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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숲과 사찰 : 오대산 월정사] 1400년 전 자장스님 걷던 길 선재길로 되살아나다

월간산
  • 입력 2021.03.3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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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는 숲의 종교다. 1,700년의 역사 동안 수많은 수행자들이 삶과 죽음의 고해를 뛰어넘기 위해 정진해 온 공간이 산이요 숲이다. 한국의 사찰은 단순히 숲에 자리를 잡은 것에 그치지 않았다. 숲을 지켜내기 위해 수행 이상의 땀을 쏟아왔다. 승려에게 ‘산감’ 직책을 맡겨 도벌꾼을 쫓고 산불을 껐다. 일제강점기와 전란 등 혼란이 극에 달했던 때에도 ‘산감’ 스님들이 눈을 부릅뜨고 건재했던 사찰들은 도벌과 수탈과 화마로부터 비교적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숲과 사찰의 순기능적인 관계, 산을 지키는 사찰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연재를 시작한다. 
신라 고승 자장율사의 발자취가 서린 월정사 선재길.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숲길로 거듭났다.
신라 고승 자장율사의 발자취가 서린 월정사 선재길.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숲길로 거듭났다.

신라 고승 자장율사는 1,400년 전 오대산길을 걸었다. 중국의 오대산으로 불리는 청량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 후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기 위해 걸어가던 길이었다. 월정사 위편 오대산 기슭에 적멸보궁이 터를 잡은 이래, 세월은 시나브로 길을 지웠다. 잊혀진 옛길은 자장율사가 발자취를 남긴 지 1,400년 만에 다시 숨쉬기 시작했다. 지난 2003년 정념스님(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본사 월정사 주지)은 ‘오대산 천년 숲길’ 걷기대회를 열고 옛길을 살리기 위해 정진, 10년 만에 자장율사가 걷던 옛길은 선재길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화엄경의 선재동자 이야기에서 이름 지은 이 길은 화엄도량 월정사 계곡을 넘나들면서 상원사까지 이어진다. 그 옛날 진리에 목마른 구도의 길은 오늘날 휴지조각처럼 이리저리 뒹구는 현대인들에게 위안과 휴식을 주는 길로 거듭나 9km에 이르는 트레일이 되었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편한 9km 트레킹

선재길은 모든 구간이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구간이 평지에 가까울 정도로 경사가 완만한 데다 나무 데크길이 잘 조성돼 남녀노소 누구든 편하게 삼림욕하듯이 걸을 수 있다. 또한 월정사와 상원사 등 이름난 명찰과 옛 화전 터, 일제강점기 때 깊은 산속에서 베어 낸 나무를 운반하기 위해 깔았던 철길 흔적과 징검다리, 섶다리 등 걷는 동안 팍팍해진 다리의 피곤함을 잊게 해 주는 볼거리도 많다.

선재길은 월정사에서 동피골 구간과 동피골에서 상원사까지 두 코스로 나눈다. 월정사~동피골 구간은 대부분이 훌쩍 큰 신갈나무와 단풍나무 숲이며, 트레킹 내내 계곡이 따라 다녀 한여름에는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다. 군데군데 목재계단과 안내판, 쉼터가 잘 갖춰져 있고 울창한 숲길 사이에서 다양한 야생화도 볼 수 있다. 

동피골~상원사 구간에서 동피골에는 1960년대까지 이곳에 살았던 360여 가구의 흔적을 지금도 볼 수 있다. 멸종위기 식물원에는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멸종위기종 등 30여 종의 희귀식물을 복원해 놓았다. 동피골을 지나면 조릿대 숲길이 이어지고, 이곳을 지나면 길지 않은 비포장도로가 이어지다가 곧바로 다시 숲길이 나타난다. 빽빽한 전나무 숲길이 보이기 시작하면 상원사가 가까워진 것이다. 길은 비로봉, 두로봉 방향으로 계속 이어지지만 선재길은 상원사 입구 현판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월정사 기점 왕복 18km 길이 부담된다면 돌아올 때는 상원사에서 한 시간에 한 대꼴로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월정사, 문수보살신앙의 원점

태백산맥 중추에 자리잡은 오대산은 차령산맥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골짜기마다 아름드리 거목들이 한반도에서 가장 울창한 숲을 이루고, 산 전체가 부드러운 육산으로 더없이 넉넉한 품세를 보여 준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우리나라 명산 중에서 오대산이 가장 좋은 땅이요, 불법이 길이 번창할 곳이다”라고 했다. 

오대산에는 상원사, 부처의 정골(정수리)사리를 모신 중대 적멸보궁, 북대 미륵암, 동대 관음암, 남대 지장암 등의 유서 깊은 사찰과 암자가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아름드리 전나무숲이 사천왕처럼 도열해 있는 월정사는 오대산의 첫 번째 관문이다. 당나라에서 불법을 공부하고 돌아온 자장율사가 서기 643년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중국에서 오대산으로도 불린 청량산에서 수행하던 중 문수보살을 친견한다. 이때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를 전해 주고 신라로 돌아가 오대산을 찾아가라는 가르침을 준다. 귀국한 자장은 월정사를 창건하고 오대 중 중대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짓게 된다. 따라서 문수보살의 성산聖山으로, 산 전체가 불교성지가 되는 곳은 오대산이 남한에서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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