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촌일기] 젊은이들 ‘개인주의’에 회초리를 들지마라

  • 글·사진 이남석 자전거 여행가
    입력 2021.07.14 09:38 | 수정 2021.07.14 09:48

    화촌일기 <14> 마을 일에 대한 생각
    시골이 활력 되찾는 법… 공동체와 개인 절충점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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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둑에 세워진 허수아비. 멧돼지나 고라니의 출현을 막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세워 놨다.
    중년을 넘어선 사람들은 머릿속에 저장된 과거의 자료를 바탕으로 주변의 사물이나 환경의 변화를 살피고 앞을 예측한다. 지난 세월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날씨 변화이다. 오랫동안 농사지어 온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과학자들의 연구나 환경연구가들의 통계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더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산골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은 가을에 단풍 드는 것만 봐도 다음해 농사를 가늠하며, 겨울에 쌓이는 눈의 깊이를 보고도 봄에 강수량이 얼마나 될지를 예측한다. 가을에 나뭇잎이 단풍 들기 전에 마르면 봄 가뭄을 예상하고, 겨울이 너무 따뜻하고 눈이 내리지 않으면 해충이 창궐해서 밭곡식이 해를 입을 것을 걱정한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5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는 대체로 건조한 날이 많아 논에 모를 내려면 물이 부족해 천수답은 이때가 고비였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가 되었다. 늦은 봄부터 초여름까지 너무 많은 비가 내리고 기온이 낮아 작물이 성장하는 데 큰 애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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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 공작산 기슭의 수타사. 신라시대에 창건한 유서 깊은 절이다.
    “여기서 사과가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사과나무를 정리하고 있던 농부는 처음 심을 때만 하더라도 과연 사과를 수확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고 했다. 홍천은 내륙 중의 내륙으로 겨울이 춥고 길어서 사과나무나 감나무는 재배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지 원래 중남부에 몰려 있던 사과 산지가 내륙인 홍천으로 슬금슬금 옮겨 왔다. 그것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추운 지역에서는 재배가 불가능한 감도 홍천에서 재배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홍천 사람들은 잔칫상이나 제사상에 고향에서 생산된 감이나 사과를 올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산골 사람들은 매년 반복되는 자연재해에 학습되고 단련되어 그것이 아예 삶에 기록되었다. 저항하고 탄식하며 분노하기도 했으나 결국은 다 받아들였다. 그렇지 않고서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을 지탱하는 것이 고단하고 힘들기 때문이었다. 응봉산 임도를 자전거로 돌다가 목이버섯을 따러 나온 한 노인을 만났다.
    여름인데도 두꺼운 군복 바지에 장화를 신은 그는 얼굴에 드리운 주름과 주름 사이 계곡의 깊이로도 살아온 여정을 엿볼 수 있었다. 자루에 한가득 담긴 목이버섯을 보여 주면서 예전에는 이걸 들고 장에 가면 어지간히 돈을 받았는데 이제는 중국산이 들어온다면서 한숨 대신 오히려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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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집사람과 함께 쑥을 뜯어다가 삶은 후 떡을 만들었다.
    “우리가 저 아래 살았는데 집 뒤에 참샘이 나고 좋았지. 그런데 어느 해인지 한 열흘을 사무(계속의 강원도 사투리) 비가 쏟아지는데 집 뒤에 흙이 마사라 오후부터 흙이 밀려오더니 한밤중에 부엌으로 들이닥치더라고. 그리고 이틀도 못 가서 집이 반은 흙에 덮였지. 별 뾰족한 방법이 있나? 이불이랑 그릇만 챙겼지.”
    노인은 자신이 터를 잡았던 골짜기를 가리키면서 산비알(비탈의 강원도 사투리)을 화전으로 일궈 먹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래도 비에 산사태는 그나마 견딜 수 있으나 가뭄은 정말 화전하는 사람들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올해는 겨울이 추웠던 덕분에 잣이 많이 매달렸다면서 기뻐했다. 노인은 벌써 잣을 수확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봄가을로 누에를 키워 좌운으로 고치 팔러 가던 얘기를 풀어놨다.
    “누에가 두 잠을 자면 벌써 밭뽕이 바닥나니 어쩌겠어. 산 너머로 돌아댕기며 산뽕을 따다가 줬지. 어려서 포대에 뽕잎을 잔뜩 넣고 비알이래 내려오다가 고라댕이로 구르고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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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랗게 익어가는 영귀미면의 보리밭.
    한 시절이 저물면 다음 시절이 오고, 한 세대가 끝물이 되면 다음 세대의 싹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문물이나 정신은 이어지고 혹 단절되며 시류에 바뀌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사는 이치와 인정은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인사하고 잠깐 가다가 뒤돌아보니 노인은 이미 숲으로 들어간 뒤였다.
    임도를 나와서 영귀미면詠歸美面 수타사에 들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홍천군 동면東面이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붙인 동면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본래의 이름인 영귀미면으로 바꾼 것이다. 감자는 벌써 꽃을 피우고 옥수수는 두서너 개의 이파리를 매단 채 본격적으로 자랄 준비를 끝마쳤다. 그뿐인가? 몸살을 끝낸 모는 여름 뜨거운 빛을 기다리면서 새끼 칠 만반의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초여름은 봄에 파종한 농작물들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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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옥수수와 감자. 논의 벼.
    마을 공동체 작업 강요는 시대 착오
    사흘 뒤에 반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군업리에서 지장목 작업을 하려 하는데 나와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나올 때 예초기를 가지고 오라는 말에 대충 풀 베는 작업이겠거니 추측은 했지만 그래도 지장목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후에 알고 보니 길가나 하천에 서 있는 나무 중 통행이나 주변 농작물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나무나 나뭇가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작업에 나가 보니 나는 젊은 사람 축에 들었다. 화촌면 면사무소에서 지원해 마을 공동기금을 만들기 위한 일인데 그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군업리 인구의 절반이 칠십에 가깝거나 넘긴 사람들이니 이런 작업을 하는 데 협조를 얻으려면 이장이나 반장이 고생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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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년 전에 쓰던 농기구를 아직 사용하는 어르신. 논을 고를 때 쓰는 고무래(평미래).
    그중 노인회를 맡고 계신 분이 입을 열었다. 옛날에는 신작로에 파쇄석 깔기, 또는 저수지의 보를 정비하거나 수로를 청소하고 개축하는 일, 범람한 하천을 정비하고 진입로의 풀을 베는 일 따위는 모두 마을 공동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작업에는 모두 예산이 할당되어 마을 공동작업으로 하지 않는다.
    작업을 끝내고 점심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듣다 보니 사람도 알게 되고 마을 공동체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이 드신 분들 사이에는 이미 공동체가 형성된 지 오래되었고, 나름 취미생활과 상호 교류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었다.
    사실 시골이라 해도 꼭 농사를 짓는 분들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종류의 사업을 하는 사람들끼리 어울려 살아간다. 그런 중에 사람들의 동의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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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사람들이 모여 통행에 지장을 주는 풀과 나뭇가지를 제거하는 공동체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런 공동체 작업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젊은 세대는 예전의 공동체 활동이나 조직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고, 참여를 부탁하면 오히려 쓸데없는 간섭이라고 생각하지. 도회지에서 내려와 펜션이나 식당을 하는 사람들은 마을 공동으로 뭘 한다고 하면 별로 좋아하질 않아.”
    엄청난 기술의 진보와 혁명을 끌어낸 시대에 태어나거나 성장한 세대에게 ‘마을 사람들끼리 덕은 서로 권하고 환난은 서로 도와줘야 한다’는 조광조의 향약이나, 마을 공동체 생활을 강요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크게 환영할 일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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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이 만개한 작약밭. 약초로 쓰이며 홍천 영귀미면의 주민 특화사업이다.
    당시의 사회구조와 지금은 바뀌어도 너무 많이 바뀌었다. 인공지능과 메타버스의 가상세계가 현실 생활에 속속들이 침투한 현시점에서 그런 개념은 말 그대로 현실감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과거의 유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꼭 그 윤리에 끼워 넣으려 하지 않아도 젊은 세대는 알아서 잘한다. 옛날 사고로 젊은이들을 바라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미래는 젊은이들에게 달려 있으며 기성세대는 그들이 마음 놓고 활동하고 뻗어갈 수 있도록 옆에서 거들기만 하면 책무는 끝난다. 젊은 사람들이 안정되어야 노인들도 편한 노후생활을 할 수 있다. 길에 감꽃처럼 떨어진 때죽나무 꽃을 밟으며 귀가하다 생각해 보니 화촌에 내려와 오랜만에 정을 섞어본 경험이었다.
    본 기사는 월간산 7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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