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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경상도의 숨은 명산 : 선의산] 이 산의 氣 받으면 8정승 태어납니다

글·사진 황계복 부산산악연맹 자문위원
  • 입력 2021.04.23 09:49
  • 수정 2021.04.2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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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산의 묵은 산길에 진달래와 생강나무가 피운 꽃에서 봄의 향기가 전해진다.
선의산의 묵은 산길에 진달래와 생강나무가 피운 꽃에서 봄의 향기가 전해진다.

드디어 봄이 왔는가보다. 얼었던 땅에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벌과 나비는 꿀을 찾아 맴돈다. 하지만 세상이 뒤숭숭하니 사람들은 아직 봄을 느낄 겨를이 없는 것 같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두려운 이때 봄맞이에 나서는 일은 괜히 눈치 보인다. 그래도 힘들고 어려울 때면 스스럼없이 찾을 수 있는 곳이 넓고 푸른 자연의 품이 아니던가?

경북 경산시와 청도군의 경계를 이루는 선의산仙義山(757m)과 용각산龍角山을 찾았다. 두 산은 비슬지맥이 지나는 산릉의 북·남에 자리한다. 높지 않으나 산정에 서면 펼쳐지는 조망이 시원하다. 또 마을 뒷산처럼 낙엽 깔린 숲길이 부드럽고 호젓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4월이면 용각산의 진달래 군락지에는 화려한 꽃 잔치가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시원한 조망에 호젓한 산길, 거기에 꽃으로 수놓은 선의산과 용각산에 올라 마음껏 봄을 느껴보자.

 용각산 꼭대기엔 본래 있던 자연석에 ‘龍角山’이라 새긴 보기 드문 정상석이 있다.
용각산 꼭대기엔 본래 있던 자연석에 ‘龍角山’이라 새긴 보기 드문 정상석이 있다.

선의산과 용각산을 연결하는 산행은 주로 청도군 매전면 두곡리 마을회관을 기·종점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산행은 경산시 남천면 원리 시내버스정류장에서 시작한다. 이후 등잔산(446.7m)으로 올라 능선을 따라 도성사 갈림길~선의산 정상~말마리재~용각산(696.8m)~보리고개~안산(501.7m)~비슬지맥 갈림길~478.5m봉을 거쳐 산행 시작점인 원리 시내버스정류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이다. 산행 초입부와 마지막 부분의 등로가 약간 희미한 것을 제외하고는 큰 어려움은 없다. 산행 거리는 전체 약 15km이다.

원리 시내버스정류장에서 출입문에 매점이라 쓰인 원리새마을복지회관을 지나 남천변 도로를 따라 하도리 방향으로 간다. 민가를 지나 왼쪽 중앙고속국도 원리교 교각 아래로 통과해 등잔산 능선으로 올라야 한다. 산자락의 골짜기 따라 길은 있지만 등잔산 능선으로 오르는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일선 김씨 묘지에서 잡목을 헤치고 일단 능선으로 오른다. 올라선 능선에는 희미하나마 산길이 이어진다. 낙엽에 뒤덮여 폐허가 된 헬기장을 만난다. 수줍게 꽃봉오리를 펼친 진달래 너머로 하도저수지도 보인다.

선의산에서 비슬지맥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면 산릉 너머로 용각산이 훤칠하다.
선의산에서 비슬지맥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면 산릉 너머로 용각산이 훤칠하다.

높지 않지만 시원한 조망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보니 길은 묵었다. 403.4m봉의 삼각점도 낙엽에 묻혀 찾을 수 없다. 송전탑을 지나 참나무가 울창한 산릉에 노랗게 핀 생강나무 꽃이 앙증맞다. 진달래와 생강나무가 피운 꽃에서 봄의 향기가 전해진다. 하도리(소원사) 갈림길에는 선의산 정상 2.8km라는 이정표도 보인다. 등잔산은 특징 없는 일반적인 봉우리로 지형도를 잘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가 쉽다. 한동안 낙엽이 수북이 깔린 완만한 능선을 따라 오른다. 이정표가 서 있는 도성사(2.5km) 갈림목은 의자가 놓인 쉼터다. 도성사 쪽에서 선의산으로 오르는 산꾼이 많은지 산길은 확연하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폐헬기장을 만나고 바위 능선을 우회한다. 곧바로 바윗길에 놓인 철계단을 오르면 선의산 산정이다. 암봉인데도 널찍한 터에 2개의 정상석과 오래된 삼각점, 일제만행 쇠말뚝 뽑은 곳이라는 표석에 평상까지 있다.

용각산으로 가는 능선 길은 아름드리 소나무 숲으로 호젓해서 좋다.
용각산으로 가는 능선 길은 아름드리 소나무 숲으로 호젓해서 좋다.

선의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산현 산천조에 ‘현의 남쪽 21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남천南川이 발원해 황율천黃栗川으로 들어간다’는 기록이 있다. 경산 사람들이 이 산을 마암산이라 부른 흔적은 지금도 있다. 산정의 바위를 ‘맘산바위’, ‘망산바우’, ‘만세바우’라 부른다. 산의 이름이 바뀐 것은 일제강점기 첫 지형도 제작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풍수가들은 이 산의 기운을 받으면 여덟 정승이 태어난다고 한다. 주변 조망도 시원하다. 전망데크에 서면 북으로 경산시가지 뒤로 팔공산의 모습이 훤하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대왕산을 비롯해 큰골산, 학일산, 통내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문복산, 가지산, 운문산, 억산 등 영남알프스의 산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가야 할 남쪽 용각산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삼각점이 있는 안산은 아마도 하도리의 앞산이라는 뜻이 아닌가 싶다.
삼각점이 있는 안산은 아마도 하도리의 앞산이라는 뜻이 아닌가 싶다.

정상에서 철계단을 내려서면 이정표와 갈림길을 만난다. 비슬지맥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면 이어지는 산릉 너머로 용각산이 훤칠하다. 잠시 내리막길 안부에서 한 굽이 올라서면 712.7m봉. 두곡리 쪽에서 보면 정상보다 더 높아 보이는 마암산 제2봉으로 두곡리 사람들은 ‘고동골 말랭이’라 불렀다. 이제부터 점점 고도가 낮아지면서 숲길의 연속이다. 조립식 건물에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현수막이 걸린 약초재배지를 지난다. 지맥을 따라가는 산길은 오가는 발길이 잦아서인지 또렷하고 이정표도 많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은 주변 전망을 볼 수 없으나 솔가리가 깔려 푹신푹신하고 호젓해서 좋다. 헐벗은 나무들은 잎을 틔우기에 이르지만 길섶에는 초록의 새싹들이 봄을 재촉하고 있다. 김해 김씨 묘를 지나 낮은 산봉우리 두세 개를 넘으면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 있는 고갯길을 만난다. 청도 두곡리 쪽에서는 ‘말마리재’, 경산 하도리에서는 ‘하도재’라 불렀다. 모두 마을 이름에서 비롯된 고개로 한때는 하루에 소 1,000마리가 지나다닌다고 할 정도로 통행량이 많았다고 한다.

 산행이 끝날 즈음 포도밭 옆의 마을 길 너머로 산행 출발지 부근 과선교의 아치형 조형물이 보인다.
산행이 끝날 즈음 포도밭 옆의 마을 길 너머로 산행 출발지 부근 과선교의 아치형 조형물이 보인다.

용각산 운무는 청도팔경에 속해

서서히 경사가 가팔라지며 비슬지맥이 갈라지는 삼거리(이정표)에 닿는다. 나중에 남성현재 방향으로 진행해야 할 갈림길이라 눈여겨 봐둬야 한다. 경사진 산비탈의 진달래 군락지 사이로 오르면 마침내 용각산 정상이다. 꼭대기엔 본래 있던 자연석에 ‘龍角山’이라 새긴 보기 드문 정상석과 삼각점(동곡 301, 1998 복구), 이정표가 서 있다. 용각산 혹은 용산으로 불리는 이 산을 청도의 옛 지리지인 <오산지鰲山誌>에는 ‘갑령’이라 했다. ‘갑’은 24방위 중 갑 방향으로, ‘청도 읍치(군청)의 북동쪽에 있는 산’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해동지도海東地圖>에는 ‘갑산甲山’이라 표기돼 있다. 용각산은 자욱한 비안개가 내릴 때 운무에 덮인 광경이 마치 선계와 같아 ‘용각모우龍角暮雨’라 하여 청도팔경 중 하나다.

용각산 코밑에는 어른 키만큼 자란 진달래가 군락을 이룬다. 꽃이 만개하는 4월이면 산비탈을 벌겋게 물들일 것이다. 선의산에서는 보이지 않던 청도 읍내가 발아래에 있다. 그 뒤로 남산, 화악산, 철마산이 청도읍을 병풍처럼 둘렀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원정산, 대남바위산, 서쪽 비슬산, 화왕산, 관룡산 등 청도, 경산, 밀양, 울산, 창녕의 산이 끝없이 펼쳐진다. 발길을 돌려 다시 삼거리 갈림길에 다다른다. 진행 방향을 서쪽으로 꺾어 남성현재, 용암온천·상설투우장 쪽 비슬지맥을 따라간다.

선의산 정상 전망데크에 서면 주변 조망이 시원하다. 팔공산을 비롯해 영남알프스의 산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선의산 정상 전망데크에 서면 주변 조망이 시원하다. 팔공산을 비롯해 영남알프스의 산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완만하게 이어지던 산길은 임도와 만나는 큰고개에 이르러 잠시 전망이 열린다. 청도 쪽이 훤하게 보이는 큰고개는 말마리재와 연결되는 지름길이었다. 야산 같은 지맥을 따라 낙엽송 숲길을 지나면 이정표가 있는 용암온천·상설투우장 갈림길이다. 직진하면 지적 삼각점(NO, 045)을 거쳐, 준·희의 비슬지맥 표지판이 걸린 481.7m봉에 닿는다. 계속 능선 길로 이으면 이정표가 있는 송금리(1.5km) 갈림길에서 길은 넓어지고 뒤이어 사거리 갈림길인 보리고개에 이른다. 보리고개는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와 경산시 남천면 하도리를 잇는 옛길로 청도 금곡리의 옛 절 보리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한동안 낙엽 깔린 능선 길을 따르면 묵묘가 있는 489.9m봉을 넘어 삼각점(청도 317, 1982 재설)이 있는 안산(501.7m)에 닿는다. 안산은 아마도 하도리의 앞산이라는 뜻이 아닌가 싶다.

곧이어 만나는 콘크리트 헬기장이 있는 489.9m봉에서 비슬지맥과 헤어진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왼편으로 휘어지는 지맥 길은 뚜렷하지만 진행할 정면 능선은 길 찾기가 애매하다. 그렇지만 능선 따라 내려서면 희미하게 드러나는 산길에 영일 정씨 묘를 만난다. 

산행 막바지에 만나는 478.5m봉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틀어 내려서면 송전탑이 서 있다. 길은 없어지고 능선을 따라 대충 내려서면 반사경이 있는 도로에 닿는다. 

포도밭 옆의 마을 길 너머로 산행 출발지 부근 과선교의 아치형 조형물이 눈 안에 들어온다. 원리 시내버스정류장에 닿으며 산행을 마무리한다. 

선의산 등산지도 / ©동아지도 제공
선의산 등산지도 / ©동아지도 제공

산행길잡이

경산시 남천면 원리 시내버스정류장~ 등잔산(446.7m)~도성사 갈림길~선의산 정상~말마리재~용각산~보리고개~ 안산(501.7m)~비슬지맥 갈림길~478.5m봉~원리 시내버스정류장<6시간 30분 소요>

교통

경산역 광장에서 나와 왼쪽 서부1동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경산버스(053-801-8347) 남천1번 버스(06:20, 06:55, 07:44, 09:05, 10:10, 11:04, 12:52, 13:58, 15:06, 17:52, 18:39, 19:35, 20:35)를 타고 원리 정류장에 내린다.

숙식(지역번호 053)

경산역을 나와 직진해 남천에 놓인 경산교를 건너면 경산시의 번화가이다. 시외버스 터미널과 시청 주변에는 숙소와 식당이 많다. 특히 경산역에서 도보로 10여 분 거리의 남천변은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주변에 전망 좋은 카페가 있다. 인근에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상설 5일장 경산시장과 경산의 명물 돼지국밥 골목이 있다.

본 기사는 월간산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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