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시렁] 네가 발광하면, 나는 열광한다

  • 글·그림 윤성중
    입력 2021.07.07 10:11 | 수정 2021.07.07 14:01

    산에 가서 등산만 하고 오는 건 싫다고 하는 남자의 ‘등산 중 딴짓’
    등산시렁 <1> 반딧불이를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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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평저수지 반딧불이 서식지 인근을 걷고 있다. 임도가 잘 뚫려 있는데, 여기는 ‘천년의 숲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산책로로 사용되고 있다. 천년의 숲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위 나무들의 키가 꽤 크다.
    내 나이 올해 40세. 지금까지 반딧불이를 딱 두 번 봤다. 군 복무 중 경계근무를 서다가 한 번, 그리고 며칠 전 이번 반딧불이 취재를 위해 시골 숲에 갔다가 한 번. 내 아내를 비롯해 주위 친구들 대부분은 아직 반딧불이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하면서 나는 의아한 가운데 사실 지금 아무한테나 자랑하고 싶은 심정이다. 누군가는 그까짓 거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길 텐데, 반딧불이는 분명 대수로운 곤충이다.
    나는 이 곤충이 인간에게 어떤 특별한 감정을 주는, 감정의 강도를 세기의 기준으로 분류했을 때 ‘톱 10’ 안에 드는 생명체 중 하나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를테면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숲은 여름에 볼 수 있는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다. 한겨울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면 누구나 그렇듯, 어두운 숲에서 반짝거리는 이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따스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동시에 가슴이 쿵쾅대며 설렐 것이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길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의 반가움! 이때 얼굴에 나타나는 미소 혹은 함박웃음이 반딧불이를 볼 때도 똑같이 살아날 거라고 장담한다.
    안타깝지만 반딧불이의 이런 점이 아이러니하게 그들의 서식처를 없애는 원인이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자연환경의 인위적인 개발은 둘째치고, 인간이라면 저처럼 예쁜 것에 욕심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반딧불이 숲이 우리 집 뒤에 있다면 나는 매일 밤마다 숲에서 산책할 것이다. 분명 나 같은 사람이 여럿이라 숲은 금방 사람들로 북적일 테고, 설령 사람들이 제 아무리 주의를 기울이며 반딧불이를 구경하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내가 반딧불이라면 낯선 냄새와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다른 데서 살 길을 찾지 않을까 싶다. 예쁘고 잘 생기면 피곤하다는 말이 확실히 맞다.
    ‘반딧불이 출몰 장소’에 관해 여기에 설명하는 건 지금 반딧불이가 처한 상황에 해가 될 수 있다. 이들의 서식지는 점점 줄어드는데 애써서 거길 찾아가 “여기 반딧불이 있다!”고 외쳐 사람들이 모이게 하는 점이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반딧불이의 가치를 안다면 그들이 사는 곳을 더욱 신경 써서 보호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을 거다. 무엇보다 나는 월간<山>의 독자들을 믿는다. 이 글에 관심이 있다면 확실히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일 테니까. 그래도 또 당부한다. 반딧불이를 곁에 두고 오래 살고 싶다면 각별히 자연을 살피고 또 주의하자!
    “나 독하니까 함부로 건들지마!”
    반딧불이의 특성을 잠깐 설명하자면, 반딧불이의 종류, 그러니까 몸에서 빛을 내는 ‘발광곤충’은 전 세계에 걸쳐 무려 2,000여 종에 이른다. 그중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종은 애반딧불이, 파파라반딧불이, 운문산반딧불이, 늦반딧불이 4종류가 고작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면 반딧불이는 왜 발광기능을 가지게 됐을까? 꼬리 부분의 빛이 천적에게 쉽게 발각될 텐데?
    반딧불이에 관한 연구로 알려진 책 <경이로운 반딧불이의 세계>(새라 루이스 저)를 보면 ‘이 발광은 잠재적 포식자를 물리치기 위한 경고신호로 생겨났다. 이 발광 능력은 오직 한참이 지난 뒤에야만, 그리고 오직 특정한 반딧불이 혈통 내에서만 성충의 구애 신호로 굴절적응한 것이다. 반딧불이는 사랑을 찾기 위해서뿐 아니라 제 독성을 동네방네 알리기 위해서 불빛을 낸다’고 한다.
    새의 깃털이 처음에는 체온을 조절하기 위한 것이었다가 나중에는 비행을 위한 요소로 진화했다는 주장의 다른 예다. 반딧불이의 발광이 인간에게는 예쁘고 신기하지만 주변의 다른 생물들에겐 비호감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외에 반딧불이는 살면서 달팽이를 무려 70마리 정도 먹어 치우고 유충이었을 때보다 몸집이 300배가량 커진다. 몸이 다 자란 성충은 식욕이 없고 남은 일생을 성욕을 채우기 위해 산다. 하지만 암컷은 때때로 수컷을 발광으로 유인해 잡아먹기도 한다. 이런 사실만 봐도 반딧불이도 사실 인간과 마찬가지로 팍팍한 삶을 산다. 쓸데없이 인간 좋으라고 발광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반딧불이 서식지를 SNS, 특히 인스타그램으로 검색해서 찾았다. 반딧불이 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분명 있을테고, 그렇게 촬영한 근사한 반딧불이 사진을 효과적으로 전시할 만한 공간이 인스타그램이기 때문이다(인스타그램에는 특히예쁘고 화려한 사진들이 많다). 전라북도 무주, 제주도 등이 주요 출몰지였지만 서울에서 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더 검색해 보니 충남 아산에 있는 ‘궁평저수지’에서 촬영한 반딧불이 사진이 볼 만 했다. 집에서 차로 1시간 30여 분 거리라 부담이 덜했다. 간단하게 배낭을 싸고 궁평저수지로 달려갔다.
    “휴대폰 불 켜지 마세요!”
    저녁 8시쯤 입구에 도착했는데 차가 가득했다. 차를 세우고 외길로 이어진 임도를 따라 걸었다. 30분쯤 걸으니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길옆으로 카메라를 받치고 선 사람들이 가득한 광경과 마주했다. 50~1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거나 카메라 화면을 보면서 반딧불이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스폿Spot이 4km에 이르는 임도에 3곳 정도 됐는데 스폿마다 사람이 많았다.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한 경쟁도 치열했는데, 그들 무리 중간에 껴서 가만히 서 있었더니 화면을 가린다면서 비켜달라는 말을 수차례 듣기도 했다.
    분위기가 살짝 험악하기도 했다. 기록할 목적으로 수첩을 꺼내어 휴대폰 손전등을 비추니 곧바로 “불 켜지 마세요!”라는 외침이 들렸다. 촬영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불을 켜지 말라는 것인지, 아니면 반딧불이가 싫어할 수 있으니 삼가하라는 것인지 의도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관리자로 보이는 듯한 사람이 돌아다니면서 촬영자들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우리는 여러분이 여기 촬영하러 오는 거 싫어요. 거기 풀밭에서 다 나와 주세요. 여기 풀이 많았는데 다 뭉개졌어. 여러분들이 반딧불이 서식지를 다 망치고 있는 거라고! 주의 좀 해주세요.”
    관리자의 말에 대꾸하는 사람은 없었다.
    밤 10시가 되자 반딧불이가 하나 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은 조용해졌고 “찰칵, 찰칵” 소리만 감돌았다. 반딧불이는 사진에 나온 것처럼 무더기로 나타나지 않았다. 기껏 두 세 마리가 깜빡이면서 돌아다니는 정도였다. 반딧불이 가까이로 가거나 잡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랬다면 궁평저수지는 촬영자들의 불만 섞인 고함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스폿이 아닌 곳에도 반딧불이가 눈에 띄었다. 연신 깜빡이면서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짠한 기분이 드는 동시에 뭔지 모를 분위기에 휩싸여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본 기사는 월간산 7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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