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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경상도의 숨은 명산] 치술령의 주산…석탄 나서 ‘묵장’이라 불려

글·사진 황계복 부산산악연맹 자문위원
  • 입력 2021.07.2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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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의 숨은 명산 '묵장산'

울산 망부석 옆의 전망데크에 서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전망이 일품이다. 국수봉~옥녀봉으로 뻗어가는 산릉 끄트머리에 동해가 펼쳐지고, 산과 바다, 농촌과 도시가 어우러진 풍광은 한 폭의 그림이다
울산 망부석 옆의 전망데크에 서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전망이 일품이다. 국수봉~옥녀봉으로 뻗어가는 산릉 끄트머리에 동해가 펼쳐지고, 산과 바다, 농촌과 도시가 어우러진 풍광은 한 폭의 그림이다

서예에 쓰이는 검은 물감은 ‘먹’이라 부르고, 한자로는 ‘묵墨’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먹 생산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지명의 하나로 경북 경주의 묵장墨匠(먹을 만드는 장인)산山이 나온다. 이 묵장산은 지금의 경주시와 울산광역시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이름과 달리 먹 생산과는 관련이 없다.

울주군 두동면 상월평마을의 동쪽 가장 높은 781.2m봉이 묵장산이며, 치술령鵄述嶺은 그 남쪽에 솟은 766.1m봉에 표기돼 있다. 결국 묵장산은 치술령의 어엿한 주산인 셈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박제상이나 치술신모의 설화와 연관성이 있는 인근 치술령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쪽에서는 치술령을 ‘먹정산’으로 불렀다. 멀리 보이는 치술령이 언제나 거무스레하게, 즉 먹처럼 검게 보였기 때문이란다. 그나마 최근 호미지맥(낙동정맥 백운산 삼강봉에서 분기해 포항 호미곶까지 도상거리 약 106km의 산줄기)과 시·도 경계 산행을 하는 산꾼들이 많아지면서 서서히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호미지맥에서도 삼강봉을 제외하고 고도가 제일 높은 묵장산은 경주의 산이면서 울산의 산이기도 하다. 산행은 원점회귀가 가능한 울주군 두동면 상월평마을회관이 기·종점으로 마을회관 뒤쪽 월평교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상월평마을회관 뒤쪽 월평교를 건너면 정면으로 펼쳐지는 묵장산의 산세. 왼쪽 높은 봉우리가 묵장산이다
상월평마을회관 뒤쪽 월평교를 건너면 정면으로 펼쳐지는 묵장산의 산세. 왼쪽 높은 봉우리가 묵장산이다

상월평마을 버스정류장에 내리면 바로 마을회관이다. 마을회관 뒤쪽 중리천에 걸린 월평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꺾는다. 하천을 끼고 걸으면 정면에 묵장산과 치술령의 산세가 펼쳐진다. 맑은 물이 흐르는 중리천은 묵장산이 발원지로 형산강의 한 지류이기도 하다. 월평교에서 약 500m에 이르러 컨테이너 가건물이 보이는 지점에서 왼쪽 산으로 진입한다.

산길로 들면 초입은 그런대로 길이 넓고 좋다. 능선에 자리한 묘지로 연결되는 길이다. 처음으로 밀양 박씨묘를 만나고 능선 길 따라 월성 이씨, 순흥 안씨묘를 지나 묵은 묘, 파묘, 빗돌 없는 묘 등이 연이어진다. 지능선 상의 첫 봉우리인 389m봉은 용궁 김씨묘가 자리할 뿐 수목이 우거져 전망은 기대할 수 없다. 오를수록 짙어지는 숲이 하늘마저 가리지만 산길은 큰 어려움 없이 이어진다.

주능선도 아닌 한적한 지능선의 나지막한 봉우리에 자리한 지적삼각점(울산 31)은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갑다. 잠시 뒤에 닿은 455.3m봉은 독도에 유의해야 할 곳. 동쪽으로 진행해야 한다.

묵장산으로 오르는 능선 길은 빽빽하게 들어찬 수목으로 전망이 열리지 않는다.
묵장산으로 오르는 능선 길은 빽빽하게 들어찬 수목으로 전망이 열리지 않는다.

치술령엔 신라 박제상 전설 

이제부터 경북과 울산광역시의 경계를 이루는 능선 길이다. 주변을 분간하기 어려운 숲 속에 산길마저 희미하다. 간혹 선답자들의 리본이 보이긴 하지만 길 찾기에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 곳이다. 경사가 급하고 낙엽이 깔린 산비탈을 내려서면 안부에 이른다. 여기서도 잠시 올려치는 능선을 놓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나지막한 봉우리를 지나면 능선 길은 완만하게 이어지다가 삼각점(언양 307)이 있는 567.8m봉에 닿는다.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 남쪽 묵장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567.8m봉에서 내리막길로 안부를 지난다. 이어지는 산길은 산허리를 따르다가 백양골 상부의 송전철탑을 만난다. 동쪽으로 뻗어가던 산릉이 남쪽으로 방향을 틀며 경주시 외동읍 제내리마을로 내려서는 갈림길이다. 여기서부터는 제법 번듯한 산길이지만 치술령까지는 힘겨운 오르내림을 몇 차례 거듭해야 한다.

계절이 여름으로 달려가며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가 후끈하다. 더군다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에 숨소리마저 거칠다. 640.3m봉에 닿지만 빽빽하게 들어찬 수목에 전망은 열리지 않는다. 한 굽이 내려섰다가 올려치면 700.7m봉. 치술령을 거쳐 온 호미지맥이 경주 마석산으로 이어가는 분기점이다. 이제 호미지맥을 밟는다. 경주 석계자연농원 갈림길과 폐헬기장을 지나 묵장산에 닿는다.

묵장산은 나무에 걸린 준·희 선생의 표지판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묵장산은 나무에 걸린 준·희 선생의 표지판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정상석은 없다. 전망이 좋은 것도 아니다. 나무에 걸린 준·희 선생의 ‘호미지맥 묵장산 781.2,m’ 표지판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묵장산은 먹장산으로도 불렀다. 먹장에서 ‘먹’은 검은색을 뜻함이요, ‘장’은 구들장(구들돌)과 같은 음차로서 이는 석탄이 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먹장산 자락의 울주군 두동면 월평리와 봉계리 일부를 먹장墨匠마을로 불렀다. 지금도 먹장골이란 지명이 있으며, 일제강점기에 이곳에서 갈탄 채굴이 이뤄졌으나 경제성이 없어 중단됐다고 한다.

치술령으로 향한다. 지맥을 따라가는 산길은 산꾼들의 발길이 잦은 듯 뚜렷하다. 718.4m봉을 넘어 약수터 갈림길을 스치듯 지나 급경사를 오르면 하늘이 열리면서 치술령에 오른다. 널찍한 산정에는 ‘神母祠址신모사지’ 빗돌이 자리하고, 주변에는 표석과 이정표, 삼각점(울산 24, 2006년 복구)이 있다.

치술령은 망부석望夫石 전설로 유명하다. 신라의 충신 박제상이 왜국에 잡혀가자 그의 아내가 딸들을 데리고 이곳에 올라 왜국을 바라보며 통곡하다 죽어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후세 사람들은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김씨 부인이 산신이 되었다 하여 치술신모로 높이고 사당을 지어 제를 지냈다고 한다.

하산길 곳곳에 이정표와 벤치가 놓인 쉼터가 있다.
하산길 곳곳에 이정표와 벤치가 놓인 쉼터가 있다.

망부석에서 파노라마 전망 펼쳐져

치술령은 솔개鵄나 수리述 등 새가 사는 높은 곳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산이나 봉우리가 아닌 고개嶺인 까닭은 울산 두동 쪽 사람들이 경주로 넘나들던 고개이기 때문이다.

치술령엔 두 개의 망부석이 있다. 정상 동쪽 30m 아래의 경주 망부석과 서쪽 가까운 곳에 울산 망부석이 있다. 한때 두 시市에서는 서로의 망부석이 진짜라는 논증을 펼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어느 쪽이 설화 속의 진짜 망부석인지는 가려내지 못했다고 한다.

하산은 지맥을 따라 울산 망부석이 있는 서쪽 능선으로 향한다. 곧 만나는 법왕사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울산 망부석이다. 옆에 전망데크를 설치하고 안내판도 서 있다. 바위에는 망부석이란 한자가 새겨져 있다. 무엇보다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주변 전망이 일품이다.

산으로 진입하는 산길 입구에는 체인을 걸어 놓았지만 통과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산으로 진입하는 산길 입구에는 체인을 걸어 놓았지만 통과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국수봉~옥녀봉으로 뻗어가는 산릉 끄트머리에 동해가 펼쳐진다. 울산, 경주의 갯가에는 현대식 건물의 도시가 형성되고, 산자락의 이전·구미·만화·은평리는 연화산, 국수봉, 치술령 등 산이 둘러싼 오목하고 아늑한 삶터로 다가온다. 산과 바다, 농촌과 도시가 어우러진 풍광은 한 폭의 그림이다.

발길을 옮기면 망부석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김씨 부인이 남편의 무사귀환을 위해 치성을 드리며 이용했다는 ‘참새미’가 있다.

능선 길의 첫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이으면 643.8m봉을 넘는다.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나무의자가 놓인 쉼터 갈림길. 하산길에 여러 갈래의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 상월평마을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곳곳에 설치된 이정표를 잘 살핀다면 크게 헷갈릴 곳은 없다. 당산마을 갈림길에서 호미지맥과 헤어져 420.4m봉을 지난다. 푸르름이 가득한 숲길에 벤치가 놓인 쉼터가 있어 숨을 고르고 땀을 식힌다.

침목 계단 길을 내려서면 다시 못안마을 갈림길. 상월평마을로 향하면 숲길은 경사가 누그러지고 이정표 없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샛길로 빠진다. 빗돌 없는 묘지를 만나고 이내 유지터마을, 곧 산행을 시작했던 상월평마을회관(버스정류장)에 닿는다.

술령에는 ‘신모사지’빗돌이 자리하며 망부석 전설로 유명하다.
술령에는 ‘신모사지’빗돌이 자리하며 망부석 전설로 유명하다.

산행길잡이

울주군 두동면 상월평마을회관(버스정류장)~월평교~산길 진입~밀양 박씨묘~389m봉~지적삼각점봉~455.3m봉~567.8m봉~제내리 갈림길~700.7m봉(호미지맥 분기점)~묵장산 정상~치술령~울산 망부석~643.8m봉~당산마을(호미지맥) 갈림길~420.4m봉~유지터마을~상월평마을회관 버스정류장 <약 14.5㎞, 6시간 30분 소요>

교통

울산광역시 중구청, 학성공원, 동강병원 정류장을 거치는 봉계행 시내버스 802번(052-223-7640)을 타고 상월평 버스정류장에 내리면 된다. 울산시내에서 첫차(05:50)를 시작으로 막차(22:00)까지 1일 13회(1시간 12분 간격) 운행한다.

숙식(지역번호 052)

울산시외버스터미널 주변에는 모텔 등 숙소가 많아 숙박에 어려움은 없다. 터미널 인근의 착한물고기 달동점(256-3839)은 생선구이 전문점. 터미널 맞은편 고향밥집(256-4866)은 찌개류와 집밥 같은 정식이 주 메뉴다. 삼산밀면 전문점(271-6140)도 많이 알려진 맛집. 

볼거리   

치산서원은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 1호로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에 조성한 신라의 충신 박제상의 유적지이다. 치산서원 내에는 충렬공 박제상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충렬묘, 국대부인, 치술신모로 추앙받는 박제상의 부인 금교 김씨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신모사, 박제상의 장녀 아기와 삼녀 아경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쌍정려가 있다. 특히 박제상 기념관은 신라 사람들의 생활상과 박제상에 얽힌 이야기들을 보여 주는 전시관으로 한 번 둘러볼 만하다.

본 기사는 월간산 7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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