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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최선웅의 고지도] 영국 최초의 세계지도 ‘앵글로색슨 마파 문디’

글 최선웅 한국지도학회 고문
  • 입력 2021.05.2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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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초에 제작된 앵글로색슨 마파 문디(출처: The British Library).
11세기 초에 제작된 앵글로색슨 마파 문디(출처: The British Library).

영국 본토에 해당하는 브리튼Britain섬은 기원전 6세기경 북부 유럽의 켈트족Celts이 침입하면서 처음 정착했고, 기원전 55년에는 로마 제국의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침입한 이후 서기 410년까지 로마 제국에 의해 지배되었다. 449년에는 게르만족에 속하는 앵글로색슨족Angles-Saxons이 침입해 켈트족을 몰아내고 7왕국을 건설했다. 그때부터 ‘앵글로 인의 땅’ 이라는 뜻의 ‘잉글랜드’라고 불리게 되었다. 앵글로색슨족이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English의 시초가 되었는데, 당시의 영어는 ‘고대 영어Old English’로, 게르만계의 독일어에 가까웠다.

828년 7왕국의 하나인 웨섹스Wessex의 에그버트Egbert왕이 잉글랜드 지방에 통일 왕국을 세우지만, 830년경부터는 덴마크에 거주하던 노르만족(바이킹) 일파인 데인인Danes의 침입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알프레드Alfred 대왕 때 바이킹을 복종시키고, 그의 증손자 에드가Edgar가 973년 통일된 잉글랜드의 왕으로 대관식을 치르면서 7왕국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그 뒤 1016년에 데인 왕조가 들어서지만, 1066년 잉글랜드 왕위 계승권을 주장한 노르망디 공국의 윌리엄 1세William I에 의해 정복되면서 비로소 중세국가로서의 잉글랜드는 통일되었다. 

앵글로색슨의 지리적 상상력 반영

현재 런던 대영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앵글로색슨 마파 문디Anglo-Saxon Mappa Mundi’는 영국에서 제작된 가장 오래되고 상세한 세계지도로, 앵글로색슨의 지리적 상상력을 반영한 독특한 지도로 알려져 있다. 이 지도는 ‘코튼 세계지도Cotton World Map’ 또는 ‘티베리우스 세계지도Tiberius World Map’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17세기의 수집가인 로버트 코튼 경Sir Robert Cotton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지도 왼쪽 하단 난외에는 이 도서관의 서가인書架印이 남아 있다.

이 지도는 알프레드 대왕(871~899년) 시기의 사본인 파울루스 오로시우스Paulus Orosius의 <반이교도 역사Historia Adversus paganos, ‘Old English Orosius’라고 함>의 흥미를 반영하고, 지리적인 부분은 로마 시대의 지리학에 근거해 재구성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 뒤로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작자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6세기 초에 활약한 학자 프리스키아누스Priscianus의 라틴어판 지리학 해설서인 <페리에게시스Periegesis>의 11세기 사본Tiberius Bv 폴리오 56v(오른쪽 페이지)에 이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앵글로색슨 마파 문디’는 중세 시대의 세계지도와 달리 원형이나 타원형이 아닌 장방형이고, 전체적인 형태와 내용은 6~7세기경 세비야의 대주교인 이시도르Isidore의 T-O지도나, 7세기의 ‘베아투스 마파 문디Beatus mappa mundi’와도 거리가 멀며, 12세기 ‘헤리퍼드 마파 문디Hereford Mappa Mundi’와도 관련이 없어 중세 마파 문디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중세 마파 문디에 의례적으로 표시되었던 에덴동산은 표시되지 않았다. 

서쪽 끝에는 ‘헤라클레스의 기둥’

지도는 양피지에 그렸고, 크기는 가로 17cmㆍ세로 21cm이고, 제작 시기는  11세기 잉글랜드와 덴마크, 노르웨이의 왕인 크누트Canute 시대나 그 후계자의 통치 기간인 1025~1050년 사이에 캔터베리Canterbury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상의 지명과 주기는 라틴어와 고대 영어가 혼재되어 있고, 성곽 기호는 도시를 나타낸다.

지도는 동쪽이 위로 놓였고, 대륙의 주위는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동쪽 끝에는 실론섬의 옛 이름인 타프로바네Taprobane가 있으나, 실제로는 중국이 가장 끝이다. 서쪽 끝 가운데에 그려진 두 개의 기둥은 지중해 서쪽 지브롤터해협 어귀에 위치한 바위인 헤라클레스 기둥Pillars of Hercules으로, 마치 지중해의 수문장처럼 표현되어 있다. 북쪽 끝에는 섬으로 표시된 스칸디나비아가 위치하고, 남쪽 끝에는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가 위치한다.

바다는 전체적으로 짙은 청회색인 반면 아라비아해ㆍ홍해ㆍ나일강은 적갈색이고, 산과 산맥은 녹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크고 작은 섬들이 무수히 많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위쪽(동쪽)이 아시아 대륙이고, 좌측 아래(북서쪽)가 유럽 대륙이며, 오른쪽(남쪽)이 아프리카 대륙이다. 지중해의 형태는 안쪽에서 두 갈래로 나뉘는데, 아래쪽(서쪽)으로 꺾이는 바다는 아드리아해이고, 왼쪽(북쪽)으로 향하다가 다시 위쪽으로 꺾이는 끝 부분은 흑해이다. 또 지도 상단 왼쪽에 바다와 통해진 만입灣入은 카스피해이다.

카스피해 오른쪽의 큰 산맥은 터키 동쪽의 타우루스Taurus산맥이고, 산맥 남쪽으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흐르다가 페르시아만으로 흘러든다. 두 강 사이는 메소포타미아지방이고, 크게 그려진 성곽은 고대 왕국인 바빌로니아이다. 상단 오른쪽의 적갈색 바다는 왼쪽이 아라비아해이고, 오른쪽 중간 끊어진 바다가 홍해이다. 적갈색의 나일강은 하단 오른쪽의 큰 산에서 발원해 위쪽(동쪽)으로 흐르다가 방향을 틀어 땅으로 스며들다가 다시 흐르는데, 하구는 삼각주를 이루며 지중해로 흘러든다.  

라틴어와 고대 영어 뒤섞여

지도상의 지명은 라틴어와 고대 영어가 혼재되어 있고, 성곽 기호는 도시를 나타낸다. 지중해 동쪽 지역은 성서의 내용에 충실한 편으로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9개 지파의 영토 경계가 그려지고, 타우르스산맥 아래쪽 아라라트산의 노아의 방주와 홍해 쪽의 시나이산, 홍해를 가로지르는 통로인 블레셋인과 모압인ㆍ암몬인의 땅, 모세가 숨진 비스가산(지도에는 Fasgah), 지중해 변의 예루살렘, 베들레헴, 갈릴리 지방, 갈릴리호수, 사해 등이 표현되어 있다.

지도 왼쪽 하단 외쿠메네Oecumene (거주 지역) 가장자리에 위치한 큰 섬이 브리튼과 아일랜드섬으로, 해안선은 특히 세밀하고 많은 섬들이 점재해 있어 다른 지역의 지리정보에 비해 비교적 정확하게 묘사되었다. 또한 그 위쪽에는 동그랗게 돌출된 유틀란트반도와 길쭉한 섬 모양의 스칸디나비아를 둘러싼 해역의 형태가 잘 표현되어 있다. 성곽 모양의 도시는 런던이고, 과장되게 튀어나온 코니시반도에는 싸우는 전사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귀퉁이의 외딴 섬은 전설상 극북의 섬인 툴레Thule로, 아이슬란드를 지칭하기도 한다.

 지중해와 아드리아해 사이의 반도는 이탈리아로, 아펜니노산맥이 가로 지르며, 로마가 표시되어 있다. 그 왼쪽  궁형의 산줄기는 알프스산맥이고, 그 아래는 피레네산맥이다. 알프스산맥 왼쪽은 프랑스이고, 피레네산맥 남쪽은 스페인이다. 또한 아드리아해 초입에 지중해로 돌출된 땅은 마케도니아이고, 지중해와 흑해 사이의 도시는 콘스탄티노블이다.

지도상에는 비문碑文에 새겨진 글귀 같은 놀랄 만한 주기들이 표기되어 있는데, 지도 상단 중앙의 ‘금의 산mons aureus’과 지도 상단 오른쪽의 ‘불타는 산mons ardens’, 카스피해 만입 입구에 위치한 ‘곡과 마곡Gog and Magog’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영국이 알비온Albion으로 불릴 때인 태고의 브리튼섬에 살았다는 거인이고, 그 아래 그리포룸 겐스Griphorum gens는 사자의 몸통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가진 전설의 동물인 그리핀griffin과 인간이 혼합된 동물이고, 지도 오른쪽 하단 아프리카에 표기된 시노세팔레스Cinocephales는 ‘개의 머리’를 뜻한다.

‘앵글로색슨 마파 문디’는 전형적인 마파 문디보다는 바다를 더 할애하고, 해안선을 따라 많은 섬들을 세밀하게 표현했으며, 특히 영국의 세계지도답게 영국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지중해와 스칸디나비아를 둘러싼 해역의 형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이 지도는 앵글로색슨 시기 이후 영국의 역사성과 세계관을 나타내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본 기사는 월간산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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