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래산에 올라 일상의 권태를 털어버리다

  • 박정도 부산시 사하구 다대로
    입력 2021.09.15 10:03

    독자기고 감동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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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래산 정상에 선 필자.
    늘 되풀이되는 일상이 따분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요즘은 코로나19로 취미생활이나 운동하는 것도 마땅찮다. 그렇다고 집에서만 지내기에는 너무나 무미건조하다. 그래서 주변의 산을 찾아 오르내리며 생업에 지친 심신을 달래려고 노력한다.
    내가 사는 부산은 바다 도시지만 나지막한 산이 아주 많다. 강과 산, 바다를 두루 갖춘 부산은 사람이 살기에는 나무랄 데 없는 곳이다. 그래서 저절로 애향심이 생긴다고나 할까? 자신의 취향이나 적성에 따라 산이건 바다건 강이건 마음 편하게 찾아다니며 신나게 즐기면 된다.
    나는 생업 현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거나 일상의 권태를 달랠 적에는 주변에 자리한 산을 찾는 편이다. 산은 언제든지 찾으면 포근하게 감싸 주고 말없이 안아 준다. 거인처럼 한 자리에 우뚝 솟은 산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고 산행객을 반가이 맞아들이기에 즐겨 찾을 수밖에 없다.
    지난 휴일에 높이는 낮으나 부산 시가지가 한눈에 보일 정도로 전망이 빼어난 봉래산蓬萊山을 찾았다. 부산 영도구 중앙에 자리한 봉래산은 해발 395m로서 산 전체가 하나의 원추형이다. 봉황이 날아드는 것 같다고 해서 봉래산으로 이름이 붙었다. 신선이 살고 있는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상징성을 갖고 있는 산으로서 봉래산은 중국 전설에 나오는 삼신산 가운데 하나다. 부산 동쪽 바다 가운데 자리해 있으며, 신선이 살고 불로초라는 불사약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중국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으려고 서복을 봉래산으로 보냈다는 유래가 있는 산이다. 
    백성 구휼한 고구마 도래지
    집을 나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봉래산으로 향했다. 배낭엔 도시락과 물, 약간의 주전부리를 준비했다. 도시철도건 시내버스건 한 번 환승해야 봉래산 초입에 도착한다. 나는 도시철도와 영도행 시내버스를 이용해 봉래산으로 가기로 했다.
    봉래산 입구에 도착하니 부산의 명산답게 산행객들로 북새통이었다. 봉래산 입구에서 간단히 몸을 풀고 봉래산을 올랐다.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40분 걸리고 좀 느긋하게 걸으면 한 시간 걸리는 비교적 낮은 산이었다. 산 경사도 그다지 가파르지 않고 중간쯤에는 노약자도 쉽게 오르내리도록 목재 데크를 설치해 두어서 산행하는 데 큰 불편은 없었다. 그야말로 단숨에 오르내릴 수 있는 산길이었다.
    아무리 낮은 산이고 편한 길이라도 여름철이어서 온몸에 비지땀이 솟았다. 덥고 갈증이 생기면 즉시 물을 마셔가며 걸으니 기분이 상쾌했다. 산 아래의 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불어 땀을 식혀 주니 덥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산 정상에 도착하니 많은 산행객이 바다를 조망하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산 정상 전망대에 서니 그야말로 풍경이 빼어나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이렇게 빼어난 풍경을 보려고 산을 찾는 인파가 많은 듯했다.
    전망대에서 한동안 바다와 부산 시가지를 응시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한적한 장소로 옮겨 점심을 먹었다. 비록 낮은 산이었지만 운동하고 먹는 밥은 맛이 일품이었다. 밥과 주전부리를 배불리 먹고 좀 더 쉬었다가 하산길에 들어섰다.
    산 아래로 내려와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의 이모저모를 알 수 있는 ‘영도조내기고구마역사기념관’을 둘러보았다. 조선 시대 이후로 춘궁기 때마다 백성의 굶주린 배를 채워 주었던 농작물이 바로 고구마다. 구황작물인 고구마는 지금도 간식은 물론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가 높다.
    이런 고구마를 처음 들여온 이는 조선 후기 선비 조엄(1719〜1777년)이다. 1764년 당시 조선통신사로 파견됐던 조엄은 대마도에 들러 고구마를 보고 조선에 있는 백성들을 생각했다. 이에 조엄은 일본에서부터 보관법과 재배법을 직접 익혀와 부산 영도에서 고구마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고구마를 심기 시작한 지금의 영도 동삼동, 청학동 일원이 우리나라 최초의 고구마 재배지인 셈이다. 이후 영도에서 나는 고구마는 ‘조내기고구마’로 불리기 시작했다.
    영도가 대마도와 토질이 비슷하고 인근에 초량왜관이 있어서 최초 재배지로 선정됐다고 한다. 이후 영도에서 시작된 고구마 종자는 전국으로 퍼져 재배돼 가난한 백성의 먹거리로 활용됐다.
    이를 기념해 부산 영도구는 지난 2017년에 영도조내기고구마역사공원을 개장했고, 이어서 2020년에는 역사와 문화공간이 접목된 ‘영도조내기고구마역사기념관 및 체험광장’을 개관해 운영하고 있다. 고구마의 유래와 이모저모를 알아보니 앞으로 더욱 고구마를 즐겨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부산 영도에는 고구마가 나지 않는다.
    고구마기념관을 다 본 뒤에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비교적 낮은 봉래산을 오르내려서 그런지 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막걸리 한 병에 아내가 만든 도토리묵을 안주 삼아 먹으니 갈증 해소는 물론이고 배마저 불러 신선도 재벌도 부럽지 않았다. 배를 두드리며 요즘 유행하는 트로트 노래를 부르니 이 세상이 다 내 것처럼 생각되었다. 일상의 권태를 제대로 풀어낸 소중한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본 기사는 월간산 9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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