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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5월 마운스토리 가리산] 土山에 정상 부위만 볏짚 쌓은 듯 봉긋한 岳山

글·사진 박정원 선임기자 jungwon@chosun.com
  • 입력 2021.05.0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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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 모습에서 ‘가리’ 지명 유래한 듯… 물 풍족하고 맑아 조선시대 국가 기우제 지내

가리산 2봉에서 본 정상 1봉과 전경은 가리산 전체 형세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가리산 2봉에서 본 정상 1봉과 전경은 가리산 전체 형세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강원도에서 진달래가 가장 많이 피고, 참나무 중심의 울창한 산림과 부드러운 산줄기 등 우리나라 산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홍천강의 발원지 및 소양강의 수원水源을 이루고 있는 점을 고려해서 선정했다. 암봉이 솟은 정상에서 소양호를 조망할 수 있고, 야생화가 많이 서식하여 자연학습관찰에도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음.’

산림청이 밝힌 한국의 100대 명산 선정에 홍천 가리산加里山(1,051m)을 포함시킨 이유다. 산림청은 지난 2002년 ‘세계 산의 날’을 맞아 한국의 100대 명산을 최초로 선정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100대 명산을 버킷리스트로 삼아 등산하고 있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강원도에는 설악산과 방태산, 계방산, 점봉산, 태백산 등 원체 유명한 산들이 많지만 가리산은 이름이 유사한 가리왕산과 더불어 강원 북부에서 그래도 가볼 만한 명산에 빠지지 않는 산으로 꼽힌다. 특히 가리산 입구 막국수집은 지역의 대표적인 맛집으로 꼽혀, 평일에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가리산은 전형적인 토산土山이다. 전체적으로 포근한 느낌을 주는 산세다. 바위가 많아 물을 쉽게 내버리는 산이 아니라 물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천천히 흘러내리게 한다. 그래서 가뭄에도 좀처럼 물이 마르지 않는다. 가리산과 가리산을 품고 있는 홍천에 대한 옛 문헌에서도 물과 관련한 내용은 빠지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홍천은 산과 물이 둘러 있고, 깊고 궁벽한 곳에 있으면서 잘 다스려졌다. 백성들의 풍속은 순박하고 소송은 적어서 수령 노릇하는 즐거움이 있다. (중략) 산과 물이 맑고 기이하며, 백성들의 재물이 부요富饒하고 수목이 울창한 것을 기뻐하면서… (후략)’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로부터 깊은 산과 그곳에서 나오는 물은 널리 알려져 있었던 듯하다. 깊은 계곡에서 나오는 물은 북한강의 지류 중의 하나인 홍천강의 발원지가 되고, 또 다른 지류인 소양강의 주요 수원으로 흐르기도 한다. 그만큼 물이 풍부한 산이다.

그런데 전형적인 토산의 모습을 띠는 산이 유독 정상 봉우리에서만 쌓아놓은 볏짚 마냥 봉긋 솟은 악산嶽山이다. 세 개의 봉우리가 악산으로 솟아 있다. 명칭도 1봉, 2봉, 3봉이다. 물론 1봉이 정상이다. 멀리서 보면 세 봉우리가 옹기종기 붙어 있는 듯하지만 실제 올라가보면 붙어 있긴 하지만 정상을 밟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거의 90도 수직각에 가까운 암벽을 올라가야 한다. 물론 등산로는 사람이 올라가도록 수직바위에 철계단을 꽂아 발을 디딜 수 있도록 조성했지만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오금이 저리는 아찔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부는 스릴 있다고 하지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겐 완전 두려움의 대상이다. 정상을 올라가지 않는 우회로도 있지만 정상을 바로 눈앞에 두고 올라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2봉, 3봉을 거의 수직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와, 다시 1봉을 수직으로 올랐다가 수직으로 내려와야만 한다. 겨울에 눈이 쌓였거나 얼음이 얼었을 경우 올라가지 못할 정도로 위험하다.

가리산 정상 부위와 능선 아래 자연휴양림 전경. 사진 C영상미디어
가리산 정상 부위와 능선 아래 자연휴양림 전경. 사진 C영상미디어

물·산채 많아 옛날 화전민 많이 살아

가리산은 한때 화전민들의 아지트라고 할 정도로 화전민들이 많이 살았다. 정상 부위를 제외하곤 토산이기 때문에 물이 풍부하고 두릅나무·산초나무·피나물 등 야생화가 많이 서식한다. 따라서 먹거리가 풍족해서 사람들이 굶어죽을 염려가 없다. 가리산이 지리산과 비교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리산은 원체 알려졌지만 가리산은 감추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리산 출신의 한국인 선비가 중국의 천자에 올라 명당 가리산을 감추기 위해 “한국에 지리산은 있어도 가리산은 없다”고 말한 전설이 지금까지 구전되고 있다. 실제 가리산 정상 언저리에 있는 한천자 묘소가 그 전설의 주인공이다. 묘소 주변 마을은 또한 로또 1등·2등에 연속으로 당첨되는 행운을 누렸다고 한다. 감추고 싶은 명당이라는 것이다. 맛집 가리산막국수가 있는 곳부터 가리산자연휴양림이 있는 곳이 해당한다.

화전민의 흔적은 그들이 쫓기어 평지로 내려간 뒤 속성수로 식재한 일본잎갈나무, 즉 낙엽송에서 찾을 수 있다. 등산로 입구부터 해발 700~800m 고지까지 낙엽송이 죽죽 뻗어 서식한다. 일본이 원산지인 낙엽송은 한반도에 상륙한 지 이제 100년을 갓 넘겼지만 당시 일제가 한반도의 민둥산에 식재하고, 또 해방 후 화전민을 내쫓으면서 사람들이 다시 산에 발들이지 못하도록 속성수로 그들이 살았던 장소에 낙엽송을 심으면서 지금 한반도의 웬만한 산에는 낙엽송 천지가 됐다. 낙엽송이 있는 곳은 화전민이 살았던 장소로 보면 그리 틀리지 않는다.

따라서 가리산은 계곡과 물이 풍부한 동시에 식생이 다양하고 700고지 아래에는 낙엽송의 군락을 살필 수 있는 특징을 띤다.

가리산 3봉의 옆모습은 영락없는 큰바위 얼굴의 형세를 보여 준다.
가리산 3봉의 옆모습은 영락없는 큰바위 얼굴의 형세를 보여 준다.

물이 풍부해서인지, 전형적인 토산에 정상 부위만 악산인 특징을 띠어서 그런지 조선시대에 기우제를 지낸 산으로 여러 기록에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여지승람>의 기록을 빌려 중종 때 전국의 기우제를 지낸 산을 나열하고 있다.

‘모든 사전祀典에 실린 바에 따라 기도하지 않은 곳이 없지만 아직 한 번도 비가 오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 (중략) 강원도에는 간성의 오음산·홍천의 가리산·안협의 제당연이다. (중략) 이런 곳에는 소재지의 수령으로 하여금 전물을 정하게 갖추어 각별히 지성으로 행제하게 하라. 그리고 전에 기우하던 강원도 삼척의 황지와 두타산사·양구의 사명산 등에도 치제하게 하라. 만일 가뭄이 심하지 않은 곳이면 반드시 기도할 것이 없다.’

조선시대 기우제를 지낸 명산으로 대접받았을 정도면 옛 기록에 제법 등장했을 법한데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홍천현편에 ‘가리산은 현의 동쪽 70리에 있다. 용연龍淵이 있는데, 날이 가물 때에 범(호랑이)의 뼈를 이 용연에 잠그면 응보가 있다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형승편에는 ‘읍의 인가들이 그윽하고 깨끗하며, 산과 물은 맑고 기이하다’고 소개하고 있다.

강원도, 특히 북부에는 금강산을 비롯한 설악산 등 원체 유명한 산들이 많아 금강산이나 설악산 근처에 있는 산들은 금강산 가는 길에 들렀다는 정도만 기록에 남아 있을 뿐이다. 가리산도 예외가 아니지만 물과 관련해서는 <조선왕조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승람> 등에 가리산이 빠지지 않는다. 그 외에 다른 옛 문헌에서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가리산의 명물 용포폭포. 사진 C영상미디어
가리산의 명물 용포폭포. 사진 C영상미디어

첫 등장부터 加里山 지명·한자 안 바뀌어

고지도에서 가리산이란 지명을 샅샅이 찾아봤다. 15세기와 16세기 제작된 지도에는 가리산이란 지명을 찾아볼 수 없다. 홍천에는 가리산 대신 조선 왕실의 태실을 봉안했던 공작산이 눈에 띈다. 춘천의 청평산, 인제의 한계산·설악산, 정선의 비봉산·벽파산, 원주의 치악산·백운산, 영월의 비슬갑산·덕고산, 평창 오대산 등이 당시 지도에 표시돼 있을 뿐이다. 가리산은 이들 산보다 지명도가 좀 떨어졌던 듯하다.

하지만 17세기 들어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1680년경 제작된 <동여비고>에 가리산이 등장한다. 이후 1800년대 제작된 <청구전도>, <대동여지도> 등에 가리산이 명확히 표시된다. 반면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해동지도>나 19세기 제작된 <광여도> 등 오히려 지방의 군현지도에는 빠져 있다.

결론적으로 홍천 가리산은 기본적으로 물이 많고 맑았던 산으로서, 특히 나라가 가물 때에는 가리산의 물을 일종의 마중물로 해서 일제히 기우제를 지낸 듯하다. 그 외의 용도로 언급된 부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가리산은 전형적인 토산에 정상 부위만 쌓아놓은 볏짚 마냥 봉긋 솟아 지명이 유래한 것으로 전한다.
가리산은 전형적인 토산에 정상 부위만 쌓아놓은 볏짚 마냥 봉긋 솟아 지명이 유래한 것으로 전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홍천의 가리산과 정선의 가리왕산을 <대동여지도>에서는 똑같은 한자 ‘加里山’으로 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리산은 여러 지리지나 고지도에서 초지일관 가리산으로 표시돼 있지만 가리왕산은 가리산→가리왕산 등 표기가 들쭉날쭉 하는 동시에 한자도 계속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초지일관 ‘加里山’으로 표기된 가리산이란 지명에 대해 분명 뭔가 사연이 있을 법하다. 여러 문헌을 다 뒤졌지만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설명된 지명유래는 없다. 일반적으로 ‘가리’는 단으로 묶은 곡식이나 땔나무 따위를 차곡차곡 쌓아둔 큰 더미를 뜻하는 순우리말로서 산봉우리가 노적가리처럼 생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북한산 노적봉과 비슷한 의미다.

실제 지명의 작명 원칙은 ▲지형의 형세를 보고 명명하기도 하고, ▲그 지역에 구전하는 내용과 연결시키기도 하고, ▲풍수와 연관시키기도 하고, ▲순우리말에 한자의 음만 따와서 명명하는 경우 등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가장 일반적인 지명유래가 바로 지형의 형세를 보고 명명하는 것이다. 가리산은 지형의 형세와 한자의 차음, 두 가지 경우에 해당한다. 전형적인 토산에 정상 부위만 세 개의 암봉이 우뚝 솟아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볏단을 쌓아놓은 모습이어서 가리산이라 명명해도 별 무리 없어 보인다. 여기에 본래의 의미와 전혀 상관없는 한자의 음만 따왔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 정도의 형세와 초지일관 같은 표기라면 그 지명유래에 대해 옛 문헌에서도 비교적 자세히 소개할 법하지만 전혀 설명이 없다.

가리산은 700m 고지까지 낙엽송이 군락을 이룬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가리산은 700m 고지까지 낙엽송이 군락을 이룬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지형 형세에 관련 없는 음만 차용해서 쓴 듯

더욱 미심쩍은 부분은 산의 형세와 가리산이란 한자가 전혀 연결이 안 된다는 점이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가리’라는 순우리말에 한자를 음차해서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시간이 흐를수록 한자의 표기가 달라지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왜냐하면 음만 빌려왔기 때문에 아무 글자나 써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가리왕산이 대표적인 경우다. 가리왕산은 ‘가’자만 하더라도 ‘加’ 또는 ‘伽’로 계속 혼용해서 쓰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볼 수 있다.

홍천의 허병직 향토사학자는 “가리라는 의미를 마을에서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막다른 곳으로 해석하면 뜻이 통하지 않을까 싶다”며 “마을에 들어서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제일 높은 정상에 다다른다. 그러한 의미로 가리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해석했다. 또한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세 개의 암봉 중에 2봉의 큰바위 얼굴에 주민들의 희망과 욕망을 담아 더 이상 갈 수 없는 끝의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아 명명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해석도 있다. ‘加’는 고대 부족국가 시대의 족장, 수장 등의 관직명으로 사용한 데서 유래를 찾는다. 몽골 계통의 부족장 칭호인 칸, 가한 등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가리’란 고대국가 시절 부족을 거느린 족장이 머무른 마을이라는 것이다. 가야의 ‘가’도 이에 해당한다. 가리산은 특히 화전민이 많이 살았고, 그들 이전에도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 이러한 해석에도 별 무리 없어 보인다.

따라서 가리산이란 지명은 산의 형세를 보고 한자의 음만 따와 명명했으며, 살 만한 장소로 더 이상 갈 수 없는 마을이라는 의미와 부족장이 부족을 이끌고 살았던 장소라는 세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물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지명유래는 한자와 전혀 연결이 안 되는 형세를 보고 명명하면서 한자의 음만 차용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정설이 없어 몇 가지 설을 정리했다.

가리산 정상 비석. 한국전쟁 때 가리산에서 치열한 전투를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적비가 전한다.
가리산 정상 비석. 한국전쟁 때 가리산에서 치열한 전투를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적비가 전한다.

가리산은 강원도 홍천과 춘천시에 걸쳐 있으며, 등산은 대개 휴양림을 통해서 한다. ▲자연휴양림에서 바로 북쪽 새득이봉으로 올라 정상까지 가는 방법(총 4.4㎞, 2시간 30분가량 소요)과 ▲합수곡까지 북서쪽으로 곧장 올라가서 가삽고개~정상까지 가는 방법(총 4㎞, 2시간가량 소요), 그리고 ▲가장 짧은 합수곡에서 무쇠말재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방법(총 2.8㎞, 1시간 30분 가량 소요)이 있다. 정상까지 편도로만 계산했기 때문에 원점회귀한다면 왕복시간을 감안해야 한다. ▲북쪽 가삽고개에서 소양댐으로 넘어갈 수 있고, ▲정상 직전에서 춘천 은주사 방면 한천자묘로 갈 수도 있다.

가리산은 홍천 9경 중 2경으로, 특히 바위 절벽에서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솟는 석간수가 유명하다. 석간수는 영락없는 여성 음부와 닮았다. 가삽고개 능선에 올라서면 소양호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물노리선착장으로 갈 수 있다. 정상 3개의 암봉은 올라가기가 위험해서 그렇지 올라서면 사방 조망이 확 트여 더할 나위 없는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가리산휴양림에는 기본 산막과 야영장과 함께 포레스트 어드벤처 체험장·드론비행 체험장·플라잉 짚 체험코스·서바이벌 체험장 등 다양한 시설이 구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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