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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세계 최고 클라이머들은 어떤 암벽화 신을까?

글 서현우 기자
  • 입력 2021.09.02 10:34
  • 수정 2021.09.0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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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도쿄올림픽] 암벽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얀야 간브렛은 파이브 텐 하이앵글 도쿄 에디션을 신었다. 유연하고 부드러우며 내부 볼륨이 좁은 것이 특징이다. 사진 연합뉴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얀야 간브렛은 파이브 텐 하이앵글 도쿄 에디션을 신었다. 유연하고 부드러우며 내부 볼륨이 좁은 것이 특징이다. 사진 연합뉴스

라 스포르티바, 스카르파, 이볼브, 매드락, 언페럴, 파이브텐, 테나야….

1930년대 처음 등장한 암벽화는 지난 90년간 진화를 거듭했다. 초기엔 단순히 신발 밑창에 고무를 부착한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무수한 암벽화 브랜드들이 독자적인 기술을 적용한 훌륭한 제품들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클라이머들은 자신의 등반 상황과 주 종목에 맞는 제품을 고르면 된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장비빨(?)을 받아 어렵고 멋있는 등반을 하고 싶은 게 모든 클라이머들의 마음이기에 더 좋은 암벽화를 찾기 위해 검색 삼매경에 빠지곤 한다. 이 과정에서 평소 좋아하는 클라이머들이 신는 암벽화도 주의 깊게 살펴본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선 세계 각지에서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가진 클라이머들이 모였고, 각지에서 온 만큼 암벽화도 다양했다. 이들은 어떤 브랜드의 암벽화를 신었을까?

다소 김빠지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후원사’의 암벽화를 신었다. 올림픽 결선에 진출한 클라이머들은 모두 자신을 후원해 주는 브랜드의 암벽화를 신었다. 물론 선수들이 후원 계약을 체결할 땐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와 계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의 암벽화 선택이 순전히 비즈니스적이라고 곡해할 순 없다. 또한 선수마다 족형이나 등반 스타일이 달라 이들의 선택이 내게도 소급될지 미지수다.

다만 주 종목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암벽화 선택이 정해지는 경향성은 참고할 만하다. 리드를 전문으로 하는 선수들은 라 스포르티바사의 암벽화를 주로 활용했다. 리드 클라이밍의 오랜 강자인 야콥 슈베르(오스트리아), 세계 최초로 5.15d를 등반한 아담 온드라(체코), 그리고 한국의 서채현이 대표적이다. 

반면 볼더링 전문 선수들은 스카르파사를 애용했다. 나다니엘 콜맨(미국)이 대표적이며, 리드와 볼더링 모두 훌륭한 실력을 가진 제시카 필츠(오스트리아)도 스카르파 드라고를 신었다. 또한 스피드 종목에서는 라 스포르티바사의 코브라가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됐다.

김인경 매드짐 대표는 이러한 경향성을 “암벽화 브랜드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라 스포르티바는 발 앞끝부터 시작해 엑스자로 뒤꿈치까지 마치 코르셋처럼 발을 쥐어 잡아 주는 것이 특징이라 리드 선수들이 선호한다”며 “스카르파는 발의 앞뒤가 분리된 것처럼 미세한 발 조정이 가능해 볼더링 선수들이 애용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 설명은 각 브랜드의 전반적인 특징이며, 각 개별 제품은 다른 특징을 보이므로 가볍게 참고만 하면 된다. 가장 좋은 암벽화는 비싼 암벽화가 아니라 내 발에 잘 맞는 암벽화다. 


[선수의 선택]

1 라 스포르티바 솔루션 콤프

이번 올림픽에서는 아담 온드라와 서채현 선수가 사용한 제품이다. 야콥 슈베르는 솔루션 콤프의 전 버전인 솔루션을 신었다. 솔루션 콤프의 특징은 발 앞끝과 발뒤꿈치 끝을 극한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점이다. 즉 토 훅이나 힐 훅 등 발을 홀드에 거는 기술을 구사할 때 더욱 정확한 지점을, 안정적으로 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설계 탓에 발가락에 힘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 작은 홀드도 날카롭게 딛고 올라설 수 있다. 

2 스카르파 드라고

드라고는 동호인들과 선수 사이에 꾸준히 인기를 끌어온 스테디셀러다. 길들이기 쉽고 매우 민감하고 부드럽기 때문에 입문용 암벽화 이후 두 번째 선택지로 자주 고려되는 제품이다. 바닥창이 3.5mm로 얇아 홀드의 상태가 잘 느껴지며, 중창이 없이 

PCB-Tension이란 시스템을 사용한 것도 특징. 그래서 마치 양말처럼 느껴지는 암벽화다.

이번 올림픽에서 나다니엘 콜맨과 아눅 자베르가 사용했으며, 제시카 필츠는 드라고 LV를 신었다. 드라고 LV는 발에 더 밀착시킬 수 있도록 드라고를 더 작은 부피Low volume로 만든 제품으로, 같은 사이즈라도 더 암벽화 내부를 좁게 설계한 것이다. 쉽게 말해 ‘칼발’인 사람들이 주요 타깃.

3 라 스포르티바 코브라

남자부에서 스피드 1위를 차지한 안토니오 로페즈(스페인)와 세계 여성 신기록을 수립한 알렉산드라 미로슬라프가 모두 이 제품을 신고 스피드 경기에 임했다. 미로슬라프와 대등한 경기를 펼친 아눅 자베르도 같은 제품을 신었다.

스피드 경기에서 사용되는 암벽화는 보통 슬립온(슬리퍼)이다. 벨크로나 끈이 없이 고무 밴드로 발등을 잡아 주는 형태란 뜻이다. 스피드 경기의 특성상 미세한 발 조정이 필요하지 않고, 단단하게 발을 지탱해 주는 임무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코브라는 오로지 스피드 클라이밍을 위해 개발돼 한 짝의 무게가 170g에 불과하며, 벽에 신발이 걸리지 않도록 디자인됐다.

본 기사는 월간산 9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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