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Wall 마이산 오페라하우스] 꼬마 등반가, 뽀송뽀송 팔로 우락부락 바윗길 제압

입력 2021.04.07 10:20

클라이밍 선수 권영혜·김정민씨의 딸 권가은 양의 오페라하우스 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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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의 등반 꿈나무 권가은양. 장난치기 좋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발 디딜 곳을 찾는다.

전북 고창 선운산 속살바위와 투구바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암벽등반 대상지다. 최고의 스포츠클라이밍 루트들이 즐비하다. 특히 ‘새내기(5.11b)’는 암벽등반에 입문하면 누구나 한 번 쯤 등반을 경험해 봤거나, 완등을 목표로 두고 실내암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기도 한다.

새내기는 등반계에서 공인된 루트에 가깝다. ‘새내기’를 완등해야 ‘이제 등반에 입문했구나’하는 인정을 받는다. 새내기를 완등하지 못한 등반가는 언제 어디서나 마음속으로 루트를 그리고 다니기도 한다. 그러다 완등을 이루게 되면, 밑에서 고개를 들어 바라보던 이들은 박수갈채를 보내고, 완등한 사람은 하산해 아이스크림을 돌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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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씨의 오페라하우스 등반. 가은양에게는 포근한 엄마지만 벽에서는 강인한 클라이머다.

어찌 보면 새내기는 선운산 등반의 본격적인 정문이다. 이 첫 문을 열면 그 위로 수많은 고난이도 루트가 아가리를 벌리고 묵직하게 환영인사를 건넨다. 새내기 우측으로 11급 루트를 섭렵한 후 본격적으로 걸어가면 ‘ZOO(5.12a)’ 루트가 나타난다. 처음 접하는 등반가들은 12급루트의 환상에 사로잡힌다. 12급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이 루트에 도전하노라면 ‘새내기’와는 다른 더 큰 환영에 사로잡히곤 한다.

수많은 등반가들이 올랐고 지금도 완등하려 노력하고 있다. 사실 12급은 더 많은 훈련이 쌓여야 가능하다. 이렇듯 등반 실력 늘리는 것을 목표로 특정 루트를 계속 도전하는 것을 ‘프로젝트 등반’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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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도 등반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그만큼 열정을 가지고 뼈를 깎는 훈련과 절제 있는 생활을 하고 있음을 알려 주는 표상이다.

5.11b 이어 5.12a, 5.12c 연달아 완등!

부모님이 실내암장을 운영하면서 놀이터는 암장이 되었다. 암장의 홀드에 사탕이나 선물을 올려놓고 자연스럽게 홀드와 친해지며, 암장에서 뒹굴고 놀았던 권가은(9세)양이다. 권양은 지난해 5월 새내기(5.11b)를 완등한 데 이어 11월에는 ZOO(5.12a)를 완등했다. 올해 2월에는 마이산 오페라하우스의 ‘인忍(5.12c)’을 완등했다.

국내 최연소로 이 루트들을 완등했다. 앞으로 클라이밍계는 매우 밝아 보인다. 마이산 오페라하우스 벽에 다다르자 저 멀리 등반 중인 가은양이 보인다. 조용히 다가가서 지켜보았다. 엄마인 김정민씨가 귀띔해 준다. ‘깡통(5.11b)’을 온사이트 중이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등 고리에 로프를 걸치고 여유 있게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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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게 등반을 풀어가는 권가은양.

가은양은 지치지도 않은지 필자를 보자마자 방긋 웃으면서 카메라가 자신의 것보다 훨씬 크다며 신기해하며 이것저것 물어본다. 사진 찍히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면서 렌즈에 얼굴을 불쑥 들이민다. 그러다 새침데기처럼 보송보송한 털모자가 달린 우모복을 푹 눌러쓰고 앉아서 사탕을 맛있게 먹으며 엄마·아빠의 등반을 바라본다.

가은양의 부모인 권영혜씨와 김정민씨는 현재 남양주시에서 실내인공암장(M2클라이밍짐)을 운영 중이다. 특히 이 부부는 아이스클라이밍 국가대표로 국내외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대회에서 상위랭킹에 올라 있는 등반가다.

가은양이 ‘인(5.12c)’을 등반하기 위해 암벽화를 신는다. 암벽화 속 양말 위에 곰 모양 캐릭터가 큼지막하게 그려진 게 너무 귀엽다. 엄마가 지켜보고, 아이는 로프를 묶고 오르기 시작 한다. 오페라하우스는 벽 전체가 거대한 오버행이다. 벽은 누군가 마르지 않은 시멘트에 돌멩이를 던진 것마냥 어지럽게 자갈이 박혀 있다. 박혀 있던 돌덩이 일부가 떨어져 나가 일명 포켓 홀드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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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드로에 로프를 거는 순간. 등반가의 손에서 벽에 대한 집중력을 알 수 있다.

작은 손은 등반에 불리하기도 하지만, 홀드가 아닌 듯한 곳을 홀드로 이용하기에는 유리하다. 가은양은 오버행 루트임에도 불구하고 발에 체중을 분산해 차분하게 등반을 이어 간다.

완등 지점을 몇 미터 남겨 두고 매달려 있는 필자와 눈이 마주 친다. 고개를 돌리더니 환하게 웃고는 휙 올라간다. 잠시 허탈해진다. 가은양의 웃음은 과연 비웃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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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린 가은양의 초크백이 무척 커 보인다.
잠시 고뇌하며 몇 해 전 등반이 떠올랐다. 필자는 이 루트를 등반한 적 있다. ‘인忍’이라는 루트 이름처럼 혹독한 노력을 해야 했다. 그때 완등 지점을 몇 미터 남겨두고 팔뚝은 굳을 대로 굳어 있었다. 완력을 너무 많이 사용해 팔 근육에 펌핑이 와서 딱딱해진 것이다.

속칭 왕건이라고 부르는 큰 홀드를 잡아도 잡히질 않았다. 곧 추락할 것 같은 두려움에 숨이 터질 듯 했지만 홀드를 부여잡고, 홀로 필사의 사투를 벌였다. 당시 그 지점에서 추락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렇게 힘든 구간이었는데, 저렇게 쉽게 웃으며 오르는 가은양의 모습과 겹쳐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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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파인딩을 하고 있는 권가은양 가족.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는 행복한 순간이다.

그사이 가은양은 완등 지점에 로프를 걸었다. 손가락으로 브이를 필자에게 흔들며 내려온다. 참 기특하다. 밥 잘 먹고, 건강하게 등반도 공부도 잘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엄마아빠가 등반하는 사이 등반지는 놀이터가 된다. 돌멩이로 사람 얼굴, 동물 모양 만드는 데 여념이 없다. 등반 행위에 대해서 즐거워하는 것은 큰 축복이다. 등반을 마친 후에는 확보물인 퀵드로를 회수해야 하는데, 다행히 가은양은 그것마저도 좋아했다. 내년에는 확보(빌레이 Belay)를 가르치겠다고 한다.

본 기사는 월간산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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