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3대 난코스 댓재~백복령, 폭염특보를 뚫고 걷다

  • 글 사진 김채울 @_whereismypizza
    입력 2021.09.07 17:17

    기부천사의 백두대간 일시종주기 <12회>
    자암재~댓재~박달재~백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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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마주한 텐트 밖 풍경
    일시종주 32일째. 자암재~댓재~박달재
    어제저녁 내내, 그리고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초저녁부터 너무 추워서 침낭 속에서 벗어나질 못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여전히 추워서 몸을 웅크리게 된다. 더워서 힘들고, 추워서 힘들고. 오늘도 모든 걸 다 경험할 수 있는 백두대간이다.
    다행히 아침식사를 하는 사이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종주를 시작한 이후로 아침에 텐트에서 태양을 만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런 날도 있구나 싶은 마음에 유독 더 반가웠다. 오늘은 어제 못 간 댓재까지 간 뒤, 갈 수 있는 만큼만 운행하고 적당한 곳을 박지로 삼을 계획이다. 원래는 댓재까지는 사촌오빠와 같이 가려고 했는데, 마침 자암재에서도 환선굴 방면으로 탈출할 수 있어 오빠와는 자암재에서 작별인사를 했다.
    자암재에서 길을 걷기 시작한지 얼마 안 지나 어느새 옆으로 도로와 밭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내 귀네미마을로 들어선다. 20분 사이에 족히 30명은 만난 것 같다. 아마 일요일이라 백두대간을 걷는 산악회에서 단체 산행을 오신 모양이다. 대간길에서 이렇게 사람을 많이 만난 적도 처음인 듯하다. 산악회분들을 보며 이번 종주를 끝내고 앞으로 나도 종종 친구들과 구간 종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백두대간을, 나 혼자만 경험해보는 것보다는 주변 지인들에게도 알리고 싶다.
    자암재를 지나 큰재에 도착했다. 상주에서도 큰재가 있었는데, 지금은 강원도에 있는 큰재라니, 이제 정말 끝이 보인다. 큰재 바로 앞, 임도에 배낭을 등받이 삼아 누워 쉬고 있던 커플하이커를 만났다. 백두대간을 걷는 분들인 듯 하여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괜히 휴식에 방해되는 건 아닐까 싶어 그냥 지나쳐왔다. 대간을 함께 걸을 수 있는 친구나 지인이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자 행운일 것 같다. 나도 당일로 또는 며칠씩 트레일엔젤로 찾아와준 분들과 너무 감사하고 좋은 추억을 쌓았지만, 그와 별개로 처음부터 끝까지 대간을 함께 걸으면 그것도 굉장히 재밌는 추억이 될 것 같다.
    큰재에서 황장산까지의 길은 계속 오르내림이 반복되며 비슷한 풍경이 계속 이어져 약간은 지루한 느낌이 있었지만, 그래도 최근 계속 동행인이 있어서 그런지 에너지가 가득 충전된 상태라 기분 좋게 걸었다. 트레일엔젤이 한 번 찾아오면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의 에너지가 남아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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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의 오아시스같았던 댓재 주차장의 식수대
    아침엔 그렇게 춥더니, 댓재 도착 30분 전쯤부터 갑자기 태양이 엄청 강해지며 더위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더울 수가 있나?”
    순식간에 더워지기 시작하며 땀이 뚝뚝 떨어지고, 물도 거의 떨어진 탓에 두 배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댓재까지 가면 휴게소가 있다고 하니, 조금만 더 참아보자는 생각을 하며 부지런히 이동했다. 그렇게 도착한 댓재에는 주차장 바로 옆에는 식수대가 있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이었다. 바로 식수대로 달려가 물을 원 없이 마시고, 수통에 물도 넉넉히 보충했다. 댓재까지 오며 휴게소 가서 콜라를 사 먹을 생각만 하며 걸었는데, 댓재의 ‘댓재휴게소’는 ‘두타카페’로 바뀌어 있었다. 아쉬운 대로 시원한 스무디를 주문해서 마시고, 뜨거운 태양을 피해 한참을 카페에서 쉬었다. 1시간 정도 푹 쉬고 슬슬 다시 이동하려던 찰나 핸드폰 알람이 울려 켜보니, 폭염 특보다. 어쩐지, 더워도 너무 더웠다. 체감온도는 25도라고 나와 있었지만 내 체감온도는 35도는 되는 것 같았다.
    댓재~백복령 구간은 희양산 구간, 문장대~밤티재 구간과 함께 백두대간 3대 난코스 중 하나라고 한다. 밤티재 구간은 비법정 구간이라 우회했고, 희양산은 이미 지나쳐왔으니, 이제 이 댓재~백복령 구간만 지나면 악명 높은 난코스들은 다 끝내는 셈이다. 한 번에 돌파해볼까 싶은 생각도 잠깐 했지만, 힘든 여행보다는 즐기는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두 번에 나눠 가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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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듦을 잊게 해주었던 두타산의 경치
    다시 길을 나섰을 때도 여전히 태양이 너무 강렬해 곧바로 땀으로 흥건해졌지만, 맑은 하늘과 가득한 구름 덕분에 경치 구경하는 재미가 컸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거나 마루금을 바라볼 때면 힘듦이 싹 해소되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댓재에서 두타산까지의 6Km의 길은 길게만 느껴졌다. 유독 길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며칠간 동행과 함께 걷다가 혼자 걸으려고 하니 허전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괜히 핸드폰을 만지면서 걷게 되고, 인스타그램을 켜 친구들의 소식을 확인하며 걸었다.​ 두타산은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명산이라 그런지 등산로가 전반적으로 아주 깔끔하게 잘 관리되고 있었고, 초반에는 계속 완만한 등로였다가 중간에 한 번씩 숨이 차오르는 구간들이 나타났다.
    두타산 정상 도착 100-200m 전, 샘터 갈림길이 나온다. 두타산 정상, 청옥산, 그리고 이기령까지는 샘터가 많아 당분간 식수에 대한 걱정은 덜할 것 같다. 백두대간의 모든 구간에 물이 넉넉하면 얼마나 좋을까? 식수포인트를 정확하게 모르다 보니 물을 항상 여유롭게 들고 다녀서 배낭이 늘 무겁다.​
    두타산은 예전부터 베틀바위를 보러 와보고 싶었던 산이었는데, 멀어서 계속 찾아오지 못한 곳이다. 백두대간을 하며 가보고 싶었던 산들을 다 가볼 수 있어 참 좋다. 오늘은 발목도 아프고 유독 늘어지는 느낌이라 일찍 운행을 마무리하고 싶은 생각에 두타산 정상의 헬기장에서 텐트를 칠까도 생각했는데, 아직 등산객들도 드문드문 올라오는 것 같고 바람도 많이 불어 조금 내려가서 치는 게 나을 것 같아 박달재까지 가보기로 한다. 두타산 정상에서 박달재까지는 2.3km, 박달재에서 청옥산까지는 1.4km다. 박달재까지는 계속 내리막길이었고 길도 딱히 어려운 길은 아니었는데 너무 더운 데다가 발목이 아파서 속도를 전혀 못 냈다. 최근에는 발목 통증이 아예 없어서 완벽히 다 나은 줄 알았는데, 갑자기 오늘 점심 즈음부터 다시 왼쪽 아킬레스건에 통증이 있다. 아무래도 매일 쉬지 않고 걷다 보니 발목에 피로가 누적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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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팩을 단단히 박았다
    오늘은 자암재에서 박달재까지, 어제보다도 적은 운행거리인 15.7km만에 운행을 마무리했다. 너무 짧게 운행한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 진부령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에 하루에 10km씩만 걸어도 한 달 안에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 부담이 없다. 종주 초반엔 빨리 가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최대한 많은 거리를 이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강원도에 들어선 이후부터는 이제 진짜 끝이 다와간다는 생각에 조급함도 막막함도 사라졌다. 
    일시종주 33일째. 박달재~백복령
    오늘은 지난 33일간의 대간길 중 손꼽히게 힘든 하루였다. 댓재~백복령 구간이 백두대간 3대 난코스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어제 청옥산 부근인 박달재까지 가서 야영했기에 거리가 짧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하루종일 끊임없이 나와 싸우고, 설득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며 보내야 했다.
    오늘도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아침을 맞이했다. 정말이지, 7월이 이렇게 추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전날 텐트 피칭할 때에도 바람이 너무 강해 고생하며 힘들게 텐트를 피칭했는데, 밤새도록 바람이 불어 혹 여나 텐트가 날라가진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박달재에서 청옥산까지는 쭉 오르막이다. 한 후기에서 이번 구간 중 청옥산까지의 오르막이 가장 힘들었다는 글을 봐서 꽤나 긴장한 상태로 올랐는데, 아직 아침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생각보다 할 만한데?”
    그러나 이때는 몰랐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청옥산 정상을 지나 1.2km 정도를 더 가 연칠성령에 도착한다. 연칠성령에 세워져 있는 안내표지판을 읽어보니 연칠성령은 예로부터 삼척시 하장면과 동해시 삼화동을 오가는 곳으로 산세가 험준하여 난출령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어쩐지, 연칠성령까지 오는 길엔 힘들어서 여러 번 쉬며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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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령 도착 전에 만난 숲길
    초반엔 완만했지만 정상에 다다를 때 즈음부터 무자비한 암릉이 등장하여 힘겹게 고적대로 올랐다. 문경 구간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긴 하지만 암릉 구간은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힘들다.​ 암릉 구간에 더불어 오전부터 몰아치는 무더위도 한몫했다. 핸드폰을 켤 때마다 오는 폭염 알림이 오늘의 더위를 실감하게 했다. 어제 오후부터 오늘 아침까지는 바람이 그렇게 많이 불더니,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 한 점 안 부는 게 참 야속했다. 예상했던 대로 쉽지 않은 길, 그리고 더위까지 가세하며 몇km 걷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몸에 힘을 다 쓴 듯 하다. 평소보다 유독 힘들어서 초코바, 사탕 등 배낭 속에 있는 간식들을 계속 꺼내 먹으며 느릿느릿 이동했다. 청옥산만 지나면 괜찮겠지 싶은 생각에 오늘 길을 나섰는데, 청옥산을 걱정할 게 아니었다. 고적대와 갈미봉을 오르는 게 가장 힘들었다.
    다행히 갈미봉에서 이기령으로 향하는 길은 비교적 수월했다. 역시, 백두대간은 한참동안 힘들게 하다가도 다시 쉬운 길을 내주며 달래준다. 여태까지도 계속 그랬다. 힘든 길이 이어져 지칠 때면 완만하고 쉬운 길이 나오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즈음 트레일매직과 트레일엔젤을 만나게 된다. 이기령에 놓여져있는 데크에 누워 한참 쉬다가, 이어서 상월산을 향해 오른다. 상월산 정상에서 가파른 내리막을 1Km 가량 내려오면, 원방재에 도달한다. 원방재는 임도와 연결되어있고 근처에 계곡이 있는지 물소리가 굉장히 가깝게 들렸다. 더위를 먹었는지 힘이 나지 않아 여기서 멈출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조금만 더 가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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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복령 날머리.
    원방재를 지나 1022봉 이후로는 경사가 심한 길도 없고 길도 잘 되어있었지만, 그 전까지 힘을 많이 썼는지 1km가 10km같이 느껴졌다. 지난 경험들을 통해 느리더라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결승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 덕분인지, 백두대간 길을 나선 이후로 한 번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오늘은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종주 초반엔 우중산행을 하는 게 그렇게 힘들었는데, 장마와 폭염을 모두 경험해보니 폭염보다는 장마가 나은 듯 하다. 폭염 속의 산행은 숨 쉬는 것조차 힘들고, 몸에 있는 에너지가 계속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할 수 있어!” “다 와간다!” “조금만 더 가서 쉬자!” 계속 스스로에게 외치고, 격려하고, 응원하며 걸었다.
    오늘도 야영할 생각이었지만,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 오늘은 아무래도 오랜만에 따뜻한 물로 씻고 피로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에 백복령 근처 마을의 민박집으로 향했다. 지도에 나와 있는 민박집 몇 군데에 전화를 해봤는데 다 전화를 받지 않아 오늘도 야영해야 되나 싶었지만, 다행히 마지막으로 전화한 곳에서 숙박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오늘도 운행 거리는 짧았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스스로에게 고생했다고, 잘 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은 날이었다. 친구들이 백두대간 어떠냐고 물을 때면 “할만해! 너도 해봐!”라고 얘기해주곤 했는데, 새삼 그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중에 또 한 번 물어본다면 다시 덧붙여서 말해줘야겠다. 마냥 쉽지만은 않더라고.
    이제 다음 주 정도면 길고 길었던 백두대간의 여정이 끝날 것 같다. 마음이 뒤숭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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