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죽 천막 유르트는 엄마 품처럼 아늑했다

  • 글·사진 김영미 여행작가
    입력 2021.09.27 10:39

    [나홀로 세계일주] 키르기스스탄 송쿨호수
    3,000m 고원에는 에델바이스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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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 동안에는 송쿨호수 주변에 이동식 가옥인 유르트를 설치하고 목축을 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
    키르기스스탄은 평균 해발고도가 2,700m 이상이고 국토의 90%가 톈산산맥과 그 지맥으로 이어진 산의 나라이어서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 부른다. 만년설과 얼음으로 덮여 있는 산이 아름다운 나라이다. 만년설이 녹아내려 만들어진 산정호수가 2,000여 개에 달하니 물의 나라이기도 하다. 그 수많은 호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가 송쿨호수Son-Kul lake이다. 송쿨호수는 이식쿨 호수에 이어서 키르기스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다. 키르기스스탄 나른주 북부에 있고 해발 3,016m, 길이 29km, 폭은 약 18km에 이른다. 송쿨호수를 에워싸고 있는 몰도산맥의 설산은 한여름에도 눈을 볼 수 있다. 백두산(2,744m)보다 높은 곳에 하얀 만년설을 배경으로 바다처럼 펼쳐진 송쿨호수는 어떤 모습일까? 
    1년 중 여름 3개월만 갈 수 있는 호수
    송쿨호수는 4월이 되면 가장자리부터 얼음이 녹기 시작해 5월 말이 되어야 완전히 녹고, 8월이 지나면 다시 얼기 시작해서 1년 중 여름 3개월만 여행이 가능한 곳이다. 해발고도가  3,000m 넘으니 고산증도 염려해야 하고 한여름의 날씨임에도 밤에는 한겨울처럼 추워지고 전기도 없고 세수 물조차 자유롭게 쓸 수 없으니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지만 역시 제일 염려스러운 것은 고산증이다. 나는 안나푸르나 이후 3,000m가 넘는 곳을 몇 번이나 다녀왔지만 동행들 중 한 사람을 제외하곤 모두 처음이다. 그래도 그곳에서 1박을 하면서 초원에서 말을 탈 생각에 좀처럼 흥분이 가시지 않는다. 
    수도 비슈케크에서 차량으로 꼬박 7시간이 걸리고 여러 개의 산을 넘어야 만날 수 있는 송쿨호수로 출발했다. 도심을 벗어나니 너무나 생소한 색감을 가진 풍경에 눈을 떼려야 뗄 수 없다. 황량한 땅의 계곡엔 만년설이 녹은 물이 굽이굽이 흐르고 황금빛에 가까운 들판에는 염소, 야크, 양을 모는 목동까지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광이 이어진다. 심장이 쿵쿵 뛰면서 셔터를 누르는 손길도 바빠진다. 포장도로라고 부르기에도 궁색한 길을 달리고 산을 넘고 작은 강을 지난다. 도저히 지나치기 어려운 경치가 나타나면 차를 세운다. 송쿨호수로 가는 길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송쿨호수는 어떠할까? 
    어느덧 3,000m 고지대에 가까워지니 설산이 곁에 있고 하늘은 더욱 가까이 다가섰다. 그런데 두 가지 문제가 생겼다. 하나는 동행 중 한 명이 고산증세로 무척 힘들어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차의 기름이 거의 바닥에 가까워진 것이다. 고산증세를 겪는 동행의 문제는 상태를 보아가면서 천천히 쉬다 가다를 반복하며 가면 되겠지만 차의 주유문제는 참으로 난감하다. 이 고산지대에서 주유소를 기대할 수도 없고 휘발유를 사기 위해 어디를 다녀올 수도 없다. 그래도 운전자는 천하태평으로 운전만 한다. 
    지나는 길에는 가끔씩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유르트Yurt 외엔 아무것도 없다. 유르트는 양가죽과 펠트로 둥글게 만든 이동식가옥이다. 그런데 그 유르트 앞에 웬 통들이 즐비하게 줄지어 서있다. 바로 휘발유를 담아 놓은 통이었다. 가판대에서 먹을 것을 파는 것처럼 휘발유를 통에 담아서 팔고 있었다. 휘발유 가판대라고 해야 할까? 유르트 앞에 차를 세우니 어릴 적에 석유곤로에 기름을 넣을 때처럼 주인이 나와서 호스를 이용해 차에 기름을 넣어 준다. 
    7세 소년의 안내를 받으며 호수로
    주유를 마치고 오늘 묵을 만한 숙소를 물어보니 적당한 곳을 알려 준다. 그런데 이정표도 없고 내비게이션도 지원이 안 되는데 어떻게 그곳으로 이동해야 할지 의아해 하고 있던 차에 7~8살 정도 됨직한 사내아이가 말을 타고 나타났다. 말을 탄 아이를 따라 작은 냇물을 건너서 도착한 곳은 송쿨호수 바로 옆이다.  
    이곳 아이들은 아무리 어려도 조금이라도 경제 활동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말을 타고 가축을 키우는 것을 도왔다. 아이가 아이답지 않은데도 안쓰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유르트까지 안내하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표정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들 나름대로 행복하고 평온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가져야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 또 한 번 피부에 와 닿는다. 마을이라 하기엔 너무나 작은 몇 채의 유르트가 모여 사는 동네. 유르트와 유르트 사이의 경계는 돌멩이가 펜스 역할을 한다. 담도 없이 단순하게 돌멩이만 쭉 연결해서 여긴 내 땅 저긴 네 땅이라고 표시하는 이곳 사람들의 단순한 마음이 참으로 부럽다. ‘이해와 신뢰가 아니면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눈앞에 펼쳐진 초원, 설산 그리고 호수가 펼쳐진 풍경은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호수와 하늘의 경계선은 어디일까? 구름과 어우러진 물빛, 그 사이로 가느다란 명주실처럼 한 가닥 지나간 선이 땅이다. 유르트에 짐을 먼저 풀어야 하는데 몸도 마음도 좀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너무나 아름다운 물빛을 품에 안는다.
    저녁식사를 간단히 하고서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하고 유르트를 나선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날씨가 꽤 추워진다. 한여름에 다운재킷을 입고 담요까지 뒤집어쓰고서야 찬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호숫가 산책을 하는데 찬바람이 싸하게 볼을 스치는 추운 느낌이 참 좋다. 호수가 너무 커서 일몰의 바닷가를 걷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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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수와 호수 사이에 난 길에는 에델바이스가 지천이다.
    호수와 호수 사이에 난 길로 들어서니 에델바이스가 지천이다. 설악산에서 만난 한 송이의 에델바이스로도 얼마나 기뻤는데 이곳은 에델바이스 꽃길이다. 그 꽃길을 따라 걷는다. 일몰의 호숫가, 설산, 에델바이스 꽃길. 어쩜 이리도 아름다울까? 에델바이스 사이로 키 작은 이름 모를 꽃들이 삐죽이 얼굴을 내 밀고 있다. 이처럼 높은 고산에서 어찌 이렇게 작고 여린 꽃들이 생명력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눈을 감고 상상하다가 눈을 뜨고 숨죽일 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다시 눈에 담는다.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한 장면이 되겠지. 아쉽게도 구름이 점점 짙어진다. 찬란하게 빛나는 밤하늘은 오늘 밤엔 만나기 어렵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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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서부터 말을 타는 키르기스스탄의 아이들, 서 있는 소년이 우리에게 길을 인도해 준 아이.
    송쿨호수에서 지낼 숙소는 유르트. 안으로 들어가니 가운데에 난로가 있다. 그 난로의 연료는 말과 소의 배설물을 말린 것이다. 생각보다 화력이 좋아서 유르트 내부는 훈훈하다.  안나푸르나 로지와 비교하면 너무 안락하다. 이불 속에서 몸을 데우며 비슈케크부터 차를 타고 지나오며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 이야기의 열기로 유르트 안이 후끈 달아오른다. 밤이 조금씩 깊어  가는데 구름은 좀처럼 옅어지질 않는다. 밤하늘엔 별도 찾기가 쉽지 않다. 은하수 별빛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송쿨호수의 밤까지는 아니지만 별빛이라도 초롱초롱 보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유르트를 들락거리며 하늘의 상황만을 살핀다. 이런 내 마음이 간절하지 못했던지 밤이 깊어가도 은하수는커녕 별 찾기도 어렵다.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겠지. 다음에 다시 올 날을 기약해야겠다.
    다음날 아침, 구름층이 두터워서 일출은 생각하지도 않고 고산지대임에도 편안하게 잠을 자고 유르트 밖으로 나오니 어제 보았던 검은 구름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파란 하늘에 새하얀 구름이 가득하다. 아뿔사! 바람이 심하게 부는 고산지대에선 날씨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데 섣부른 판단으로 멋진 일출을 놓쳤음이 분명했다. 더 늦기 전에 다시 송쿨호수로 갔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몰도산맥 줄기를 눈으로 따라간다. 산봉우리를 넘어서고 골짜기를 걷다가 다시 봉우리를 넘는다. 마음은 이미 몰도산맥 종주를 다녀왔다. 천천히 걸으며 호수 풍광을 눈에 담는다. 어제 저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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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아주머니가 어미 소의 젖에서 우유를 짜고 있다.
    파란 하늘 덕분에 초원이 더욱 싱그럽다. 초록의 드넓은 초원에서는 망아지가 뛰놀다가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 모습은 또 어찌나 귀여운지 그 곁에 가서 얼굴을 맞대고 앉는다.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는 주인아저씨의 몸짓에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떨어진다. 한쪽에서는 주인아주머니가 어미 소의 젖을 짜고 있다. 평화로운 모습은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지만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는 이들의 고단한 삶이 느껴져 마음이 쓸쓸해진다. 이 여름이 끝나면 이들은 다시 가축을 데리고 초지가 있는 아랫마을로 이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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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덕에서 구운 방석 크기만 한 난은 이곳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이 담겨서 담백하고 부드럽다.
    갓구운 난에 자두잼, 아침 성찬
    어제 고산증으로 힘들었던 동행도 컨디션을 회복한 듯 좀 편안해 보인다. 아침식사 메뉴는  백숙. 손님을 위해서 귀한 닭고기로 만든 음식이었는데 나에겐 메인 메뉴보다 사이드 메뉴로 나온 난이 더 맛있다. 아주머니는 화덕을 이용해 즉석에서 방석만 한 크기의 난을 굽고 주인아저씨는 방금 짠 우유로 크림을 만든다. 아주 단순하게 생긴 기계에 우유를 붓고 손잡이를 돌리니 크림이 만들어진다. 두부 만드는 방법과 비슷하다. 방금 만들어진 크림은 부드럽고 고소하다.  단순하지만 참 신기하다. 사람들의 지혜가 놀랍다. 이런 고산지대에서 자급자족하는 이들의 삶의 방식도 알게 된다.  
    화덕에 방금 구운 난은 촉촉하고 부드럽다. 손으로 난을 쭈~욱 찢는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방금 구운 난에 자두를 통째로 넣어서 만든 잼과 즉석에서 만든 크림을 바르니 신선도도 맛도 최고다. 백숙을 옆으로 밀어놓고 난을 먹고 또 먹고 쉼 없이 먹는다.
    맛있는 아침식사가 끝났으니 이젠 초원에서 말 타기를 할 차례. 한한 번도 타 본 적 없는 말타기를 송쿨호수 초원에서 도전하다니! 언젠가부터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는 용기가 생겼다. 아마도 안나푸르나 이후부터인 것 같다. 그때 패러글라이딩의 스릴과 재미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만약 무섭다고 피했다면 그 재미를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도전은 두렵지만 언제나 새로운 경험의 맛을 알게 해준다. 
    모두 각자 말에 오른다. 말잡이의 도움 없이 말에 올랐는데 말이 거부하지 않고 천천히 호수 주변을 걷는다. 참 신기하다. 말 마음대로 가고 나는 말 위에 그저 앉아 있는 것뿐이었지만 새로운 경험에 그저 재미있다. 생각보다 무섭지도 않다. 걷기 시작하면 말에 오른다는 이곳 아이들은 참으로 말을 잘 탄다.
    푸른 초원에 덩그렇게 놓여 있는 세면대. 그런데 세면대가 참으로 희한하다. 물통에 달려 있는 꼭지를 막고 있는 막대기를 눌러 주면 물이 병아리 눈물만큼 나온다. 그 물을 이용해 세수도 하고 양치도 한다. 바다처럼 넓은 호수의 물조차 아끼며 사용하고 있는 이들의 삶에 나의 삶이 대비되면서 급 반성모드가 된다.
    비슈케크로 돌아가는 여정이 길어서 오후까지 송쿨에 머물지 못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유르트를 떠나 20여 분 왔을 때 갑자기 뭔가 서운했다. 아뿔사! 휴대폰이 없다. 어쩌지? 비행모드로 해놓았으니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일단 차를 돌려 유르트로 향한다. 유르트 주변을 모두 찾아보고 주인 분들과 아이들에게도 물어보았으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휴대폰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며 포기하려는데 갑자기 출발하기 전 상의를 갈아입기 위해 유르트에 들어갔던 것이 생각난다. 맞다! 이불 사이에 휴대폰을 끼워 놓았었다. 내 휴대폰은 이불 사이에서 얌전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잃어버렸다고 포기했는데 다시 내 품으로 돌아왔으니 더 감사하고 고맙다. 함께한 일행들에게는 진심으로 미안하다. 여행 중 작은 실수가 함께 여행하는 이들에게 많은 불편을 줄 수 있음을 깨닫는다. 
    송쿨호수에서 비슈케크로 돌아가는 길에 유럽을 경유해서 베이징까지 여행한다는 트레킹 투어팀을 만났다. 아무 곳에나 트럭을 세우고 식탁을 펴놓고 식사준비를 하는 그들을 보니 언젠가 나도 저런 방식으로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밖으로 나오니 내가 모르던 세상이 참 다양함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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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델바이스와 작은 꽃들이 가득한 길은 호수와 하늘이 맞닿은 곳까지 이어진다.
    짙은 구름으로 그토록 갈망하던 송쿨고원호수에서 별 보기는 실패했지만 해발고도 3,000m 넘는 고산지대에 올망졸망 피어 있었던 에델바이스와 이름 모르는 키 작은 꽃들이 가득한 길을 구름과 바람과 친구 되어 걷고 호수와 맞닿은 하늘이 담긴 아름다운 호수의 물빛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천상처럼 아름다운 초원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급자족하며 자연의 빛깔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한 하룻밤의 여행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물했다. 다시 돌아온다면 며칠간 머물며 아침에는 난을 만들어 먹고 꽃길을 산책하며 호수를 바라보고, 오후에는 아이들과 친구하며 푸른 초원에서 뛰어놀고, 저녁이면 은하수가 나오길 기대하며 하늘을 바라보고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싶다. 
    본 기사는 월간산 9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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