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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환경영화] 침팬지가 바꾼 여인의 일생

글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 입력 2021.04.1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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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자연 영화 <9> 제인 구달

영화 <혹성탈출: 종의 전쟁War for the Planet of the Apes>(2017)의 주인공은 유인원類人猿 리더 ‘시저’이다. 진화한 유인원인 시저는 웬만한 인간보다 똑똑하고 리더십도 출중하다. 신체구조가 원숭이류보다 사람에 더 가깝기에 붙여진 명칭인 유인원에는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등이 있다.

영국의 저명한 고고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루이스 리키(1903~1972)는 현존하는 생물 가운데 인류와 가장 가까운 대형 유인원에 관한 현장 연구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 동물들을 연구함으로써 선사시대 인류의 행동 양식에 대한 실마리를 풀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 출신으로 아프리카 여행을 소원으로 삼았던 제인 구달Jane Goodall(1934~)은 1956년 아프리카 케냐를 여행하다가 당시 나이로비의 자연사박물관장으로 있던 루이스 리키를 만나 그의 개인비서로 취직했다. 제인 구달이 침팬지 연구를 해보겠다고 자원하자 물심양면으로 그녀를 후원했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관찰력이나 인내심, 집요함에서 더 월등하다고 믿었던 루이스 리키는 제인 구달 이후 다이안 포시(1932~1985)와 비루테 갈디카스(1946~)라는 또 다른 여성들에게 각각 고릴라와 오랑우탄 연구를 맡겼다. 이 세 사람을 ‘루이스 리키의 세 딸들’이라 칭하기도 한다.

제인 구달이 연구한 곳은 당시 아프리카에서 안전한 편인 탄자니아였고, 다이안 포시는 내전이 한창인 르완다와 자이르 공화국에서, 비루테 갈디카스는 보르네오에서 안정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다이안 포시는 1967년부터 20년 동안 멸종위기 종인 마운틴고릴라를 연구해 명성을 얻었지만, 이후 고릴라 보호에 앞장서는 과정에서 인근 주민 및 밀렵꾼들과 갈등을 빚다가 처참하게 살해됐다.

“나홀로 정글에… 정신 나간 짓이었다”

다큐멘터리 <제인 구달Jane’s Journey>(감독 로렌츠 크나우어, 2010)은 영국의 동물행동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의 생애와 족적을 다룬 독일-탄자니아 합작 영화이다. 영화는 다음과 같은 짤막한 인터뷰로 시작한다. 

“사람들이 종종 저를 다이안 포시로 착각하곤 ‘당신 영화를 좋아한다’고 그래요. <정글 속의 고릴라>요. 그럼 제가 그 영화를 봤냐고 묻죠. 그럼 그 여자가 죽는 것도 기억 나냐고요. 저는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다이안 포시의 일생을 다룬 <안개 속의 고릴라Gorillas In The Mist>(국내 번역 제목은 ‘정글 속의 고릴라’, 1988)는 시고니 위버 주연으로 제작됐었는데, 제인 구달은 그 영화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1934년 제인 구달은 카레이서였던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맏딸로 태어났다. 틈만 나면 자연과 동물을 관찰하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5세 때 부모가 이혼했다. 어머니와 살게 된 그녀는 자전거를 살 돈이 없을 만큼 집안이 가난해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비서 일을 시작했다.

친구의 권유로 아프리카 케냐를 방문했다가 앞서 언급한 대로 루이스 리키의 추천으로 1960년 9월 ‘연필과 노트, 열정만 갖고’ 탄자니아 곰베에서 침팬지 연구를 시작했다. 6개월 안에 침팬지에 관한 연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기에 곰베국립공원 경치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큐멘터리에서 제인 구달은 “영국에서 갓 도착한 젊은 여자애를 이런 위험한 지역에 혼자 내버려두다니 정신 나간 짓이었다”고 회고했다.

처음엔 침팬지들이 경계하며 다가오지 않았고, 이윽고 구달의 머리를 때리거나 나뭇가지를 던지며 분노를 표했다. 자기들 영역에서 나가란 뜻이었다.

도구를 사용하는 침팬지

제인 구달의 초기 연구에서 가장 획기적인 발견은 침팬지가 연한 나뭇가지를 구멍에 쑤셔 넣는 방법으로 흰개미를 잡아먹는 등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이었다. 당시만 해도 도구의 제작 및 사용은 오로지 인간만이 지닌 능력이라는 통념이 지배적이던 시절이라 이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6개월 만에 경비가 바닥나자 루이스 리키 박사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연락했고, 이 회사에서 사진작가와 추가 경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보도로 제인 구달은 일약 화제의 인물이 된다. 그녀의 전기를 쓴 작가 데일 피터슨은 “물론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얼굴 예쁘고 젊다는 것 외에 뭐가 있느냐? 그걸로 유명세를 탄 거지 한 일은 별로 없다’는 이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영화는 백발노인이 되어 다시 탄자니아 곰베를 찾아 침팬지 사이에 앉아 있는 제인 구달의 현재와 1960~1970년대 침팬지 무리와 어울리고 있는 20, 30대 젊은 구달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 자료 화면을 교차 편집하면서 스토리를 이어 나간다.

이제는 중년이 된, 제인 구달의 아들 ‘그럽Grub’의 인터뷰도 등장한다. 구달은 네덜란드 출신의 사진작가 휴고 반 라윅과 결혼해 그럽을 낳은 뒤 10년 만에 이혼했고, 영국 출신으로 탄자니아국립공원 관리자를 지낸 데릭 브라이슨과 재혼했다. 구달이 ‘영혼의 동반자’라 부르는 데릭 브라이슨은 결혼 5년 만인 1980년 암으로 사망했다.

구달의 아들 그럽은 “아기용 침대 안에 있던 나에게 침대 나무 울타리 위에 수컷 침팬지들이 올라와 울타리를 흔들며 소리 지르던 유아 때 기억이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침팬지가 싫고 무서웠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어머니와 생각이 달랐다. (침팬지 연구를) 집착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어머니 활동에 반대를 많이 했다. 어머니가 좀더 현실에 발을 붙이고 달라져야 한다고 여겼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물론 아들은 이후 어머니와 화해했고, 어머니의 환경보호 활동과 연관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제인 구달은 1986년 아프리카에서 열린 나흘간의 학회에서 침팬지들이 의학용으로 학대당하고 살해당하는 열악한 상황 보고를 접하고, ‘침팬지 덕분에 여기까지 왔으니 앞으로는 침팬지의 보호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날 이후 구달은 한 곳에 3주 이상 머문 적 없고, 연간 300일 이상 돌아다니며 절대적 고독에서 벗어나 사람들 만나러 강연장과 회의장을 누비고 있다. 스스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정도다. 특히 제인 구달 박사의 주도로 1991년 탄자니아의 청소년 10여 명으로 시작한 미래 환경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인 ‘뿌리와 새싹Roots & Shoots’은 현재 120여 개 나라에서 진행 중이라고 한다.

영화에는 다양한 인물들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그중에는 구달에 대해 “늘 내게 영감을 주는 분이고 내 삶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를 형성해 가는 데 도움이 되는 분”이라 말하는 배우 안젤리나 졸리도 있다.

러닝타임 111분에 이르는 이 영화는 아프리카 탄자니아는 물론, 미국 사우스다코다에 있는 인디언 보호구역에서부터 이누이트족이 살고 있는 그린란드까지 곳곳을 누비고 있는 제인 구달의 열정적 활동을 담았다.

자칫 지루해질 우려가 있을 때마다 어쿠스틱 기타를 기본으로 한 멋진 음악이 효과적으로 깔린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제65회 에든버러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 후보에 올랐던 작품이다. 

'본 기사는 월간산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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