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시렁] 상식과 이해가 닿을 수 없는 멋진 신세계

  • 글·그림 윤성중
    입력 2021.08.27 10:02

    <2> 불수사도북을 했다!
    산에 가서 등산만 하고 오는 건 싫은 남자의 등산 중 딴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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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수사도북을 종주 중인 장홍선(맨 앞), 김국태(중간), 나. 우리는 평일 새벽 4시에 공릉동 백세문에서 출발했다. 평일이어서 산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덕분에 도봉산 Y계곡 같은 어려운 코스를 손쉽게 통과했다.
    지금 내 주변은 누가 봐도 이상하거나 탈이 난 곳이 없다. 모든 게 ‘정상’이다. 책장은 기울어지지 않고 바로 서 있고, 콘센트에서 흘러나오는 전기가 컴퓨터를 제대로 작동시키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침 일찍부터 ‘등산시렁’ 원고를 쓰고 있는데, 이것은 곧 우리 가족의 생계가 달린 일이니 아내는 이런 나를 보고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일체의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즉 나는 인간이 가진 물리적, 사회적, 도덕적 상식들이 통용되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이  ‘이해되는’ 세상에서 무리 없이 살고 있다. 그런데 최근 나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였다. 불암산(508m), 수락산(637m), 사패산(552m), 도봉산(신선대, 726m), 북한산(백운대, 836m)으로 이어진 47㎞에 이르는 도로와 능선을 14시간 동안 종주한 것이다(일명 불수사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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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수사도북 중 거쳐야 하는 정상의 표지석들. 불수사도북 완주자들 대부분은 이 표지석이 놓인 정상에 올라 인증한다. 여기 나온 정상을 꼭 거쳐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인증하지 않을 경우 찜찜할 수 있다.
    월간 <산>의 열혈 독자라면 내가 벌인 이 ‘일’이 어떤 이유로 생겨났고 그 배경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하겠지만 산 타는 일에 관심 없는 나의 아내 같은 사람에게 불수사도북 종주는 ‘등 따시고 배가 부르니 하는 헛짓’ 일 수 있다. 
    일반인의 입장에서 불수사도북은 당연히 쓸모없는 단어이면서 쓸데없는 행위다. 이걸 통해서 경제적 이득을 얻는 건 고사하고, 다른 누구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잘못하면 몸이 상할 수도 있다. 이해할 수 없고 비상식적이며 미스터리한 행동이다. 
    그렇다면 ‘21세기 최첨단 AI 디지털 시대에 불수사도북은 어떤 의미와 목적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기쁨’이라고 답하겠다. 그 종주와 완주를 통해서 얻는 기쁨의 크기는 불수사도북 전체를 합한 규모보다 크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덧붙이면 인간의 상식과 이해를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불수사도북의 세계는 다른 사람과의 갈등 없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한 ‘멋진 신세계’다. 그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라고 한다면 불수사도북 종주는 절대 무의미한 게 아니라고 나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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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수사도북 고도표. 달리면서 GPS시계의 배터리가 다 된 바람에 끝까지 측정하지 못했다. 여기서 내 기준으로 가장 힘든 코스는 도봉산의 계단 코스, 우이동에서 영봉으로 가는 오르막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다
    나의 달리기 기록은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10km 47분, 풀코스 마라톤을 4시간 30분에 완주했다. 트레일러닝 대회에 나가면 달리는 도중 늘 다리에 쥐가 나서 함께 참가한 친구들보다 1시간 정도 늦게 골인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게을러서 지금껏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뛴 누적 거리가 고작 200km에 이른다. 이른바 나는 만년 ‘런린이’로서 불수사도북을 무사히 완주할 실력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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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 중 가장 빠른 기록으로 완주한 장홍선이 챙긴 장비들. 불수사도북의 코스는 대략 3구간으로 나눌 수 있다. 불암산과 수락산이 1코스, 사패산과 도봉산이 2코스, 북한산이 3코스인데, 각 코스마다 필요한 물의 양은 1리터 정도다. 우리가 종주한 날 기온이 25~28℃ 정도 됐다. 마지막 북한산에서 식수가 모자란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어떻게 이런 대단한 도전을 했고 성공했느냐, 바로 같이 종주한 친구들 김국태, 장홍선 덕분이다. 어느 날 그들이 불수사도북을 한다고 나에게 연락했는데, 여기서 내가 ‘어쩌라고’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면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말에 큰 뜻 없이 “나도 하겠다!”고 답했다. 불수사도북 코스에 관해 아예 몰랐던 건 아니다. 당시 이 코스에 관해 내가 알았던 건 대략 그 거리가 50㎞에 이르며 누적고도는 4,000m 가까운, 국내에서 아주 어려운 트레일러닝 코스로 손꼽힌다는 것뿐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이미지 때문에 누구에게도 섣불리 “불수사도북 하자”고 할 수 없었는데, 마침 그들이 대신 나서서 안전장치를 푼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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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종주에서 나에게 큰 도움을 준 건 ‘큐-업’이라는 약물이다. 수험생들이 공부하다가 졸릴 때 먹는 용도인데, 나는 이번 트레일러닝에서 사용했다. 달리다가 다리에 쥐가 나지 않은 건 저 약물 덕분이라고 본다.
    밀려오는 기쁨, 기쁨, 기쁨!
    풀린 안전장치의 역할이 꽤 효과적이었다. 한다고 했으니 ‘그들에게 짐이 되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고 훈련에 돌입했다. 훈련 기간은 총 두 달. 한 달은 일반 도로에서 조깅을 하면서 누적거리 150km를 채웠다. 나머지 한 달은 일주일에 2회 정도 불암산과 수락산의 오르막을 빠른 속도로 기는 훈련을 했다. 역시 누적거리는 150km. 나름 열심히 달렸다. 이윽고 훈련을 마무리하고 6월 중순 새벽 4시, 불암산 초입인 공릉동 ‘백세문’ 앞에 셋이 나란히 섰다.
    장홍선은 10시간 이내에 완주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김국태와 나는 12시간을 넘기지 말자고 했다. 결과는 장홍선은 12시간 20분(중간에 길을 여러 번 헤맴), 김국태는 13시간 47분, 나는 대략 14시간(끝에 길을 잘못 들어 구기동으로 내려왔다)에 걸쳐 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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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백운대로 향하는 길 옆에 작은 폭포가 있다. 여기서 몸을 흠뻑 적셔도 금방 마른다. 작은 폭포에서의 휴식은 불수사도북 종주의 묘미 중 하나다.
    소감은 이렇다. 김국태는 “같이 완주한 거 자체는 감격스러웠지. 그런데 목표한 기록이 아니어서 아쉽기도 해”, 장홍선은 “기쁜 건 당연하고, 시원찝찝하네”였다. 나는 앞서 설명했듯이 엄청나게 기뻤다. 기쁨의 파도가 종주가 끝나도 날마다 밀려왔다(지금까지도!). 
    이것이 왜 기쁜지 따져보면, 종주 중 다리에 쥐가 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덕분에 생각보다 빠른 기록이 나왔기 때문이다. 기쁜 이유가 단지 이것만은 아니지만 대략 그렇다. 덕분에 나는 내가 이전보다 더 나아졌다고 여겼고, 나아진 나의 능력으로 더 큰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고, 그로 인해 더 큰 기쁨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고, 그러면서 내가 바라는 완벽한 ‘나(지금보다 더 근육질이며 더 잘생겼으며, 돈이 많고 근사한 자동차를 가졌고, 좋은 직장, 능력을 갖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획득했다고 스스로 감동했다. 
    또 그 기쁨은 내가 바라고 바랐던 것을 누군가에게서 선물로 받았을 때 느끼는 그것이며, 그 선물을 밥 먹을 때, 잠잘 때, 일할 때, 옆에 끼고 착용하고, 바라보는 흐뭇함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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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백운대에 선 김국태와 나. 우리가 여기 도착했을 때 장홍선은 대동문 근처에 있었다. 이곳에 이르면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 왜 여기까지 왔나?’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뒤돌아보면 정상에서 본 경치가 마음속 보석으로 빛난다.
    불수사도북 무사 완주 TIP
    1 불수사도북 실행 전 최소 두 달 동안 누적거리 300km 정도를 채우는 것이 좋다.
    2 불수사도북 실행 전 최소 한 달 동안 일주일에 2회 정도 산에서 달리는 훈련을 하면 좋다(특히 장거리).
    3 불암산과 수락산, 사패산과 도봉산, 북한산. 이렇게 3코스로 묶어서 불수사도북 실행 전 답사를 하면 좋다.
    4 쉬는 구간은 회룡역 부근, 우이동으로 잡고 여기서 충분히 많이 먹는 것이 좋다.
    본 기사는 월간산 8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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