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바다에서 온 해군 아들과 함께 오른 정병산

  • 글 사진 김혜숙 경남 창원시
    입력 2021.08.3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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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산 정상에 아들과 나란히 섰다.
    코로나19로 인해 단체 산행은 이미 오래전 꿈에 불과하고 이제는 홀로 산행이거나 둘, 셋 정도로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산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사람들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그저 담담하게 솟은 산도 맘대로 가기 힘들어진 시기다.
    이런 시기에 모처럼 해군 부사관으로 근무하는 아들이 배 수리를 위해 집근처로 와 있게 되어 주말에 동네에 자리한 정병산精兵山(566m)을 다녀왔다. 먼 산은 자주 갔었지만 오히려 가까이 있는 동네 산을 즐겨 찾을 기회가 없었다.
    신라시대 진경대사가 강원도 명주에서 김해 서편에 복림이 있다는 말을 듣고 진례에 도달해 절을 세우고 봉림이라 불렀다고 한다. 고대에는 ‘림’자가 들어가면 길지라고 여겼기에 봉림사鳳林寺와 이에 속한 사찰은 무척 융성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마야 부인이 전단향 나무로 만든 평상 위에서 석가모니를 잉태하는 꿈을 꾸었다 하여 고려시대 이후 정병산은 ‘전단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정병산은 오히려 이 전단산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다 1962년 발간된 <창원 군지>에 정병산으로 기록돼 있어 이에 의거해 정병산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정병산의 높이는 566m로 창원 외곽을 둘러싸고 있다. 정병산에서 내려다보면 창원 시내가 다 보이는 탁 트인 조망이 시원하다. 정병산과 비음산(510m), 대암산(669m), 불모산(801m)을 잇는 종주 코스가 이름나 있다.
    본격적인 오르막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우거진 숲길이다. 워밍업하듯 아들과 손을 잡고 걸었다. 싱그러운 나뭇가지에는 초록의 영롱한 빛이 바람결에 어른거리며 머물고 있고,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초입부터 오르막이라 힘겹게 오르긴 했지만 아들이 앞에서 힘을 주며 손을 잡아 주었다.
    이름 모를 산새들이 왜 이제 왔냐고 나무라는 듯 지저귀며 속삭였다. 숨을 헐떡이며 뒤처지는 나를 보며 아들은 “엄마, 이제는 뒤바뀌었네. 예전에는 엄마가 앞서서 다 왔다고 거짓말로 나 끌고 갔잖아”라며 농담을 건넨다.
    아들의 말에 문득 나이가 들긴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심한 변명으로 코로나로 인해 등산을 1년 가까이 쉰 것이 더 큰 요인이라는 분석도 해봤다. 이유야 어찌됐든 몸은 확실히 무거웠다. 그래도 힘든 산길에 반겨주는 각시붓꽃의 보라색, 붉은병꽃의 주홍빛과 철쭉의 분홍색이 초록의 나무들 사이에서 살짝살짝 고개를 내밀어 주어 힘겨움을 잊게 해주었다.
    푹신한 평지 길을 걷기도 하고 오르락내리락 숲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정병산 정상이다. 미세먼지 없이 화창한 날씨라 창원 시내가 훤하게 보였다. 땀을 식히며 인증사진을 남기고 정병산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데 발이 무거워졌다.
    “엄마. 다 왔어. 저기 보이네. 힘내”라는 아들의 말이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그 말에 힘이 났다. 봄은 만물이 자라는 계절. 땅에서는 이름 모를 들꽃과 풀들이 여름을 향해 초록의 청량함을 위해 한껏 물이 올랐다. 노란색, 하얀색의 봄꽃들이 반겨주는 정병산 길은 청량감이 넘쳤다.
    장성한 아들과 함께한 정병산 산행은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활력소가 되었다. 동해 멀리서 군 생활을 하는 아들과의 산행이 쉽게 찾아오는 행운이 아니기에 더욱 더 보람찬 시간이고 추억이 되었다.
    인근에 이토록 아름답고 유서 깊은 산이 있다는 것에 또 감사한 하루였다. 정병산 정상석 옆에는 예쁜 꽃이 피어 있었다. 마치 아들과의 산행을 축하하는 양 아름답게 피어 있어 정병산 정상이 한층 더 빛나 보였다. 아들과의 산행이 내 삶 속에 또 하나의 예쁜 추억 사진이 되었다.
    본 기사는 월간산 8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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