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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털중나리 앞에서 ‘미모’ 자랑하지 마세요

글·사진 김민철 조선일보 기자
  • 입력 2021.06.0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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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이야기, 6월은 나리의 계절

털중나리
털중나리

6월 산행 중 만날 수 있는 꽃이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인상적인 꽃은 털중나리·말나리·하늘말나리 등 나리 종류가 아닐까 싶다.

나리 종류 중 가장 먼저 피어 여름 시작을 알리는 꽃은 털중나리다. 6월 초 이 꽃을 보러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털중나리는 정말 예쁘다. 노란빛이 도는 붉은색 꽃잎, 꽃잎 6장이 뒤로 확 말리고 꽃잎 안쪽에 듬성듬성 자주색 반점이 있는 것이 털중나리다. 특히 아래 한두 개는 피고 위쪽은 아직 몽우리로 남아 있을 때가 가장 예쁘다. 얼마나 예쁘냐면 ‘빨리 사진에 담아서 자랑하고 싶어 안달할 정도’다. 강렬한 색감과 자신감 넘치는 자태가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특히 아래쪽에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털중나리를 담으면 정말 환상적이다.

털중나리는 전국 산에 비교적 흔한 꽃이다. 북한산, 관악산, 청계산, 남한산성 등 서울 주변 산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꽃이름은 줄기와 잎에 미세한 털이 많다고 붙은 것이다. 사진에 담아 확대해 보면 미세한 털이 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솔나리
솔나리
‘봄 끝, 여름 시작’ 신호

털중나리가 보이면 봄이 끝나고 여름이 왔다는 의미다. 나리는 이글거리는 태양과 맞서듯 여름에 피는 꽃이다. 빛이 잘 들지 않는 계곡에서는 피지 않고 능선 중에서도 빛이 잘 드는 곳에 많다. 그중 털중나리가 가장 먼저 피면서 무리 중 선봉대 역할을 한다. 그래서 여름꽃의 시작인 털중나리를 처음 본 기쁨을 쓴 글이 상당히 많다.

6월 초 털중나리를 시작으로 하늘나리가 피고, 그 다음 말나리·하늘말나리·중나리, 이어서 땅나리·참나리가 피고, 솔나리가 가장 늦은 8월까지 핀다. 각자 개성이 넘치고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나리들이다.

그냥 ‘나리’라는 식물은 없기 때문에 나리는 나리 종류를 총칭하는 이름이다. 참나무가 어느 한 나무를 지칭하지 않고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등 참나무 종류를 모두 아울러 일컫는 이름인 것과 마찬가지다. 나리 종류는 나리 앞에 참나리, 땅나리 등과 같이 접두사가 붙어 있다. 나리 이름에 붙는 규칙을 알면 나리를 만났을 때 이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참나리
참나리
꽃이 피는 방향 따라 접두사 붙어

먼저 꽃이 피는 방향에 따라 접두사가 붙는다. 하늘나리는 꽃이 하늘을 향해 피고, 중나리는 거의 옆을 향해, 땅나리는 땅을 향해 피는 꽃이다. 땅나리는 나리 중에서 유일하게 짙은 반점이 없이 깨끗하다. 그래서 재미로 ‘피부과 가서 점 빼고 온 나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말’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줄기 아래쪽에 여러 장의 돌려나는 잎(돌려나기·윤생)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하늘말나리는 꽃이 하늘을 향해 피고 돌려나는 잎들이 있는 나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하늘나리는 꽃이 하늘을 향해 피는데 돌려나는 잎은 없다는 뜻이다.

작가 이금이의 베스트셀러 동화 ‘너도 하늘말나리야’에서는 하늘말나리가 ‘알차게 자기 자신을 꾸려 나가는 (주인공) 소희’를 상징하고 있다. 이 동화에서 하늘말나리가 하늘을 보고 핀 것을 ‘무언가 간절히 소원을 비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하늘말나리에 대해 ‘하늘을 보고 핀 진홍빛 꽃은 주변에 피어 있는 무릇이나 조뱅이, 짚신나물, 노루오줌 같은 풀들이 하찮게 여겨질 만큼 어딘지 모르게 고고해 보였다’고 표현하는 대목도 있다. 하늘말나리는 이처럼 같은 나리 중에서도 어떤 기품 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꽃이다.

식물 이름에 ‘섬’자가 붙어 있으면 울릉도 특산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섬말나리는 울릉도에서 나는, 돌려나는 잎이 있는 나리라는 뜻이다. 섬말나리는 돌려나는 잎이 2~3층인 것이 특징이다. 홍자색 꽃이 피는 아름다운 솔나리도 있는데 잎이 솔잎처럼 가늘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높은 산에 가야 만날 수 있다.

땅나리
땅나리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나리는 참나리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나리는 참나리다. 산에서도 볼 수 있고 도심 화단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참나리는 나리 중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다고 ‘참’이라는 접두사가 붙었다. 대략 꽃이 옆과 땅의 중간, 그러니까 땅에서 약 45도 각도로 핀다.

참나리는 잎 밑 부분에 까만 구슬(주아)이 주렁주렁 붙어 있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까맣고 둥근 이 주아는 땅에 떨어지면 뿌리가 내리고 잎이 돋는 씨 역할을 한다. 무성생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왕성하게 자손을 퍼뜨려 화단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꽃에 검은빛이 도는 자주색 반점이 많아 호랑무늬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참나리의 영문명은 ‘tiger lily’다.

하늘나리
하늘나리

아까 중나리는 옆을 보고 핀다고 했는데, 정확히 옆을 보고 피는 나리는 말나리다. 여름에 등산하다 보면 옆을 보고 핀 말나리를  흔히 볼 수 있다. 줄기에 날개 모양의 좁은 선이 나 있고 꽃이 하늘을 향해 피는 날개하늘나리도 있다. 자생지가 몇 군데밖에 없는 희귀식물이다.

이처럼 나리마다 피는 시기와 개성이 달라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리도 다른 경우가 많다. 올해도 털중나리를 시작으로 나리들이 한여름에 화려한 꽃잔치를 벌일 것이다. 이제 산에서 나리 종류를 만나면 앞에서 설명한 이름 규칙과 특징을 바탕으로 이름을 짐작해 보자.

본 기사는 월간산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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