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의 산] 연기처럼 사라진 연기사, 백제의 문화와 역사를 품은 산

  • 글·사진 김희순 광주샛별산악회 산행고문
    입력 2021.09.30 10:11

    고창 소요산445m
    조선 시대 숭유억불의 현장…소요사 범종각 풍경 ‘산행의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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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요산 정상 인근에서 바라본 곰소만과 변산반도국립공원의 주능선.
    고창 선운산도립공원지구는 1979년에 지정되었다. ‘호남의 내금강’이라는 별칭이 있는 선운산(336m)을 비롯해 경수산(444m), 개이빨산(345m), 청룡산(314m), 비학산(308.5m), 그리고 소요산逍遙山(445.4m), 수월봉(364m)까지 도립공원에 포함된다. 
    소요산은 전북 고창과 경기도 동두천 두 곳에 있으며 한자 이름도 같다. ‘소요’라는 이름에는 ‘구름 같은 인생, 즐겁게 노닐다 간다’는 뜻이 담겼다. 소요산 정상에 가기 위해서는 사자봉(341.4m)과 수월봉을 비롯해 크고 작은 봉우리를 여럿 거쳐야 하지만 주능선에만 올라서면 정상까지는 크게 힘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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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요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수직암벽. 서해안권 국가지질공원 중 한 곳이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 
    연기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불가사리 모양의 연기제(저수지)를 가운데에 두고 반시계 방향으로 큰 원을 그리는 원점회귀 산행을 할 수 있다. 등산로에는 숲이 울창하고 인적이 드물다. 이정표도 드문드문 설치되어 있다. 선답자가 달아 놓은 표지기가 있지만 헷갈리는 지점이 많다. 등산지도와 스마트폰 GPS 지도를 활용하거나 경험 많은 리더의 안내가 필수다. 당연히 단독산행보다는 그룹산행을 권장한다. 
    소요산 주변에는 연기교, 연기마을, 연기제 등 연기緣起라는 지명이 많이 들어간다. 이는 소요산에 있었던 연기사와 연관이 있다. 백제 시대 연기조사緣起祖師는 백제 성왕22년(544)에 구례 화엄사와 연기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연기조사는 인도에서 온 고승이라는 설과 고창 흥덕 출신이라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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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요사 입구에 있는 부도전. 절벽 위에 범종각이 있다.
    연기사는 옛날엔 지도에 표기 정도로 한 때는 38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가람이었지만 지금은 이야기로만 전해질 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연기사가 있던 자리는 지기地氣가 강하고 명당이었던 모양이다. 1630년 전라감사가 부친의 묘 자리를 만든다는 구실로 연기사에 관군을 보내 스님들을 살해한 후 폐사시켜버린 사건은 조선의 숭유억불정책의 단면을 보여 준다. 
    현재 연기사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절터는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수몰되었다. 안골, 큰냉골, 작은냉골, 부안골, 빈대절터, 절골 등 주변에 남아 있는 지명만이 이곳이 절터였음을 짐작케 한다. 연기마을에는 일제강점기에 증산교에서 유래한 신종교 보천교普天敎를 창시한 월곡 차경석(1880~1936)의 생가 터가 있다. 
    선운산과 소요산 사이에는 서해바다와 맞닿아 있는 주진천舟津川이 흐른다. 서해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갯벌은 뱀장어(민물장어)가 서식하기 좋은 천혜의 조건이다. 이런 곳을 풍천風川이라고 한다. 
    풍천은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밀물이 되어 바닷물이 강 쪽으로 들어올 때면 바다에서 육지 방향으로 바람이 불기 때문에 ‘바람을 타고 강으로 들어온다’는 뜻으로 ‘바람 풍風’에 ‘내 천川’자가 붙었다. 
    조선 후기 판소리 이론가이자 교육가인 신재효(1812~1884) 선생이 정리한 <퇴별가兎鱉歌(토끼전)> 완판본에는 용왕이 병이 나자 ‘양기가 부족한가? 해구신도 드려보고, 폐결핵을 초잡는지 풍천장어 대령하고’란 대목이 나온다. 예부터 풍천장어가 보양식으로 널리 알려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도 이 지역에는 ‘풍천장어’ 간판을 단 식당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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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표가 적절하게 설치되어 있지만 숲이 깊어서 스마트폰 GPS 지도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연기교에서 원점회귀 산행 인기
    연기교에서 산행 들머리는 크게 3곳이 있다. 연기마을 입구와 ‘산림경영모델숲’ 표지석, 골든캐슬 펜션 등이다. 어느 곳에서 출발해도 팔각정 전망대와 만난다. 등산로에는 굴참나무, 서어나무, 소나무 등이 울창하지만 길 흔적은 뚜렷하다. 
    처마바위에 서면 발밑으로 저수지인 연기제가 한눈에 들어온다. 대찰들이 자리 잡은 산세가 그러하듯 좌우로 커다란 산이 둘러싸고 있어 마치 여성의 자궁을 연상케 하는 깊숙하고 내밀한 터다.
    팔각정에서 수월봉을 지나 사자봉 갈림길까지 가는 3.5km 거리는 알바하기 십상인 길이 많다. 헬기장 지나면서부터는 약초꾼이나 다닐 법한 원시림 같은 길이 이어진다. 수월봉 갈림길에는 이정표가 없어 주의하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스마트폰 GPS 지도를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수월봉은 등산로 오른쪽으로 30분 정도 잡목과 암릉지대를 지나면 사방이 완전히 열려 있는 바위지대다. 수월봉을 알리는 검은색 표지목이 있고, 정면으로 화시산, 변산지맥을 비롯한 내장산(624m), 백암산(741m), 방장산(743m), 축령산(621m) 등 영산기맥 줄기까지 시원하게 보인다. 
    수월봉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사자봉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경사가 이어진다. 사자봉에서는  소요산 정상이 정면에 보일 뿐 특별한 조망은 없다. 연기재까지는 약 1km 거리로, 20분 정도 내리막길이다. 연기재에는 오두막 형태의 쉼터가 있다. 왼쪽으로 가면 연기마을 방향, 오른쪽으로는 미당 서정주 시문학관이 있는 질마재길이 이어진다. 소요사로 가려면 직진해서 시멘트 임도를 따라 2.3km 정도 지긋이 올라야 한다. 
    소요사 가는 길 중간에 있는 거대한 암벽은 중요한 자연 자산이다. 화산활동으로 용암이 높게 분출되고 수직 돔을 만들어 놓은 유문암질 지층으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의 지질이다. 이곳은 전북 서해안권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된 총 12개소 중 한 곳으로 화산암으로 형성된 양파껍질 같은 지층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7부 능선에 있는 소요사는 산행의 백미다. 백제 성덕왕(554~597년) 때 소요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이 절은 암자 수준의 아담한 사찰이지만 특별한 범종각이 있다. 
    망루처럼 높은 곳에 있는 범종각은 쉼과 깨달음을 주는 공간이다. 30m 높이의 수직 절벽 위에 설치된 범종각 주변에는 작은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어 잠시 세속을 잊으며 쉬다 갈 수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하늘과 땅의 경계가 없는 듯하다. 피안彼岸의 경지에서 사바세계를 바라보는 듯한 절경은 감정이 무딘 사람도 발을 쉽사리 떼지 못하게 한다. 
    소요사 부도탑 암벽에는 무수한 각자들이 새겨 있어 고찰의 내력을 느끼게 한다. 석탑 뒤쪽으로 ‘소요산 정상 0.3km’ 이정표가 있다. 가파른 암벽은 황금빛 와송 군락지다. 산불감시탑이 있는 곳은 정상이 아니지만 실질적인 정상 조망처다. 미륵을 기다리며 동학혁명의 불꽃을 지피던 경수산, 선운산, 두승산, 모악산 등 기질이 센 산들이 보인다. 바다 너머로 명경명찰을 품고 있는 국립공원 변산반도는 한 폭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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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요사 범종각은 산행 중 꼭 들러 봐야 할 명물이다.
    산죽 많은 거친 하산길 주의
    소요산 정상은 산불감시탑에서 서쪽으로 30m 지점에 있다. 삼각점과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하산하는 길은 산죽이 많고 길이 거칠다. 0.5km 지점에 있는 이정표에서 연기마을로 가는 표지판이 떨어져 있어 자칫하면 선운리 방향으로 내려 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왼쪽으로 꺾어 30분 정도면 ‘김쪼간’ 수목장을 만나고 산길이 끝난다. 연기제 아래쪽으로 15~16세기경 청자를 만들던 분청사기 가마터를 지나면 출발점인 연기교에 도착한다. 
    산행길잡이
    연기교~등산로 입구~전망대~전망바위~헬기장~갈림길~수월봉~갈림길~ 사자봉~연기재~소요사~철탑~소요산 정상~선운리 갈림길~연기마을~연기교(약 11.4km, 약 5시간 40분 소요)
    교통
    고창공용버스터미널에서 선운사행 버스를 타고 삼인교차로에 내리면 들머리인 연기교가 바로 있다. 흥덕공용터미널에서 선운사행 버스가 조금 더 많다. 
    승용차로는 서해안고속국도 선운사나들목으로 나와 22번국도를 이용한다. 
    숙식(지역번호 063)
    연기교 주변은 선운산풍천장어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명가풍천장어(561-5389), 유신식당(562-1566) 등 풍천장어를 내는 식당이 즐비하다. 장어거리 내에 모텔과 펜션이 여럿 있다. 선운산광광호텔(561-3377)과 동백호텔(562-1560)은 가족이 머물기 적당하다. 
    본 기사는 월간산 9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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