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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숲과 사찰 : 산감, 숲 지킴이] 해인사 스님들은 왜 축구를 잘했을까?

월간산
  • 입력 2021.03.3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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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벌꾼과 산불 잡기 위해 체력단련…성철스님, 못마땅해 했지만 말리진 않아

오대산 월정사 선재길 곳곳에도 숲을 지켜온 스님들의 발자취가 서려있다
오대산 월정사 선재길 곳곳에도 숲을 지켜온 스님들의 발자취가 서려있다

40여 년 전통의 해인사 축구는 가야산 산불을 끄는 데서 비롯됐다. 옛 해인사 스님들은 강원에 들어가기 전에 ‘산감’을 1년씩 맡으며 도벌꾼과 산불로부터 절 근처의 산을 지켜왔다. 나무 도둑들로부터 산과 절을 지키기 위해 스님들이 직접 보초를 서기도 했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나물이 올라오도록 일부러 산에 불을 놓기도 했다. 

영암映巖스님(1907~1987)이 주지로 있던 시절 어느 날 큰불이 오전 오후 두 차례 났는데 스님들은 불을 끄느라 체력이 바닥나 지쳐 나가떨어졌다. 해인사에 오기 전 월정사에서 축구를 해본 적이 있던 영암스님은 안 되겠다 싶어 스님들의 체력단련을 위해 축구를 도입했다. 도벌꾼들을 잡으려면 도벌꾼들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체력과 달리기 실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성철스님 등 큰스님들은 ‘절에서 무슨 축구냐’고 언짢아했지만 팔만대장경이 산불에 휩싸이는 것을 걱정해 말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가야산 숲을 지켜온 해인사 스님들은 축구를 하며 도벌과 산불에 맞설 체력을 길렀다. 지난 2012년 단오절 해인사 친선 축구 경기.
가야산 숲을 지켜온 해인사 스님들은 축구를 하며 도벌과 산불에 맞설 체력을 길렀다. 지난 2012년 단오절 해인사 친선 축구 경기.

산을 지키는 파수꾼, 산감

최근에는 그 수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예로부터 큰 사찰은 산림을 지키는 ‘산감山監’이라는 직책을 두고 스님들이 직접 남벌과 도벌과 산불을 막는 파수꾼 역할을 해왔다. 

1,700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불교는 숲의 종교다. 수많은 수행자들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생사를 건 정진을 하고 있는 수도와 생활의 공간이 산이요 숲이다. 불교 초기 경전에는 수행자를 ‘숲거주자’로 표현하고 있다. 석가모니는 사라나무 숲에서 태어나고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루었다. 또 두 그루의 살나무 아래에서 입적했다고 밝히고 있다. 불교를 숲의 종교라 부르는 이유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 통감부에서 최초로 실시한 나라 전역에 걸친 임적조사 결과 민간소유의 숲보다 사찰소유의 산림이 더 울창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총독부 임적조사’에 의하면 1943년 조선총독부 통계에 국유림, 사유림의 산림축적이 감소되었을 때 사찰림의 산림축적은 오히려 늘었다고 기록돼 있다. 

일제강점기의 목재 수탈과 6·25전쟁 와중에 전국의 웬만한 산은 민둥산으로 변해 갔지만 전통사찰 주변의 사찰림은 피해가 적었다. 숲을 지켜내려는 대중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잘 보존된 숲은 대부분 사찰림

현재 국립공원과 도립공원의 산림면적 중 사찰림이 차지하는 비율이 각각 8.3%와 15.5%에 이른다. 국립공원에는 사찰이 338곳 있다. 그중 전통사찰은 104곳으로 설악산 신흥사, 오대산 월정사, 속리산 법주사, 가야산 해인사, 지리산 화엄사와 쌍계사, 내장산 백양사, 경주 불국사, 제주 관음사 총 9개의 교구본사가 국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국립공원과 불교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사찰림의 개발과 보존, 관리와 운영의 주체를 둘러싼 갈등 또한 존재하고 있다. 

본 기사는 월간산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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