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화판을 메고 도봉에 오르는 이유는?

  • 글 김석환
    입력 2021.04.08 10:20

    김석환 작가의 수묵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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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월사 경내를 화판을 들고 지나는 필자. 사진 오정욱.
    이 기사는 2005년부터 북한산 일원 곳곳을 직접 올라 눈에 담긴 전경을 수묵화로 그린 김석환 작가가 지난 2월 직접 쓴 도봉산 수묵산행기입니다. - 편집자
    집을 나섰다. 산에 올라가 그림을 그리려고 하니 챙길 것도 많고 짐은 늘 무겁다. 오늘은 EBS의 인기 다큐멘터리 ‘세계테마기행’에서 촬영 감독을 맡았던 오정욱 감독과 도봉산을 오른다. 오 감독은 북한산 칼바위능선에서 우연히 만나 연을 맺었다.
    날씨가 청명했다. 수도권 제2 순환로 아래를 지나 산자락으로 들어섰다. 덕천사 앞 이정표에 포대능선까지 2.9km로 쓰여 있었다. 잠시 후 원각사 앞을 지났다. 절이 아주 크고 정갈하게 가꾸어져 있었다. 거기서 도봉산 능선이 파란 하늘과 함께 보였다.
    급경사 길을 화판을 갖고 오르는 것이 힘들어 보였는지 오 감독이 “사진을 보고 그릴 수는 없느냐”고 묻는다. 이렇게 화구를 메고 산을 오르다보면 지나는 사람들로부터 종종 듣는 말이었다. 그래서 내가 현장 작업만을 고집하는 이유를 얘기했다.
    “산에 올라가 현장 작업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실경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감동을 그림에 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려는 풍광 앞에서 벅찬 대자연의 감동을 느끼면서 감응하는 감상을 필치의 힘을 실어 한 획, 한 획 그려가는 과정에서 실경의 감동이 화면에 담겨진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현장을 대하면서 느껴지는 감각과 감동은 어떠한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고 봅니다. 사진을 아무리 크게 한다 해도 광활한 실제 풍광의 감동을 제대로 담을 수 없어요. 사진에는 현장의 공기, 산의 향기가 아닌 단지 도형적 이미지만 담겨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망월사에 도착했다. ‘해탈문’을 들어서니 엄청나게 큰 바위 아래에 약수가 보였다. 요사채를 지나 계단을 올라서니 2층 모습의 건물에 ‘낙가보전’이리는 편액이 걸린 주불전이 커다랗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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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봉산 정상 봉우리를 그리고 있는 필자. 사진 오정욱.
    포대능선에서 바라본 신선과 자운 그려
    망월사 경내를 이리저리 빠져나간 다음 다시 산길을 올라 도봉산 주능선에 도착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화판을 펼치고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오 감독도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분다”고 했다. 산에서 그림을 그리자면 여러 가지 기후의 제약이 많다. 몇 해 전 ‘여성봉에서 본 도봉산과 북한산 전경’을 그릴 때에는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그릴 틈을 보느라 세 번이나 올라간 적도 있다. 산 아래에 바람이 없어도, 봉우리에 올라가면 바람이 세다.
    능선을 지나며 좌측을 보니 수락산, 불암산이 평야 너머로 훤히 바라보였다. 그 아래쪽으로 서울과 의정부 쪽 도시가 다 이어져 보였다. 날씨가 맑아서 정면 쪽으로 바라보이는 북한산 정상도 투명하게 조망되었다.
    포대능선에 도착했다. 전망대에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도봉산 정상 봉우리들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신선과 자운 등 정상 봉우리들이 잘 보이는 장소는 전망대 아래쪽에 있다.
    식사를 하고 종이를 화판에 고정시키려다 보니 바람이 심하게 불어 붙이기가 어려웠다. 오 감독이 옆에서 거들어준 뒤에야 가까스로 고정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어 먹물을 담은 그릇이 날아가지 않게 작은 돌로 눌러 놓았다. 악조건 속에서 그리면 마음의 각오가 더 단단해지게 된다. 종이가 커서 해 지기 전에 다 그리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산세의 기세를 생동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선을 힘차게 그려 넣었다.
    한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그림의 윤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아직 추운 날씨지만 그림을 그릴 때면 추위를 잊는다. 나를 잊지 말라는 듯 추위가 극에 달하면 화판을 잠시 옆에 세워 두고 제자리 달리기를 했다. 그럴 때면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그림에 대한 감상을 들려주곤 한다.
    한참을 화폭에 선 그어 넣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진다. 동녘에선 보름을 하루 넘긴 달이 떠오르고 있다. 하산을 서두른다. 바람 때문에 그림을 떼어 화판 안에 갈무리하기도 어려웠다. 도봉서원 터와 김수영 시비가 놓인 지점을 지나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봄기운이 슬슬 돋아나고 있다. 산에서도, 그리고 그림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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