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알피니스트] 산이 거인처럼 일어나는 환각, 그 후 나는 산에 빠져들었다

  • 글 손수원 기자
  • 사진 황문성 사진작가, 문종국
    입력 2021.05.26 09:39

    한국의 알피니스트, 아직 살아 있다<24> 문종국
    고산·거벽등반 두루 경험… “등산학교·학술활동으로 후대에 알피니즘 전할 것”

    문종국(53). 그는 스스로 ‘모범생’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잘하는 모범생이 아니라 ‘바른생활을 하는 모범생’이란 뜻이다. 선배 말 잘 들어야 한다니 잘 들었고, 후배에게는 밥 사줘야 한다니 빚내서 밥을 사줬다. 산에 열심히 다녀야 한다니 생계 때려치우고 산에만 다녔다. 거벽 분야가 불모지이니 거벽등반을 했고, 단독등반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니 단독등반을 했다. 산에 있어서만큼은 그는 모범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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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남미 파타고니아 파이네 북봉을 등정하고 있다.

    백두대간 종주에서 산과의 운명 확인

    그는 전남 광주에서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는 편식쟁이에다 운동과는 거리가 먼 약골이었다. 그는 1988년 조선이공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산악부에 들어갔다. 평소 사색하기를 좋아했던 그는 산을 알게 된 후 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등산 또한 인간의지의 발현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장 코스트의 <알피니스트의 마음> 같은 책을 끼고 살았죠.”

    대학 졸업반이던 1993년, 그의 산 운명을 결정짓는 사건이 생긴다.

    “특별한 추억을 남기고 싶어 백두대간을 종주하기로 했어요. 사실 이 종주를 마지막으로 산에 그만 다니고 사회생활에 충실하며 평범하게 살 생각이었어요.”

    1992년 12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동기와 70여 일 동안 종주산행을 떠났다. 한 달 정도 산행해 강원도의 어느 산에 도착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에 일어나 그날 산행할 능선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눈앞에서 산이 거인처럼 일어섰다. 너무 힘들어서 환각이 보인 건지 산신령에 씌었는지 모르지만 그 이후 그는 직장 대신 더욱 산에 몰입하게 되었다.

    “종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께서 ‘너 그렇게 산에 갔다 왔으니 에베레스트도 간다고 하겠다?’라고 물으시더라고요. 눈치 없이 ‘가도 돼요?’라고 했어요. 그날 아버지께 처음으로 뺨을 맞았어요.”

    아버지는 그가 산에 다니는 것을 반대했다. 본격적으로 해외원정을 다니면서부터 아버지는 그와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다.

    “아버지는 화투치기를 좋아하셨는데 아버지 살아생전(2018년 12월 작고)에 화투도 같이 쳐드리고 좋게 지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많이 들지요.”

    어머니는 항상 그를 응원해 주었다. 직장 없이 산에만 다니던 시절, 남들에게는 그저 백수로 보였을 테지만 어머니는 ‘우리 아들 고생한다’며 항상 그를 응원했다.

    “1997년 3월, 파키스탄에 지진이 난 후 제가 낭가파르바트로 원정을 떠날 때 어머니께서 ‘파키스탄에 지진 났다더라, 조심해라’라고 하셨어요. 그 시절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지진 걱정을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겠어요. 그런 걸 생각하면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이 더 사무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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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요르단 와디럼 등반. 당시 모로코 타기아 조지, 토드라 조지를 돌며 암벽순례 등반을 했다.

    조디악, 세로토레 단독등반 도전

    그의 첫 해외원정은 1995년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4m)였다. 이 원정에서 그는 고소증세로 고생하면서도 기어코 정상에 올랐다. 그리곤 거벽등반에 도전하기 위해 그해 요세미티로 향했다. 앨캐피탄의 노즈와 살라테월 등반이 목적이었다.

    “당시 거벽등반을 가르쳐 주는 곳이 없어 혼자 책을 뒤져가며 공부하고, 월출산에서 실험해 보곤 했죠. 생각했던 등반기술이 실제 거벽에서도 잘 먹혀 들어갈 때 가장 기분이 좋았습니다.”

    거벽등반에 심취한 그는 1996년 6월, 카라코룸 히말라야의 최대 단일 암봉으로 꼽히는 트랑고 네임리스 타워(6,239m)로 향했다.

    “당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어요. 자일 살 돈이 없어 각 학교 산악부에 못 쓰는 자일이 있으면 보내 달라고 부탁했어요. 소포로 자일이 배달되었는데, 어떤 후배는 먹을 것을, 어떤 후배는 꽃을 함께 보내 주었어요. 그렇게 받은 폐자일을 이어 600m짜리 자일로 만들었죠.”

    자일은 해결했으나 이번엔 헬기 예치금이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선배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모두 사정이 여의치 않았으나 선배들은 군말 없이 ‘카드깡’을 해서 500만 원을 빌려주었다.

    ‘만일 사고가 나도 헬기는 부르지 말자’고 다짐하며 트랑고 네임리스 타워를 오른 그는 다행히 사고 없이 등반에 성공해 선배들에게 고스란히 돈을 되돌려 주었다. 그는 선후배의 눈물겨운 도움을 받아 성공한 이 원정이 평생 산악정서의 토대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거벽 단독등반에 눈을 돌렸다. 1997년, 요세미티 앨캐피탄 조디악에서 처음 단독등반을 시도했지만 등반 중 홀링백과 포타레지를 떨어뜨리면서 허무하게 내려와야 했다. 두 번째로 단독등반에 도전했던 남미 파타고니아의 침봉 세로토레Cerro Torre에서도 극심한 바람과 추위 때문에 경험을 얻고 온 것에 만족해야 했다.

    1999년과 2000년에는 K2 원정대에 합류했다. 박정헌 대장이 그를 원정대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이 원정에서 자신이 고산등반 체질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7,000m 중반까지가 한계였어요. 그때까지 고산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체질이라는 것을 몰랐죠. 2000년 K2 원정은 등반에 있어서 8,000m 고산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가 됐어요.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는 평생의 친구들을 얻을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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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출산 시루봉에서 열었던 선앤문교양암벽교실.

    알피니즘은 끝나지 않았다

    K2에서 돌아온 그는 고산·거벽등반을 지역에 알리고자 2000년 9월 광주에서 ‘선앤문등산학교’를 열었다. 정승권등산학교와 익스트림라이더 다음으로 국내에서 3번째 개인등산학교였다.

    “대학 산악부 시절부터 등산학교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어요. 산으로도 돈을 벌수 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고요.”

    하지만 평생 산만 다닌 그에게 사업은 만만치 않았다. 적자가 누적되면서 전업으로 등산학교를 운영할 수 없게 되어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2007년에는 산악인들의 사회공헌 모임인 ‘푸른산’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산을 못 가게 된,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산악인으로서 할 수 있는 보람된 일을 찾고자 한 것이 목적이다.

    2박3일을 산악프로그램으로만 채운 청소년 산악캠프를 운영했다. 십시일반 돈을 걷어 봉사활동을 했고 점점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현재는 이런저런 이유로 활동이 지지부진하지만 초창기 설립 취지나 실천적 행위들이 사라지기엔 너무 아까워 내실을 다지며 부활을 꿈꾸고 있다.

    그는 요즘 10년 넘게 책 속의 산을 탐구하고 있다. 아직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오지는 지도로만 존재하는 세계다. 그는 “산악인은 지도로만 존재하는 산을 찾아가 실제 세계로 확장시켜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 지도에서 공백으로 남겨진 중앙아시아의 산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알피니즘은 죽음을 두렵지 않게, 죽음까지 풍요롭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알피니즘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알피니즘을 후배들에게 전승하는 것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 제 인생 드라마의 주제와 배경은 일관되게 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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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UIAA(국제산악연맹)가 주최한 조지아국제청소년산악캠프에 참가해 대원들과 함께 카즈베크산Kazbek Mt 5,047m)을 등반했다.

    소속 선앤문등산학교

    1995년 5월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4m) 등정
    1995년 9월  북미 요세미티 앨캐피탄 노즈, 살라테월 등반
    1996년 6월  파키스탄 트랑고 네임리스 타워(6,239m) 등정
    1997년 5월  파키스탄 낭가파르바트(8,125m) 등반
    1998년 9월  북미 요세미티 앨캐피탄 조디악 단독등반, 하프돔 등반
    1998년 12월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6,959m) 등정
    1999년 1월  남미 파타고니아 세로토레 단독등반
    1999년 5월, 2000년 5월  K2(8,611m) 등반
    2000년 9월  선앤문등산학교 개교
    2001년 7월  알프스 3대 북벽 등반
    2005년 1월  남미 파타고니아 파이네 북봉 등정
    2007~2010년  산악인 모임 ‘푸른산’ 초대대표
    2017년 7월  키르기스스탄 알라아르챠 코로나 등반
      선앤문등산학교장

    본 기사는 월간산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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