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사찰 : 산감, 숲 지킴이] 해인사 스님들은 왜 축구를 잘했을까?

입력 2021.03.31 10:19

도벌꾼과 산불 잡기 위해 체력단련…성철스님, 못마땅해 했지만 말리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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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월정사 선재길 곳곳에도 숲을 지켜온 스님들의 발자취가 서려있다
40여 년 전통의 해인사 축구는 가야산 산불을 끄는 데서 비롯됐다. 옛 해인사 스님들은 강원에 들어가기 전에 ‘산감’을 1년씩 맡으며 도벌꾼과 산불로부터 절 근처의 산을 지켜왔다. 나무 도둑들로부터 산과 절을 지키기 위해 스님들이 직접 보초를 서기도 했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나물이 올라오도록 일부러 산에 불을 놓기도 했다. 
영암映巖스님(1907~1987)이 주지로 있던 시절 어느 날 큰불이 오전 오후 두 차례 났는데 스님들은 불을 끄느라 체력이 바닥나 지쳐 나가떨어졌다. 해인사에 오기 전 월정사에서 축구를 해본 적이 있던 영암스님은 안 되겠다 싶어 스님들의 체력단련을 위해 축구를 도입했다. 도벌꾼들을 잡으려면 도벌꾼들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체력과 달리기 실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성철스님 등 큰스님들은 ‘절에서 무슨 축구냐’고 언짢아했지만 팔만대장경이 산불에 휩싸이는 것을 걱정해 말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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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숲을 지켜온 해인사 스님들은 축구를 하며 도벌과 산불에 맞설 체력을 길렀다. 지난 2012년 단오절 해인사 친선 축구 경기.
산을 지키는 파수꾼, 산감
최근에는 그 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예로부터 큰 사찰은 산림을 지키는 ‘산감山監’이라는 직책을 두고 스님들이 직접 남벌과 도벌과 산불을 막는 파수꾼 역할을 해왔다. 
1,700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불교는 숲의 종교다. 수많은 수행자들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생사를 건 정진을 하고 있는 수도와 생활의 공간이 산이요 숲이다. 불교 초기 경전에는 수행자를 ‘숲거주자’로 표현하고 있다. 석가모니는 사라나무 숲에서 태어나고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루었다. 또 두 그루의 살나무 아래에서 입적했다고 밝히고 있다. 불교를 숲의 종교라 부르는 이유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 통감부에서 최초로 실시한 나라 전역에 걸친 임적조사 결과 민간소유의 숲보다 사찰소유의 산림이 더 울창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총독부 임적조사’에 의하면 1943년 조선총독부 통계에 국유림, 사유림의 산림축적이 감소되었을 때 사찰림의 산림축적은 오히려 늘었다고 기록돼 있다. 
일제강점기의 목재 수탈과 6·25전쟁 와중에 전국의 웬만한 산은 민둥산으로 변해 갔지만 전통사찰 주변의 사찰림은 피해가 적었다. 숲을 지켜내려는 대중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잘 보존된 숲은 대부분 사찰림
현재 국립공원과 도립공원의 산림면적 중 사찰림이 차지하는 비율이 각각 8.3%와 15.5%에 이른다. 국립공원에는 사찰이 338곳 있다. 그중 전통사찰은 104곳으로 설악산 신흥사, 오대산 월정사, 속리산 법주사, 가야산 해인사, 지리산 화엄사와 쌍계사, 내장산 백양사, 경주 불국사, 제주 관음사 총 9개의 교구본사가 국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국립공원과 불교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사찰림의 개발과 보존, 관리와 운영의 주체를 둘러싼 갈등 또한 존재하고 있다. 
본 기사는 월간산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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