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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경상도의 숨은 명산] 백두대간의 ‘슈퍼에너지’가 저장된 곳간

글·사진 황계복 부산산악연맹 자문위원
  • 입력 2021.09.2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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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백암산 623m

흰 바위를 지나며 뒤돌아본 풍경이 시원하다.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함양 읍내와 그 너머로 지리산의 장엄한 산등성이가 펼쳐진다.
흰 바위를 지나며 뒤돌아본 풍경이 시원하다.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함양 읍내와 그 너머로 지리산의 장엄한 산등성이가 펼쳐진다.

함양은 지금 국제행사인 ‘2021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 준비에 한창이다. 이 행사는 ‘천년의 산삼, 생명 연장의 꿈’이라는 주제로 오는 9월 10일부터 10월 10일까지 국제행사로 펼쳐진다. 

경남 서북단의 함양은 ‘빛이 가득한 고장’이란 이름답게 지리산을 비롯해 덕유산, 백운산 등 수많은 명산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기세가 눌리지 않고 당당하다. 그 기운 센 땅에는 자연물이 풍부하고, 사람들은 명산에 기대어 살아간다. 조선시대 이중환이 저술한 <택리지>에는 함양을, 토지가 비옥한 ‘산수굴山水窟’이라 적고 있다. ‘산이 높고 물이 많은 골짜기가 여럿이다’는 뜻이다.

‘시詩와 함께하는 등산로’의 산릉에는 시를 새긴 입간판이 이어진다.
‘시詩와 함께하는 등산로’의 산릉에는 시를 새긴 입간판이 이어진다.

특히 함양을 울타리처럼 감싸고 있는 백암산白巖山은 조선시대 함양 고을의 진산이다. 백암산이란 이름은 산 중턱에 흰 바위가 있어 붙었다. 함양읍에서 훤히 바라보이는 백암산은 우뚝 솟은 모양새가 한 고을의 진산답게 당당함이 엿보인다. 함양읍민들은 새해가 되면 백암산 정상에서 해맞이 행사를 열고, 가뭄이 심할 때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한다. 풍수가인 최창조 전 서울대교수는 백암산을 가리켜 “백두대간의 슈퍼에너지가 저장되어 있는 곳간”이라 일컬었다. 

백암산은 산행코스가 짧고 단조롭다. 그래서 ‘필봉산 가족 숲길’과 ‘최치원 산책로’를 연결했다. 약 10km 원점회귀 코스로 가벼운 산행과 함께 산삼항노화엑스포 행사장에서 다양하고 풍성한 전시·공연·체험행사를 즐길 수 있다. 산길과 둘레길을 잇고 천연기념물 제154호인 상림공원 숲길도 곁들인다. 걸을수록 젊어지는 길인 셈이다.

 ‘필봉산 가족 숲길’은 아름드리 참나무와 소나무가 빽빽하게 숲을 이룬다.
‘필봉산 가족 숲길’은 아름드리 참나무와 소나무가 빽빽하게 숲을 이룬다.

산행은 상림관리소가 있는 상림공원주차장에서 시작한다. 함양 박물관을 끼고 돌아들면 늘봄가든이라는 음식점 옆에 ‘최치원 산책로’ 안내판이 서 있다. 최치원 산책로는 대부분 코스가 ‘필봉산 가족 숲길’과 일치한다. 필봉산 어귀로 들어서니 아름드리 참나무와 소나무가 빽빽하게 하늘을 가렸다. 

상쾌한 공기가 상큼하게 코를 자극한다. 정비가 잘 된 산길에 이정표도 곳곳에 있어 헷갈릴 염려는 없다. 숲으로 둘러싸인 필봉산 산정에는 벤치와 운동기구, 정상석이 자리한다.

대병저수지 방향으로 돌아드는 산모롱이에 자리한 한남군 묘소.
대병저수지 방향으로 돌아드는 산모롱이에 자리한 한남군 묘소.

필봉산筆峰山은 일명 문필봉文筆峰으로 해발 245.8m의 나지막한 야산이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고려 우왕 6년(1380) 왜구의 침공으로 함양읍 관변리에 있던 읍성이 허물어졌다. 이때 관아를 이 산 아래로 옮기고 토성을 쌓았다고 할 정도로 필봉산은 함양읍에서도 요충지에 속한다. 

필봉산을 내려서서 최치원 산책로를 따른다. 대병저수지 방향으로 돌아드는 산모롱이에 경남도 기념물 제165호인 세종 왕자 한남군 묘가 있다. 한남군은 세종의 12번째 아들로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돼 함양군 휴천계곡의 새우섬에 유배되었다가 4년 만에 죽었다. 나이 고작 서른한 살. 이 무덤은 명종 12년(1557)에 조성되었으며, 숙종 39년(1713) 후손의 요청으로 예를 갖춰 다시 안장되었다고 한다. 태어날 때는 왕의 아들이었으나 죽음을 맞이할 때는 대역 죄인의 신분이었다. 어쩌면 인생에서 울고 웃는 것은 기껏해야 백지 한 장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엑스포 행사를 위한 환경정비로 논밭이었던 곳에 꽃밭을 조성했다. 그 뒤로 천령봉을 비롯해 오봉산, 연비산 멀리 삼봉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엑스포 행사를 위한 환경정비로 논밭이었던 곳에 꽃밭을 조성했다. 그 뒤로 천령봉을 비롯해 오봉산, 연비산 멀리 삼봉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산등성이 영화 ‘고지전’ 촬영장으로 활용돼

묘지 근처 논밭이었던 곳에 온통 형형색색의 꽃을 심어 꽃밭으로 조성했다. 아마도 엑스포 행사에 대비한 주변 환경정비 차원이 아닌가 싶다. 원교마을 갈림길에서 대병저수지 방향으로 꺾어 든다. 서쪽으로 천령봉을 비롯해 오봉산, 연비산 멀리 삼봉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콘크리트 농로가 끝나고 야자매트가 깔린 짙은 녹색의 숲길은 더위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상쾌하다.

대병저수지·두산저수지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고개에 다다른다. 이곳은 나중에 백암산을 돌아 내려와 대병저수지 방향으로 가야 할 중요 포인트다. 뙤약볕 아래 체력이 걱정된다면 아예 여기서 최치원 산책로를 따라 대병저수지 방향으로 가도 된다. 고갯길을 넘으면 감나무밭 아래로 두산저수지(오리골소류지)가 보이고, 정면에 하얀 바위를 두른 백암산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두산저수지를 지나 포장도로에서 두산마을 쪽으로 향하면 백암산 정상(2.0㎞)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난다. 곧 광주대구고속도로 위에 걸린 교산육교를 건넌다.

백암산 산정에 서면 지리산 능선은 물론 백두대간을 비롯해 진양기맥의 여러 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백암산 산정에 서면 지리산 능선은 물론 백두대간을 비롯해 진양기맥의 여러 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육교를 건너 백암산으로 오르는 길은 좌우 어디로 가든지 연결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오른쪽 큰골 등산로를 따라 올랐다가 왼쪽 갈골로 내려서는 것이 보통이다. 큰골로 가는 포장로를 따라 오르면 축사를 지키는 개들이 낯선 산객을 보고 연신 짖어댄다. 콘크리트 포장로가 끝나면서 시작되는 임도로 50m쯤 가면 백암산 정상(1.1㎞)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 있다. 방향을 틀어 산길로 진입해 양천 허씨묘를 지난다. 산릉의 숲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이 탁 트인다. 백암산의 랜드마크인 흰 바위도 모습을 드러낸다.

흰 바위를 지나며 뒤돌아본 풍경은 시원한 파노라마로 다가온다. 필봉산에서 이어온 산길과 들길, 훤하게 펼쳐지는 함양 읍내와 주변의 산을 비롯해 멀리 천왕봉을 위시한 지리산의 장엄한 산등성이는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이곳은 2009년 큰 산불이 난 지역이다. 아직도 검게 탄 나무들에 그 흔적이 남았다. 그 이듬해 장훈 감독은 산불로 폐허가 된 이 산을 이용해서 6.25전쟁 당시 고지탈환을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 남북한 병사들을 그린 영화 ‘고지전’을 촬영했다.

상림은 120여 종의 낙엽활엽수가 위천의 둑을 따라 숲을 이루며, 주변에는 볼거리도 많다.
상림은 120여 종의 낙엽활엽수가 위천의 둑을 따라 숲을 이루며, 주변에는 볼거리도 많다.

갈골 방면 소나무 능선길 아름다워

다시 경사가 가파른 비탈길로 올라서다 보면 잘 조성된 영양 천씨묘를 지난다. 칡넝쿨에 키만큼 자란 수풀이 산길을 덮었다. 백암산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듯하다. 경사가 수그러들며 보산행복마을 갈림길. 가파른 계단 길을 오르면 드디어 백암산 정상이다. 

산정은 널찍한 헬기장으로 무엇보다도 사방으로 막힘없이 확 트인 전망대다. 함양 일대의 산과 지리산 능선은 물론 백두대간을 비롯해 진양기맥의 여러 산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곳. 파란 하늘 아래 서로 겹치고 포개진 산들이 너울처럼 일렁인다. 이것이 바로 일망무제가 아닌가 싶다. 정상석 뒤 갈골 능선으로 하산 길을 잡는다.

대병저수지·두산저수지 갈림길 고개를 넘으면 백암산의 모습이 드러난다.
대병저수지·두산저수지 갈림길 고개를 넘으면 백암산의 모습이 드러난다.

묵은 헬기장이 있는 첫 번째 갈림길에서 직진한다. 소나무가 아름다운 능선 길이다. 경사가 가파른 숲길로 단숨에 내려선다. 콘크리트 포장로를 만나고 뒤이어 막고개 과수원에 닿는다. 배 과수원 농막 추녀에는 막고개 유래에 관한 서각 작품 하나가 걸렸다. ‘옛날 효자가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해서 막고개로 불린다’는 내용이다. 

다시 교산육교를 건너 대병저수지·두산저수지 갈림길로 돌아왔다. 이제 대병저수지 방향이다. 이정표 옆에는 ‘시詩와 함께하는 등산로’라는 말목이 서 있다. 나지막한 산릉에 자리한 산불감시초소 옆에는 체육시설과 벤치가 있고, 시를 새긴 입간판도 이어진다. 능선이 끝날 즈음 대병저수지를 낀 도로에 이른다. 곧 왼쪽 샛길로 넘어가면 상림공원 입구의 물레방앗간을 만나고, 녹색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상림 숲길이다.

상림은 신라시대 최치원이 함양의 태수로 와서 조성한 인공림으로, 120여 종의 낙엽활엽수가 숲을 이룬다. 볼거리도 많아 함화루, 사운정, 초선정, 화수정 등 정자와 최치원 신도비, 만세기념비, 척화비, 역대 군수·현감 선정비군, 이은리 석불 등이 있다. 상림공원을 뒤로하고 엑스포 행사를 위해 꽃을 심고 풀을 뜯는 사람들의 분주한 손놀림을 보며 산행을 끝낸다. 

산행길잡이

상림공원주차장~필봉산~한남군 묘~대병저수지·두산저수지 갈림길~교산육교~ 큰골~영양 천씨묘~백암산 정상~헬기장 갈림길~갈골~막고개 과수원~ 대병저수지·두산저수지 갈림길~산불감시초소~대병저수지~물레방앗간~ 상림공원~상림공원주차장 <5시간 30분 소요>

교통

함양 백암산은 각지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함양 시외버스터미널(1688-7494)에 내리면 된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상림공원까지는 걸어서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읍내버스도 다니지만, 구경삼아 시내를 걸어도 좋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함양읍 상림공원을 목적지로 하면 된다.

숙식(지역번호 055)

함양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가까운 하얏트호텔(962-9696)을 비롯해 엘도라도모텔(963-9449), 스카이모텔(962-8444), 상림 인근 별궁모텔(963-7980), 리치모텔(963-5441) 등이 있다. 입소문 난 식당으로는 60년 된 대성식당(964-5400)이 있다. 일반 가정집 분위기에 메뉴가 쇠고기 국밥과 수육뿐이다. 함양 재래시장 옆 태양탕 맞은편의 함양집 어탕(963-6366)은 함양의 맛집이다.

볼거리

‘2021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는 관람객들이 직접 보고, 느끼고, 쉬어가면서 관람할 수 있도록 야외 설치미술, 불로윈 폭포, 쉼터 공간 등이 마련된 축제가 될 계획이라고 한다. 또 산삼체험, 가족체험마당, 심마니체험, 승마체험, 철갑상어 체험, 에어바운스 존 등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해 코로나로 인해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힐링 엑스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제1행사장인 함양군 상림공원 일원에는 9월 10일 오후 4시 30분 개막을 축하하는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의 환상적인 에어쇼가 상림공원의 하늘을 수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본 기사는 월간산 9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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