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N : 굴업도] 7성급 백패킹 명당인 줄 알았더니 '물티슈 왕국'

  • 글·사진 김강은 벽화가
  • 사진 양수열 기자
    입력 2021.04.05 10:08

    한국의 갈라파고스라던 굴업도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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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업도 야영 사이트 근방에는 배설물과 물티슈가 즐비하다.
    코로나 시대 종식이 지연될수록 등산, 캠핑, 백패킹 아웃도어 3대장이 열풍이다. 자연에서 호흡하는 것만이 이 지긋한 코로나 시대에 유일한 탈출구가 되어 주기 때문일까. 특히 자연 속에서 1박 이상 야영하는 백패킹 인구가 늘었다. 필요 장비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 하고, 좀 알려졌다 하는 야영지는 수십 동의 텐트들이 빽빽이 들어찬 실정이다.
    백패커들은 “대한민국에서 백패킹 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렇게 된 데는 유명한 야영지로 몰려들고 있기도 하지만, 산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 주를 이루는 백패킹 문화도 한 몫 한다. 지역사회 입장에서는 소비는 하지 않고 쓰레기를 배출하고 야영지를 훼손시키는 야영객들이 반갑지 않은 것이다. 야영금지 표지가 붙은 곳이 늘어가고, 갈 곳 잃은 백패커들이 한정적인 곳으로 몰리면서 자연은 훼손된다. 악순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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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머리언덕으로 향하는 초입부터 가득 찬 쓰레기봉투를 들고 오르는 클린하이커스. 앞에서부터 김예지, 이승령, 필자, 손지훈씨.
    Do it now! 누군가는 시작해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제는 백패킹도 클린시대. 그래서 이번엔 클린하이커들이 박배낭(야영 배낭)을 멨다. 백패킹 3대 성지 중 하나이자 한국의 갈라파고스라 알려진 굴업도로 출동했다. 굳이 남들이 많이 가는 성지를 고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만큼 흔적이 가득할 것이라 예상해서다. 
    4명의 클린하이커스가 이른 아침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에 모였다. 제약회사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는 손지훈씨는 이 날을 위해 부산에서 10년 만에 올라왔다. 등산과 백패킹 등 아웃도어 마니아이며 인천 주민인 김예지씨도 합류했다. 
    클린하이커스의 열혈 멤버 이승령씨는 백패킹이 처음이다. 모두 클린하이커스 활동을 하고 있지만 서로 얼굴은 모르는 상태. 초면인 사람들과 함께 섬 클린백패킹이라니! 생소함으로 가득한 여정에 모두 상기된 얼굴들이다.  
    이전에 굴업도를 방문한 적 있다는 예지씨는 “아무래도 개머리언덕 쪽에는 쓰레기가 없을 걸요? 많이 못 본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월간<山> ‘두잇나우’ 캠페인 기사를 처음으로 쓰게 된 필자는 긴장됐다. ‘쓰레기가 없으면 어쩌지? 쓰레기가 없으면 다행이지만 기사는 어떻게 쓰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별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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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업도 쓰레기로 정크아트 작업 중이다. 수풀 위에서 형상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굴업도의 두 가지 얼굴
    굴업도는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90km 떨어져 있는 작은 섬이다. 2009년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과 꼭 지켜야 할 자연유산 환경부 장관상을 받으며 알려졌다. 
    12가구밖에 살지 않는 탓에 인공 불빛이 적어 여름밤엔 은하수를 감상할 수 있고, 방목된 꽃사슴이 뛰는 섬이다.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어 아름답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이 작은 섬에 들기 위해서는 덕적도에서 배를 한 번 더 갈아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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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영 사이트에는 아직 채 식지 않아 따끈따끈한 핫팩들이 버려져 있었다.
    반나절을 이동해 굴업도에 도달하니 커다란 박배낭을 멘 백패커들이 함께 내린다. 민박에서 운영하는 트럭이 백패커들을 마을로 실어 나른다.
    클린하이커스의 여정은 선착장에서부터 시작된다. 해변 쓰레기들이 우리 눈을 사로잡았다. 스티로폼 조각, 장화, 구명조끼, 구두, 폐타이어, 각종 플라스틱 폐기물… 걷기 시작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각각 한 봉지씩 가득 찼다. 상상을 초월하는 쓰레기양에 승령씨가 혀를 내두른다.
    “태평양에 캘리포니아주만 한 쓰레기 섬이 있다는 거 아세요?”
    “우리가 배출한 쓰레기가 너무 많아, 결국엔 모두 바다로 흘러가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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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업도에서 주운 쓰레기로 만든 정크아트. 작품명은 ‘굴업도의 주인은 누구인가’이다.
    민가를 지나 굴업도 해수욕장 끝에서 산길이 시작됐다. 야영객 대부분 텐트를 치는 낭만 야영지, 개머리언덕으로 향하는 길이다. 가파른 오르막이 오래 지나지 않아 황금빛 초원이 펼쳐졌다. 길 따라 완만한 들판 한가운데를 가로지르자, 좌우로는 푸른 바다가 끝을 모르고 내달린다. 이따금씩 사슴 떼가 껑충 껑충 숲으로 뛰어갔다. 인간들의 놀이터가 아니라, 동물들의 생활 터이기도 한 곳이다. 
    굴업도가 아름다운 모습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전 야영객의 실수로 화재사고가 있었다. 화재의 영향인지 흙이 숯처럼 잿빛으로 변한 곳도 있었고, 야영할 만한 장소엔 어김없이 캠프파이어 자국과 불판, 핫팩, 칫솔 같은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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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를 주우며 굴업도 해변을 걷는 클린하이커스.
    예지씨가 불현듯 아슬아슬한 바위에 올라섰다. 좁은 바위틈에 정성껏 우겨 넣은 몸집만 한 매트를 발견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빼내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이럴 거면 왜 산에 와~ 집에 그냥 있지!”라고 얘기하는 그녀는 늘 웃는 얼굴이지만 지금은 일그러져 있었다. 
    가장 경악스러운 것은 따로 있었다. 개머리언덕이 가까워져 오자 나무가 우거진 곳에 물티슈가 즐비했다. 야영객들의 공공연한 ‘화장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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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린하이커 1명이 1박2일 동안 배출한 쓰레기를 기록했다.
    “멀리서는 깨끗해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쓰레기가 정말 많아서 씁쓸하네요.”
    클린하이커스는 굴업도의 민낯을 보았다. 성지가 될 만큼 아름답지만, 성지인 만큼 처참한 야누스의 두 얼굴을. 
    야외 활동 시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활동지침 ‘흔적을 남기지 않기Leave No Trace’에도 이 내용이 표기되어 있다. LNT를 철저히 실천하는 해외 장거리 하이커는 손수건을 배낭에 걸고 다니며 볼 일을 본 후 닦고 다시 걸어 말리며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장거리 하이킹 특성상, 쓰레기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인 것 같다.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의 뒤처리는 깨끗이 하는 백패커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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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상식한 야영객이 사용 후 버리고 간 불판.
    1시간을 걸어 개머리언덕 끝에 도달했다. 먼저 도착한 백패커들은 멀찍이 거리를 유지하며 야영지를 구축해 놓았다. 우리는 쓰레기부터 풀어 나열했다. 수거한 쓰레기는 약 11㎏. 종류는 100가지가 넘고 색깔도 다양한 것이 굴업도 쓰레기의 특징이다.
    오색 쓰레기를 모아 얼굴과 몸통을 채우고, 나뭇가지로 뿔을 달아 사슴을 형상화했다. 쓰레기  양이 많은 덕에 대형 사슴이 되었다.
    굴업도에서 주운 쓰레기를 모아 정크아트를 완성한 것.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클린하이커와 사슴이 대치했다. 작품명은 ‘굴업도의 주인은 누구인가?’이다. 이 길은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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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만 들여다봐도 크고 작은 쓰레기들이 널려 있는 굴업도 해변.
    올바른 백패킹 문화 우리 스스로 만들자
    핑크빛 일몰이 내려앉고, 클린하이커들은 각자 준비해 온 저녁 식사를 꺼내 들었다. 평소 백패킹과는 조금 다른 테이블 풍경이다. 개인 용기에 포장해 온 음식과 집 반찬들. 불을 사용하지 않는 ‘비화식’ 식단이다. 화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훌륭한 상이 차려졌다. 식탁 위에는 이야기꽃이 피었다. 
    “하늘 봐요. 별 떴어요!” 
    어린아이처럼 신나는 얼굴을 한 지훈씨는 도심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별을 보기 위해 백패킹을 한다고 한다. 우리는 왜 백패킹을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됐다. 먹는 것도 좋고 마시는 것도 좋지만, 이런 풍경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백패킹을 즐기는 방식은 제각기 다양하고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할 수 없지만 자연 속으로 찾아오는 이유는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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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 틈 사이에 숨겨서 버려진 매트를 수거하고 있는 클린하이커 예지씨.
    화기 사용이 제한된 곳에서는 비화식 백패킹하기, 내가 머무른 자리 흔적 남기지 않고 뒤처리 잘하기, 내가 텐트 친 곳 10m 반경의 쓰레기 줍기, 방문한 지역의 식당에서 한 끼 이상의 식사 사먹기, 쓰레기는 최대한 줄이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집중하기, 나온 쓰레기는 지정된 배출 장소가 있다면 배출하고 마땅치 않다면 집까지 가지고 와서 분리수거해 버리기를 생활화해야 백패킹 성지가 훼손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올바른 백패킹 문화는 백패커들이 만들어야 한다. 건강한 문화가 자리 잡아, 어디서든 백패커들을 반기는 날. 그 날이 오길 손꼽아 기다린다.
    본 기사는 월간산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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