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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나홀로 세계일주] 고독할 틈을 주지 않는 '아드레날린 충전소'

글·사진 김영미 여행작가
  • 입력 2021.04.2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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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세계일주 콜롬비아 산힐
‘백년 동안의 고독’의 나라에서 짜릿한 레포츠에 빠지다

장엄하게 황토빛으로 펼쳐진 치카모차협곡 위를 한 마리 새가 되어 날고 있는 패러글라이더.
장엄하게 황토빛으로 펼쳐진 치카모차협곡 위를 한 마리 새가 되어 날고 있는 패러글라이더.

콜롬비아 산탄데르Santander의 작은 콜로니얼 도시인 산힐San Gil은 콜롬비아에서 어드벤처 액티비티로 가장 유명한 도시이다. 패러글라이딩, 래프팅, 번지점프, 동굴탐험, 캐녀닝 등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고 가격도 무척 저렴하다. 특히 1,525m의 치카모차협곡Cañon del Chicamocha의 패러글라이딩은 남미에서 가장 짜릿한 모험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덕분에 이 자그마한 도시는 모험심 가득한 여행객들로 언제나 북적거린다.

산으로 둘러싸인 내륙 도시 산힐로 들어서면 열대의 뜨거운 공기는 한결 시원해지고 햇살도 부드러워진다. 아웃도어의 성지이지만 폰세Fonce 강변을 따라 늘어서 있는 독특한 모양의 케이폭 나무가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게 한다. 다양하고 맛있는 먹거리와 저렴한 물가, 근교의 콜로니얼 도시인 바리차라Barichara와 구아네Guane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이다.

남미의 다른 성당과는 달리 색상도 디자인도 무척 단순해서 더 아름다운 사암으로 건축된 바리차라 대성당.
남미의 다른 성당과는 달리 색상도 디자인도 무척 단순해서 더 아름다운 사암으로 건축된 바리차라 대성당.

활력이 넘치는 산힐의 중앙광장

대부분의 남미 도시처럼 산힐의 메르카도Mercado(시장)는 각종 열대과일이 차고 넘친다.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까지 저렴하니 여행자에겐 더없이 좋은 곳이다. 각종 야채와 과일, 육류를 팔기도 하지만 푸드코트에서 다양한 음식을 판매한다. 식사를 하고 싶을 땐 메르카도에 가서 직접 눈으로 음식을 구경하고 선택할 수 있다. 기본 식사메뉴부터 디저트, 음료 등 후식까지 원스톱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 특히 산힐에서만 마실 수 있는 쉐이크와 비슷한 음료인 바티도스Batidos는 한낮의 갈증을 식히기에는 더 없이 좋은 음료이다.

폭염이 쏟아지는 한낮에는 에어컨이 가동되는 숙소에서 쉬다가 해가 조금 기울어지는 시간이면 산타크루즈 성당이 있는 중앙광장으로 나간다. 중앙광장의 이름은 ‘자유공원Parque La Libertad’. 산힐에서 가장 흔한 만남의 장소이자 밤 생활의 중심지이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한다. 카페와 식당뿐 아니라 옥수수와 각종 꼬치를 굽는 노점까지 즐비하다.

각종 열대과일이 차고 넘치는 산힐 메르카도.
각종 열대과일이 차고 넘치는 산힐 메르카도.

쉼표를 찍고픈 마을, 바리차라

산힐에서 버스로 40여 분 걸려 도착한 바리차라. 백색 도시인 비야 데 레이바Villa de Leyva보다는 조금 화려하지만 규모는 더 작은 마을이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마을 모습을 25년에 걸친 복구 작업을 통해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해 보존하고 있다. 대부분 남미 도시의 중앙광장에는 대성당이 자리한다. 바리차라의 중앙광장에도 단순한 황토색의 외벽을 가진 성당이 있다. 18세기에 사암으로 만들어졌다는 대성당, Catedral de la Inmaculada Concepción이다.  특이하게 외벽은 타일 패턴, 성당 안으로 들어서는 중앙문은 식물의 잎을 연상하는 디자인, 안으로 들어서면 나무로 이어진 지붕장식 등 여느 남미에서 보았던 성당과는 그 모습이 다르다.

마침 유아세례를 받은 가족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는 곁을 지나다가 자청해서 “제가 찍어드릴까요?”했더니 흔쾌히 수락한다. 찍어 준 사진을 보며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으니 행복은 더 커진다. 이런 소소한 행복들이 여행의 또 다른 기쁨이다.

중앙광장의 잔디밭은 떨어진 꽃잎이 가득하다. 한켠에는 분수대가 있고 돌로 만든 의자에는 여행객으로 보이는 커플이 음악을 연주한다. 평화롭기 그지없다.

골목은 정막이 흐를 만큼 고요하고 주인장의 정성이 가득한 아름다운 집, 하얀 담장 위를 타고 오르는 꽃, 창문과 대문의 강한 색감, 길가에 편안하게 누워 있는 개와 고양이, 전형적인 콜로니얼 도시에서 마주하는 돌길, 어쩌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보내 주는 다정한 몸짓 등은 여행자의 긴장감을 풀어 주기에 충분하다.

자그마한 식당의 외벽에 포크, 나이프, 수저가 들어가 있는 작은 간판이 달려 있다. 스페인어를 몰라도 한눈에 이곳이 식당임을 알 수 있다. 여행자들을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음식은 맛보지 못했지만 ‘분명 내가 좋아하는 담백하고 재료의 본질을 최대한 살린 요리일거야’라고 생각하며 힐긋 식당 안을 들여다본다. 식사시간이 아니라 텅 빈 식당 안도 식당 간판만큼 단순하다.

낭만 가득한 작은 도시의 가게들도 예술적 감성이 넘쳐난다. 레스토랑이나 상점들의 간판도 마을의 이미지와 잘 어우러진다. 돌출간판은 찾아볼 수 없다. 누군가 도시의 디자인을 관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언덕을 따라 이어진 골목길,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 오늘따라 유독 맑은 남미의 파란 하늘이 멋지게 어우러진다. 가끔 부는 바람결에 햇살이 함께한다. 바라만 보아도 멋진 풍광이다. 언덕 위에 오르니 쾌청한 날씨가 산책하기엔 그지없이 좋다.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바리차라의 골목길에서 느끼는 마음의 여유가 충분한 여행의 목적이 되는 순간이다. 우리네 북촌 한옥마을도 이렇게 한가하고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바리차라의 성당 뒤 언덕에서 시작되어 산자락의 초원과 숲길을 거쳐 구아네까지 산자락으로 연결된 왕의 길.
바리차라의 성당 뒤 언덕에서 시작되어 산자락의 초원과 숲길을 거쳐 구아네까지 산자락으로 연결된 왕의 길.

바리차라에서 구아네까지 왕의 길을 걷다

‘왕의 길’이라 부르는 카미노 레알Camino Real은 바리차라에서 구아네까지 산자락으로 연결된 돌길이다. 엔지니어, 상인, 그리고 지주였던 독일인 렌게르케lengerke가 1864년에 만든 이 길은 도로의 개통으로 사라질 뻔했다가 1996년에 복원되었다. 이제는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길이 되었다. 버스로는 30분 정도, 걸어서는 넉넉하게 3시간 정도 걸린다. 거리는 약 10km이다.

바리차라의 대성당에서 언덕으로 오르니 높은 산자락에 만들어진 왕의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초원과 숲길에 구불구불 이어져 있는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되니 구태여 지도를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더욱 마음이 편해진다. 현무암 돌담엔 이끼가 가득하다. 지나온 세월의 길이를 짐작하게 한다. 조심스레 발을 옮긴다. 돌길은 생각보다 거칠어서 등산화나 트레킹화를 신고 걷는 것이 좋다. 특히 비가 많이 오면 많이 미끄러울 것 같다.

걷다가 파란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드문드문 눈에 띄는 집 구경하고 쉬엄쉬엄 길을 간다. 어쩌다 나와 같은 여행객들을 한두 사람 마주치거나 소나 말 등을 만날 뿐인 아주 한적한 시골길이다. 너무나 고요하다. 돌담을 끼고 걷는 길에서 마주하는 모든 풍경이 사랑스럽다. 가끔 반갑다고 인사하는 새들의 지저귐, 파란 하늘에 몽실몽실 떠 있는 하얀 구름, 보이는 풍경 모두 한 장의 그림엽서처럼 느껴진다.

돌을 하나씩 밟고 걷다 보니 어느새 바리차라보다 더 작은 구아네마을에 도착한다. 구아네는 마을 끝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아주 작은 마을이다. 걸어서 10분이면 반대쪽 끝까지 갈 수 있을 정도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겠지. “그냥 시골길, 돌담길인데 멀고 먼 남미까지 와서 왜 평범한 시골길을 걷는 거야?” 나는 사람들의 삶속으로 들어가는 이런 길이 좋다. 조용한 시골에서 청량한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며 한껏 여유롭게 천천히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이런 길이 참 좋다.

산힐로 돌아가는 버스 출발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아 있다. 조그마한 티엔다tienda(상점)로 들어선다. 알록달록 아이들이 좋아할 색상의 아이스크림이 냉장고에 가득하다. 내가 좋아하는 민트 아이스크림을 하나 산다. 성당 앞 공원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마을 사람들 구경한다. 마을 사람들은 나를 구경하고. 할 일 없는 한량처럼 앉아서 보내는 시간. “아~ 너무 좋다. 정말 행복해”라는 말 외엔 다른 어떤 말도 필요 없는 순간이다.

현무암 돌담을 따라 만들어진 왕의 길은 어쩌다 나와 같은 여행객들을 한두 사람 마주치거나 소나 말 등을 만날 뿐인 아주 한적한 시골길이다.
현무암 돌담을 따라 만들어진 왕의 길은 어쩌다 나와 같은 여행객들을 한두 사람 마주치거나 소나 말 등을 만날 뿐인 아주 한적한 시골길이다.

치카모차협곡, 아찔한 패러글라이딩

패러글라이딩은 전문지식이 없어도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다. 자격증을 가진 전문 비행사가 뒤에서 조종해 주므로 나는 단지 앉아서 즐기기만 하면 된다.

남미에서 가장 저렴하고 가장 멋진 조망을 즐길 수 있다는 산힐의 패러글라이딩. 쿠리티Curiti 담배농장과 치카모차협곡에서 체험이 가능하다. 쿠리티 농장은 조금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코스인데 치카모차협곡은 깊이가 1,524m나 돼 짜릿한 모험을 즐기는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코스로 기본체력과 담력이 필요하다. 패러글라이딩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은 네팔의 포카라. 호수 위를 새처럼 날던 그때의 그 느낌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어서 산힐에 도착하는 날 패러글라이딩 투어를 신청했다.

치카모차협곡 위의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은 자동차마저 힘겨워 보인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아래는 움팔라강Río Umpala의 거센 물살이 넘실거리고 계곡에 거의 수직으로 세워진 거대한 협곡에서는 엄청난 바람이 휘몰아친다. 그 협곡 위에는 알록달록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패러글라이더들이 있다.

활공장에 도착해서 장비를 갖추어 입고 주의사항을 듣는 내내 긴장감이 온 몸을 감싼다. 포카라에선 이렇게까지 긴장하지 않았었는데? 호수보다 협곡이 더 무서운 걸까? 드디어 차례가 되었고 나의 낙하산은 알록달록 무지갯빛이다.

비행사가 뛰어가는 속도에 함께 발을 맞춰 뛰니 자연스럽게 하늘 위로 두둥실 떠오른다. 땅에서 발이 떨어지는 순간은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묘한 느낌이 든다. 그 느낌도 찰나. 어느새 점점 더 높은 하늘 위로 오르다가 협곡 쪽으로 가까이 다가서니 긴장감이 팽배해진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협곡은 더욱 거대하고, 휘몰아치는 강물의 물살이 나를 덮칠 것만 같다. 5분 정도 지나니 무서움 반, 재미 반이었던 내 마음에서 무서움은 어느 사이 사라지고 아이처럼 즐거워한다. 즐기는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가 가고 싶은 방향을 비행사에게 요청까지 한다.

거대한 콘도르Condor가 내 곁을 쌩하고 날아간다. 새처럼 날며 비행의 재미에 푹 빠져 있는데 뜬금없이 “당신 즐길 각오가 되어있나요”고 묻는다. “OK”라는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비행사는 패러글라이딩을 360도로 빙글빙글 돌린다. 처음에는 신나고 재미있었는데 너무 과했는지 멀미증세가 살짝 밀려든다. 평생 두 번 올 기회가 아니어서 두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죽을힘을 다해 참으면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그때 찍은 사진은 지금 보아도 짜릿함이 전달된다. 장엄하게 황토빛으로 펼쳐진 치카모차협곡 위를 다시 날고픈데 그날은 언제일까? 어떤 곳에서의 패러글라이딩보다 더 스릴 있고 짜릿한 시간이었다.

붉은 기와지붕, 돌을 깔아 놓은 좁은 골목, 하얀 벽 등 영화의 세트장을 연상케 하는 식민지 풍의 매력적인 건축물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바리차라.
붉은 기와지붕, 돌을 깔아 놓은 좁은 골목, 하얀 벽 등 영화의 세트장을 연상케 하는 식민지 풍의 매력적인 건축물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바리차라.

폰세강과 데이트

하루를 온전히 산힐을 가로지르는 폰세강에서 보내는 날이다. 오전에는 폰세강에서 래프팅을 하고 오후에는 가지네랄공원을 산책할 예정이다. 폰세강의 래프팅은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도전하고 즐길 수 있다. 짜릿한 모험을 즐기고 싶다면 수아레스강이나 치카모차강을 선택해야 하지만 전날 치카모차협곡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즐겼으니 오늘은 피로를 풀면서 조금 편하게 즐기고 싶어서 난이도가 가장 쉬운 폰세강을 선택했다.

폰세강의 상류지역에 도착해서 두 팀으로 나누고 성별과 몸무게, 나이 등을 고려해 스태프들이 자리를 배정한다. 구명조끼를 입은 후 주의사항과 간단하게 교육이 진행되었다. 이미 남미에서 몇 번의 래프팅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흐르는 강물에서 하는 레포츠라 언제나 긴장하게 된다. 강의 물살은 생각보다 빠르지 않아서 보트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긴장감이 해제된다. 가끔 마주하는 격한 강물의 물살조차도 롤러코스터 타듯이 즐긴다. 마지막 코스에선 보트에서 내려와 강물 위의 낙엽처럼  둥둥 떠내려가며 쉼의 시간을 즐긴다. 물살이 세지 않고 난이도가 높지 않아 더욱 편안하게 즐긴 래프팅이다.

오후엔 래프팅을 즐겼던 폰세강이 옆으로 흐르는 가지네랄Gallineral공원으로 향했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서 공원으로 놀러온 가족들이 꽤 있다. 폰세강을 따라서 산책할 수 있는 길도 꽤 길게 이어져 있다. 강바람이 불고 나무 그늘이 많아서 휴식을 취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이곳엔 콜롬비아 북부에만 서식하고 있는 이끼로 가득 덮이고 회색 수염을 길게 늘어트린 케이폭이라는 나무들이 폰세강변을 따라 늘어서 있다. 조용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어슬렁어슬렁 산책로를 걷는다. 뜨거운 태양조차 수염나무들의 그늘 아래서는 무기력해진다.

콜롬비아 하면 마약과 게릴라를 연상하지만 숨겨진 보석 같은 아름다운 도시들이 많다. 모험을 사랑하고 자연을 즐길 줄 아는 여행자들의 천국인 산힐. 액티비티를 즐기지 않고 예쁘고 정겨운 시골 동네를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랑스런 도시였다.

'본 기사는 월간산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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