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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Scene 산티아고] 바위꾼 눈엔 암벽만 보인다더니…

글·사진 금기연 취미사진가
  • 입력 2021.07.12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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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 장군의 산티아고 순례길 <3>

암벽등반의 충동

끝이 없을 듯 이어지던 드넓은 나바라 지역의 평원 앞에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습니다. 길게 이어진 암벽에 시선이 압도당했지요. 암벽등반의 충동이 올라왔습니다. ‘환갑을 지나 암벽등반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이 등산학교의 입장이었지만, 편견을 이겨내고 뒤늦게 암벽등반을 시작했습니다.

등반에 빠져 거의 매주 인수봉과 설악산을 오가며 새로운 도전의 즐거움을 만끽했습니다. 당장은 순례 중이지만 늦깎이 바위꾼의 도전의식을 자극하기에 이만한 장소도 없습니다. 희망사항이지만 다시 순례길을 걸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각양각색의 포도나무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포도밭이 있는 이곳은 동양에서 온 이방인에겐 신기한 풍경입니다. 포도나무도 각양각색입니다. 푸른 잎은 같아도 어린 나무부터 100년 수령의 고목까지 나이 차이가 많습니다. 포도의 종류도 여럿이랍니다. 

프랑스의 유명 포도산지 보르도에 해충피해가 심했을 때 그곳 와인업자들이 순례길에 있는 리오하로 대거 이주해 고급 레드와인의 생산을 시작했다지요. 스페인은 세계 최대인 포도 재배 면적만큼이나 자기네 포도주에 대한 자부심 또한 대단합니다.

리오하 지역.

세상 순례를 마친 자의 표지 

길을 가다가 이따금씩 마주치는 조촐한 표지(묘비)입니다. 이 분은 만 17년 동안 세상 순례를 마치고 하늘나라로 떠나셨군요. ‘배는 항구에 닻을 내리고 있을 때 더 안전하지만 그것은 배를 만든 이유가 아니다’라는 묘비명으로 보아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했던 것 같습니다.

드물지 않게 초인적 의지로 신체장애를 극복하며 길을 걷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멀쩡한 사람들 못지않게, 더러는 훨씬 더 즐겁고 기쁨에 넘쳐 감사하며 활기찬 모습입니다. 순례길에서 접하는 불가사의입니다. 카그티아 이 레온 지방.

옛 수도원 자리 숙소의 들꽃밭

허허벌판을 가로지르는 10km가 넘는 구간에, 집이라곤 달랑 한 채뿐인 이곳이 여행자 숙소입니다. 10여 명만 수용 가능하며 쉼터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덕분에 별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바깥에서 이슬을 맞으며 밤을 새웠다는 무용담도 들려옵니다.

마당 한쪽에 있는 사각형 우물의 물은 치유력이 있다고 합니다. 사실 포플러나무 아래 흐드러지게 핀 들꽃만으로도 어떤 병이든 모두 나을 듯 평화롭고 아늑한 곳입니다. 다음에는 채비를 단단히 해서 노숙으로 밤하늘의 별을 봐야겠습니다. 부르고스주.

스페인의 인공 숲, 유칼립투스 숲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유칼립투스 밀림입니다. 독특한 향과 살균효과가 있어 약제와 음료, 차로도 쓰인다지요. 호주의 상징인 코알라의 먹이가 바로 이 나무의 잎이라고 합니다.

소나무 재선충 피해로 인해 대체수종으로 인공조림을 했답니다. 나무가 굵어지면서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죽 이어서 껍질이 벗겨지는 모양이 특이합니다. 나무가 자라며 주변의 수분을 많이 흡수하므로 건조용으로 이용한다고도 합니다. 덕분에 유칼립투스 숲을 지나는 시간은 몸과 마음이 여유로워집니다. 갈리시아주.

손에 잡힐 듯 낮게 드리운 구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멋진 하늘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높고 파란 하늘에 공기까지 맑고 시원해 부러운 한편 가끔 시샘도 생깁니다. “우리도 미세먼지만 아니라면…” 또는 “예전엔 우리도 이 못지않았는데…” 등의 말이 저절로 나오곤 합니다.

때론 구름이 조화를 부립니다. 손을 뻗으면 바로 잡을 수 있을 듯 낮게 드리운 구름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밀밭에 파도를 만듭니다. 구름이 터진 아래로 내려 비치는 햇살과 어우러진 작품에 빠져들다 보면 종일 걸은 피곤함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팔렌시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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