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시렁] 산과 친구되려 결심하니, 나무들이 말을 걸어왔다

  • 글·그림 윤성중
    입력 2021.09.15 10:02 | 수정 2021.09.15 15:24

    산에 가서 등산만 하고 오는 건 싫은 남자의 등산 중 딴짓
    등산시렁 <3> 나무와 친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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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에 왔다. 내가 손을 짚고 있는 나무는 오동나무(개오동), 오른쪽의 세로로 긴 줄무늬가 있는 것은 신갈나무, 다이아몬드 무늬를 가진 건 은사시나무, 가로 줄무늬가 있는 것은 왕벚나무다.
    아내가 “우리 늙으면 어떡하지? 많이 심심할 것 같은데. 게다가 만약에 둘 중 하나가 먼저 세상을 뜨면 남은 한 사람은 대체 뭘 하면서 살까?” 물었다. 몇 년 전에 이 얘기를 했다면 분명 ‘피식’하면서 답할 생각조차 안 했을 텐데 이날은 좀 달랐다. 아내가 꽤 진지하게 물었고, 그제야 또 나는 내 나이가 중년에 가깝다는 걸 인식했기 때문이다. 부모님, 장인·장모님이 생각나면서 살짝 슬퍼지려는 찰나, 퍼뜩 떠오르는 게 있어서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참고로 우리는 자녀가 없고 계획이 없다.) 
    “매일 산에 가면 되지. 산에 가서 나무랑 얘기하고 동물들도 보고. 그러면 덜 심심하지 않을까?”
    즉흥적인 답변이었는데 이후 나는 이걸 계속 곱씹었다. 가족이라고는 없는 세상에 혼자 남겨졌을 때의 슬픔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며, 그 허전함을 어떤 물건, 어떤 행동으로 채울 것인가? 친구들과 매일 파티를 벌일까? 플스(플레이스테이션, 일본에서 만든 게임기)를 장만할까? 강아지나 고양이를 기르면 괜찮지 않을까? 나는 갑자기 100평이 넘는 큰 집에 홀로 남겨진 상상을 했는데, 그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건 엄청난 크기의 공허는 그대로일 것이라는 결론을 냈다. 그러면서 나무가 가득한 숲에 들어앉은, 할아버지가 된 나를 떠올렸다. 
    그날 오후 나는 집 뒷산 숲으로 갔다. 슬픈 감정을 품고서가 아니라 반대로 설레는 마음으로.  노년에 나와 놀아줄 친구를 찾으러 가는 느낌으로. 그러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전에 여기서 나를 둘러싼 것들이 그냥 ‘나무’ 혹은 ‘풀’이었다면 이때는 어떤 진정한 생명체라는 기분이 들었다. 강아지나 고양이보다 더 월등한 지능을 지닌, 아니 나보다도 더 기억력이 좋고 똑똑한 어른일 거라는. 여기를 가끔 지나다닌 나를 그들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고, 반기고 있다고. 그들은 인간이 눈과 귀로 인식할 수 있는 소통 수단을 만드는 게 아니라 마음을 건드리는 특수한 기술을 가진 게 확실하다고.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그때의 묘한 기분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나무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들이 나를 즐겁게 할 수 있고 위로할 수 있고 치유할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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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오동나무의 잎. 넓적하고 크다. 이 잎을 빻아서 무좀치료에 쓴다. 2 왕벚나무의 잎과 꽃. 이 나무는 봄에 구별하기 쉽다. 그 외 계절에는 나무의 줄무늬를 통해 구별하는 것이 편하다 3 신갈나무의 잎과 열매. 신갈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나무가 굉장히 많다. 열매를 보면 그나마 구별하기가 좀더 수월하다. 4 은사시나무의 잎. 잎자루가 길어 바람이 불면 잘 펄럭인다. ‘사시나무 떨듯’이라는 표현이 여기서 나왔다.
    이름을 알자
    자, 그럼 친구들의 이름을 알아야지. 아직은 그렇게 친한 게 아니니 ‘아담스’, ‘갈갈이’ 같은 별명으로 부르는 건 좀 그렇고, 일단 사람들이 지어 놓은 이름부터 찾아서 부르기로 했다. 그래야 그들의 성격과 특징들을 알 수 있으니까. 친구를 사귀려면 그들이 좋아하는 건 무엇이고 싫어하는 게 어떤 것인지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해야 될 것이 아닌가. 그들을 신갈이, 오동이1, 오동이2 이렇게 명명했다.
    우선 나와 가장 많이 마주친 건 ‘신갈이’들로, 신갈나무로 불리는 이 친구들은 숲 곳곳에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세로로 길고 불규칙하게 생긴 껍질이 벗겨지거나 고르지 않았는데, 어딘가 좀 불편해 보였다. 딛고 선 자리가 비좁은가? 그런데도 잎이 무성한 걸 보니 굉장히 ‘애쓰는’ 것 같았다. 
    신갈나무는 참나무라고도 하는데, 찾아보니 참나무는 나무군을 일컫는 말로 실제로 참나무라는 나무는 없다. 참나무에 속하는 게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줄참나무, 갈참나무 등이다. 이들을 신갈나무라고 한 건 인터넷에서 찾아본 열매 모양이 내가 본 것이랑 비슷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눈에 띄는 고만고만한 나무들이 대부분 신갈나무와 소나무였는데, 둘이 바짝 붙어 있는 모양새가 마치 다투면서 경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음으로 눈에 띈 건 오동이, 오동나무(개오동으로 추정)다. 이날 내가 본 오동나무들은 키가 굉장히 컸다. 나무 둘레도 꽤 넓었고. 이들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솟아올라 넓은 잎으로 하늘을 가리고 섰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지우려는 용도로 심어진 것 마냥 이들 주변에는 늘 인공적으로 쌓아올려진, 지금은 거의 허물어진 축대가 있다. 오동나무의 넓은 잎은 찧어서 무좀을 치료하는 데 쓰인다고 하는데, 땅에 떨어진 잎들을 가져갈까 하다가 아내가 노발대발하는 모습이 떠올라 그만뒀다.
    그 다음은 은사시나무. 이 나무는 얼마 보지 못했는데, 내가 이들을 은사시나무라고 부를 수 있었는 것은 가지에 걸린 이름표 덕분이다. 이름을 확인하고 나무껍질을 보니 다이아몬드 모양의 무늬가 새겨져 있어 다음부터는 구별이 쉬웠다. 이 나무가 바로 ‘사시나무 떨듯’ 이라는 표현의 주인공이다. 잎과 나무줄기를 잇는 잎자루가 길어서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파르르 떨려서 그렇단다. 아하! 바람 부는 날 잎들을 팔랑거리며 반짝였던 게 너였구나! 다음에 만날 땐 반짝이라고 불러 주마.
    그리고 왕벚나무. 이 친구들은 봄마다 흰 꽃을 낸다. 여름이 되니 꽃이 없어 이 나무가 신갈나무인지 느티나무인지 떡갈나무인지 잘 몰랐는데, 나무줄기를 보니 가로로 무늬가 그어져 있다. 게다가 산 입구, 등산로와 등산로가 만나는 교차로 같은 사람들이 잘 다니는 길가에 덩그러니 놓인 모양이 유독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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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사귄 나무 친구들과 함께!
    나무와 숲과 친해지는 방법
    이들과 친해지려면 봉우리를 향한 맹목적인 발걸음을 멈추고 산속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들의 모양을 살피고 구별하며 이름지어보자. 다음에는 그들에 관한 공부를 하자. 다음은 나무와 숲을 아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신갈나무 투쟁기>
    지성사, 차윤정, 전승훈 저. 
    ‘참나무는 나무가 아니다’라면서 흔하다고 하는 참나무의 허구를 무참히 깨뜨린다. 동시에 나무 또한 인간과 똑같이 스트레스와 피곤에 찌든 생명체라는 사실을 밝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다는 신갈나무의 시선으로 나무와 숲에 관해 설명한다.
    <숲의 서사시>
    따님, 존 펄린 저.
    나무와 숲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이 물음을 인류의 발생 때부터 1800년대까지의 여러 사건과 관련해 답한다. 책은 숲과 인류가 긴밀한 관계임을 끊임없이 강조하는데, 책장을 덮을 때즈음 나무와 어떤 연결성을 의심하게 한다.
    여기도 참 시끄럽구나!
    얼마간 숲에 머물렀더니 귀가 울렸다. 매미 우는 소리, 끊임없이 짹짹거리는 새, 귓구멍 콧구멍을 기웃대는 날파리 등으로. 평소보다 조금 더 살짝 들여다봤을 뿐인데 숲은 시끄러웠다. 나무와 풀이 뿜어내는 에너지로 들끓었고 왁자지껄했다. 
    숲에서 가만히 있으면 평온한 나무의 노래가 들릴 거라고 기대했는데, 반전! 어쩌면 인간세상과 닮은 이곳에서 나무들과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즐겁고 위로받고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늙어서 말고 언제라도 숲에 오면 심심하지는 않겠다. 자주 와서 가만히 앉아 그들에게 내 얘기도 좀 들려줘야겠다. 
    본 기사는 월간산 9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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