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웅의 고지도]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메르카토르의 북극지도’

  • 글 최선웅 한국지도학회 고문
    입력 2021.04.19 09:34

    최선웅의 고지도 이야기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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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카토르가 제작한 북극지도 초판(출처: Boston Public Library)
    유럽에서 북극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프톨레마이오스C. Ptolemaios의 저서 〈지리학Geography〉이 1411년경 이탈리아의 학자 자코포 드안젤로Jacopo d’Angelo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돼 경위도에 의한 전 지구적 좌표체계가 알려지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16세기에 이르러 북극을 통해 동양에 이르는 최단 항로의 개척이 시작되면서 북극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되었다. 이때 네덜란드의 지도제작자인 메르카토르가 최초로 북극지도를 제작했다.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Gerardus Mercator는 1512년 플랑드르(현 벨기에)의 루펠몬데에서 태어나 1530년 루뱅대학에서 기하학과 천문학, 지리학 등을 공부했다.
     1534년에는 유명한 수학자인 젬마 프리시우스Gemma Frisius와 함께 지구의ㆍ해시계ㆍ천문관측의 등 과학기기를 제작했고, 지도와 해도 제작을 시작해 1538년 처음 세계지도를 제작했다. 그 뒤 지도제작에 매진해 1569년 불후의 지도 투영법인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항해용 세계지도를 제작했다.
    그 뒤 메르카토르는 세계 각 지역의 지도를 집대성한 세계지도책Atlas 편찬을 시작했으나, 지도 자료 구하기가 어렵고, 동판 조각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면서 완성하지 못한 채 1594년에 사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듬해 그의 아들 루몰드 메르카토르Rumold Mercator가 이를 완성해 3권의 <아틀라스Atlantis pars Altera Geographia Nova Toius Mundi>를 출판했다. 이 아틀라스 세 번째 권 펼친 페이지 43면이 ‘북방지역의 지도Septentrionalium Terrarum Descriptio’라는 이름의 북극지도이다.
    메르카토르의 북극지도는 현대인의 눈에는 전혀 익숙지 않은 북극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지도의 중심부, 바다 가운데 솟아 있는 거대한 검은 바위Rupes Nigra는 자성을 띤 바위magnetic rock로, 지구 자장磁場의 원천이었다고 한다. 바다 주위로는 급류를 이룬 4개의 강으로 구분된 4개의 커다란 땅덩이에 둘러싸여 있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은 길이가 1,800km나 된다고 한다. 4개의 땅덩어리 남쪽 가장자리에는 높은 산이 연이어 솟아 있고, 4개의 강은 지구로 흘러드는데 하류에는 삼각주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모습의 북극은 1492년 마르틴 베하임Martin Behaim이 제작한 최초의 지구의와 1507년 요하네스 루이쉬Johannes Ruysch가 제작한 세계지도에도 나타나는데, 이와 같이 황당한 북극의 자료는 옥스퍼드 출신 프란치스코회의 천문학을 하는 사제가 북대서양을 발견하고 쓴 ‘포르투나타의 발견Inventio Fortunata’이란 여행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헤르토겐보슈(현재의 네덜란드) 출신인 자코부스 크노옌Jacobus Cnoyen이 1364년 노르웨이에서 만난 다른 프란치스코회 사제로부터 들은 ‘포르투나타의 발견’을 요약한 ‘여행기Itinerarium’를 썼다.
    이 크노옌의 여행기가 바로 메르카토르가 북극지도를 제작할 때 인용한 자료이다. 이 책 역시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1577년 4월 20일 메르카토르가 영국의 수학자이자 왕실 고문인 존 디John Dee에게 보낸 편지 내용에 이 책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메르카토르의 편지는 화재로 인해 일부분이 훼손되었지만, 두 장이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4개의 땅덩이 한가운데에는 소용돌이가 있고, 거기에는 북극을 갈라놓는 네 개의 공간이 있다. 그곳으로 물은 깔때기를 통해 급속히 회전하며 땅 속으로 내려간다. 극의 모든 면에서 4도 폭이고, 전체로는 8도 폭이 된다. 북극 바로 밑 바다 한가운데에 솟아 있는 바위산의 둘레는 대체로 33 프랑스 마일(약 53.1km)이고, 그 전체가 자석이다.(…) 이것은 내가 몇 년 전에 저자(즉 크노옌)로부터 모사한 것을 말로 표현한 것이다.”
    16세기 영국의 탐험항해가인 마틴 프로비셔Martin Frobisher와 제임스 데이비스James Davis가 북서항로 개척을 위해 각각 현재의 캐나다 배핀섬Baffin I.까지 도달했는데, 이 두 사람 모두 거대한 빙산을 아무렇지 않게 끌고 가는 악랄한 조류潮流에 대한 경험을 기록했다. 메르카토르는 이 기록을 인용해 지도에 “멈추지 않고 북상해 대지의 밑으로 흡수되어 갔다”고 썼다.
    메르카토르의 북극지도는 가로 52cmㆍ세로 40cm 크기이고, 중심점으로부터 방향이 정확하게 나타나는 방위도법azimuthal projection으로 작도되었는데, 이 도법은 11세기 페르시아의 천문학자인 알 비루니Al-Biruni가 처음 고안해 낸 것이다. 위도는 270° 경선 상에 1° 간격의 잣대로 표시했고, 북위 60°부터 10° 간격으로 위선이 그려져 있으며, 북위 66° 33′ 48.4″의 북극권은 쌍선 내에 붉은색으로 표시했다. 경도는 카보베르데제도Cabo Verde Islands를 지나는 경선을 기준자오선으로 10° 간격으로 그려져 있다.
    지도의 정식整飾은 원형의 본도 주위를 꽃무늬로 장식하고, 네 모서리에는 4개의 작은 원이 그려져 있다. 지도 제목은 좌측 하단에 있고, 다른 3개의 원에는 섬이 그려져 있는데, 오른쪽 상단 아이슬란드ㆍ노르웨이ㆍ영국 사이의 페로제도Faroe Is.이고, 왼쪽 하단이 영국 북쪽의 셰틀랜드제도Shetland Is.이다. 왼쪽 상단은 프리슬랜드섬Frisland I.인데, 이 섬은 17세기까지 북대서양 지도에 그려졌던 가상의 섬이다.
    북극에서의 모든 방향은 남쪽인데, 북극을 둘러싼 네 지역의 바깥쪽은 지금의 북극해이고, 북극해 오른쪽이 아시아대륙, 아래쪽이 유럽, 왼쪽이 아메리카대륙이다. 북극 주변의 네 지역에는 라틴어 설명주기가 쓰여 있는데, 왼쪽 위에는 메르카토르가 존 디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중 일부이고, 오른쪽 아래에는 “여기에 피그미들이 살고 있는데, 그린란드에서는 스크렐링게르Skraelinger라고 불리는 것 같다”고 적혀 있다. 이는 그린란드에 진출한 노르만인들이 부르는 이민족에 대한 호칭으로 오늘날에는 북아메리카의 북대서양 연안에 사는 원주민을 가리킨다.
    아메리카와 아시아대륙 사이의 아니안해협El streto de Anian은 오늘날의 베링해협으로, 이곳에는 나침반의 편차를 설명하기 위해 ‘자극Polus magetis’이라 이름 붙여진 또 하나의 섬이 그려져 있는데, 오늘날 북자극 점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아시아대륙 동쪽 끝에는 성서에 나오는 ‘곡Gog’이 표기되어 있고, 아메리카대륙 북쪽 끝에 현대 지명인 ‘캘리포니아California regio’가 표기되어 있는 점은 특이하다. 북극해에는 노바야젬랴섬과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등의 섬이 그려져 있으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스피츠베르겐섬은 표시되지 않았다.
    1604년에 메르카토르의 아틀라스를 인수한 지도제작자 요도쿠스 혼디우스Jodocus Hondius는 북극지도의 판을 수정해 북극권 4개의 땅덩어리 가운데 한 곳의 해안선을 삭제하고, 1596년 네덜란드의 빌럼 바렌츠Willem Barentsz가 발견한 스피츠베르겐섬을 추가했다. 또한 1636년까지 최신 북극지도에는 메르카토르의 4개 땅덩이와 검은 산, 중앙의 소용돌이 바다가 없어지게 되지만, 메르카토르가 제작한 북극지도의 초판은 매우 희소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지금의 북극은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해빙海氷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어, 금세기 내에 결빙지역이 사라진다는 절망적인 전망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현대의 북극지도를 보면서 사실적이면서도 황당한 허구가 뒤섞인 400여 년 전 메르카토르의 북극지도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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