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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네팔이 지리산이라면, 파키스탄은 설악산이에요”

글 신준범 차장대우 사진 한준호 차장
  • 입력 2021.07.0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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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길, 파키스탄 히말라야> 펴낸 고영분

“네팔 히말라야가 지리산이라면, 파키스탄 히말라야는 설악산이에요. 풍경이 정말 화려해요. 다만 그만큼 산길도 험하고 트레킹을 시작하면 중간 마을이 없어요. 수십 일간의 야영 장비를 다 가져가야 해요. 한국에서 6명이 간다면 현지 가이드와 짐을 짊어질 포터와 요리사까지 해서 30여 명의 스태프가 기본적으로 필요해요.”

월간<山>에 ‘거칠부 다이어리’를 연재 중인 고영분(44)씨가 <환상의 길, 파키스탄 히말라야>를 출간했다. 파키스탄 히말라야를 2018년과 2019년 2차례에 걸쳐 총 100일간 432km를 걸었던 이야기를 담았다. 그녀의 히말라야 트레킹기를 담은 책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네팔 트레킹기를 담은 <나는 계속 걷기로 했다>, <히말라야를 걷는 여자> 를 펴냈고, ‘산서山書는 안 팔리며 히말라야 관련 책은 더 안 팔린다’는 속설을 뒤집고, 1쇄 2,000부를 완판하고 2쇄를 찍는 성과를 거뒀다.

최근 어려운 출판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베스트셀러 트레킹 작가인 것. 책에는 그녀의 필명으로만 표기했는데, “20년 넘게 인터넷상에서 거칠부로 불려 왔기에 산에서 만난 사람들에겐 거칠부가 더 친숙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거칠부 고영분씨는 일기처럼 매일 상세한 글을 인터넷 블로그에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워낙 솔직하고 세심하게 글을 쓰고, 필력이 뛰어난데다 산행 내공이 깊어 팬층이 두텁다. 책에서 그런 그녀의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히말라야에서 궁금했던 건 단 한 가지였다. 그곳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나는 이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절정이 머지않았음을 알았다. 시나브로 파키스탄이라는 곳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갔다. 나는 푹푹 빠지는 모래밭을 지나고, 작은 개울을 따라 걷고, 자갈길을 걷는 내내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서 자꾸만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눈도 뜨거워졌다. 눈이 산을 더듬는 동안에도 심장이 쉬지 않고 두근거렸다. 나는 이곳의 모든 아름다움에 반응하고 있었다.’

그녀의 글은 흡입력이 강해 술술 읽힌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글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공감대를 끌어낸다. 아름다운 풍경만 담지 않았다. 앞선 네팔 트레킹 책들은 혼자 다닌 이야기를 담았으나, 이 책에서는 1차 여행 때 한국인 6명, 2차 때 9명과 함께 걸었다. 두 차례에 걸쳐 60일과 40일을 내내 함께 걷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책에는 이들의 갈등이 그대로 담겨 있다. 거칠부는 주로 독백으로 갈등을 풀어낸다.

“네팔과 달리 파키스탄은 스태프가 기본적으로 여럿이 필요해요. 혼자 가는 것보다 최소 4~5명은 있어야 비용이 효율적이에요. 단체로 간 트레킹은 처음이었어요. 처음엔 재밌었는데, 나중엔 너무 많은 얘길 듣다 보니 멀미가 났어요. 지겨워진 거죠. 혼자 있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들었어요.”

그녀는 “누가 잘못한 게 아니라 취향이 다른 사람이 오랫동안 함께하면 힘들어진다”며 그럴 때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며 자신의 감정을 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아름다운 길 위에서의 감동과 고민을 여과 없이 담았다.

‘언젠가는 나의 좋고 싫음이 적절히 중화되어, 나와 다른 이들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랐다. 세상살이에 서툰 내가 그렇게 유연해지고 포용력이 커지기까지는 부닥치고 깨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기꺼이 기다릴 마음이 있다. 과정 없이 얻어지는 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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