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빈 구조에 세금 썼다? 그건 오해”

입력 2021.08.31 09:34 | 수정 2021.09.08 13:47

[토론] 김홍빈 사고 ‘인터넷 갑론을박’
3인의 산악인 ‘인터넷 악플에 답하다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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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빈 대장의 장례식장 영정사진 옆에 체육훈장 청룡장이 주인을 잃고 놓여 있다.
지난 7월, 산악계는 ‘김홍빈 쇼크’에 빠졌다. 그는 장애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의 마지막인 브로드피크를 등정한 후 하산 중 실종되었다. 산악계에선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김 대장의 기사엔 적지 않은 ‘악플’이 달렸다. 
과연 김 대장은 자신의 부귀영화富貴榮華를 위해 히말라야에 오르다가 실종된 산악인일 뿐인가? 이에 월간<山>은 부정적인 반응을 담은 대표적 댓글 유형 5가지에 대해 산악인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의견을 준 이는 박영석·김홍빈 대장과 대학산악부 83학번 동기인 박연수 충북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2005년 촐라체에서 동상으로 손가락 8개를 잃은 산악인 박정헌 대장, 산악인이자 본지 기획위원인 오영훈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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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8일 오후 4시 58분 브로드피크 8,047m 정상에 오른 김홍빈 대장. 사진 광주시산악연맹 제공
“본인 취미로 간 등반에서 실종되었는데 왜 국민 세금을 쓰면서 구조해야 하나?”
박정헌 오해다. 내가 아는 한 히말라야에서 조난된 산악인을 세금으로 구조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김홍빈 대장의 경우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오영훈 같은 생각이다. 히말라야에서 조난 구조 시 헬기 구조비, 구조대 인건비, 교통비, 식비 등 구조와 관련된 모든 비용은 조난자 본인이 부담한다. 가입한 보험료로 일부 충당하고, 나머지는 후원사나 지인들이 모아 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박정헌 히말라야 8,000m급 고산 등반의 경우 대한산악연맹과 시 연맹, 아웃도어 브랜드, 방송국 등의 후원이 많이 붙는다. 세금으로 구조비를 낼 정도는 아니다. 
오영훈 ‘세금 써서 구조’한다는 오해가 생기는 이유는 정부에서 외교관을 파견하는 등의 부분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국인이 외국에서 사고를 당할 시 정부에서는 신속대응팀을 파견한다. 그들은 단지 대사관 및 현지 정부 기관이 있는 장소에 머물면서 시신 수송에 관한 행정·외교적인 절차 등에만 도움을 준다. 외교부에서는 이 파견자들의 출장경비만 지원한다.  
박연수 그렇더라도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하고 구조하기 위해 국비를 쓰는 것은 당연하다. 설령 취미로 간 등산 또는 여행이라도 말이다. 이것은 선진국의 덕목을 넘어 국가의 존재 이유이자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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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장은 끝없는 도전으로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사진 (사)김홍빈과 희망만들기
“히말라야 등반이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도 아닌데 무슨 국위선양을 했다고 나라에서 훈장까지 주나?”
오영훈 훈장을 주는 것은 대한체육회 가맹단체인 대한산악연맹의 규정에 따라 추서한다. 체육 발전 혹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여러 개 따는 등 업적에 공로가 있으면 훈장을 주는 게 체육장 수훈의 규정이다. ‘8,000m급 14좌 완등’을 올림픽 메달에 비견되는 공적으로 볼 수 있느냐는 의견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이는 대한산악연맹이 내규에 따라 관련 전문가와 자문위원이 평가해 결정할 문제이다.
박정헌 감성적인 측면으로 훈장을 수여했다고 오해하는 듯하다. 김 대장은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과 히말라야 14좌를 등정함으로써 규정에 따라 1등급 체육훈장인 청룡장 수여 서훈기준 1,500점을 넘겼다. 앞선 14좌 등정자인 엄홍길·김미곤·고故 김창호 대장도 청룡장을 받았다. 청룡장을 받는다고 연금 같은 게 나오는 게 아니라서 세금을 쓰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박연수 과거 해외 고산등반은 국위선양의 가장 좋은 ‘상품’이었다. 그래서 국가가 앞장서 등반대를 꾸려 해외 고산등반을 진행했었다. 지금은 국가 대신 각 자치단체 및 산악인 스스로의 역량으로 등반을 진행하는 것일 뿐 국위선양의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 
오영훈 덧붙이자면 ‘자기 성취’와 ‘국위선양’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국위선양만을 목적으로 하기 싫은 훈련을 억지로 해서 메달을 따려는 운동선수는 없을 것이다. 자기 성취를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 그것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주변에 귀감이 되었다면 정해진 규정과 객관적인 심사를 통해 훈장을 주는 것이 현행의 훈장제도이다.
“손가락이 없으면 주변에서 등반에 대한 모든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닌가?”
박정헌 히말라야 등반은 필연적으로 다른 존재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셰르파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산소통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고정로프의 도움도 받는다. 김홍빈 대장이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억지로 시킨다고 김 대장을 돕는 사람은 없다. 그들 또한 산을 좋아하고 김 대장의 도전을 지지하며 동참한 사람들이다. 셰르파 또한 등반가를 돕는 것은 그들의 직업이며 생계수단이다. 
다만 이번 등반의 경우, 코로나 시국으로 김홍빈 대장과 오랫동안 함께한 네팔 셰르파 대신 파키스탄의 하이포터가 고용된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김 대장 최후의 안전장치는 셰르파였기 때문이다. 
오영훈 고산등반에서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올라야만 정당한 것’이고, ‘남의 도움을 받으면 이기적이다’는 윤리적 태도는 이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 공통된 생각이 아니다. 요점은 ‘도움을 받아서 갔다’가 아니라, ‘장애인으로서 사회적 편견을 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해보겠다는 의지를 끝까지 관철했다’는 것이다. 
박연수 장애는 남과 다른 형태의 ‘불편함’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김 대장은 비장애 등반가들보다 훨씬 혹독하게 훈련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김 대장은 국민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선물하며 ‘불편함’을 조롱의 대상이 아닌 희망의 시작점으로 승화시켰다. 이런 인간 승리를 보여 주었기에 김 대장을 존경하며 그의 등반을 지지하고 도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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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장의 손가락 없는 손은 과연 조롱의 대상일까.
“남겨진 가족은 무슨 죄인가?
가장으로서 너무 무책임하다”
박정헌 목표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 세상에 어떤 사람이 히말라야에 죽으려고 가겠는가? 김 대장 같은 산악인은 ‘프로’다. 프로는 성과와 결과로 말한다. ‘프로 등반가’인 김 대장에게 14좌 완등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무게였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을 다 알지 못하면서 제3자가 가장의 책임을 평가할 순 없다. 
박연수 중국의 대문호가 루쉰은 “원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누군가가 먼저 가고 많은 사람들이 뒤따라오면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산악인은 그 길을 개척하는 자이다. 그렇기에 더욱 외롭고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된 훈련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오영훈 고산등반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가족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산악인은 없다. 그럼에도 등반을 택하는 이유는 그만큼 자신의 선택에 큰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서 윤리적으로 따질 부분은 ‘가족을 택했느냐, 등반을 택했느냐’가 아니라, 그 선택이 얼마나 자신에게 소중한지를 가족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그 선택을 믿어주고 지지하게끔 설득했냐는 것이다.
“고상돈이나 엄홍길 시대 때나 환영받던 히말라야 고산등반이 지금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오영훈 1990년대까지는 고산등반이 국가대표 대항전과 같은 분위기였다. 사명감을 띠고 나서는 전투와 같았다. 지금은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 박수를 받을 당위성은 없어졌다. 다만 김 대장처럼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루어내는 모습에 잘했다는 격려는 할 수 있겠다. 
박연수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오른 것은 ‘할 수 있다’는 강인한 정신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는 고상돈 대장의 한국인 에베레스트 초등, 엄홍길 대장의 세계 최초 히말라야 14좌 등정에 열광하며 자신감을 키웠다. 김홍빈 대장은 또 다른 의미의 14좌 등정으로 우리에게 ‘어떤 시련과 난관도 하고자 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세시를 남기고 떠났다. 
박정헌 결국은 등정주의와 등로주의의 문제다. 14좌를 등정했다고 환영받는 등정주의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김 대장의 등반이 의미 있었던 것은 14좌 등반에 ‘장애인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어 준다’는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다. 이런 한 개인의 의지와 도전, 승리의 과정을 알지 못하고, 또 알고 싶어 하지도 않은 채 비난하는 건 코로나로 삭막해진 사회적 분위기와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다. 
참여해 주신 분
박연수 충북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박정헌 산악인
오영훈 본지 기획위원
본 기사는 월간산 9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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