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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고창 선운산, 얕지만 첩첩산중, 그 속에 보물·천연기념물 수두룩

글·사진 박정원 선임기자
  • 입력 2021.06.2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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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태적 가치 모두 뛰어나… 300m대 산이지만 기암괴석·숲 절경
‘한국의 명승’ 명산-<7> 고창 선운산

300m대 높이의 선운산이지만 첩첩산중 형세를 뽐내는 산이다. 왼쪽 조그맣게 보이는 건물이 도솔암이고, 그 위쪽 절벽이 마애불이 있는 천인암이다.
300m대 높이의 선운산이지만 첩첩산중 형세를 뽐내는 산이다. 왼쪽 조그맣게 보이는 건물이 도솔암이고, 그 위쪽 절벽이 마애불이 있는 천인암이다.

고려 명종 때 입만 열면 시가 됐고, 글만 쓰면 문장이 됐다는 문신 김극기(생몰 미상)는 선운사를 둘러보고 ‘산 숲이 앞뒤 사면을 둘렀는데, 하나의 천당이 절에 그려졌으니, 자수紫綬는 어찌 늘어진 것을 자랑하랴. 현전玄筌(현묘한 기틀)에는 다만 부처의 진리를 엿보고자 하네. 폭포소리 옥 부수듯 단풍진 골짜기에 울고, 산 경치는 소라는 모아 놓은 듯 푸른 하늘에 솟았네. 마주앉아 조용히 옥진玉塵을 날리니, 웃으며 이야기하는 끝에 맑은 바람 문득이네’라는 시를 남겼다.

고려의 문신 윤진(미상~1388)의 시에는 ‘옛 길이 숲 사이에 뚫렸는데 돌이 험하고, 겹친 산이 절을 싸안았는데 물이 맴도네. 양쪽 벼랑에 나무 빽빽한데 평상에 바람 일고, 시냇가 누각에 잠깐 올라가 한바탕 웃네’라고 선운사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선운산禪雲山(336m)은 삼국시대부터 등장한다. 하지만 아쉽게 기록에는 없다. <고려사>에 삼국시대에 있었던 전설을 전하고 있다. 권71 삼국속악편에 ‘선운산은 장사長沙 사람이 역役에 동원되어 기한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니, 그의 아내가 그를 그리워하여 선운산에 올라가 바라보면서 노래를 불렀다’는 선운산악이 그 내용이다. 이 내용은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 전라도 무장현편에 ‘선운산의 선禪을 선仙으로도 쓴다. 현에서 북쪽으로 20리 떨어져 있다. <고려사> 악지에 선운산곡이 있는데, (중략) 그의 아내가 부른 노래이다’라고 나온다.

이와 같이 선운산은 예로부터 깊은 골짜기와 계곡, 험한 암벽과 뛰어난 경관으로 널리 알려진 듯하다. 한마디로 족보가 있는 산이라는 얘기다. 풍수나 산 관련 전문가들은 “산이 높다고 장땡이 아니다. 산이 깊어야 장땡이다”라고 말한다. 단순히 높은 산은 알피니스트에게 최고로 각광받을지 모르지만 일반인들에게 올라가기 힘들 뿐이다. 낮은 산 중에서도 얼마든지 깊고 경관이 뛰어난 산이 있다. 그 대표적인 산이 선운산이다.

선운산 마애불. 높이 30m에 이르는 암벽에 새겨진 16m의 신체 크기의 마애불이다.
선운산 마애불. 높이 30m에 이르는 암벽에 새겨진 16m의 신체 크기의 마애불이다.
선운산에 들어서는 순간 첩첩산중을 느끼게 한다. 산을 둘러싼 기암절벽은 산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수리봉, 천마봉, 국기봉 등 실제론 야트막하지만 전혀 낮게 보이지 않는 봉우리들이 겹겹이 골짜기를 형성하고,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암벽은 투구바위, 도솔암, 용문굴, 진흥바위 등 다양한 형태로 장관을 뽐낸다. 불과 300m대 산이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경관을 만들어내는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특히 보물 제1200호 도솔암의 마애석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16m에 이르는 신체 높이와 8.5m 무릎너비를 가진 거대한 마애불이 연꽃무늬를 새긴 받침돌에 앉아 있는 형국이다. 마애불의 양식으로는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하지만 백제 위덕왕, 신라 말기,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 제작시기에 관한 의견은 분분하다.
선운산의 기암괴석으로 형성된 용문굴은 미로같이 여러 갈래로 길이 나 있다.
선운산의 기암괴석으로 형성된 용문굴은 미로같이 여러 갈래로 길이 나 있다.

16m 높이 도솔암 마애불이 백미… 미륵불로 불려

각종 바위와 동굴마다 전하는 설화들이 가득하다. 백제 검단선사의 선운사 관련 설화를 지닌 미륵바우, 미륵불의 전설을 지닌 마애불, 지장보살 전설을 간직한 도솔암 내원궁, 산에 침입하는 마귀를 방어하는 투구바위,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신선이 학을 타고 내려와 놀았다는 선학암 등 스토리도 다양하다.

선운산 기암괴석 봉우리와 울창한 숲 가운데 천년 고찰 선운사가 자리 잡고 있다. 백제 위덕왕 때 검단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대참사인 참당암은 신라 진흥왕의 왕사인 의운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한 사찰과 암자를 두고 백제와 신라의 최고 인물이 등장한다. 대명찰은 역시 명망 있는 국사가 항상 등장하는 것 같다. 옛날에는 골짜기마다 89암자가 있었다고도 전하지만 지금은 세월의 부침에 따라 모두 사라지고 몇몇 암자만 남아 있다. 하지만 수천 년 세월의 영화는 문화재로 남아 전승한다. 현존하는 문화재로는 보물 제279호 금동보살좌상, 보물 제280호 도솔암 금동지장보살좌상, 보물 제290호 선운사 대웅보전, 보물 제803호 참당암 대웅전, 보물 제1752호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등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돼 선운산의 문화적 가치를 뽐낸다. 또한 천연기념물 제184호 동백나무숲, 제345호 장사송, 제367호 송악 등은 선운산의 경관적 가치를 더욱 높인다.

신라 진흥왕이 수도했다고 전하는 진흥굴.
신라 진흥왕이 수도했다고 전하는 진흥굴.

그 훌륭한 장관으로 인해 ‘고창 선운산 도솔계곡 일원’은 2009년 9월 국가문화재 명승 제54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명승으로 지정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선운산은 도솔산兜率山이라고도 했는데 선운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의 뜻으로 선운산이나 도솔산이나 모두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창 선운산 도솔계곡 일원은 선운산 일대 경관의 백미로서, 화산작용으로 형성된 암석들이 거대한 수직 암벽을 이루고 있어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이 일대에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도솔천 내원궁, 도솔암, 나한전, 마애불)와 천연기념물 등이 분포하고 있어 인문 및 자연유산적 가치가 크다.’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는 도솔천 내원궁의 전경.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는 도솔천 내원궁의 전경.

9월 되면 꽃무릇 만발… 한국 대표 군락지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일 뿐만 아니라 일찌감치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며 1979년 선운산도립공원으로 지정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생태숲 또한 여느 산 못지않다. 상사화라 불리는 꽃무릇은 한국의 대표적인 군락지 중 하나로 꼽히며, 초롱꽃, 부처꽃, 애기나리, 구절초, 흰민들레, 쑥부쟁이, 범부채, 비비추, 맥문동, 붓꽃 등 각종 야생화도 계절마다 만발한다. 수십여 종에 수십만 본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등산로도 골짜기만큼이나 다양하다. 높지 않기 때문에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입장료는 4,000원. 입장료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마을에서 바로 등산하는 유일한 코스가 있다. ▲증촌마을 동백호텔 뒤 경수산(444m)으로 올라 마이재를 거쳐 석상으로 하산하면 선운사로 바로 내려올 수 있다. 3km 남짓 거리에 약 1시간 30분 소요. 마이재에서 수리봉으로 곧장 종주할 수도 있다. ▲관리소에서 출발해 도솔계곡을 따라 선운사·템플스테이 체험관을 지나 도솔암~내원궁~용문굴~낙조대를 차례로 거쳐 천마봉 정상에 올라서 하산하는 코스도 있다. 4.7km에 약 3시간 소요. ▲선운사에서 바로 오른쪽 석상암으로 방향을 틀어 마이재에서 수리봉(선운산 또는 도솔산 정상)으로 포갠바위~참당암~소리재~낙조대를 거쳐 천마봉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 6.5km에 약 4시간 소요. ▲관광안내소에서 출발해 경수봉을 거쳐 마이재~수리봉~참당암~국사봉(견치산)~소리재에서 용문굴을 거쳐 천마봉으로 하산하는 코스는 제법 길다. 10.8km에 약 6시간 소요. ▲관광안내소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정해서 도솔제 저수지를 지나 투구바위~사자바위~국기봉~쥐바위~청룡산~배맨바위~낙조대를 거쳐 천마봉으로 하산하는 코스도 8.3km에 이른다. 소요시간 약 5시간.

이외에 등산하지 않고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밟는 코스는 선운사를 둘러보고 도솔암까지 갔다가 마애석불을 보고 다시 내려가는 방법이다. 이것도 천천히 둘러보면 3시간 남짓 걸린다.

본 기사는 월간산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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