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히 본 금오산에 혼쭐나다

  • 한수명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입력 2021.09.3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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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늦은 시각, 금오산 정상 현월봉에 올랐다.
    무더운 여름날 오후 5시 30분이란 늦은 시각에 집을 나서 구미 금오산을 올라보고자 했다. 얼마 전 금오산을 오르내리다 이정표를 보니 북동쪽 방면에서 금오산 정상인 현월봉(976m)까지 0.7km라고 적혀 있는 걸 보고 700m 정도만 등산하면 된다니 큰 무리는 없겠다 싶어서 올라갈 생각을 했던 것이다. 또 여름이니 오후 8시가 되어도 훤하다는 사실을 믿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 오르막이라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조금만 가면 정상이란 생각에 전진을 고집했다. 그런데 가도 가도 정상은 나오지 않고 길은 점점 더 험해졌다. 밧줄을 잡고 오르는 구간도 나타났다. 점점 더 어두워져 가는데 산속에는 나밖에 없고 진퇴양난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보름달이 떠서 산길이 잘 보인다는 점이었다.
    휴대폰은 65% 정도 충전돼 있었지만 상황이 어찌될지 몰라 아껴야 할 판이었다. 일단 급한 김에 2주 전에 가본 적 있는 금오산 정상의 약사암으로 향했다. 힘들게 올라가니 약사암이 나오는데 공양주 보살은 없고 절에는 등만 켜진 채 아무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법당에 들어가 묵상을 하고 있었다. 몸은 천근만근 피곤해 눕고 싶고 밤이 되니 1,000m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 탓인지 바람이 쌩쌩 불고 추워서 마루에 앉아 있기 힘들어졌다. 신도들이 기도하는 방석 세 개를 등에 대고 기둥에 기댄 채 앉아 있었는데 그냥 눕고만 싶어졌다.
    바닥이 차가워 그냥 눕기도 뭣하여 묵상을 하다가 저 옆에 초파일등 신청을 받는 자리에 전기장판이 있는 것이 보였다. 급히 켜보니 따뜻해지기에 거기에 누웠는데 사람은 아무도 없고 약사 부처님께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그러던 중 젊은 스님이 오더니 “이 밤에 어쩐 일이냐”고 물어왔다. 등산하러 왔다가 어둡고 기진맥진해 못 내려간다는 말은 못 하고 “제가 몸이 좀 아파서 기도하러 왔습니다”라고 불교신자처럼 대답하고는 계면쩍은 듯이 앉아 있으려니 스님께서 “그런데 기도는 안 하고 방석부터 챙겨 앉던데요”라고 했다. 스님은 다른 곳에서 CCTV로 나의 행동을 보고 있다가 올라온 것이었다.
    나는 “스님, 안 그래도 사람이 있는지 다 둘러보았는데 공양주 보살도 없고 몸도 너무 피곤해 그냥 누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스님은 내 모습이 너무 힘없고 아파 보였는지 “보통 아침에 올라오는데, 보살은 저녁에 왔네요. 특이하네”하며 나갔다. 나는 좀 머쓱해 그 뒤에 대고 “내일 아침에 빨리 내려갈게요”라고 답했다.
    난생 처음이지만 염치없이 남의 법당에 와서 누워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밤은 어찌 이리도 길고 시간은 더디 가는지 몰랐다. 몸은 천근만근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고, 날씨는 어찌 그리 추운지 전기장판이 있어도 발은 시리고 허리가 아팠다. 그래도 이마저 없었으면 더 힘들었을 것이란 생각에 작은 잠자리가 감사했다.
    ‘약사부처님 죄송합니다. 저 오늘 하룻밤만 좀 부탁드릴게요.’
    이 생각 저 생각하다 잠깐 자고 나니 어느덧 새벽 4시. 날이 밝을 때까지 한 시간 더 기다려 새벽 5시 하산을 시작해 무사히 내려 왔다. 밤이 꿈같이 느껴졌다. 이번 산행을 교훈삼아 이제는 오후 늦게 절대 산에 가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본 기사는 월간산 9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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