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마운스토리] 해발 1,000m 고지 ‘천상의 진달래 화원’

입력 2021.04.01 10:37

대구 비슬산
4월 중순부터 만발… <삼국유사>엔 苞山으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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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대견사 뒤로 드넓은 진달래 평원이 펼쳐지고, 뒤쪽 우뚝 솟은 봉우리가 비슬산 정상 천왕봉이다. 사진 대구시청
비슬산琵瑟山(1,083.4) 정상 주변 해발 1,000m 고지에 이렇게 넓은 진달래 화원이 펼쳐져 있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 무려 100만㎡(30여 만 평)의 군락지다. 궁금증은 잠시 뒷전, 감탄이 절로 나온다. 비슬산 입구에서 식당을 하는 서재민씨는 “4월 중순부터 진달래를 보려는 상춘객들의 차가 100m 이상 줄을 지어 도저히 비슬산 입구로 진입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5월 초까지 정체는 계속된다고 한다. 연중 가장 많은 비슬산 방문객이 몰리는 기간이다. 주변 식당은 대목이다.
한국의 3대 진달래 명산으로 평가받는 여수 영취산, 마산 무학산, 창녕 화왕산이 500m 이하에서 대규모 군락을 이룬다면, 1,000m 고지에서 천상의 진달래 화원은 한국 최고로 꼽아도 전혀 손색없는 비슬산 진달래 군락이다.
그런데 이 ‘천상의 진달래 화원’을 언제, 어떻게 조성했을까? 혹시 자연적으로 군락을 이룬 진달래라면 문헌에 남아 있을 텐데…. 아쉽지만 없었다. 그렇다면 인위적으로 조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대구 달성문화원은 “옛날부터 참꽃 군락지가 있었던 듯하다. 너무 고지대에 있어 나무 하러 다니던 사람들 일부에게만 구전되어 알고 있었을 뿐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대규모 군락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1997년 5월 첫 참꽃축제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이후부터 관리했을 뿐 따로 식재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애초 자연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다가 점차 넓어진 자생지를 발견한 뒤 인위적으로 조성한 게 지금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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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대견사 앞 부처바위. 영락없는 부처 형상을 하고 있다.
혹시 진달래 군락이 지명 유래와 무관하지 않다면 북쪽 화원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비슬산 북쪽 화원이 <세종지리지>에 등장한다. 경상도 현풍현편에 ‘비슬산은 현 동쪽 20리에 있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풍각에 이르기 20리, 서쪽으로 고령에 이르기 10리, 남쪽으로 창녕에 이르기 12리, 북쪽으로 화원花園에 이르기 12리이다’라고 나온다. 화원은 비슬산에서 불과 4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비슬산 자락이다. 물론 화원의 유래는 신라 경덕왕이 가야산에서 병 치료를 위해 휴양 중이던 왕자를 문병 차 가던 중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한 이곳을 보고 감탄해 마지않았다고 전한다. 그래서 지명이 유래했고, 산 정상부를 상화대賞花臺라 했다고 한다. 진달래 화원이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예로부터 다양한 꽃들로 유명한 지역인 듯하다. 지금도 수목원이 조성돼 있다. 진위여부를 떠나 관련 문헌이 없어 유추해서 상상해 본다.
진달래가 아니더라도 비슬산 명성은 일찌감치 알려진 듯하다. 고려 말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와 함께 삼은三隱 중의 한 명이었던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1347~1392)-야은 길재를 도은 대신 삼은으로 꼽기도 한다-도 비슬산을 방문하고 시를 남겼다.
‘속객俗客이 먼 길을 달려 왔는데/ 고승高僧은 조그만 정자에 누워 있네.// 구름은 아침에도 저녁에도 희고/ 산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푸르구나.// 지나간 일은 적송자(비를 다스렸다는 신선)를 좇고/ 정한 곳 없는 여행 지령地靈에 부끄럽네.// 은근히 시냇물 길어다가/ 한 움큼 인삼과 복령을 달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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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견사 바로 앞에 있는 대견사 삼층석탑.
일연이 <삼국유사> 구상장소로 알려져
뿐만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유서 깊은 사찰은 명산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진달래의 명성은 현대 들어와 생겼을 수 있지만 비슬산 자락의 사찰은 옛 문헌에 많이 등장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 현풍현편에 대견사, 소재사, 도성사, 속성사, 정백사, 유가사 등이 소개된다. 이 외에도 보물 539호 석조계단이 있는 용연사, 용문사 등도 있다. 특히 유가사에 승려 일연이 칩거하며 <삼국유사>를 구상했다고 전한다. 유가사는 비슬산의 바위 모습이 아름다운 구슬과 부처의 형상과 같다고 해서 옥 ‘瑜’와 절 ‘伽’자를 따서 건립했다고 전한다. 고려 말기의 문신 김지대金之岱(1190~1266)는 유가사에 대한 시를 남겼다.
‘절 하나 연하 속에 무사하게 서 있으니/ 어지러운 산 푸른 물방울 가을빛이 짙었네.// 구름 사이 끊어진 돌층계 6,7리요/ 하늘 끝 먼 멧부리는 천만 겹일세.// 차 마시고 솔 처마 쳐다보니 반달이 걸려 있고/ 독경 무르익는 풍탑에 쇠잔한 종소리 들리네.// 흐르는 냇물은 옥띠 띤 손을 웃겠지/ 씻고 싶어도 씻어지지 않는 게 세속의 먼지.’
고려시대 인물인 승려 일연, 도은 이숭인 등이 기록을 남겼듯이 비슬산이란 지명은 <삼국유사>부터 벌써 등장한다. 같은 책 제5 의해義解 ‘의상전교義湘傳敎(의상이 교를 전하다)’에서 ‘의상이 열 곳의 절에 교를 전하게 하니 태백산의 부석사, 원주의 비마라사, 가야산 해인사, 비슬산의 옥천사, 금정산의 범어사, 남악(지리산)의 화엄사 등이 그것이다’라고 나타난다. 권5 제8 피은편 ‘포산이성包山二聖(포산에 은거한 관기·도성 두 스님)-<삼국유사>에는 苞山과 包山 혼용해서 표기-’에서는 ‘신라 때 관기·도성 두 명의 뛰어난 스님이 있었는데, 어떠한 사람인지 알지 못했으나 포산(그 지역에서는 소슬산所瑟山이라 이른다)에 은거했다. 관기의 암자는 남쪽 고개였고, 도성은 북쪽 굴에 거처했다. 서로 10리쯤 떨어져 있었으나, 구름을 헤치고 달을 읊으며, 매일 친하게 지냈다’고 나온다.
이어 ‘두 스님의 터에 지어진 절’이란 제목으로 ‘지금 두 스님으로 그 터의 이름을 지었는데 그 자리가 모두 남아 있다. 도성의 바위는 높이가 수 장丈이며, 후세 사람이 굴 아래 절을 지었다. (중략) 산신의 이름은 정성천왕靜聖天王으로 일찍이 가섭불의 시대에 부처님의 당부를 받고, 중생을 구제하려는 염원이 있어 산 속에서 1천 인이 세상에 나오기를 기다려 남은 보를 받겠다고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두 스님의 이름은 관기와 도성이며, 관기가 머물던 암자는 지금 관기봉 남쪽에, 도성이 머물던 처소는 비슬산 정상 천왕봉 아래 있었다고 전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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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1,000m 고지에 드넓은 진달래 평원이 펼쳐져 4월과 5월에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사진 C영상미디어
<동국여지승람>권27 현풍현 산천조에 ‘비슬산, 포산으로도 쓴다: 琵瑟山 일명 苞山 在縣東十五里’라고 기록돼 있다.
옛 문헌에 나오는 지명을 종합하면 애초에 포산→소슬산→비슬산 등으로 변한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비슬산의 지명유래에 대해서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 있다. 비슬산이란 지명에 대해서 한 번 추적해 보자.
비슬이란 명칭은 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원래 이 지역에서 부르던 지명은 부처의 산인 ‘불산佛山’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비슬은 고대 인도 힌두의 신으로 불교에 수용된 비슈누를 한자로 음역한 비슬로毗瑟怒에서 유래했다. 부처의 산, 즉 불산을 한자로 음역한 비슬로를 비슬산 또는 소슬산으로 부르다가 비슬산으로 정착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포산은 불산의 중국식 발음이다. 따라서 중국식 발음을 그대로 음역해 표기하면서 포산이란 지명이 나오게 된 것 아닌가 해석된다. 따라서 비슬산이나 포산은 동일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한자로 음역하면서 중국식으로 했느냐, 우리식으로 바꿨느냐에 따라 포산과 비슬산으로 달리 나오는 것이다.
불산의 중국식 발음이 포산
그런데 음역한 한자를 우리말로 표기하면서 사용한 ‘비슬琵瑟’이란 한자를 다시 해석하면서 ‘산꼭대기 형상이 마치 신선이 거문고 타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비슬산이라 했다’는 내용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또 불산의 중국식 발음인 포산을 우리식 한자로 ‘무성하거나 덤불진 모습’으로 ‘포苞’를 해석하면서 수목이 덮여 있는 산이란 내용이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소슬산은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거문고가 있는 산’이란 개념이다. 이를 해석하면서 산 정상이 신선이 거문고 타는 형세이기 때문에 지명 유래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수목이 덮인 산이라든가, 신선이 거문고 타는 형상이라는 유래는 애초의 지명유래가 아니고 이차적으로 파생된 지명유래라고 볼 수 있다. 애초의 지명은 불교의 산, 즉 불산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정설로 판단된다. 나아가 비슬이란 지명이 붙은 산에는 많은 고찰이 있는 것으로 봐서 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슬산의 불교에 관한 기록은 여러 문헌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삼국유사>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편에 ‘(세종 5년 11월 29일) 비슬산 대견사大見寺의 석상 장륙관음에 땀이 흘렀다’고 나온다. 대견사는 해발 1,000m 고지에 있는 비슬산의 또 다른 봉우리(대견봉: 한때 정상으로 지칭) 아래 있는 사찰이다. 우뚝 솟은 절벽 위로 대견사가 있고, 그 뒤로 평원에 가까운 천상의 진달래 군락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대견사 석상이 한겨울에, 그것도 해발 1,000m 고지에서 땀을 흘렸다는 기록은 뭔가 범상치 않은 내용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파악할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현풍현 성황사에 예사롭지 않은 내용이 소개된다. ‘정성대왕의 신이 장마나 가뭄, 역질이 있을 때에 기도하면 응답이 있으므로 제사 지내려는 자들이 몰려들었다. 여기에 모인 종이와 베는 활인서活人署에 보내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비슬산에서 기우제와 기청제를 모두 지낸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내용이다. 범상치 않은 명산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연려실기술>에도 ‘비슬산 속에 솟아오르는 샘물과 천석泉石이 있다’고 나온다. <택리지>에는 ‘비파산에는 용천사가 있고, 경내에는 아름다운 샘물과 바위가 있다’고 비슷한 내용을 소개한다. 비파산이 오기인지 알 수 없다. 잠시 뒤 설명이 뒤따른다. 이 절의 우물이 장마가 지거나 가물 때도 수위가 한결 같아 천년 된 물고기가 산다는 전설이 전한다. 역시 범상치 않은 내용이다.
비파산이란 지명은 고지도에서 비슬산 못지않게 등장한다. 16세기(1531년)와 17세기 후반, 18세기에 제작된 <동람도>와 <동여비고>, <여지도>에는 비슬산으로, 18세기와 19세기 전후반에 제작된 <산경표>와 <해좌승람>에는 비파산으로 표기돼 있다. 또 19세기 제작된 <대동여지도>에는 비슬산으로 나온다. 이를 볼 때, 애초에는 포산으로 불렸고 조선 중기까지 일반적으로 비슬산으로 불리다가 18세기 들어서 점차 비파산과 혼용해서 사용하지 않았나 짐작된다. 비슬산을 비파산으로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여러 고지도에서 공통적으로 비파산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오기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비파산에 대한 유래는 전혀 알 수 없다. 1900년대 들어 일제가 조선 통치를 위해 만든 <조선지지자료>에도 비슬산으로 기록돼 있다.
18세기부터 비파산도 등장, 유래 알 수 없어
산 정상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힌 비석이 있다. ‘비슬산은 대구 달성군, 경북 청도군, 경남 창녕군에 걸쳐 위치한 산으로, 북 팔공 남 비슬로 지칭된다. 또한 북쪽 팔공산은 남자의 산, 남쪽 비슬산은 여성의 산으로 비유되며 최고봉은 천왕봉이다. 2014년 대견사 개산일에 비슬산 최고봉 지명이 대견봉에서 천왕봉으로 변경됐다. 이는 최고봉 지명에 대한 착오를 바로 잡은 것으로, 일부 유림들이 1997년 명확한 역사적 근거와 행정 절차를 결여하고 비슬산 최고봉에 대견봉으로 표지석을 설치하였으나 역사적 자료·지명전문가 및 교수들로 구성된 지명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천왕봉으로 변경하고 현재의 천왕봉 표지석을 새로 설치했다. 또한 주민들도 오랫동안 천왕봉 등으로 불러 왔다. 비슬산의 산신은 정성천왕으로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신다고 믿고 있으며, 정상부 능선 북쪽 200m 부근에 천왕샘도 있다.’
주요 등산로는 대구 달성군에서 접근하는 게 일반적이다. ▲가장 짧은 정상 접근 등산로는 서쪽 유가사. 유가사에서 정상 천왕봉까지 2.5km. 약 3시간 소요된다. ▲유가사에서 진달래 군락지가 있는 대견사까지는 3.4km. 3시간 30분가량 걸린다. 대견사에서 정상 천왕봉까지는 2.6km. 마지막 정상 부위만 조금 가파르고 나머지 구간은 거의 평지에 가깝다. 1시간 정도 걸린다. ▲남쪽 비슬산자연휴양림에서 대견사까지는 1.6km로 2시간 걸린다. 비슬산 입구 호텔아젤리아에서 대견사까지 전기버스 또는 투어버스를 5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전기버스는 편도 5,000원, 투어버스는 4,000원. ▲비슬산자연휴양림에서 대견사를 거쳐 정상 천왕봉을 지나 북쪽 앞산 방향으로 하산하면 총 12.7km로 하루 종일 잡아야 한다. 1986년 군립공원 지정.
'본 기사는 월간산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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