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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DIN] 겉 다르고 속 다른 한강… 인적 드문 공터는 ‘담배밭’

월간산
  • 입력 2021.02.2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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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하이커스, 클린바이커스로 변신해 망원한강공원~이촌한강공원 따릉이 플로깅

김강은씨 주도로 만든 정크아트. 따릉이를 타고 플로깅하는 클린하이커스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김강은씨 주도로 만든 정크아트. 따릉이를 타고 플로깅하는 클린하이커스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번엔 한강을 찾았다. 월간<山> 창간 51주년 환경 캠페인 ‘Do it Now’를 위해 모인 클린하이커스가 지난 2월 8일 한강공원에서 따릉이 플로깅plogging(‘이삭을 줍는다’는 뜻인 스웨덴어 plocka upp과 영어 단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로, 조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행동. 최근에는 꼭 조깅이 아니더라도 실외 활동에 환경보호 활동을 결합해서 실행할 때 넓은 의미로 붙여 일컫기도 한다)을 전개했다.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다니며 한강공원 곳곳에 숨겨진 쓰레기를 수거하는 캠페인이었다.

언제나 잘 정돈된 모습으로 서울시민을 맞이해 주는 한강공원. 겉보기에는 깨끗해 보였으나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역시 생각지도 못한 쓰레기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따릉이를 타는 클린하이커스. 싸늘한 겨울바람이 쓰레기를 줍느라 쉼 없이 구부린 무릎과 허리를 시원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따릉이를 타는 클린하이커스. 싸늘한 겨울바람이 쓰레기를 줍느라 쉼 없이 구부린 무릎과 허리를 시원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오늘만은 클린바이커스!

지난 10년간 한강공원을 찾는 방문자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 따르면 2008년 한강공원 이용자 수는 4,000만 명 수준이었지만, 2017년에는 7,500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사람 발길이 잦아지면 쓰레기도 늘어나기 마련. 한강공원 쓰레기 발생량도 2015년 3,806t에서 2017년 4,832t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최근 한강공원은 코로나19로 인해 증가한 캠프닉Campnic 족이 버린 쓰레기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혹시 따릉이 빌리는 법 아세요? 옛날엔 LCD가 달려 있었던 것 같은데 뭔가 달라졌어요.”

합정역에 모인 클린하이커스 멤버 김강은, 사인서, 김가현, 윤용만씨는 달라진 따릉이의 모습에 당황했다. 2015년 처음 도입된 따릉이는 액정표시장치가 달린 모델이었지만, 지난 2020년 2월부터 따릉이 앱을 다운로드받아 자전거에 부착된 QR코드를 스캔하는 모델로 점차 교체되고 있다. 합정역에 비치된 따릉이도 바로 이 QR형이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따릉이 이용객이 큰 폭으로 늘었다. 서울시가 발표한 따릉이 통계 자료를 보면 2020년 따릉이 대여건수는 2,370만5,000건으로 직전 해 1,907만5,000건보다 24%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대여량도 6만4946건에 달했다.

클린하이커스 모두 오랜만에 페달을 밟는다. 경쾌한 페달링도 잠시, 한강으로 들어가는 길을 못 찾아 헤맨다. 이윽고 양화진 지하차도에서 한강변으로 나가는 길을 발견, 자전거를 몰자 절두산 성지가 나타난다. 이곳은 조선시대 흥선대원군이 천주교인을 처형한 곳으로, 머리가 잘린 곳이라는 의미의 ‘절두산’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강변북로 아래 ‘담배밭’이란 별명이 붙은 담배꽁초 투기 장소를 정리하고 있다.
강변북로 아래 ‘담배밭’이란 별명이 붙은 담배꽁초 투기 장소를 정리하고 있다.

주 보행로는 깨끗, 한적한 공터는 지저분

머리 위 강변북로는 꽉 막힌 듯 느릿느릿 움직이는 자동차 지붕이 흘끗 보인다. 마치 이들을 추월하듯 속 시원히 페달을 밟다가 선두의 김강은씨가 돌연 어두컴컴한 강변북로 아래 공터로 핸들을 튼다. 그리고 자세히 한 지점을 들여다본다. 놀랍게도 수십 개의 담배꽁초가 딱 그 지점에만 잔뜩 떨어져 있어 마치 담배밭을 형성하고 있다.

“이건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흡연 장소로 사용했거나, 단체 방문객이 몰래 숨어서 핀 것 같네요. 한강공원 곳곳에 쓰레기통도 많은데 참 마음이 아프네요.”

담배꽁초 외에도 음료수 페트병과 막걸리통, 휴지 등이 공터 가장자리를 둘러싼 배수로 곳곳에서 발견됐다. 클린하이킹을 할 땐 적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묻혀 있던 쓰레기를 곧잘 발견하곤 했지만, 한강공원에서 발견된 쓰레기는 비교적 최근에 버려진 것들이었다.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정기적으로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며, 부정적으로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레기 투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사실 이번에 한강 플로깅을 한다고 해서 반신반의했어요. ‘한강공원은 엄청 깨끗하던데, 과연 쓰레기가 있을까?’하고요. 그런데 막상 쓰레기를 찾으려고 들여다보니 너무 더러워서 놀랐습니다.”

윤용만씨가 주운 쓰레기를 클린백에 담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동행한 사인서, 김가현씨도 “놀러 왔을 땐 깨끗해 보였는데, 막상 쓰레기를 찾아보니 이토록 많을 줄은 몰랐다”고 맞장구쳤다.

“평소에 한강 자주 오세요?”
“아니오, 저는 가평 살아요.”
“저는 충남 천안에서 왔어요. 따릉이 플로깅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재밌어 보여서 참가 신청했어요.”

알고 보니 사인서씨는 충남 천안, 김가현씨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서 한강공원을 치우기 위해 먼 걸음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줬다. 오히려 한강공원을 잘 이용하지 않는 이들이 환경보호라는 뜻을 함께하기 위해 1시간 30분 넘게 대중교통을 타고 오는 수고를 감수해 준 것이다.

따릉이를 세워놓고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는 클린하이커스.
따릉이를 세워놓고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는 클린하이커스.

“혹시 플라스틱 뚜껑 수거하시면 저한테 주실 수 있으세요?”

사인서씨가 클린백이 아닌 작은 주머니에 플라스틱 뚜껑을 따로 모은다. ‘플라스틱 방앗간’에 보내기 위함이다. 서울환경연합에서 시민참여 캠페인의 일환으로 만든 플라스틱 방앗간은 글로벌 친환경 프로젝트인 ‘프레셔스 플라스틱Precious Plastic’을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플라스틱을 조각으로 부순 후 다른 실용적인 물건으로 만드는 플라스틱 새활용 활동이다.

사인서씨는 “지난해에는 플라스틱 뚜껑을 모아 보내고 치약짜개를 받았다”며 “자연보호도 하고, 물건도 받는 일석이조의 힙한 플로깅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천안에서 한강까지 와준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선한 영향력”을 강조했다.

“저는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어요. 한 번은 아이들과 함께 유치원 뒷산에 오르며 클린하이킹을 했는데 아이들이 무척 즐거워하더라고요. 그 이후 매주 수요일마다 아이들과 클린하이킹을 하고 있어요.

 누군가가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도로 바로 옆 갈대밭 뒤편에 몰래 버린 음식물쓰레기.
누군가가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도로 바로 옆 갈대밭 뒤편에 몰래 버린 음식물쓰레기.

지금 당장 하나의 쓰레기를 줍는 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지 몰라도, 사람들 사이에 선한 영향력은 마치 파문처럼 당장은 작아도 넓고 크게 퍼져나가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망원공원 청소를 마친 후 이촌공원으로 이동한다. 이동하는 도중에도 사람들의 눈길 밖에서 몰래 쓰레기를 버릴 만한 공터를 수시로 확인했다. 대부분은 깨끗했으나, 겨울바람에 날린 듯한 가벼운 쓰레기들이 수풀에 걸려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떤 쓰레기는 고의성이 다분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달걀, 샌드위치, 호박죽, 귤껍질 등 음식물쓰레기를 한데 모아 갈대밭 뒤에 몰래 버린 경우도 있었고, 맥주 캔을 줄지어 세워놓고 간 경우도 있었다. 최근 한강에서 유행한 캠프닉족이 남긴 흔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한강철교 옆에 선 클린하이커스. 왼쪽부터 김강은, 윤용만, 김가현, 사인서.
한강철교 옆에 선 클린하이커스. 왼쪽부터 김강은, 윤용만, 김가현, 사인서.

정크 아트 ‘따릉이 플로깅 클린하이커스’

한강철교에 이르자 거의 클린백이 가득 찼다. 마지막으로 철교 아래 한강 가까이 내려가 본다. 작은 모래사장에는 한강에 실려 온 쓰레기들이 잔뜩 깔려 있다. 쓰레기를 마저 수거하고 올라오자 지용호 작가의 정크 아트 작품 <북극곰>이 맞이해 준다. 지용호 작가는 폐타이어를 활용해 역동적이고 강렬한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클린하이커스도 김강은 작가의 주도 아래 바로 옆 이촌공원에서 정크 아트 작품을 만든다. 그간 매달 상징적인 형상을 본 따 작품을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따릉이 타고 플로깅을 한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본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따와 ‘윌슨’이란 애칭이 붙은 배구공이 얼굴이 됐고, 캔과 페트병이 바퀴가 됐다. 작품을 완성한 후 클린하이커스는 서울 곳곳을 누비는 따릉이 이용자들 사이에서 플로깅 붐이 자그마하게라도 일어나기를 소망했다.

'본 기사는 월간산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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