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클라이밍, 화려한 '올림픽 신고식’

  • 글 서현우 기자
  • 자문 매드짐 김인경 대표
    입력 2021.09.02 10:33 | 수정 2021.09.08 13:56

    [다시보는 도쿄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 명장면

    ‘콤바인’ 방식의 채점 많은 문제점 남겨
    다양한 기술 요구한 점은 평가할 만
    서채현, 파리에선 메달권 진입 가능성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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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괴적인 실력을 선보이며 금메달을 목에 건 얀야 간브렛. 사진은 결승 볼더링 완등 후 포효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도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스포츠클라이밍이 화려한 신고식을 마쳤다. 올림픽의 영향으로 전국 각지의 실내암장에 클라이밍을 체험해 보려는 인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몇 유명 암장에는 주말이면 대기열까지 생길 정도라고 한다. 비록 한국 선수들의 입상은 실패했지만 전 세계 최고수들이 모인 대회답게 높은 수준의 경기가 펼쳐졌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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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 여자 결선에 진출한 얀야 간브렛(왼쪽), 미호 노나카가 리드 종목의 루트를 망원경으로 관측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또한 사솔, 김자인 등 현역 선수들의 해설도 일조했다. 다만 이들이 스포츠클라이밍 종목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일부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해설이 조금 더 상세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들을 위해 도쿄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 경기 중 의문스러웠던 장면이나, 역사적인 장면들을 다시 되돌아본다. 해설 자문은 스포츠클라이밍 유소년 국가대표 감독직을 역임하고, 국내 대회에서 해설로 활약했던 김인경 매드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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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몸이 가벼운 선수였던 제시카 필츠가 콤바인 방식으로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스피드 종목에서도 어느 정도 성적을 내기 위해 대폭 근육을 증량했다. 사진 연합뉴스
    #1 콤바인 방식이 선수를 망쳤다
    서현우 기자(이하 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림픽 대회가 끝났다. 가장 먼저 데뷔전이 리드, 볼더링, 스피드 각 세 종목의 순위를 곱해 얻은 값으로 전체 순위를 매기는 콤바인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세계 최고에 가장 가까운 아담 온드라(체코)는 5년 전 콤바인 방식이 예고되자 지속적으로 올림픽을 보이콧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바 있다. 지금껏 리드나 볼더링, 스피드 각 종목별로 기술이나 근육을 최적화시킨 선수들에게 타 종목까지 병행시키는 건 옳지 않다는 의견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결국 대회에 출전했지만.
    김인경 대표(이하 김) 다소 공격적으로 얘기하자면 선수들이 몸을 ‘버렸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제시카 필츠(오스트리아)의 경우 아주 얇고 가벼운 선수인데 스피드를 위해 몸을 벌크업하면서 자신의 장점이 약해졌다. 토모아 나라사키(일본)는 리드를 위해 몸이 거의 반쪽이 될 정도로 감량한 게 보인다. 파리 올림픽부터 종목이 분리될 것이란 점이 천만 다행이다. 선수들이나 동호인들이나 리드, 볼더링, 스피드 모두 별도 종목으로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다.
    #2 관람스포츠로 정착하려면 용어 통일해야
    예선 경기 중 한 방송사의 캐스터가 해설 위원의 말을 자꾸 끊고 규칙이나 기술 설명이 미흡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미 공론화된 내용 외에도 꼬치꼬치 지적하자면 스피드 클라이밍의 벽의 각도는 95°인데 직각의 벽이라고 표현하거나, 볼더링 문제를 ‘코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물론 크게 문제될 건 아니고 생소한 클라이밍 관련 단어들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풀려다가 일어난 사고 정도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클라이밍 용어가 명쾌하게 통일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가령 ‘난이도(리드+볼더링)’라고 자막을 단 경우만 봐도 그렇다. 통상적으로 리드 종목을 한국어로 번역해 난이도라고 하지, 난이도 안에 리드와 볼더링이 속해 있다고 분류하지 않는다. 
    볼더링도 올라야 되는 한 단위를 지칭할 때 해외에선 ‘볼더’라고 하며 국내에선 코스가 아니라 ‘문제’라고 말한다.
    과거 축구의 ‘센터링’이란 말이 사용되다가 없어진 것처럼 앞으로도 관람스포츠로서 스포츠클라이밍이 자리를 잡으려면 용어를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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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종원 선수의 리드 경기에서 확보자가 로프가 천 선수의 다리에 꼬이지 않도록 오른쪽으로 긴급히 이동해서 확보를 보는 모습. 일반 암벽 등반이라면 등반자에게 로프 반대편으로 이동해 달라고 요청하겠지만 대회인데다 이미 등반을 시작했기에 확보자가 센스 있게 대처한 모습이다. 이후 등반 중 천 선수가 로프를 반대로 넘기자 확보자는 다시 진행방향의 반대편인 왼쪽에 선다. 사진 IOC
    #3 천종원 예선 리드 경기, 확보자(빌레이어)는 무죄인 듯
    일부 동호인들은 천종원 선수의 예선 리드 경기에서 확보자가 제대로 로프를 주지 않았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해당 장면을 다시 보면 천 선수가 3번째 퀵드로에 로프를 걸기 위해 로프를 당겨 뽑아낼 때 이를 충분히 내어 주지 않아 멈칫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 다른 선수들은 왼쪽에서 확보를 시작하는데 천 선수만 진행방향인 오른쪽에서 확보를 시작한다.
    나도 얼핏 봤을 땐 이례적인 상황으로 보였다. 그런데 하나하나 따지면 큰 문제는 아니었다. 먼저 다른 선수들도 3번째 퀵드로에 로프를 걸 때 확보자들이 충분히 내어 주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해당 자리에서 선수마다 로프를 거는 타이밍이 각기 달라서 일어난 문제로 보인다. 또 크럭스(등반 중 난이도가 급격히 어려워지는 구간)가 아니라 등반에 큰 영향을 끼치지도 않았다.
    두 번째로 오른쪽에서 확보를 시작한 건 확보자의 영리한 움직임이었다. 경기를 시작할 때 천 선수를 보면 다리에 로프가 꼬여 있는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왼쪽에서 확보를 시작했으면 로프가 천 선수의 다리에 나선형으로 얽힐 수 있는 상황이라 확보자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움직여서 풀어 준 것이다.
    여담으로 확보자가 문제를 일으킨 경우 심판이 이를 먼저 지적하거나, 코치진이나 선수가 항의하고 심판이 이를 받아들이면 재등의 기회를 주는 것이 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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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4초 만에 15m의 벽을 올라 스피드 클라이밍 여자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알렉산드라 미로슬라프. 사진 연합뉴스
    #4 스피드 클라이밍 여성 세계 신기록
    기록 갱신의 실마리를 남기다
    알렉산드라 미로슬라프(폴란드)가 결선에서 6.84초 만에 완등해 스피드 클라이밍 여자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다. 관전 포인트를 짚자면?
    세 가지 요인이 있다. 첫 번째는 미로슬라프의 손과 발의 길이, 신장 등 체구 조건이 스피드 클라이밍에 최적화돼 있다는 점이며, 두 번째는 리듬감이 좋아 동작에 손실이 없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옆에서 같이 뛴 아눅의 역주다. 스피드 클라이밍은 옆 선수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안 보일 것 같아도 선수들은 옆에서 뛰는 선수의 위치와 존재를 정확하게 감지한다.
    아눅도 미로슬라프와 거의 똑같이 오르다가 마지막 터치에서 늦어졌다.
    그렇다. 또 미로슬라프의 등반 방식은 최근 여자부의 스피드 방식의 전형이었다는 점에서 기록 갱신의 실마리를 남겼다고 평가하고 싶다. 남자 선수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동선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1자로 오르려고 한다. 이를 위해 발을 세워서 딛고, 경기 장면을 봐도 로프의 흔들림이 거의 없다.
    반면 여자 선수들은 남자 선수들에 비해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소 축이 흔들려도 발을 세워서 딛지 않고 옆으로 딛어 힘을 최대한 끌어내는 방식을 쓴다. 이제 다음 신기록은 남성들의 1자 주행을 해낼 수 있는 충분한 근력과 신체조건을 가진 선수가 수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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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의 운이 따랐지만 콤바인에 맞춰 종합력을 높여 왔기에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신예 알베르토 로페즈. 사진 연합뉴스
    #5 로페즈 금메달은 콤바인의 수혜, 
    얀야 금메달은 콤바인을 파괴
    우승자 얘기를 해보자. 남자부는 이변이었다. 19세 알베르토 로페즈(스페인)가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콤바인 방식에서 종목 순위를 곱 연산하기 때문에 다른 두 종목에서 하위권을 차지해도, 한 종목에서 1등만 차지하면 메달권에 진입할 수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로페즈는 볼더링 7등, 리드 4등으로 주춤했으나 상대 선수의 실책에 힘입어 스피드에서 1등을 기록했기에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세계 최고수로 평가받는 온드라는 6위가 됐다. 약점인 스피드클라이밍 때문에 결국 높은 순위를 기록하지 못했다.
    콜린 두피(미국), 로페즈 같은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선수들은 콤바인 방식을 시범 적용하던 국제 유스대회에 출전했던 선수들이다. 이들은 백지의 몸에 콤바인에 최적화된 기술과 체력을 새겨 넣을 수 있었다. 기존에 단일종목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은 아무래도 오랜 시간 자신의 종목에 맞춰 기술을 숙달하고 몸을 만들었기에 자기가 취약한 종목을 새로 배우기 어려웠다.
    그런 의미에서 얀야 간브렛(슬로베니아)의 금메달은 그의 천재성과 파괴력을 입증한 결과라고 봐야할 것 같다. 경기를 보면 마치 고양이 같다. 중력을 아주 미세하게 느끼며 몸의 균형을 잡는 능력이 천재적이다. 다른 선수들이 조금씩 미세하게 밸런스를 수정해 가며 진행하는 동작을 얀야는 흔들림 없이 한 번에 넘어간다. 앞으로 한동안 얀야를 꺾을 선수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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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 온드라가 욱일기에서 비롯한 디자인으로 알려진 남자 결승 볼더링 3번 문제에 도전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6 볼더링 문제 ‘욱일기’ 논란, 진짜 문제는?
    리드와 스피드는 정형화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볼더링은 루트 세터(경기장의 홀드를 배치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이번 올림픽 볼더링 문제를 총평해 보자면?
    루트 세터들의 고민들이 엿보인다. 다양한 기술들을 시도해야 하는 문제들이 많아서 인상적이었다. 배달부 자세(세로로 놓인 홀드 사이를 일어서서 스테밍으로 버텨 균형을 잡는 자세), 재밍, 맨틀링, 다이노, 토훅 등 다양한 기술들을 사용하도록 설계됐다.
    문제가 다양한 덕분에 선수들이 자신의 주 종목에 따라서 풀어가는 방법이 달랐던 것도 볼거리였다. 가령 자연 암벽에 익숙한 온드라는 재밍 문제를 정석적으로 재밍으로 풀어간 반면, 재밍에 익숙하지 못한 선수들은 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다른 기술을 시도했다. 리드 선수들은 홀드를 확실히 하나씩 제압해 가며 넘어가려는 경향을 보였다. 마찰을 이용해 잡아야 하는 볼륨형 홀드도 부착된 벽면 사이의 작은 틈에 손톱을 집어넣어 잡아 뜯듯 활용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모두 흥미로운 현상이다. 또한 최신 트렌드에 부합하도록 코디네이션 문제를 많이 넣은 것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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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반적으로 올림픽에서 출제된 볼더링 문제들은 선수들의 개성과 다양한 클라이밍 기술을 모두 엿볼 수 있게 만들었다. 사진 연합뉴스
    코디네이션은 최근 유행하는 개념인데, 정확히 뭔가?
    정의를 말하자면 여러 가지 기술요소와 동작을 연달아 수행해서 제압 불가능한 홀드를 극복하는 것이다. 가령 다이노를 두 번 연속 뛰는 식이다. 굉장히 아크로바틱한 동작을 해내야 되기에 관람의 재미가 극대화된다. 그런 의미에서 욱일기를 본 따 만든 남자 결승 볼더링 3번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김자인 선수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문제제기한 부분이다. 정치적 선전을 불허하는 올림픽에서 해당 디자인을 차용한 문제를 만든 것은 유감이라는 것이 골자다.
    여기선 해당 문제가 욱일기에서 비롯된 것이 맞는지, 욱일기가 전범기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그 문제 자체를 짚어보고 싶다. 그 문제는 볼더링의 가치가 전혀 결여된 것이다. 볼더링이라면 몸의 균형을 끊임없이 흔들고 선수들이 잡고, 뛰고, 버티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는 아예 동작이 없다. 정적인 움직임으로 그냥 작고 잡기 어려운 홀드를 제압하는 것이 전부다. 심지어 두피 선수는 마치 리드를 하듯 초크백을 메고 갔다. 그리고 모든 선수들이 완등에 실패해 변별력을 주지 못했다. 결국 올림픽 결승 무대에 나올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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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를 치르고 있는 서채현. 서 선수는 예선에서 리드 1위, 결선에서 리드 2위를 기록했다. 사진 연합뉴스
    #7 서채현의 파리 메달 전망은 ‘맑음’.
    마지막으로 향후 대회 전망을 얘기해 보자.
    서채현 선수는 예선에서 리드 1위, 결선에서 리드 2위를 차지했다. 향후 리드 종목이 단일종목으로 빠져나오면 리드에서만큼은 김자인 선수의 뒤를 이어 시대를 풍미할 가능성을 보여 줬다. 리드는 기술 습득을 위해 오랜 경험이 필요한 종목이라 순위가 크게 변동하지 않는다.
    반면에 스피드 클라이밍이나 볼더링에선 향후 괴물들이 쏟아질 것으로 본다. 이 종목들은 단기간에 기량을 조성할 수 있어 타 종목 선수의 전환과 유입이 용이하다. 체조나 육상 종목 선수들이 자기 안에서 의외의 클라이밍 재능을 발견하고 진입해 올 수도 있다. 또한 올림픽 종목이 되면서 스포츠클라이밍 인구가 늘어난 만큼, 뛰어난 인재들이 계속 발굴될 것이다. 즉 앞으로 스포츠클라이밍 대회의 ‘보는 재미’가 더 쏠쏠해진다는 말이다.
    *전체 경기영상은 올림픽 공식홈페이지(olympics.com)에서 볼 수 있다. 
    본 기사는 월간산 9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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