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야영] 페루 비니쿤카… 오즈의 마법사가 사는 산을 무지개를 닮은 목동과 걷다

  • 글·사진 민미정 백패커
    입력 2021.04.20 09:35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뽑은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곳, 일곱 빛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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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 빛깔 머리칼을 참빗으로 차분히 빗어 내린 무지개빛 비니쿤카 산. 가이드 에드워드와 길 위에서 만난 페루 소년 아이시야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컴퓨터 전원을 켤 때마다 윈도 바탕화면에 뜨는 세계의 명소 중에서 언젠가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곳이 있었다. 무지개빛 드레스 자락처럼 우아하게 펼쳐진 페루의 비니쿤카Vinicunca(5,000m) 산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뽑은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100곳’ 중 하나로 남미 원주민 언어인 케추아Quechua어로 ‘일곱 색깔 산’이라는 뜻이다.
    세계여행 중 페루의 쿠스코Cusco에 도착하자마자 정보를 얻기 위해 여러 여행사에 들렀다. 백패킹으로 가고 싶었지만, 대중교통이 없어 여행상품을 이용하기로 했다. 비니쿤카는 보통 당일로 다녀오지만, 어느 여행사에서 페루에서 가장 높은 산인 네바도 아우상가테Nevado Ausangate와 비니쿤카가 하이루트high route로 연계된 1박2일 코스를 제안했다. 여행 중 만난 일본인 친구 마리와 가이드 에드워드와 함께 다음날 출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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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한 땅’ 아우상가테로 가는 길. 일본인 친구 마리와 가이드 에드워드가 독특한 침식 지형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이른 새벽 쿠스코를 출발했다. 남동쪽으로 굽이굽이 이어진 비포장도로를 2시간 정도 달리고 나서야 푼토 카레테라Punto de Carretera 마을에 도착했다. 유럽 여행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갔던 마리는 나와 함께 여행하기 위해 페루에 왔다. 이제 막 페루에 온 탓에 쿠스코(3,400m)에서도 고소 적응이 안 된 상태였지만, 투어 일정이 빠듯해서 곧장 합류했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한 그녀는 고산증 약을 먹고 바로 아우상가테를 향해 출발했다. 푸른 언덕 사이로 이어진 붉은 흙길 너머, 만년설로 뒤덮인 아우상가테 봉우리가 웅장하게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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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니쿤카 일대는 땅속의 철이 산화되어 붉은색을 띠는 곳이 많다. 그 길을 걷다 보면 파란 하늘과 대비를 이루는 아름다운 자연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언덕 하나만 넘으면 닿을 것 같았던 설산은 신기루처럼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나는 길을 벗어나 경치가 잘 보일 만한 언덕을 향해 올라갔다. 돌을 쌓아 만든 축사와 함께 집 한 채가 있었다. 귀여운 알파카(안데스산맥에 서식하는 낙타과의 포유동물)를 볼 수 있을까 해서 축사로 내달렸지만, 비어 있었다. 아쉬움을 남긴 채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마리와 보조를 맞추는 에드워드는 앞서가는 나에게 걷기 쉬운 방향을 알려 주었고, 3시간 만에 목적지인 아우상가테의 남쪽 캠프사이트에 도착했다.
    빙하를 가까이에서 보려면 빙하 호수까지 300m 정도 더 올라가야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마리는 캠프에서 기다리고, 에드워드와 함께 올라갔다. 호수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따라 가파른 경사를 올라서자 작은 호수가 나타났다. 보통 빙하호수는 빛에 반사되어 영롱한 에메랄드빛을 발하지만, 얄궂은 날씨는 호수는 물론 빙하까지 매력 없게 만들었다. 실망감을 안고, 캠프사이트로 돌아와 마리와 함께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길은 물줄기를 따라 언덕 아래쪽으로 이어졌다. 애타게 찾았던 알파카는 강 옆으로 펼쳐진 초원에서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다. 때마침 우리를 위로하듯 파란 하늘이 열리고, 밝은 햇살이 푸르른 초원 위에 뭉실뭉실 떠 있는 알파카를 비췄다. 인기척에 기다란 목을 돌려 뒤돌아보는 알파카의 작은 입은 풀을 씹느라 연신 오물거렸고, 그 귀여운 모습에 아우상가테에서의 아쉬움이 녹아내렸다.
    뽀송뽀송한 즐거움도 잠시 마을에 도착할 때쯤, 눈 깜빡할 사이에 먹구름이 모여들더니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빼곡하게 우박이 쏟아졌다. 놀란 우리는 무작정 달렸다. 먹구름을 벗어나 뒤돌아보니, 1m 거리를 두고 먹구름 안쪽은 하얗게 우박 조각으로 뒤덮여 있었다. 놀랍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오후에는 대체로 맑은 날씨가 이어졌다. 마리는 에드워드와  식당의 숙소에서 묵고, 나는 드넓은 초원에 텐트를 쳤다. 이따금 호기심에 다가오는 알파카와 무관심한 듯 풀을 뜯는 말 몇 필 덕분에 한적한 초원의 그림 같은 집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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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카와 말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푼토 카레테라에서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야영을 했다.
    어린 목동 아이시야스와의 만남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마리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동료 가이드에게 마리를 느긋한 당일 코스로 이끌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예정대로 나와 함께 알파인 루트로 움직였다. 시작부터 마을 뒷산을 치고 올라갔다. 그곳은 특이하게도 지각 변동으로 생긴 기암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가파르고 험한 된비알을 오르며 호흡이 가빠왔지만 맑은 날씨에 신비한 풍경을 감상하느라 컨디션도 기분도 좋았다. 한참 올라서자 넓은 초원이 펼쳐졌다. 두 채의 민가가 거리를 두고 자리하고 있었다. 돌로 울타리를 쌓은 축사는 비어 있었다.
    초원을 따라 언덕을 끼고 돌자 아침 햇살에 두드러지게 붉은 벌거숭이산이 나타났다. 초원 위에는 알파카 떼가 북적이고 있었다. 지나쳐 온 축사는 그다지 크지 않았는데 이 많은 알파카는 도대체 어디서 온 건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를 보고 놀란 새끼 알파카가 엉덩이만 내놓은 채 어미 알파카의 다리 사이로 파고드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한참을 구경했다. 알파카 무리 속에서 휘슬을 불며 알파카를 몰던 어린 목동을 발견하고 내가 손을 흔들자 그도 머뭇거리다 손을 흔들었다.
    초원의 막다른 비탈길을 올라 능선에 다다르자 어린 목동이 눈앞에 서 있었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앞서 와있는 건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에드워드는 알 수 없는 언어로 그와 대화했다. ‘아이시야스’라는 이름의 꼬마는 이곳 원주민인 케추아인이었다. 아이시야스는 한 번도 비니쿤카를 가보지 못했다며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고, 시종일관 수줍은 미소를 띤 꼬마는 나란히 걸음을 맞추며 나에게 케추아어를 가르쳐 줬다.
    돌멩이를 집어 들며 “루미”, 간간이 쌓인 눈을 가리키며 “리띠”, 푸석푸석 빠져드는 흙을 가리키며 “아끄꼬” 이 어려운 발음을 최대한 비슷하게 내뱉으려는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몇 번이고 교정해 주었다.
    내가 ‘몬타냐montaña(산)’를 묻자, 꼬마는 멋들어지게 혀를 굴리며 “세르르로”라고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별것도 아닌 것에 웃느라 힘든 줄 몰랐다. 그는 경사면으로 난 길이 애매하다 싶으면 앞서 달려 나가 길이 안전한지 확인하고는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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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카를 모는 목동 아이시야스. 우리는 생애 첫 비니쿤카 여행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환상적인 무지개 빛깔에 감탄
    레인보우 마운틴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아래 계곡에서 물줄기를 따라 당일 코스로 오는 관광객들이 즐비했다. 나는 든든한 두 가이드의 도움으로 어려움 없이 레인보우 마운틴에 도착했다. 
    실제로 발밑의 흙 색깔이 형형색색으로 이어져 있었다. 굵고 강한 붓에 물감을 묻혀 능선에서 부터 힘차게 내려긋되, 마지막까지 힘을 빼지 않고 눌러서 그린 유화마냥 선명한 느낌이었다. 아름다움보다는 멋지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전망대에 올라서자 산 위에 떠있던 무지개가 산에 내려앉아 물든 듯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고 신비했다. 에드워드는 빙하기에 오랜 시간 덮여 있던 눈이 녹아내리면서 지하에 있던 황토, 칼슘, 마그네슘 등 광물질들이 산화되어, 제각각 아름다운 무지갯빛을 띠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워낙 환상적인 풍경이라 마치 컴퓨터 모니터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이시야스도 신이 난 듯 입에서 알 수 없는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에드워드는 동료와 통화하더니, 곧 마리가 도착할 거라고 알려 주었다.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시야스와 나는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마리가 도착하자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이름을 소개해 줬고, 우리는 특유의 웃음을 던지며 친구가 되었다.
    이제 아이시야스와 헤어져야 했다. 우리는 마리가 올라온 길로 내려가고, 아이시야스는 집으로 가려면 우리가 온 길로 되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아이시야스는 우리와 함께 가고 싶어 했다. 그의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걱정됐지만, 에드워드가 괜찮다고 해서 동행했다. 우리는 걷고 마리는 말을 타고 보조를 맞췄다.
    신이 난 아이시야스는 앞으로 달려나가는가 싶더니 다시 되돌아와서는 질척거리는 길을 피해 마른 길로 인도해 주었다. 그리고 사라졌다 싶어 뒤를 돌아보면 쫄래쫄래 쫓아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길가에서 파는 알사탕을 사서 건넸다. 알사탕을 끼워 넣어 톡 튀어나온 까맣고 작은 볼이 정말 귀여웠다.
    덕분에 긴 하산길이 지루할 틈이 없었다. 관광객들에게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아이시야스는 상인들에게 뛰어가더니, 빵 한 개를 얻어와 반을 나눠주었다. 순수한 이 아이에게 대접하고 싶어 에드워드에게 “추가 요금을 낼 테니, 아이시야스와 함께 식사하고 싶다”고 부탁하자,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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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롭게 먹이를 뜯는 복슬복슬한 몸의 귀여운 알파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푼토 카레테라마을에 도착하자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아이시야스에게 오늘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다. 디카 사진을 신기해 하는 아이시야스에게 사진을 출력해 주고 싶었다. 에드워드가 아이시야스의 아빠에게 사진을 보내 주겠노라 약속했다. 식사를 마치고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아쉬움에 작별인사를 하는데, 부끄럼쟁이가 된 아이시야스는 고개를 숙인 채 눈을 피하기만 했다. 마을 뒤편으로 배웅을 나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어쩌면 어딘가에 숨어 우리가 되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자꾸 뒤돌아보았다. 우리가 아쉬워하는 걸 알았는지 에드워드는 장래 희망이 축구선수라는 아이시야스에게 축구공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나중에 에드워드는 아이시야스에게 축구공을 사주고 인증샷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려 주었다. 지금도 비니쿤카 사진을 꺼내 볼 때마다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무지개빛 풍경에 녹아든 아름다운 추억에 흐뭇해진다. 
    본 기사는 월간산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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