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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해외 등반] 나흘간 80km… 목동이 끓여준 스프로 고단함을 덜다

글·사진 임덕용 꿈속의 알프스등산학교
  • 입력 2021.06.0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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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코르티나 돌로미티 울트라 트레킹 2

울트라 트레킹 중간부분으로 폭포를 끼고 짧은 비아 페라타 등반 코스가 있다. 상단 폭포 안으로 들어가면 어마어마한 낙수를 즐길 수 있다.
울트라 트레킹 중간부분으로 폭포를 끼고 짧은 비아 페라타 등반 코스가 있다. 상단 폭포 안으로 들어가면 어마어마한 낙수를 즐길 수 있다.

산행 3일차
치타 디 카르피산장~트레 치메 호텔(약 13.8km)

코스 치타 디 카르피산장(2,130m)~(1시간 30분)~라고 디 미주리나(1,754m)~(2시간 30분)~아우론조산장(2,320m)~(30분)~라바레도산장(2,344m)~(1시간)~로카텔리산장(2,300m)~(3시간)~트레 치메 호텔(1,406 m)
난이도 중급
소요 시간 5~6시간

깊은 산중의 작고 오래 된 치타 디 카르피산장Rifugio Città di Carpi에서 보낸 밤은 하늘에 펼쳐진 은하수의 바다 속으로 빠진 듯 황홀했다. 하늘에 별이 있는 게 아니라 별 사이에 틈틈이 짙은 검정색 하늘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는 동안 커다란 혜성이 두 번이나 긴 꼬리를 휘날리며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고대 동서양을 막론하고 혜성은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다. 로마시대 카이사르는 암살되기 전 붉은 혜성을 목격했으며, 조선시대에도 혜성이 떨어지면 반역이나 모반의 징조라 하여 무수한 사람이 애꿎은 죽임을 당했다. 또한 홍수, 기근, 전염병 등이 일어날 불길한 징조로 여겨지곤 했다.

가이드가 길고 넓은 계곡의 물길을 건너고 있다.
가이드가 길고 넓은 계곡의 물길을 건너고 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혜성은 지구 대기와 마찰하면서 빛을 내는 우주 먼지라는 정체가 밝혀지자 이제는 오히려 소원을 비는 대상으로 바뀌었다. 하룻밤 사이에 혜성을 두 번이나 보았으니 복권이 당첨되려나? 더 이상 큰 수술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빌어야 할까? 많은 생각 중에서 그냥 이번 산행을 무사히 마치게 해달라는 소박한 소원을 빌었다.

카르피산장을 떠나 처음에는 길을 내려가는 것으로 시작해 기분이 좋다. 하지만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야 하는 건 당연지사, 조금씩 걱정이 된다. 이틀 동안 하루에 10여 시간씩 걸어서인지 몸은 무겁지만 다리는 가볍다.

오른편으로 미주리나Misurina호수가 보인다. 한국 손님을 가이드하면서 수십 번은 지나쳤던 호수인데 이렇게 멀리서 보니 또 다른 멋이 있다. 트레 치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 방향으로 호수 길을 따라 가면 아우론조산장Auronzo Refuge과 라바레도산장Lavaredo Refuge을 통과해 트레 치메에 도착한다.

크리스탈산 깊숙이 자리한 ‘치타 디 카르피산장’에서의 하룻밤은 돌로미티의 멋과 맛을 알 수 있는 기회다.
크리스탈산 깊숙이 자리한 ‘치타 디 카르피산장’에서의 하룻밤은 돌로미티의 멋과 맛을 알 수 있는 기회다.

아우론조산장은 한국에도 널리 알려져 많은 한국인 여행객이 숙박을 하지만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곳이다. 사람이 너무 많이 찾다 보니 식사는커녕 커피 한 잔도 마시기 어렵다. 여름 성수기에는 커피나 샌드위치 하나 사기 위해서도 30분 이상 줄을 서야 한다. 산장 안에서 창을 통해 바라보는 경치는 훌륭하지만 그 아래 수백 대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면 산에 대한 그리움과 정이 떨어진다. 마치 박람회장 주차장을 산 위에 올려놓은 것 같다.

여름 성수기에는 산장 주차비가 무려 30유로이다. 주차비를 내기 위해 차 안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것도 고역이다. 그나마 7~8월에는 오전 9시 정도면 이미 만차가 되어 산장까지 아스팔트길이나 좁은 등산로를 1시간 30분 이상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우리는 아우론조산장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라바레도산장에서 숙박했다. 트레 치메 라바레도 북벽을 등반하러 올 때 자주 이용하는 산장이다. 산장은 매우 작으며 명품 등반 루트인 코미치 루트나 황벽(옐로 페이스)의 고전 루트를 등반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클라이머들을 위해 새벽 4시부터 아침식사를 제공한다.

트레 치메 라바레도 북벽을 정면에서 볼 수 있는 산장으로는 유명한 로카텔리산장Rifugio Locatelli이 있다. 라바레도산장에서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으며 최고의 명당답게 1년 전부터 숙박예약이 다 잡혀 있을 만큼 인기가 높다. 

치타 디 카르피산장 Rifugio Città di Carpi Tel. +39 0436 39139
아우론조산장 Rifugio Auronzo Tel. +39 0436 39002
라바레도산장 Rifugio Lavaredo Tel. +39 349 602 8675
로카텔리산장 Rifugio Locatelli Tel.+39 0474 972002 

산행 4일차에 지나는 토파나 밑 갈대밭에는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갈대가 무성하다.
산행 4일차에 지나는 토파나 밑 갈대밭에는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갈대가 무성하다.

산행 4일차
라바레도산장~말가 라 스투아(약 25.9km)

코스 라바레도산장(2,344m)~(1시간)~로카텔리 산장(2,300m)~(2시간 30분)~트레 치메 호텔Hotel Tre Cime(1,406m)~(4시간 30분)~말가 라 스투아Malga Ra Stua(1,668 m)
난이도 중급 
소요 시간 8시간

넷째 날, 라바레도산장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트레킹을 시작해 이른 시간 도착한 로카텔리산장에서 좁은 급경사 산길을 따라 하염없이 내려섰다. 처음 걷는 산길이 신기하기보다는 ‘내려온 만큼 또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하는 걱정이 앞선다.

란드로호수Lago di Landro까지 약 3시간이 걸렸다. 볼자노에서 코르티나로 가는 길 왼편에 있는 란드로호수는 지나는 길에 수백 번도 더 보았었다. 그러나 오늘 산에서 내려오며 보는 란드로호수는 연초록색의 아름답고 큰 호수였다.

왼쪽 라가주오이봉이 석양에 물들고 있고, 오른쪽은 토파나산군의 한 부분이다. 팔자레고 길 가에 있는 길리나산장은 아담하다.
왼쪽 라가주오이봉이 석양에 물들고 있고, 오른쪽은 토파나산군의 한 부분이다. 팔자레고 길 가에 있는 길리나산장은 아담하다.

이제부터는 지루한 자전거 길을 걷는다. 겨울에는 돕비아코에서 코르티나까지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위한 길이 되는 곳이다. 아주 옛날에는 기차가 오가는 철길이었다고 한다. 완만한 숲길이지만 옆으로 쌩쌩 지나가는 차들과 따가운 햇살로 다소 지루하다. 다음에 다시 올 일이 있다면 이 구간은 버스를 이용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과거 기차역으로 쓰였을 법한 폐건물 옆에서부터 다시 고난의 오름길이 시작되지만 옆으로 흐르는 강과 간간이 보이는 작은 폭포들 덕분에 기분 전환이 되었다.

혜성 불꽃을 뿜어내는 
아베라우는 누볼라우 정상 바로 옆에 있으며 아베라우산장에서는 돌로미티 내에서 최고급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사진 www.bandion.it
혜성 불꽃을 뿜어내는 아베라우는 누볼라우 정상 바로 옆에 있으며 아베라우산장에서는 돌로미티 내에서 최고급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사진 www.bandion.it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군과 오스트리아군의 합동 공동 묘지였던 곳을 지난다. 오스트리아 장교들이 사용했다는 석조 욕조는 이끼가 가득 끼어 방치되어 있다. 커다란 돌을 손으로 깨서 만든 수제품이다. 여기서 몸을 담그던 장교들은 살았을까 아니면 전사했을까 생각해 본다.

치마반케Cimabanche를 지나 라고 비안코Lago Bianco에 도착하면서 4일째 산행도 끝났다. 말가 라 스투아Malga Ra Stua는 목동들이 운영하는 작은 숙박업소다. 산장보다 더 작았지만 운치 있고 방도 매우 깨끗하다. 특히 목동 부부가 직접 만들어 주는 식사는 일품이었다. 대개 산장에서는 더러운 담요에 개인 덮개를 사용해서 자곤 했는데, 이곳에선 가볍고 따뜻한 오리털 이불을 제공했다. 화장실과 샤워장도 매우 깨끗했고 샤워도 시간 제약 없이 할 수 있었다.

울트라 트레킹 중 약 80km를 주파한 것을 기념하며 시원한 맥주로 축하하고 싶었지만 약을 먹고 있어 구경만 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힘든 구간을 가야 하기에 숙소 앞에서 평화롭게 누워 놀고 있는 소 떼처럼 마음이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말가 라 스투아 Malga Ra Stua Tel. +39 0436 5753.

본 기사는 월간산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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