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노가다’로 지구 살리기 6,000km 여정

입력 2021.04.06 10:36

사단법인 코리아 트레일 손성일 대표, 1년에 걸친 백패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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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 구간을 걸을 때, 노을이 아름다워 걸음을 멈추었다.
지금까지 2,600km를 걸었고, 앞으로 3,400km가 남았다. 극한 국내 도보여행에 도전하고 있는 손성일(51)씨 이야기다. 지난해 9월 16일 서울을 출발해 해남까지 내려선 뒤 부산까지 걸었고, 동해안을 따라 북상해 2021년 3월 중순 현재 강릉을 지나 서울로 걷고 있다. 일주일에 하루를 제외하곤 텐트 치고 야영하고 있으며, 모텔에서 잘 때도 어둠이 내린 뒤 숙소에 들어가 쌓인 빨래를 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걷기에 나선다고 한다.
고행에 가까운 걷기로 그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얼까. 배낭에 걸려 있는 깃발의 문구가 그의 마음을 대변한다. 적힌 내용은 ‘내일은 늦으리. 지금 당신의 실천이 지구를 구합니다. SAVE the EARTH’이다.
“사람들이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가졌으면 해요. 환경 안 좋고 심각하다는 건 80%가 아는데 실천을 안 하고 있습니다. 친환경을 실천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늘었으면 해서 걷고 있어요. 걷노라면 생각할 시간이 많거든요. 이렇게 걸어서 과연 지구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해요. 그래도 계속 걷는 건 해답을 못 찾았기 때문이죠. 저 스스로에게 화두를  던지고,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서 걷습니다.”
매일 걸은 건 아니다. 코로나가 심각했던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1월까지 쉬었다. 연로한 모친의 병세가 짙어 중간 중간 요양원을 방문해야 했고, 홀로 계신 부친(88)도 걱정되었다. 지금도 매달 마지막 한 주는 부천의 집으로 올라와 재정비를 하고, 부모님도 돌보고 있다.
기자와 그는 묘한 인연이 있다. 2006년 9월 16일 포천 광덕고개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한북정맥 취재산행을 밤이 되어서야 마치고, 민박집으로 가는 길에 큰 배낭을 메고 전국일주를 하는 그를 만났다. 2,200km를 걸었기에 그의 지친 행색은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의 사연을 듣고 의기투합해 숙소에서 함께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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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정도 아내와 함께 걸을 때, 짐이 많아 하이킹 트레일러를 이용했다.
원래 그는 등산을 즐기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유한킴벌리에서 5년간 일했고, 주류회사 배상면주가에서도 5년 동안 일하며 과장까지 진급했다. 손씨는 “우울증이 심해서 회사를 그만두고 몇 개월 혹은 1년 정도 걷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며 “오래도록 걷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순화된다”고 말한다. 2006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둘 때  길어야 1년쯤 걸릴 줄 알았던 걷기 여정이었으나,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걷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걷기길 전문가로 거듭나, 사단법인 ‘코리아 트레일’과 인터넷 걷기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이후 그는 ‘로드 플래너’가 되었다. 걷는 것을 넘어 걷기길을 만드는 기획자가 되었다. 계기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2006년 도보 전국일주를 마친 그는 스페인으로 가서 1,870km를 걸었다.
우리나라에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걷기길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한 그는 옛길을 살리고자 문헌을 조사해 가며 영남대로와 삼남대로를 답사했다. 그러나 대부분 아스팔트 대로이거나, 지나치게 숲이 우거져 걷기길로 탈바꿈시키기는 어려웠다.
옛길 복원보다는 새로운 걷기길을 만드는 것이 낫다고 여긴 그는 걷기 카페 회원들과 사단법인을 세워 장거리 걷기길인 삼남길을 개척했다. 서울 남대문에서 땅끝 해남에 이르는 걷기길로 10년의 노력 끝에 2018년 전 구간을 완성했다.
“우리끼리 ‘발 노가다’라고 불러요. 삼남길 685km를 만들기 위해 1만km를 걸었어요. 가급적 위험한 도로길은 제외했거든요. 걷기 좋은 길을 연결해야 하니, 발품을 팔아 조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이 길이 좋아도, 다음 연결되는 길도 좋아야 하기에, 뒷구간이 별로면 앞 조사를 뒤엎는 일이 허다했어요. 차에 치일 뻔한 적도 많아요. ‘팔자 좋은 놈’이라고 적대적으로 운전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이후 그는 걷기길 전문가로 인정받아 지자체와 정부기관 의뢰로 새로운 걷기길을 만들거나, 전국의 걷기길을 평가하는 역할을 해왔다. 결혼도 길 위에서 했다. 걷기 카페에서 만나 3년간 함께 걸으며 희노애락을 함께한 강주미씨와 자신이 만든 삼남길 경기구간 남태령길에서 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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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개를 피하다가 허리를 다쳐 버스정류장에 잠시 쉬고 있다.
그는 사단법인 코리아 트레일 대표이고, 아내가 유일한 직원이다.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지원을 받고 있으나 사단법인을 통한 그의 월급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손 대표는 “우리 부부의 한 달 지출이 50만 원이 넘지 않는다”며 “적게 벌면 적게 쓰면 된다”고 말한다.
그는 수도권까지 온 후 다시 서해안 해안선과 섬들을 일주하며 땅끝 해남으로 내려갈 계획이다. 이후 다시 삼남길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6,000km의 대장정을 올해 9월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지금이 15년 도보여행에서 가장 힘들어요. 해안가를 많이 걸었더니 바닷바람이 너무 세고, 해양 쓰레기가 많아서 그걸 바라보면 마음이 무거워져요. 백패킹 배낭도 무겁고 이제 50대가 되었으니 나이도 적지 않고, 마스크를 써야 하니 호흡이 불편해요. 너무 짐을 무겁게 지고 오랫동안 걸었더니 피로골절로 무릎도 좋은 편이 아니에요.”
악조건 투성이지만, 아직 포기할 생각이 없다. 단호하게 “계속 열정을 불어넣고 동기부여 해야 한다”며 “내가 좋아하는 자연을 후세에 물려주고 싶어서 책임감으로 숙제처럼 한다”고 얘기한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2006년의 광덕고개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물었다. 그는 “이 길을 택하지 않을 것”이라 망설임 없이 말하지만, “인생은 후진이 없다”며 눈을 반짝인다. 비록 “남은 건 해진 옷과 60켤레 넘는 떨어진 등산화지만 후회 없다”고 얘기하며 큰 웃음을 짓는다.
'본 기사는 월간산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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