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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등산칼럼] 우중산행

글·사진 윤치술 한국트레킹학교장
  • 입력 2021.06.08 10:05
  • 수정 2021.06.0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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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틱 대통령’ 윤치술의 힐링&걷기 <39>

설악 공룡능선, 느닷없는 작달비에 젖어 오는 것은 몸뿐이 아니다. 자욱한 가스gas 사이로 설핏 보이는 바위마다 어우르던 저편의 시간이 우두커니 젖고, 아노락anorak 여며도 들이치는 따뜻한 기억들이 한 움큼이다. 심연의 검은 목소리로 나를 위로하던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의 재즈 같은 바람비에 몸을 맡긴다. 빗방울마다 그리움 새겨 넣고 낮은 음音으로 한껏 호명하면 맞은 소리 없이 죄다 발자국으로 남는 우중산행이다.

비 내리는 산의 경이로움은 귀때기청봉 너덜겅의 돌만큼이나 많다. 건성을 제치고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 초록이 갈맷빛으로 변하는 생동과 어미 새의 날갯짓에서 내리사랑에 애타는 둥지의 새끼들도 보인다. 분粉이 날리던 소청봉 길은 철버덕거리는 자취 소리의 운율에 산행이 오지고, 용아장성은 빗물로 멱을 감더니 쪽진 머리 동백기름 바른 누이인 듯 아름답다. 희운각 산장 앞 가야동계곡 큰 물소리에 좋은 일이 곧 터질 것 같아 가슴은 벌렁거리고.

여름산은 국지성 폭우가 잦고 낙뢰와 번개도 함께 온다. 6월과 7월은 장마철로서 방수 철저가 우선이다. 심각한 일기예보라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산행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고 우리의 산은 도전과 극복이 아닌 행복과 즐거움이 앞장서기 때문이다. 산행 중에 맞닥뜨리는 비는 짜증과 원망의 대상이 아닌 새로움을 탐색하는 기쁨이어야 한다. 낭패를 낭만으로 만드는 왕도는 옭매듭 묶듯이 불여튼튼 세심함을 보탠 준비에 있다.

덥고 습하니 땀에 젖으나 비에 젖으나 마찬가지라며 노출된 몸으로 비를 맞지 말고, 특히 머리를 차게 해서는 안 된다. 몸이 젖으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므로 피부노화로 체온조절이 부실한 중년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헤피 젖고 지독스레 마르지 않아 저체온증을 유발하는 산행의 적敵인 면綿을 피하고 우비와 배낭커버, 한여름에도 보온을 위한 폴라플리스 소재의 여벌옷을 챙긴다. 나쁜 준비는 나쁜 날씨를 만드니까.

“만일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더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한 전쟁사진의 신화 로버트 카파Robert Capa의 말마따나 자연을 설렘과 정성으로 다가서면 산은 지음知音이 되고 연대감이 생긴다. 이에 세상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에 힘이 실린다. 비 그치고 잉걸의 노을이 공룡의 등뼈에서 사그라질 때 서녘의 개밥바라기를 만난 아름다운 우중산행, 신神의 눈물로 적셔진 은혜로운 산山에서 더없이 행복했음이 정녕 고맙다.

윤치술 약력

소속 한국트레킹학교/마더스틱아카데미 교장/레키 테크니컬어드바이저/건누리병원 고문

경력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외래교수/고려대학교 라이시움 초빙강사/국립강원대학교 평생교육원 초청강사/사)대한산악연맹 트레킹스쿨장/사)국민생활체육회 한국트레킹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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