구간은 여러 번 반복해서 걸었지만 한 번도 걷지 않은 구간도 있어서 한 해가 바뀌는 시기를 이용해 제주올레를 선택했다. 온전히 걷는 사람들만을 위한 길을 걸으며 제주의 구석구석을 가까이서 보고 느낄 수 있어서 걷기 매력을 다시 느끼게 되었고 완보한 후에는 완주증서와 함께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소중한 추억까지 선물로 받았다.   
    제주올레는 전체 26개의 코스 425km. 각 코스는 10~20km로 걸어서 3시간에서 6시간 정도. 짧지 않은 코스이지만 본인의 시간과 체력에 따라서 거리도 코스도 선택할 수 있다. 제주섬 전체뿐 아니라 가파도, 우도, 추자도를 걷는 섬 코스도 있다. 제주올레길은 각 코스마다 다른 풍광을 보여 주어서 어떤 코스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제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천 년 동안이나 이어져 내려오는 힐링의 길인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제주올레길의 모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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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계해변의 오묘한 색과 질감의 퇴적층이 만들어내는 곡선은 참으로 아름답다,
    제주올레길의 전체 코스 중 이번에 가장 즐겁게 걸었던 곳은 9코스와 10코스. 작고 정겨운 대평포구에서 시작해 섯알오름까지 이르는 길이다. 오름, 숲길, 바다해안 길, 역사유적지, 좁은 돌담길을 지난다. 올레의 전체 코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한 풍경을 품고 있을 뿐 아니라 제주의 다양한 모습을 즐기기에도 최고의 코스이다. 
    특히 노을이 물들어가는 시간에 사계해변을 따라 송악산을 바라보며 바다에 떠 있는 형제섬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영화 주인공이라도 된 듯하다. 송악산의 해안절벽을 따라 송악산둘레길을 걸으며 마라도와 가파도를 즐감하고 한라산의 비경을 바라보며 걷다가 섯알오름에 이르러서는 엄청난 고통과 비극의 역사 현장에서 다시는 겪지 말아야 할 역사의 교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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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방연대에서 바라보는 용머리해안의 능선길.
    몰질에서 월라봉까지 

    작고 정겨운 대평포구에서 아름다운 절벽 박수기정을 바라본다. 박수기정은 제주 일몰 명소 중의 하나이다. 100~130m의 절벽이 마치 빽빽한 숲처럼 병풍처럼 산방산 앞에 줄을 지어 있다. 중문의 주상절리만큼 웅장한 절벽이다. 참으로 여러 번 이곳을 지나갔는데 왜 박수기정의 수려한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의아하다. 그래서 같은 장소라 하더라도 여러 번 올 때마다 그 느낌과 모습이 다른 것일까? 
    대평포구에서 ‘몰질’을 따라 오른다. 몰질은 말들을 몰고 다니는 길이다. 꼬닥꼬닥 걸어 고향을 떠나며 밟았던 몰질. 
    원나라로 가는 말을 대평포구에서 배에 싣기 위해 만든 길이다. 딱 말 한 마리 지나갈 정도의 너비이다. 비 오는 날에 이 길을 걷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을 만큼 바닥은 모두 자갈로 가득하다. 하늘이 보일 듯 말듯 숲이 우거진 길은 오르는 길 내내 뒷다리가 뻐근해지질 만큼 경사가 심하다. 역사 이야기만 없으면 참 멋진 산책길인데 우리의 아픈 역사가 있어서 길을 걷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다. 수백 년 전 이곳을 말들이 걸었고 지금은 내가 걷고 있다.
    산방산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 월라봉에 들어선다. 월라봉에서는 계절에 따라 피어난 각양각색의 풀꽃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에 화순항으로 상륙하는 미군을 저지하기 위해 구축한 동굴진지가 있다. 출구를 여러 방향으로 내어 유사시 다른 통로를 통해 대피할 수 있고 내부에서 발생한 연기를 밖으로 배출하기 위한 구멍까지 있다. 참으로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제주에선 여러 곳에서 일제의 동굴진지가 관찰된다. 
    깊고 울창한 숲과 바위들이 멋진 안덕계곡으로 들어선다. 원시림 같은 느낌이 든다. 이내 길은 금빛으로 반짝이는 화순금모래해수욕장의 백사장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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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바람과 파도 침식으로 웅장한 모습으로 조각된 단층이 가득한 용머리해안.
    사계해변
    화순금모래해수욕장을 가로 질러 황우치 해안, 산방연대를 지나는 해안 길은 용암이 발달되어 있다. 산방산 용머리 지오트레일의 일부 구간이기도 하다.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은 제주도 세계지질공원의 대표 명소. 산방산은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용암돔 화산지형이고 용머리해안은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체이다. 
    용머리는 산방산의 줄기가 급하게 바다로 뻗으며 만들어진 기암절벽이 마치 용의 머리와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천하를 호령할 제왕이 태어날 것을 염려한 중국 진시황의 사자 고종달이 혈맥을 끊기 위해 용의 꼬리를 자르고 허리를 두 번 내리친 다음에 머리를 자르자 피가 솟구쳐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용머리해안은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서 통제가 되므로 방문하기 전에 미리 전화로 통제시간을 확인을 하는 것이 좋다. 독특하게 생긴 아찔한 절벽에 “아~”하는 탄성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이런 절경이 있으리라고 상상조차도 못했다. 육지 쪽에서 보면 그저 평범하기만 해안인데. 오랜 시간 자연의 비바람과 파도 침식으로 조각된 단층의 풍경은 놀랍기만 하다. 단층은 180만 년 전 화산이 수중에서 폭발하면서 바다 속에서 있던 응회암층이 솟아오른 것이다. 격한 파도가 밀려드니 더 역동적인 풍경이다. 그 매력에 심취해 있는데 풍랑이 심해졌다며 직원이 관람객들에게 나가줄 것을 요청해서 거의 뛰다시피 용머리해안을 돌아본다. 자연의 위대함과 경이로움에 다시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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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지막이 핀 갯국과 산방산이 참 멋지게 어우러진다.
    깨끗한 바다, 산방산, 형제섬이 보이는 해안, 화순리 퇴적층의 오묘한 질감과 색, 제주 사람발자국과 동물발자국화석 산지까지 하나의 해변에서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사계해변뿐이다. 맑고 투명한 바다도 멋지지만 퇴적층이 만들어내는 곡선은 또 어찌나 아름답고 퇴적층을 덮고 있는 초록의 이끼는 또 얼마나 투명하게 빛나는지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 초록세상으로 빨려 들어간다. 사계해변의 다양한 색이 나를 흥분시킨다.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 가도 새로운 모습으로 맞이하는 곳이어서 언제나 가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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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고 울창한 숲과 바위들이 멋진 안덕계곡.
    사계해변이 끝날 즈음에 만난 갯국. 나지막이 해변에 누워 있던 노오란 갯국이 나를 사로잡는다. 올레길만 아니면 이곳에서 일몰을 맞이하고 싶다. 갯국을 마음에 가득 담고 떠나는 길은 발걸음이 경쾌해진다. 
    사계해변의 끝자락, 제주 사람발자국과 동물발자국화석 산지. 이곳의 지층은 약 1만5,000년 전에 형성되었다. 이곳 화석 산지에서는 500여 점의 수많은 사람의 발자국 화석과 함께 수없이 많은 무척추 동물의 생흔 화석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중요한 자료를 단지 보호펜스만을 쳐 놓고 관리하고 있어서 조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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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머리해안에서 바라보는 산방산은 더욱 웅장하다.
    송악산과 섯알오름
    제주 최고의 해안 경관으로 꼽히는 송악산둘레길은 부남코지의 해안을 절벽을 따라  산책하는 코스로 총길이 2.8m로 짧고 평이한 코스여서 가족이 함께 걷기에 좋은 길이다. 송악산둘레길을 걸으며 손에 잡힐 듯한 마라도와 가파도, 둘이서 귓속말을 속삭이는 형제섬, 비단처럼 흘러내리듯 펼쳐지는 한라산의 비경을 즐감한다. 
    송악산 정상부는 자연휴식년제로 2021년 7월 31일까지는 출입이 통제되어있다. 아쉽지만 송악산 정상에 올라 그림같이 펼쳐진 둘레길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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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 속에서 폭발하며 솟아오른 응회암층으로 형성된 용머리해안.
    송악산을 오를 때마다 바라보기만 했던 섯알오름의 내리막에 펼쳐진 유채꽃은 10코스의 선물이다.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아서 생생하게 바람에 펄렁거리는 유채의 작은 꽃잎의 떨림에 흥분이 된다. 어찌해야 이 모습 이 감정을 생생하게 남겨 놓을 수 있을까? 꽃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그 향기를 품는다.
    떨림의 순간도 잠시. 섯알오름에는 제주 사람들이 겪었던 엄청난 비극을 짐작할 수 있는 4.3사건의 잔혹한 현장이 있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구간이다. 다크 투어리즘은 전쟁이나 테러, 인종말살, 재난처럼 비극적인 역사 현장이나 재난, 재해가 일어났던 장소를 돌아보며 보고 듣고 느끼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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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정읍 상모리에 있는 4.3유적지 섯알오름 학살터의 모습.
    알뜨르비행장은 일제강점기에 대정읍 상모리 벌판에 건설된 군용 비행장으로 ‘마을 아래에 있는 너른 벌판’의 뜻을 가진 상모리 ‘알뜨르’에 조성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이 비행장을 전초 기지로 삼아 약 700km로 떨어진 중국의 난징을 폭격하기 위해 이곳에 비행장을 건설했다. 1938년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한 이후 이곳에 상주하던 해군항공대는 중국본토로 옮겨졌고 이곳은 연습 비행장으로 남았다. 
    알뜨르비행장에는 대나무로 엮어 만든 9m 높이의 파랑새 소녀상 조형물이 있다. 파랑새를 안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가가 이용한 대나무는 동학 농민군들이 사용했던 죽창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겸손한 모습의 소녀상의 두 손에는 파랑새가 안겨 있다. 배경으로 산방산과 한라산이 보이고 알뜨르비행장의 풍경, 바람과 조우하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일몰과 더블어 대평포구부터 섯알오름까지 20여 km의 길이 끝났다. 해안길, 둘레길, 지질트레일 등의 다양한 길을 걸으며 형제섬, 마라도, 가파도를 눈에 담고 제주의 명산 한라산의 설산까지 다채로운 자연과 함께한 최고의 트레킹이었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폭설조차 즐거웠던 제주올레길이었다. 따사로운 봄소식이 전해질 때 다시 오리라 약속하며 제주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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