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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독자기고] “산불은 헬기가 끄는 것이 아닙니다”

고기연 산림항공본부장
  • 입력 2021.05.26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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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산림항공관리소를 방문한 고기연 본부장. 사진 산림청
양산산림항공관리소를 방문한 고기연 본부장. 사진 산림청

산불 시즌이다. 매년 봄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큰 산불이 발생하면 지역에 엄청난 피해를 남기고 숲 생태계에 오랫동안 영향을 준다.

지난해 4월 고성과 속초, 강릉, 동해 등 동해안 4개 시·군을 포함해 인제까지 휩쓴 대형산불은 초속 30m의 강한 바람이 야심한 시각을 틈타 삽시간에 2,832ha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무려 축구장 3,960여 개에 달하는 면적이다. 피해지를 복구하는 나무 심기 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식생과 경관이 예전 모습을 되찾는 데 20여 년이 필요하고, 예전의 야생동물들이 되돌아오는 데 3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필자는 26년 동안 산림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겠지만, 산림공무원에게는 산불과 씨름해야 하는 전쟁의 계절이다.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불 중 봄철에 전체 67%가 발생했다는 것이 산림청 통계다. 특히 과거 엄청난 재산과 인명피해를 준 100ha 이상의 대형산불이 3, 4월에 집중되었다.

지난 2월 초 강원도 원주에 있는 산림항공본부로 이동한 필자는 이러한 봄철 산불 위기상황을 항공차원에서 미리 대비하고 초동 진화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주요한 임무다. 헬기는 산불현장에서 물을 뿌리거나 소화약제를 살포해 산불의 3요소인 연료, 열熱, 산소 중 산소를 매우 효과적으로 제압한다.

본부는 48대의 중형, 대형, 초대형 산불진화헬기의 가동상태를 대형산불 위험시기에 맞추어 최적의 수준으로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다양한 헬기들의 정비수준을 고도화해 혹시 있을지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외에도 최정예 지상진화 능력을 갖춘 공중진화대를 산불현장 최일선에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도 산림항공본부의 임무이다.

지상진화 인력과 헬기의 적절한 조화가 답

거창하게 항공본부의 임무를 나열했지만, 사실 산불은 헬기가 끄는 것이 아니다. 항공본부장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현장에서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미디어 속 산불 관련 뉴스 화면에선 주로 바쁘게 날아다니며 물폭탄을 퍼붓는 헬기의 모습이 멋있게 잡히지만, 그 아래, 지상의 진화인력이야말로 완전한 산불 진화를 위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군사 작전에서 보병이 전투를 마무리하듯, 산불도 지상진화대가 마무리해야 완전한 진화를 이룰 수 있다. 아무리 헬기를 많이 투입한다 해도 완전 진화에는 어려움이 있다. 속된 말로 홍수가 날 정도로 물을 퍼붓지 않으면 불길을 잡기 어렵다.

헬기 운용도 효율적,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 무한정으로 고비용 자원인 헬기를 활용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야간에는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다. 그리고 바람이 심한 경우에는 이륙을 하지 못하기에 산불이 발생한다고 해도 의존할 헬기는 없다.

결국 헬기와 지상진화 인력의 적절한 조화만이 해답이다. 한참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3월 말과 4월 초에 전국에서 산불이 50여 건 발생하고, 동해안 지역에 여러 건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헬기를 요구하는 곳에 원하는 대수만큼 보낼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대답은 자명하다. 민가와 시설을 위협하는 산불에 대응하기 위해 하늘만 바라볼 수 없다.

현재 여건에서 산불 진화 헬기의 역할은 부각될 수밖에 없다. 넓은 면적의 산불을 진화할 수 있고, 진화 헬기는 발생 초기에 빠르게 험준한 산림지역에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요 시설이나 민가 보호를 위해 산불의 핵심지역을 집중 타격하는 것이 현재의 방법이다.

산불 극성기가 점차 다가오고 있다. 산불발생은 감소시킬 수 있어도 완벽하게 피할 수 없다. 지구온난화 추세에 따라 기상고온으로 발생여건은 악화하고 있다. 어차피 맞닥트릴 산불이라면 산불 진화 주체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제기구인 국제식량농업기구에서는 스마트 산림재해관리메커니즘 구축을 권고하고 있다.

산림청에서도 ‘K-산불방지대책’ 추진과 함께 ‘한국형 스마트산림재해관리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로 산림항공본부는 산불진화의 특성을 감안하면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것임을 다짐하면서 봄을 맞이하고자 한다.

'본 기사는 월간산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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