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산행] 사라져가는 논 지키려 양조장 차려… 지난해 대통령상 수상 ‘술생역전

  • 글 손수원 기자
  • 사진 김종연 기자
  • 취재협조 대동여주도
    입력 2021.09.29 09:54

    모월 + 백운산

    강원도 원주의 옛 이름은 ‘모월母月’이다. 병풍 같은 치악산 아래 자리한 원주는 예부터 텃세가 없고 정이 많은 고장이라 ‘어머니와 달처럼 누구라도 품어 주는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뜻으로 모월이라 불렸다. 치악산의 옛 이름도 ‘모월산’이었다. 
    미국 쌀로 만드는 막걸리가 전통주?
    원주 출신으로 고향에서 한살림운동과 신용협동조합운동 등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던 무위당 장일순(1928~1994) 선생은 이 ‘모월’이란 지명을 즐겨 썼다. 세상을 다 안는 어머니처럼, 칠흑 같은 어두운 세상에서 남녀노소 가림 없이 길 안내를 하는 달처럼 원주에 들어오는 사람을 편하게 대하자는 뜻이었다. 모월과 모월산에 이제는 하나를 더 보탤 것이 생겼다. 바로 원주에서 새로운 전통주 문화를 만들어 가는 ‘모월양조장(협동조합 모월)’이다.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들과 ‘우리 나중에 늙으면 다 같이 원주로 돌아와 모여 살자’고 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술을 빚고 있습니다.”
    모월양조장 김원호(52) 대표는 20년 이상 대기업 기계·전자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사표를 내고 나와 사업체를 꾸렸다. 귀향을 위한 첫 걸음이었던 셈이다. 2010년, 김 대표는 원주로 내려왔다. 
    “당시 쌀 시장 개방을 두고 시위가 한창이었어요. 농사를 지으시던 저희 아버지도 시위에 참가하셨죠. 그런데 아버지가 시위를 마치고 나서 막걸리를 마시더라고요. 쌀 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사람이 정작 미국산 팽화미로 만든 막걸리를 마신다는 사실이 의아했죠. 그래서 아버지께 그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아니, 농민주를 미국산 쌀로 만든다는 말이야?’ 하고 놀라셨어요. 이것이 현실이었죠. 그래서 최소한 우리 동네의 논은 지키자는 뜻으로 양조장을 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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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에서 나는 쌀로 빚은 모월양조장의 소주와 약주. ‘모월 인’은 2020년 우리술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고교시절부터 ‘술 잘 마시기로 짱 먹은 학생’이었다는 그는 회사에 다니면서 크래프트 맥주부터 시작해 전통주 만들기를 배워 술 빚기에 대한 어느 정도 지식이 있었다. 
    김 대표는 2014년 조합원을 모아 ‘모월’이라는 이름으로 협동조합을 만들고 2016년 전통주 제조 면허를 받아 알코올 도수 41도의 소주 ‘모월 인’과 13도의 약주 ‘모월 연’을 출시했다. ‘인연’을 테마로 ‘사람을 품었다’는 뜻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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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지니어 출신인 김 대표는 술 빚기도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을 도입했다.
    폐업? 대통령상으로 기사회생!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리 없었다. 아니, 오히려 배고팠다. 인지도가 없었기에 술은 잘 팔리지 않았고 양조장 운영도 점점 어려워졌다.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조합원이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1기 조합원이 다 빠져나가고 이후 2기 조합원을 모집했어요. 어릴 적 같이 모여 살기로 했던 고향 친구들과 후배 등 13명이었습니다. 돈보다는 꿈을 좇자고 의기투합했죠.”
    그때부터 양조장은 오로지 술만 빚는 곳이 아닌, 문화공연장으로 변신했다. 친구들과 록 음악 공연도 하고 사물놀이 공연도 했다. ‘우리끼리 즐겁게 놀자’는 약속을 실행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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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주가 익어가는 발효조를 들여다 보는 김 대표.
    “사실 지난해 12월까지만 양조장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었었어요. 늘어나는 적자를 계속 안고 갈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있을 즈음,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2020년 10월 열린 ‘우리술품평회’에서 ‘모월 인’이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주문이 물밀 듯이 들어왔어요. 주문량을 맞추지 못할 정도였죠. 술 생산 과정이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에 주말엔 조합원 친구들을 불러 라벨을 붙이라고 했죠. 작업도 하고 술도 마시고… 바쁘지만 행복했습니다.”
    김 대표는 무엇보다 자신의 술 빚는 방식과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했다고 말한다. 
    “원주에서 직접 농사짓는 쌀, 토토미土土米를 씁니다. 적은 양이지만 제가 직접 쌀농사를 지어 보태기도 합니다. 우리 땅에서 나는 재료만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곰팡이 연구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술 맛은 특정 효모가 좌우합니다. 그런데 어떤 효모가 달라붙는지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게 전통주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효모를 채취해 증식시켜 최적의 효모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연구가 성공하면 일정한 맛을 유지하며 발효 기간도 대폭 줄일 수 있게 됩니다.”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도 ‘지역민들과의 상생과 미래에 대한 연구, 앞으로 모월양조장이 더 좋은 술을 빚어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덕분’이라는 것이 김 대표의 생각이다. 
    대통령상에 빛나는 ‘모월 인’을 마셔보기로 했다. 이 술은 동銅 증류기를 사용해 상압증류방식으로 만든 41도의 소주이다. 증류할 때 초류(75~80도의 알코올) 2~3%와 후류(30도 미만의 알코올) 2~3%를 제거해 숙취를 유발하는 성분을 없앤 것이 특징이다. 생산량이 적은 소주에서 4~5%의 양을 버리는 것은 손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 대표는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마땅히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맑은 소주를 한 모금 머금으니 알코올 향이 코를 톡 쏜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기분 좋은 향이다. 쌀과 누룩, 물만을 사용해 깨끗한 맛이 일품이다. 단순함 속에 숨어 있는 곡물 본연의 단맛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술은 발효가 중요하지만 숙성도 매우 중요합니다. 모월 인은 유약을 바르지 않은 전용 옹기에 담아 6개월 이상 숙성합니다. 이렇게 해야 곡물 본연의 맛이 제대로 나는 소주가 탄생합니다. 양주가 오크의 향을 입히며 숙성한다면, 우리 소주는 곡물의 맛을 제대로 담아내며 숙성시키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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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월은 독자적으로 디자인한 치마 모양 병을 사용하고, 원가가 비싼 코르크 마개를 사용하는 등 전통주의 고급화에 신경 쓰고 있다.
    ‘닥나무’ 막걸리도 출시 예정
    ‘인’이 있으면 ‘연’이 뒤따르는 법, 이번엔 약주인 ‘오월 연’을 마셔본다. 김 대표는 미리 “이제까지 마셔본 약주들과는 조금 많이 다를 겁니다”라고 말했다. 
    ‘모월 연’을 입에 털어 넣은 순간 입 안에 강한 신맛이 거침없이 퍼져나간다. 이제까지 알던 약주에 담긴 단맛이 전혀 없다. 하지만 이내 신맛이 상큼함으로 바뀌며 입안에 청량함을 남긴다. 침샘을 자극하는 식전주로 이만한 게 없다 싶다. 
    “단맛을 내기 위해선 찹쌀을 쓰는데, 모월 연은 멥쌀만을 사용합니다. 밑술과 덧술 모두 고두밥을 쓰는 이양주지요.”
    김 대표가 이렇게 특이한 약주를 빚은 것은 본인과 친구들의 취향 때문이었다. 주당인 김 대표는 단맛이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고, 친구들도 대부분 그러했다. 그런데 시중의 약주는 단맛이 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김 대표는 ‘이 참에 우리가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약주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저온숙성으로 서너 달 정도 하면 단맛이 거의 사라지면서 날카로운 신맛이 한층 부드러워지고 상큼해집니다. ‘모월 연’은 호불호가 강한 약주입니다. 좋아하시는 분들은 매우 좋아하시지만, 싫어하시는 분들은 단맛과 신맛의 밸런스가 없는 술이라고 하시기도 해요. 주로 주당들이 ‘모월 연’을 좋아하시죠. 하하.”
    이렇게 흔히 접할 수 없는 맛의 약주다 보니 당황스런 일도 가끔 생긴다. 
    “소문을 듣고 전화로 주문해 받으시곤 ‘술이 쉬었다’며 항의하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이런 신맛의 약주를 처음 마셔보니 상한 것처럼 느껴지신 거였죠. 그래서 ‘모월 연’은 양조장에 오셔서 시음해 본 뒤 구입하시거나 이 술의 맛을 사전에 아신 후 구입하라고 말씀드려요.”
    모월양조장에서는 ‘모월 인’과 같은 소주면서 도수를 25도로 낮춘 ‘모월 로’과 ‘모월 연’보다 도수가 높은 16도짜리 약주 ‘모월 청’ 총 4종의 술을 생산하고 있다. 김 대표는 여기에 더해 탁주도 생산할 계획이다. 
    “내년 초 정도에는 닥나무를 쓴 막걸리를 출시할 계획입니다.”
    원주에는 대규모 닥나무 재배지가 있다. 지금은 전주가 한지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본래 임금님에게 진상하는 종이는 원주에서 만들었다. 그만큼 원주는 닥나무가 유명했다. 김 대표가 굳이 닥나무를 사용해 막걸리를 빚으려는 이유도 지역과 상생하기 위함이다. 
    “옛날엔 누룩 만들 때 바닥에 까는 종이를 닥나무로 만들었어요. 닥나무는 효모가 잘 붙는 성질을 가지고 있거든요. 효모가 잘 붙는다는 건 술 발효가 잘된다는 뜻이고요. 그래서 닥나무막걸리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닥나무 추출액이 10% 정도 들어가는 막걸리입니다. 이름도 생각해 두었는데, ‘모월닥주’예요. 닥나무 성분이 들어갔으니, 흔한 ‘탁주’ 대신 ‘닥주’라고 생각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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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련된 현대식 건물인 모월양조장 전경.
    우리 쌀을 지키는 것은 의무
    모월이란 이름이 알려지면서 내년쯤엔 시설을 증설할 계획이 있다. 그렇게 되면 지역의 쌀을 더욱 많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김 대표의 바람이 바로 이것이다. 
    “저와 친구들 모두 농민의 아들입니다. 논이 사라지지 않게 하자는 것이 저희의 뜻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 해도 우리의 주식은 쌀입니다. 우리가 술을 빚는 것은 곧 우리의 농업을 지키는 일입니다.” 
    모월양조장
    올해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었다. 코로나 여파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는 않지만 추후 마련할 계획이다. 양조장에서 제품을 시음하고 구입할 수 있다. 모월 인 41도(소주, 500㎖, 4만 원), 모월 연 13도(약주, 500㎖, 1만8,000원), 모월 청 16도(약주, 500㎖, 2만1,000원), 모월 로 25도(소주, 500㎖, 2만5,000원). 인터넷 홈페이지www.mowall.co.kr와 전화(033-748-8008) 주문도 가능하다. 
    본 기사는 월간산 9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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