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는 청소년의 미래를 위한 예방주사”

  • 글 이재진 편집장
  • 사진 김영식
    입력 2021.09.03 09:32 | 수정 2021.09.08 13:46

    [people] 히말라야 오지학교 탐사대장 김영식 교사
    청소년 오지학교 탐사대 이끄는 김영식 교사 “아이들을 걷고, 먹고, 쉬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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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말라야 오지학교 탐사대에 참여한 학생들.
    영철이(가명)는 2년 동안 자기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 외부 세계를 향해 벽을 쌓은 아이는 우울증과 폐쇄공포증으로 자살까지 시도했다. 보다못한 아버지는 우연히 청소년 히말라야 탐사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문을 두드렸다. 세상에 문을 걸어 잠근 아이를 다시 밖으로 나오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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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시 목계영농조합 캠프장의 김영식 교사.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아웃도어 장비들이 빼곡하다.
    아이는 탐사대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히말라야 산길을 걸었다. 트레킹이 끝나면 네팔 현지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현지 아이들과 어울렸다. 특별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하루종일 걷고 텐트를 치는 등 신변의 일들을 스스로 해결한 것뿐이었다. 4박5일 동안 산은 말없이 아이를 지켜봤을 뿐. 그런데 침묵의 산이 아이의 말문을 열었다. 아이는 귀국 전날밤 1분 스피치에서 힘들게 꾹꾹 눌러쓰듯 말했다. “제 인생에서… 지난… 2년간이… 가장 힘들었어요.” 아이는 이후 두 번 더 히말라야를 걸었고 지금은 대한민국 육군 상병으로 복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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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오지학교 학생들과 함께한 청소년 탐사대원들.
    자폐증 아이의 말문을 연 4박5일 트레킹
    일선 학교 교사인 김영식씨는 18년째 히말라야 오지학교 탐사대를 이끌고 있다. 대한산악연맹 충북연맹회장인 그를 충주시 목계영농조합이 운영하는 폐교를 이용해서 만든 캐러밴 캠핑장에서 만났다. 검게 그을린 얼굴의 김 교사는 여름방학 중에 아이들과 함께 백두대간을 종주했다고 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딩 선생님처럼 그는 아이들의 ‘캡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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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오지학교에서 봉사활동하는 학생들.
    김 교사는 충북을 대표하는 등반대장이었다. 청주 운호고교 재학 시절 산악부 부장을 맡아 대통령기 등산대회 고등부 3연패를 하는 등 등반 잘하고 리더십 뛰어난 충북 산악계의 기대주였다. 그는 군 입대를 앞두고 ‘88 에베레스트 원정대 훈련’에 참가했을 정도로 고산원정에 열정적이었다. 1990년 충북교육청을 찾아가 교육감에게 교사 발령을 미뤄 달라고 사정해 특별허가를 받은 뒤 충북산악연맹의 첫 해외원정인 칸첸중가(8,586m) 원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1995년에는 충북연맹의 캉텐그리(7,010m) 원정대 대장을 맡아 대원들이 정상에 서도록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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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네팔 학교의 담을 벽화로 채색하는 학생들.
    1998년 남미 아콩카구아(6,960m) 원정대 대장을 맡아 대원들과 정상에 함께 올랐고, 1999년에는 칸첸중가 북벽  등반을 했다. 2000년에는 에베레스트·로체 등반대장, 2001년에는 엘브루스(5,642m)를 등정했다. 숱한 원정을 이끌고 실무를 맡아 등반행정에 밝았던 그는 대한산악연맹 등반기술위원회 해외원정총괄로 활약했다. 
    그의 이런 전문적인 노하우와 교사로서의 청소년에 대한 애정은 18년간 성공적으로 히말라야 청소년 탐사대를 이끌어온 원동력이다. 탐사대는 정부 지원을 한푼도 받지 않는다. 자비 참여를 원칙으로 하되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탐사대를 거쳐간 선배들이 갹출해서 지원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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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7일부터 21일까지 충북의 공립형 은여울 대안학교 학생들과 4박5일간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정부 지원 한푼도 안 받아
    폐교 캠핑장 교실 한켠에 있는 김 교사의 ‘아지트’는 등산뿐만 아니라 스키, 카약 등 아웃도어 장비로 빼곡했다. 그는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그는 이 모든 장비들을 아이들과 함께하는 아웃도어 활동에 쓰기 위해 차곡차곡 정리해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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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19일부터 23일까지 방학을 맞아 4박5일간 충북 지역 고등학생들과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다문화가정에서 자란 민호(가명)라는 아이도 생각나요. 한국인 아버지가 가정을 버린 후 몽골 출신 어머니, 누나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던 그 아이도 히말라야에 데려 갔지요. 그후 고3 졸업반 때 자동차 부품공장에 취직됐다며 편지를 보내왔어요. 꼬깃꼬깃 접은 100만 원짜리 수표 한 장과 함께. ‘히말라야 탐사대’ 후배들을 위해 써달라면서. 가슴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오더군요. 불우한 환경의 민호에게 히말라야 트레킹 경험이 인생을 살아가는 큰 버팀목이 된 것 같아 교사로서 정말 큰 보람을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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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말라야 오지학교 탐사대에서 트레킹 중인 학생들.
    김 교사는 아웃도어 활동은 공교육 시스템이 담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교육 도구라면서 “학생들에게 인생의 목표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교육의 본래 의미인데 지금 한국 교육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세계 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기본이 되는 상식과 집단 지성 시대에 필요한 자질을 길러줘야 하는데 오로지 점수, 점수예요. 아이들을 점수의 노예로 만드는 지금의 한국 교육은 뜯어고쳐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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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말라야 오지학교 탐사대에서 트레킹 중인 학생들.
    김 교사는 교육 현실에 대해 참았던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한국 학생들의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답니다. 학교라는 공장에서 점수기계를 찍어내는 지금의 교육 시스템이 부른 비극이지요. 아이들을 걷고, 먹고, 쉬게 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적응력과 창의력은 놀랍습니다. 집 주변을 산책하는 등 간단한 아웃도어 활동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달라지는 아이들을 보면 부모들이 먼저 놀랍니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히말라야 탐사대를 찾은 여학생이 있었다. 4박5일 트레킹 마지막 날 1분 스피치를 했다. ‘너에게 히말라야란?’ 이라는 물음에 여학생은 “예방주사와 같다”고 답했다. 아웃도어 교육은 청소년들의 미래를 위한 예방주사다. 
    본 기사는 월간산 9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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