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에 영감 준 베아투스 세계지도

  • 글 최선웅 한국지도학회 고문
    입력 2021.03.25 09:44

    최선웅의 고지도 이야기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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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 세베르 수도원의 베아투스 세계지도(출처: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신약성서 27권 가운데 마지막 책인 ‘묵시록黙示錄(계시록이라고도 함)’은 저자 요한이 예수 재림 때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하느님의 계시啓示를 통해 기록한 예언서로, 성경 가운데 가장 해석이 어려운 책으로 꼽힌다. 
    8세기 후반 에스파냐 리에바나의 수도사 베아투스Beatus는 801년에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는 믿음 아래 묵시록 해설에 진력해 776년 <성 요한의 묵시록 주해서>를 편찬했다. 
    베아투스(730년경~800년경)는 에스파냐 북부의 아스투리아스 왕국Kingdom of Asturia의 리에바나 지역(지금의 칸타브리아)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산토 토리비오 데 리에바나 수도원Monasterio de Santo Toribio de Liébana의 수도사로 신학자이며, 지리학자로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가 편찬한 <묵시록 주해서>는 784년과 786년에 다시 개정판을 펴냈는데, 이 주해서는 성직자들을 교화하고 교육시키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한 의식에도 사용되었고, 세상의 종말을 두려워한 중세 그리스도교도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어 10~16세기에 걸쳐 각지 수도원에서 여러 필사본이 만들어졌다.
    이 <묵시록 주해서>는 흔히 ‘베아투스 본’이라고 하는데, 원본은 남아 있지 않고 사본은 적어도 34점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도판圖版이 수록된 것은 2007년 주네브 도서관의 기증서 중에 베아투스 사본이 발견되면서 현재 28점이 여러 나라 도서관이나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사본 가운데 27점은 모자라빅Mozarabic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양식의 다양한 전통이 섞인 화려한 채색으로 장식되어 있고, 주해서에는 세비야의 생 이시도로Saint Isidore of Sevilla의 <어원학Etymologiae>에 기술된 내용을 묘사한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세계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베아투스 세계지도’를 통상 라틴어로 ‘베아투스 마파 문디Beatus mappa mundi’라고 부르며, 수십 종의 파생된 ‘베아투스 세계지도’를 체계적으로 연구해 그 계보가 정리된 것은 1895년 독일의 중세 지도학자 콘라드 밀러Konrad Miller에 의해서다. 밀러는 크게 스페인 중부 카스티야 지방의 엘 부르고 데 오스마El Burgo de Osma(약칭 오스마)와 발카바도Valcavado 전통에 속하는 두 가지 계보로 분류했다. 
    ‘성 요한의 묵시록 주해서’ 편찬
    오스마 계보에 속하는 지도는 3종류로, 1060년경의 생 세베르 베아투스Saint Sever Beatusㆍ1086년의 오스마 베아투스Beatus d’Osmaㆍ1180년의 로바오 베아투스Beatus de Lorvão이다. 발카바도 계보에 속하는 지도는 12종류로, 926~960년의 에스칼라다 베아투스Beatus de Escaladaㆍ970년의 발카바도 베아투스Valcavado Beatusㆍ10세기경의 우르겔 베아투스Urgell Beatusㆍ975년경의 지로나 베아투스Gerona Beatusㆍ1047년의 페르디난도와 산차 베아투스Beatus de Ferdinand et Sanchaㆍ1091~1109년의 실로스 베아투스Silos Beatusㆍ1150년의 튜린 베아투스Turin Beatusㆍ1175년의  맨체스터 베아투스Beatus of Manchesterㆍ1180년의 나바레 베아투스Navarre Beatusㆍ1195년 의 산 밀란 베아투스San Millán Beatusㆍ1220년의 라스 우루가스 베아투스Las Hueglas Beatusㆍ1235년의 산 앙드레 드 아로요 베아투스San Andrés de Arroyo Beatus 등이다. 
    베아투스 사본 가운데 생 세베르 베아투스는 이베리아반도 밖에서 만들어진 몇 안 되는 필사본 가운데 하나로, 프랑스 남서부 랑드주Landes의 베네딕토회 소속인 생 세베르 수도원의 필사실에서 만들어졌다. 이 수도원은 10세기 말 가스코뉴Gascony의 윌리엄 2세 산체스William II Sánchez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1911년 11월 18일 프랑스에서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되고, 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의 경유지가 되었다.
    현재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생 세베르 베아투스의 <묵시록 주해서>는 양피지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채색 필사본으로, 총 607쪽 가운데 45쪽(45v-45r) 펼친 면에 세계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베아투스 세계지도’는 판본마다 그 형태나 내용이 달라 동일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 가운데 셍 세베르의 세계지도가 가장 크고, 지리적으로도 상세하며, 히스패닉 지도 모델에서 탈피해 프랑스인의 정체성을 드러낸 지도로 평가되고 있다. 일부 연구자는 이 지도의 형태와 내용이 베아투스 원본을 가장 잘 나타낸 사본으로 보기도 한다.
    판본마다 동일한 것 없어
    지도의 전체적인 형태는 장타원형長楕圓形으로, 크기는 가로 57cmㆍ세로 37cm이며, 지도에 표현된 지리정보의 범위는 동쪽은 인도, 서쪽은 이베리아반도, 북쪽은 영국, 남쪽은 아프리카 북부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지도는 중세 마파 문디의 형태 가운데 하나인 4분 지도Quadripartite maps로, 아시아ㆍ유럽ㆍ아프리카 외에 세상의 반대방향에 있다는 미지의 대척지Antipodes가 표시되어 있다. 방위는 지도의 위가 동쪽이다.
    세계의 가장자리는 대환해大環海에 둘러싸여 있고, 지형은 바다와 강, 산맥과 산 등으로 표현되는데, 바다와 호수는 군청색, 강은 청색으로 구분하고, 산맥은 톱날같이 길거나 짧게 그려 짙은 흑갈색으로 표시하고, 산은 독립된 봉우리로 표현했다. 섬은 모두 길고 짧은 소시지 모양으로 그려져 짙은 녹색으로 표시되고, 도시와 마을은 크고 작은 중세식 건물로 표시되었다.
    지도에 표기된 지명은 모두 270개이며, 곳에 따라 옅은 색의 설명주기가 기록되어 있다. 지도 오른쪽의 짙은 적갈색의 바다는 홍해이고, 바다 위쪽 황색의 큰 섬은 타파프로네섬Tapaprone(실론섬)이며. 홍해 오른쪽(남쪽)이 대척지이다. 홍해 왼쪽으로 돌출된 바다는 위쪽이 페르시아만이고, 아래쪽이 아라비아해이다.
    대환해 아래쪽(서쪽)과 통한 중앙의 큰 바다가 지중해로 큰 섬 4개가 있는데, 아래부터 사르데냐섬ㆍ시실리섬ㆍ크레타섬ㆍ키프로스 섬이다. 지중해 좌측(북쪽)의 두 갈래로 갈라진 바다는 아래쪽이 아드리아해이고, 위쪽은 입구로부터 에게해ㆍ보스포러스해협ㆍ마르마라해(양쪽이 볼록한 바다)ㆍ흑해(양쪽으로 뾰족한 바다)ㆍ아조프해(맨 끝)로 연결되어 있다. 지중해 오른쪽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에서 발원해 지중해로 유입되는 강은 나일강이다. 지중해와 나일강 위쪽이 아시아대륙이고, 지중해 좌측과 흑해 아래쪽이 유럽대륙, 나일강 아래쪽이 아프리카대륙이다. 또한 대환해 좌측 상단과 통해진 삼각모양의 바다는 카스피해이다.
    소설 <장미의 이름> 모티브
    지도 상단 가운데 산으로 둘러싸인 네모진 곳은 지상의 낙원으로, 아담과 이브가 그려져 있는데, 이브는 뱀이 휘어감은 나무에서 금단의 사과를 따고 있는 모습이다. 지상의 낙원 오른쪽 넓은 땅은 인도이고, 홍해 좌측의 뾰족한 높은 산이 시나이산, 그 왼쪽의 유일한 청색 건물이 예루살렘이다. 아드리아해 아래쪽 건물은 로마이고, 그 아래쪽 옆으로 긴 산맥이 알프스산맥이고, 그 아래 유럽의 대부분을 차지고 있는 나라가 프랑스이다. 프랑스 전역에는 31개의 건물이 그려져 있는데, 아래쪽 가장 큰 건물이 생 세베르 수도원이다. 수도원 오른쪽 긴 산맥이 피레네산맥이고, 산맥 너머 지중베아투스 사본 가운데 에스파냐와와 포르투갈에 소장되어 있는 이베리아 전통의 7점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 필사본에 수록된 성화는 현대 들어서 피카소Pablo Picasso 작품에 영향을 미쳤고, 타바라 베아투스Tábara  Beatus는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베스트셀러 소설 <장미의 이름The Name of the Rose>창작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본 기사는 월간산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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